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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귀환록-80화 (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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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세귀환록

    080. 결실(2)

    평소에 최강훈은 강민과의 대련 이후 자신을 지켜보는 정시아 기분을 살펴 그녀를 배려해 주곤 했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최강훈은 강민이 진정한 마스터가 되었다는 말을 하자 정시아의 표정을 신경 쓸 틈도 없이 저절로 입에 미소가 지어졌다.

    ‘진정한 마스터라…… 이제 서영이 누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겠구나.’

    석 달 전 최강훈이 마스터에 오르면서 강서영과 최강훈은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둘이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한 것은 이미 3년 전이었지만 정작 둘이 연인이 된 것은 불과 석 달 전이었다.

    그것은 최강훈과 강민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최강훈은 그날의 약속 때문에 마스터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반, 강서영을 3년이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생각 반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직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었다. 처음으로 수련 마법진에 들어갔다 나온 최강훈을 따로 부른 강민이 물었다.

    “네가 서영이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서영이도 너를 좋아한다고 하더군.”

    최강훈은 강민에게서 뜻밖의 말을 듣자 당혹스러움과 기분 좋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최강훈이 강서영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강서영이 자신을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이였지만, 아직은 자신의 감정만 알고 있었지 강서영의 감정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민이 강서영의 감정을 확인시켜 준 것이었기에 최강훈은 날아갈 듯 기뻤다. 그랬기에 최강훈의 목소리는 저절로 떨려서 나왔다.

    “그, 그렇습니까……”

    상기된 얼굴로 더듬더듬 대답하는 최강훈의 반응에도 관계없이 강민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너를 좋게 보고 있어서 둘이 만나는 것을 반대할 마음은 없다. 다만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 당시 난 한수아를 살리는 대가로 네 목숨을 받기로 했고, 너는 목숨으로 내 동생을 지키기로 나와 약속했다. 그렇지 않나?”

    당시 강민은 한수아를 살려주는 대가로 한진문을 통해서 최강훈의 목숨을 받기로 하였다. 물론 실제 목숨이 아니라 목숨 바쳐서 강민이 원하는 것을 행한다는 의미였다.

    그 상황을 기억하면서도 자신을 좋게 보고, 둘이 만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강민의 말에 최강훈은 기쁜 마음으로 강민에게 대답하였다.

    “네! 맞습니다, 형님. 제 목숨을 바쳐 서영이 누나를 지키겠습니다!”

    하지만 강민은 그런 최강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소 냉정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목숨을 바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 네 실력으로 우리 서영이를 지킬 수 있겠나?”

    최강훈에게 약속은 지키는 것보다는 목숨을 바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강민 입장에서는 그의 목숨보다는 강서영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었다.

    그래서 강민은 최강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이어서 물었다.

    “단적으로 쇼군 같은 강자가 우리 서영이를 노린다면 네가 서영이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강민의 말에 최강훈은 대답할 수 없었다. 강서영이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는 되어 있지만, 만일 쇼군 정도의 강자가 그녀를 노리는 상황이 온다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그녀를 위험한 상황에서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최강훈이 본 쇼군의 경지는 B등급인 최강훈으로서는 상상조차 안 되는 높은 경지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쇼군을 장난치듯 가지고 놀다가 해치운 강민은 애초에 논외의 경지였다.

    사실 강민의 가정은 좀 무리한 가정이었다. 마스터급의 강자가 노리는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도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최강훈은 강민의 실력이 마스터보다는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강민 정도의 강자라면 그의 여동생을 맡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서영에게는 신기(神機)라 할 수 있는 보호 마법기가 있어서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최강훈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안다고 하더라도 그 스스로가 강서영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과 마법기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아도 최강훈은 강민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자신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었다.

    최강훈의 대답이 없자 강민은 이어서 말을 하였다.

    “물론 둘 다 성인이니 내가 허락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아니겠지. 둘이 좋아서 만난다면 내가 어쩔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강민이 강하게 말한다면 최강훈이나 강서영이나 그의 말을 거스를 여지는 적었지만, 강민은 굳이 그렇게 동생이나 최강훈을 제약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형님.”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난 네가 약속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어, 어떻게…….”

    최강훈은 여전히 강민이 어떻게 약속을 지키라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최강훈의 의문을 해결해 주듯 강민은 말을 이었다.

    “네가 마스터가 된다면 우리 서영이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마. 그때가 된다면 네가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하겠다는 것이야.”

    “아…….”

    “너 혼자 노력한다면 마스터가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나와 유리엘이 네 수련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스터에 오를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물론 네 의지와 노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야.”

    그럴 것이다. 아직 B등급의 최강훈이 마스터라니. 그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최강훈의 멍한 얼굴을 보면서도 강민은 계속 말을 건넸다.

    “나와의 약속과 관계없이 둘이 만나겠다 하면 둘의 의사는 존중해 주지. 다만 난 다소 실망하겠지.”

    최강훈이 우상처럼 생각하는 강민이었다. 그런 강민이 실망을 한다니……. 하지만 마스터는 지금 그에게는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강민도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끝냈는지 더 이상의 말은 없었고, 최강훈도 고민에 빠졌는지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는지 상기된 얼굴의 최강훈은 이를 악물고 대답하였다.

    “형님의 말씀 알겠습니다. 서영이 누나에게 말을 하겠습니다. 제가 마스터가 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누나를 위해서, 저를 위해서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마스터가 되겠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최강훈이 결의를 다지는 말에 강민은 흐뭇한 미소로 대답하였다.

    “좋다, 네가 그런 결심이라면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하지. 네가 최선을 다한다면 3년이면 마스터에 오를 수 있을 거야.”

    3년이라는 말에 최강훈은 눈을 빛냈다.

    “3년……. 반드시 이루고 말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최강훈은 마스터가 되기 위한 강한 의지를 세웠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강민과 유리엘이 심어를 나눴다.

    [민, 이제 중급 익스퍼트인 강훈이가 마스터가 될 때까지 3년은 너무 짧은 것 아니에요?]

    [글쎄, 강훈이의 재능과 의지라면 우리가 좀 도와주면 3년 안에는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3년이라. 민은 강훈이의 재능을 높게 보나 보네요. 나는 아무리 우리가 돕는다고 해도 5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지금 같은 실전 마법진을 거치고 강한 동기부여만 된다면 3년 안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사람의 의지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거든.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람의 의지이지.]

    [3년이라……. 3년 만에 중급익스퍼트가 마스터가 된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겠네요.]

    강민과 대화를 나눈 이후 최강훈은 강서영을 찾았다. 당시에는 상대방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약간 어색한 상황이었는데, 최강훈은 그 어색함을 무릅쓰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혔었다.

    “누나, 저 누나 좋아합니다.”

    강서영은 최강훈의 뜻밖의 고백에 대답도 못 하고 얼굴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 강서영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최강훈은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앞으로 함께 하자 하고 싶은데, 형님과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최강훈의 말에 강서영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강민과 최강훈이 무슨 약속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약속?”

    “누나한테도 말했죠? 목숨을 바쳐 누나를 지키겠다고요.”

    그 말에 강서영은 다시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말이었다. 최강훈의 그 말 이후로 최강훈을 점점 남자로 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 그랬지…….”

    “그런데 지금의 제 실력으로는 누나를 지키기가 힘들 것 같아요.”

    최강훈의 말에 강서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경호원 중에서도 네 실력이 가장 좋다고 하던데, 내가 잘못 안 거야?”

    강서영의 반응에 최강훈은 서서히 긴장이 풀리는지 웃으며 그녀에게 대답하였다.

    “경호원들한테서 누나를 지킬 건 아니잖아요. 누나도 아시죠? 세상에는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 말이에요. 그곳에 있는 초인과 마물에게서 누나를 지키려면 지금으로는 부족해요.”

    강민과의 생활, 최강훈과의 생활을 통해서 강서영도 이능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그런 세계에 강민과 최강훈이 속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3년 안에는 제가 누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얻을게요. 그때까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려고 여기에 왔어요.”

    최강훈은 강민의 말을 믿었다. 물론 수련 마법진에서처럼 목숨을 걸고 수련을 해야겠지만 그 수련을 따라온다면 강민이 허튼소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강서영에게 자신 있게 3년이라는 시간을 말했다.

    최강훈이 3년만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에 강서영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했다.

    최강훈에게는 강서영이 잠시 고민하는 시간이 몇 년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제 겨우 마음을 확인한 정도이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지도 않은 사이인데, 무작정 3년을 기다려 달라는 것이 너무 염치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서영은 그를 믿어주었다. 아니, 그녀가 본 그를 믿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최강훈을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그래, 알겠어. 3년 기다려 줄게. 남자 친구 군대에 있다고 생각하지 뭐.”

    “누나, 고마워요. 3년 안에 힘을 얻으면 정식으로 제가 프러포즈하겠습니다.”

    프러포즈라는 이야기에 다시금 얼굴이 붉어진 강서영이었지만 그런 내심을 감추고 호탕하게 최강훈에게 대답하였다.

    “그래! 누나 너 기다릴 테니까 나 실망시키면 안 돼!”

    “네! 누나! 절대 누나 실망시킬 일 없을 거예요.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말이에요.”

    그 이후 딱 2년 9개월 만에 마스터에 오른 최강훈은 마스터에 오른 다음 날 강서영에게 프러포즈를 하였고 둘은 연인이 되었다. 3년을 약속했지만 3개월이나 단축하여 마스터에 오른 것이었다.

    최강훈의 노력을 알고 있는 강민과 유리엘은 둘의 만남을 축하해 주었다. 한미애 역시 최강훈을 좋게 보고 있는지라 둘의 만남을 기꺼워하였다.

    다만 정시아만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녀가 둘의 만남을 시샘하는 것은 아니었고, 자신보다 약했던 최강훈이 어느새 자신을 훌쩍 뛰어넘어 마스터의 강자가 된 것에 대한 자존심이 상했던 것 뿐이었다.

    둘을 축하해 준 강민은 나중에 최강훈을 불러서 따로 이야기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강민은 마스터라도 다 진정한 마스터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물론 마스터가 되었으니 약속은 지킨 것이고 강서영과 만나는 것에도 이의는 없지만, 진정한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초월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로는 그 관련 수련을 하였는데, 오늘에서야 그 초월의 영역에 들어가 진정한 마스터가 되었던 것이었다.

    ‘서영이 누나에게 이제 집중적인 수련은 끝났다고 말해야겠네. 후훗’

    마스터에 올랐다고 해도 수련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처럼 집중적인 수련을 할 필요는 없기에 앞으로는 일반 연인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평범한 만남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랬기에 최강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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