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85화 (85/203)

# 85

현세귀환록

085. 결실(7)

최강훈이 감상에 젖은 것 같자 강민은 그의 어깨를 두드린 후, 애초에 여기 왔던 목적인 말론도와 대화를 나누었다.

“말론도, 애들 두 명 정도 일본으로 보내야겠는데.”

“무슨 일이십니까?”

“아, 서영이가 일본으로 출장 가는데 혹시 싶어서 말이야. 아무래도 요즘 일본이 시끄럽잖아.”

일본이 시끄럽다는 이야기에 말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스페셜팀에서도 일본을 방문하는 요인의 경호를 맡았었는데, 이능력자들의 전투가 여기저기에서 느껴졌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서영 님이라면 제가 직접 나서지요. 그런데 언제 출발하시는가요?”

“말론도라면 믿을 만하지. 출발은 다음 주 화요일이야.”

“음, 그럼 저와 앤디가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리키를 데려가려고 했는데 지금 저 꼴이니.”

말론도가 고갯짓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리키가 비척거리며 회복실로 향하고 있었다. 진혈을 깨운 대가로 거의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인 리키는 회복을 빨리하기 위해서 마나집약진과 신체 활성화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회복실로 들어갔다.

회복실로 들어가더라도 아까 전의 상태라면 최소 일주일은 지나야 서서히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반면 마지막 순간에만 힘을 사용한 앤디는 몇 시간 뒤면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기에 다음 주 일정에는 관계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강민에게 말한 말론도에게 옆에 서 있던 자넷이 말을 건넸다.

“팀장님, 앤디는 다음 주에 홍콩 출장이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홍콩이라는 말에 말론도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자넷에게 되물었다.

“홍콩? 아, 그렇지. 유성건설이었나?”

“네. 유성건설에서 일주일간 요인 경호를 요청해왔습니다.”

지금 KM가드의 스페셜팀은 상류층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실력이 탁월한 것도 있었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B급 능력자나 C급 능력자나 모두 초인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정작 스페셜팀이 인기 있는 주된 이유는 잘생긴 외국인 경호원이 영어는 기본에 한국어도 잘하고,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각종 언어에 능통하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 동행하면 우선 소위 말하는 ‘간지’가 났다. 외국 클라이언트나 바이어를 만나는 상황에서는 그런 겉치레가 생각보다 중요했다.

또한 언어에 능통하기에 경호와 통역의 일석이조를 노리고 고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비즈니스에서는 별도의 전문가와 함께하겠지만, 해외까지 나가 관광이나 여가를 즐길 때는 따로 통역사를 고용할 필요 없이 경호원만 대동하면 되니 편리한 점이 많았다.

물론 스페셜팀인 만큼 그들의 고용 비용은 일반 경호팀보다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100배까지 압도적으로 높아, 비용만 따지면 일반 경호원과 통역원을 쓰는 것이 더 나았다.

하지만 스페셜팀의 내외적으로 특출한 능력에 높은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재력이 있는 부유층은 비용과 관계없이 자주 스페셜팀의 경호원을 요청했다.

“음…… 그럼 엘렌과 같이 갈까?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아무래도 여자가 한 명 있는 것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도 편할 테니 말이야. 엘렌은 일정이 없지?”

“네, 엘렌은 가능합니다.”

자넷의 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말론도는 강민에게 아까의 말을 정정해서 말하려 했다. 그때 둘 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강훈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형님, 서영 누나 일본으로 출장 가나요?”

“그래, 회사 일로 출장 가게 되었어.”

“혹시 저도 같이 가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경호원도 한 명 부족하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최강훈의 말에 강민은 잠시 생각하다 그에게 대답했다.

“네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야. 마스터가 경호하면 뭐 만일이라는 것도 없겠지. 그런데, 서영이가 회사에 너와 사귄다고 이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보류했다.”

“그게 왜……?”

최강훈이 강민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자 옆에 있던 유리엘이 그에게 추가적인 설명을 하였다.

“회사에는 네가 3년간 공부를 하러 갔다고 했는데 갑자기 경호원으로 오면 서영이 입장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아……. 그렇군요…….”

공부하러 갔다던 남자 친구가 갑자기 경호원으로 들어온다면 그간 강서영이 말한 내용의 아귀가 좀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어차피 최강훈에 대해서 모든 사실을 아는 강서영은 당연히 최강훈의 직업을 따지지는 않지만, 회사 내에서는 강서영이 거짓말을 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었다.

최강훈은 상황은 이해했지만 내심 기대를 했었는지 아쉽다는 기색이 보였다. 그런 최강훈의 실망한 표정을 본 유리엘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강민에게 말했다.

“민, 강훈이를 KM가드의 이사로 앉히는 건 어때요?”

“이사?”

“스페셜팀을 관리하는 이사 직함을 주고, 이번 출장에 동행시킨다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대외적으로 서영이 체면도 살고 말이에요.”

지금이라도 강서영이 강민의 동생임을 밝힌다면, 그녀는 로열패밀리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서영이 원하지 않았고, 그것이 알려진다면 지금 친해진 팀원들과도 거리가 멀어질 것이 자명하였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이사가 된 남자 친구가 있다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의 일상에는 큰 이상이 없을 것이었다.

“흐음…….”

강민이 그녀의 제안을 생각하는 듯하자, 유리엘이 한마디 더 보탰다.

“민이 강훈이 후견인이라고 하면 내부에서도 문제는 없을 거예요. 어차피 민의 회사이니 말이에요.”

사실 재벌의 가족들은 20대에 입사해서 이사를 다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니, 최강훈의 후견인으로 강민이 있다고 하면 그가 이사가 되는 것도 무리한 결정은 아니었다.

유리엘의 말에 좀 더 생각하던 강민이 결정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유리 말대로 하자. 월요일자로 발령 내서 회사에 소개하고 화요일 출장에 바로 동행시키면 되겠네.”

한 회사의 이사가 이렇게 손쉽게 결정되었다.

최강훈은 강민과 유리엘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최강훈은 머리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검정고시 출신에 대학도 나오지 않아 소위 말하는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의 이사가 된다니 최강훈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에서 나온 이후로 사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가고 있었기에 KM그룹 정도의 대기업의 이사가 일반 세계에서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최강훈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강민에게 말했다.

“혀…… 형님. 제가 이사라고요? 저는 그런 쪽으로 아무것도 모르는데…….”

최강훈의 당황한 얼굴을 본 유리엘은 강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대답을 하였다.

“강훈아, 업무적으로 할 일은 없어. 네가 할 일은 오늘처럼 여기 스페셜팀을 더 강하게 만드는 거지.”

“아…….”

강서영과 단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에서 꺼낸 말이었는데 이렇게 회사의 이사가 될 줄은 몰랐다.

마스터의 경지면 일반 세계가 아닌 이능의 세계에서도 초인과 마찬가지의 능력자이기 때문에 충분히 당당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고, 그 스스로가 세력을 쌓고 일반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면 훨씬 큰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최강훈은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없었고, 당장은 일반 세계에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강민의 이런 배려가 고마웠다.

물론 강민은 최강훈보다는 강서영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고마운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단지 스페셜팀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일반 세계에 있는 대기업의 이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그가 먼저 제안은 할 수 없었지만, 최강훈 역시 이런 사회적 지위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대우받고 싶다기보다는 강서영에게 떳떳하게 서고 싶어서였다.

자신의 여자 앞에서 당당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남자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강민의 힘으로 그 지위를 얻게 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최강훈은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혀 진심으로 강민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감사는 무슨. 그런데 오늘 서영이 만나기로 한 거 아냐? 아까 마친 것 같은데 말이야.”

집에서 수련하던 최강훈이 강민과 같이 회사로 들어온 이유가 저녁에 강서영을 만나기로 한 것 때문이었다. 회사에 도착한 이후 약속 시간까진 상당히 시간이 남아 스페셜팀을 구경하러 올라갔다가 대련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즉, 오늘 회사로 온 가장 큰 이유는 강서영을 만나는 것이었다.

강민의 말에 최강훈은 고개를 들어 유리 천장을 올려다보니 이미 하늘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최강훈은 연무장 사방에서 비추는 빛 때문에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늘을 보고 이미 저녁이 되었음을 알아챈 최강훈은 황급히 벽면에 설치된 시계를 확인했다.

시곗바늘은 이미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서영과의 약속 시간은 7시까지였다. 대련이 끝나고 시간을 확인했을 때 6시 30분이어서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강민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흐른 것이었다.

“헉! 늦었다. 형님,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최강훈은 서둘러 외투를 챙겨 들고 허겁지겁 엘리베이터로 뛰어나갔다. 그런 최강훈의 모습을 보면서 유리엘은 빙그레 미소를 짓다가 강민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정도면 서영이 짝으로 나쁘지 않죠?”

“누구를 봐도 마음에 찰까 싶지만, 강훈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강민의 눈에 보이는 동생 강서영은 너무도 여린 한 마리의 작은 새와 같았다. 아직 하늘을 날기는커녕 둥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작은 새. 그것이 강민이 보는 강서영이었다.

과잉보호일 수도 있지만, 아직 강민에게 동생인 강서영은 보호해야 할 존재였다. 동생을 그렇게 생각했기에 과거 한수찬의 모친에게 모진 말을 한 번 들은 것으로 굴지의 대기업까지 만들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누구를 데려와도 그녀의 짝으로 가당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몇 년간 지켜본 최강훈은 의지가 굳세고, 책임감이 넘쳤다. 그리고 강서영에 대한 진심이 있었다. 진심이 없었다면 최강훈이 강서영 옆에 서는 것을 두고 볼 강민이 아니었다.

그런 강민이 최강훈을 인정하고 있었다. 만약 최강훈이 직접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강민이 자신을 인정해 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으러 뛰어간 최강훈이었지만 퇴근 시간이다 보니 6대나 되는 엘리베이터는 층층이 멈추며 지연되고 있었다. 이대로 기다린다면 최소 10분 더 걸릴 것 같았다. 이미 15분이나 늦은 상태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계단으로 뛰어가려다가 이곳이 옥상임을 깨달은 최강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옥상정원으로 나가는 입구를 찾는 것이었다. 현재 옥상은 대부분 스페셜팀의 연무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이 흡연자를 위한 공간으로써 마련되어 있었다.

이내 문을 찾은 최강훈은 옥상정원으로 뛰어들며 팔찌에 내장된 인식 장애 마법을 펼쳤다. 유리엘이 그에게 건네준 마법기에는 인식 장애 마법, 통역 마법을 비롯한 기초 마법들이 내재되어 있었다. 인식 장애까지 건 최강훈은 옥상정원으로 나가자마자 옥상의 펜스를 넘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휘이잉~

인식 장애 마법이 펼쳐져 있어 사람들은 최강훈을 인식하지 못하였지만, 최강훈은 건물의 벽을 바닥 삼아 경공까지 펼치며 40층 빌딩에서 바닥을 향해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가까워졌는데 바닥에 도착하기 직전 살짝 뛴 최강훈은 다시 한번 팔찌의 마법을 펼쳤다.

“플라이.”

애초에 비행을 하기 위해서 만든 마법기였기에 비행 마법은 당연히 있었다.

사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최강훈은 40층에서 뛰어내리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바닥에 도달하려면 그런 방식으로는 힘들었다. 하지만 마법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경공까지 펼쳐서 지상으로 내려온지라 옥상에서 지상까지 걸린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 최강훈은 서둘러 약속 장소인 KM빌딩의 입구로 뛰어갔다.

입구에는 검은 코트를 입은 강서영이 서 있었는데, 한눈에도 뾰로통한 표정이 보여 최강훈의 마음을 졸이게 하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강서영 가까이 다가간 최강훈은 그녀를 불렀다.

“서영 누나!”

최강훈의 목소리에 강서영이 그를 돌아봤는데,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환해지려는 표정을 억지로 굳히며 최강훈에게 따져 물었다.

“뭐야? 최강훈! 20분이나 늦었잖아!”

아직 17분 정도였지만 그걸 따질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걸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가까이서 그녀를 보자마자 최강훈은 갑자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여 강서영을 꼭 끌어안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자 강서영은 당황하며 말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여기 회사 앞이야!”

하지만 최강훈은 개의치 않고 그녀를 안으며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

“미안해, 누나.”

그 순간 강서영의 버둥거림은 멈췄다. 최강훈의 목소리에 실린 감정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최강훈은 단지 지금 늦어서 미안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3년간의 기다림에 대한 미안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의 목소리에 실려 있는 물기가 그것을 짐작하게 하였다.

그것을 알아챈 강서영은 회사 앞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두 팔로 최강훈을 감싸며 그를 같이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이제 기다리게 하지 마.”

3년간의 기다림의 열매가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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