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84화 (84/203)

# 84

현세귀환록

084. 결실(6)

파바박-!

방검복을 입은 세 명 외국인이 최강훈을 공격했다. 연수 공격을 해본 경험이 많은지 그들의 공격은 겹치지 않고 최강훈의 빈 곳을 거의 동시에 노렸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굳게 다문 입술에는 이번에는 기필코라는 의지가 엿보이는 듯했다.

사실 이미 세 명의 외국인은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최강훈에게 공격을 시도했지만, 유효타는커녕 그를 맞추지도 못하였다. 그들이 행한 모든 공격을 최강훈이 피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빛 교환을 통해서 최강훈이 피할 곳이 없는 연수합격을 시도하였다. 빈틈없이 행해지는 이 공격은 최강훈에게 큰 피해는 주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막아내기는 해야 하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최강훈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입가에 미약한 미소마저 띠고 있어 여전히 여유가 넘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강훈은 이번에도 세 명의 공격을 막지도 않고 살짝 몸을 틀어 다 피해 버렸다.

만일 일반인이 이 모습을 본다면 최강훈의 몸이 엿가락처럼 변했다가 원 상태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을 것이었다.

최강훈을 공격한 그들 역시 최강훈의 모습이 마치 고무 인형처럼 마음대로 구부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워낙 빠른 속도 때문에 일어난 착시현상이었다.

애초에 피할 공간이 없다고 생각해서 시도한 공격이었고, 그 공격을 막아냈을 때 이어질 연계기를 생각하고 있던 세 명의 외국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도 잠시, 당황한 기색을 재빨리 지우고 다른 공격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그들이 공격을 시도하기도 전에 최강훈의 오른손이 아까 그의 상단을 공격했던 외국인의 오른쪽 옆구리에 닿았다.

펑-!

“윽!”

최강훈의 손은 살짝 닿았지만 그 손에 담긴 내력이 만만치 않았는지 폭발음과 함께 외국인이 5미터가량 날아가 버렸다.

손속에 사정을 두었는지 아니면 방검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날아간 남자는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은 듯했다. 덕분에 곧 자세를 바로잡았지만 다시 전면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마치 패배를 인정한 느낌이었다.

동료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본 나머지 두 명은 재빨리 다음 공격을 감행했다. 그중 한 명의 눈동자가 붉게 물드는 것이 심상치 않은 공격임을 짐작하게 하였다.

“허어, 리키가 열 받긴 했나 봐. 대련에서 진혈까지 깨우다니 말이야. 끝나고 나면 몸에도 상당히 부담이 될 텐데 말이야. 자넷, 저 녀석 내일 일정 없어?”

최강훈과 세 명의 외국인의 대련을 보고 있던 말론도가 입을 열었고, 말론도의 말에 그의 옆에 서 있던 20대 후반 정도의 뿔테 안경을 쓴 금발의 백인 여성, 자넷이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조작하였다.

이내 리키의 일정을 파악했는지 자넷은 뿔테 안경의 테를 살짝 들어 올리며 안경을 고쳐 쓰더니 말론도에게 대답했다.

“네, 팀장님. 스페인 대사가 요청한 요인 경호도 이번 주 수요일부로 종료되어 일단 일정이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말론도가 팀장을 맡은 지도 3년 가까이 되었기에, 지금은 팀원들이 말론도를 팀장으로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일정이 없다는 말에 말론도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자넷에게 다시금 물었다.

“끄응…… 어쩐지 무리한다 싶더니…… 포션하고 혈액 팩은 여분이 있지?”

“네,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넷에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말론도는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자신이 별도로 언급하지 않아도 팀원들은 하는 일을 중지하고 이 대련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팀원들에게 말론도는 노파심에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다들 잘 지켜봐. 너희가 그간 수련으로 강해졌다고는 하나 저런 강자를 만나면 공격 한 번 못 해보고 나가떨어지는 거야. 그러니까 수련의 강도를 낮출 생각은 하지 않도록!”

별도의 대답은 없었지만 말론도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지난 3년간 많이 강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팀원들의 콧대가 많이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최강훈에게 대련을 부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KM가드 스페셜팀의 연무장으로, KM빌딩의 옥상을 개조하여 만든 공간이었다. 그래서 사방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천장은 독특하게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었다.

지금도 10미터 높이의 유리 천장 밖으로 하늘까지 보였는데, 저녁이 다 된 시간이라 유리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지금까지의 푸른빛을 잃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하늘 한편에는 때 이른 반달이 흐릿한 노란빛을 띠고 떠올라 있었다.

유리 천장 아래로는 여전히 최강훈과 두 명의 요원들 간의 대련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대결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기에 장내의 공기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그 대련을 하며 연무장 곳곳으로 엄청난 충격들이 가해졌지만 건물에는 아무런 충격이 없었다. 유리엘이 펼쳐놓은 충격 흡수 마법진이 모든 충격을 흡수해서 지하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이 아웃되어 공격자가 세 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들었으나, 최강훈이 받는 압력은 세 명일 때 이상이었다. 진혈을 깨운 리키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최강훈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10명, 아니, 지금 생각으로는 100명도 거뜬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능력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났기 때문이었다.

지금 두 명은 3년 전의 자신과 비등한 수준의 능력자였지만, 현재 최강훈은 그때의 최강훈이 100명이 있어도 이길 수 없는 강자였다. 마스터의 경지는 그런 경지였다.

리키는 눈을 붉게 물들이고 한참 동안을 지속적으로 공격했지만, 최강훈에게 유효타는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최강훈이 이리저리 피하고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처절한 공방을 주고받는다면 이처럼 허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 자신의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최강훈에 대한 분노보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진혈을 깨우고 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리키는 마지막 공격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리키는 앤디와 한 차례 눈빛을 교환한 후 최강훈에게 크게 공격을 해 앤디가 힘을 끌어올릴 시간을 벌어줄 것을 생각했다.

이미 오랜 시간을 같이한 둘은 눈빛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앤디 역시 리키의 생각대로 신속히 진혈을 깨웠다.

물론 별도의 틈을 만들지 않는다고 해도 최강훈이 그사이를 노려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련도 일종의 전투였다.

상대가 공격하지 않을 것을 믿고 행동하는 것은 대련의 가치를 낮추는 일일 것이었다.

그 모습에 말론도는 머리를 짚고 중얼거렸다.

“이런, 앤디 녀석까지……”

진혈을 깨우는 것은 뱀파이어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진혈을 깨우고 나면 몸에 부담이 가기 때문에 깨운 시간에 비례하여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이런 대련에서 진혈까지 쓰는 것은 과한 행동이었다. 그만큼 최강훈이 그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껏 슬쩍슬쩍 피하기만 하면서 아까 전 자일을 아웃시킬 때 딱 한 번 공격한 것이 전부였던 최강훈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공격임을.

그리고 그들을 승복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마지막 공격만은 피하기보다는 받아주는 것이 옳다는 것을 말이다.

최강훈의 결심을 알아차렸는지 리키는 피처럼 붉어진 주먹을 최강훈의 복부를 향해 질렀다. 온 힘을 다한 마지막 공격이라서 그런지 아까의 공격보다 족히 두 배는 빠른 속도의 공격이었다.

리키가 공격을 하며 최강훈의 시선을 끄는 동안, 마찬가지로 진혈을 깨운 앤디가 최강훈의 사각지대 움직였다.

앤디의 왼손에는 피처럼 붉은 손톱이 30센티미터 길이의 단도처럼 길게 뽑혀 나와 있어 섬뜩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 날카로운 손톱이 최강훈의 사각지대에서 그의 뒷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콰앙, 쾅!

연무장이 실내가 아니라 실외였다면 흙먼지가 뿜어져 나왔을 정도로 강한 충격과 파열음이 대련의 중심에서 터져 나왔다.

그 중심에서 최강훈은 오른손으로는 리키의 주먹을, 왼손으로는 앤디의 손톱을 잡고 있었다.

리키의 주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손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날카롭기 그지없는 자신의 손톱을 잡고도 피부에 생채기조차 나지 않는 것에 앤디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둘뿐만 아니라 연무장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 세 명에게 집중되었다. 이미 대련의 시작부터 모든 팀원이 이 대련을 보고 있었지만 지금의 시선은 아까와 달랐다.

최강훈이 세 명의 공격을 피하기만 해서 그의 강함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리키와 앤디의 마지막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낸 것에 그의 강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것이었다.

짝짝짝-

누군가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말론도였다. 아직 다른 팀원들은 최강훈의 강함을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A등급에 오른 말론도는 최강훈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며 듀크급 뱀파이어, 즉 마스터의 강자를 보아온 말론도는 최강훈이 진정 마스터의 힘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듀크급이군. 대단하군요, 강훈 군.”

최강훈과 말론도의 관계는 약간 미묘했다. 비록 정시아가 최강훈을 오빠라고 부르지만 말론도까지 최강훈을 그렇게 대접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자신이 마스터로 모시고 있는 강민의 동생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최강훈을 하대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서로 존대를 하는 상황이었다.

말론도가 최강훈에게 말을 건넨 순간, 그의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정도로 마스터 급을 추측하기에는 강훈이가 들인 노력을 반도 알 수 없겠지.”

들려오는 목소리에 말론도가 돌아보니, 그곳에는 강민과 유리엘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순간 이동을 사용하여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말론도는 당황하지 않고 인사를 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말론도의 인사에 옆에 있던 유리엘이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거 강훈이가 마스터가 되니 호칭이 조금 애매하긴 하네요. 마스터라는 호칭 말이에요.”

주인을 뜻하는 마스터와 경지를 뜻하는 마스터는 전혀 다른 의미였지만 같은 발음이다 보니 애매하다는 유리엘의 말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강민도 유리엘의 의견에 동의했는지 말론도에게 지시를 내렸다.

“흠, 그렇긴 하네. 말론도, 그냥 회장이라고 불러. 그게 낫겠네.”

“네, 회장님.”

말론도의 나이와 관계없이 이미 그를 수하로 받아들인 강민은 말론도에게 편하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말론도는 모르겠지만 실제 나이를 따져도 강민이 수백 배 이상 많을 것이기에 전혀 어색할 것은 없었다.

대련을 마친 최강훈 역시 리키와 앤디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고 강민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땀 한 방울 나지 않은 최강훈이었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어떠냐? 이제 강해진 것이 느껴지느냐?”

최강훈은 강민과 정시아 외에는 지난 3년간 이렇게 대련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물론 수련 마법진을 통해서 무수히 많은 전투를 겪었으나 마법진에서의 수련은 항상 그보다 높은 경지를 요구했기에 스스로가 강해진 것을 잘 느끼지 못했었다.

그나마 정시아와의 대련에서 자신이 쉽게 승기를 잡자 최강훈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는 자신이 강해진 것을 느끼기는 했었다.

하지만, 정시아 역시 보통 실력은 아니었기에 지금처럼 이렇게 압도적으로 이겼던 것은 아니었기에 마스터에 올랐다 해도 자신의 실력을 크게 실감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 대련에서 과거 그의 경지 정도인 요원 3명과 싸우면서 전혀 부담감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가지고 놀 듯할 수 있다 보니, 정말 자신이 강해졌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과거 강민의 말이 맞았다. 마스터가 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해졌다.

이제야 그간 꿈만 꾸어오던 마스터에 이르렀음이 실감이 되는 최강훈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