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79화 (79/203)

# 79

현세귀환록

079. 결실(1)

카앙- 캉!!

최강훈이 강민의 왼쪽 옆구리 향해 번개처럼 환도를 휘둘렀으나 강민은 제자리에 서서 손에 든 바스타드 소드를 슬쩍슬쩍 움직이는 것으로 그의 공세를 막아냈다.

자신의 공세가 당연히 막힐 것을 예상했는지 최강훈은 환도가 튕겨 나오는 힘의 방향으로 회전하며 이번에는 목의 오른쪽 부위를 노리고 환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 공격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강민의 말과 함께 그의 손에 들린 바스타드 소드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아래쪽이 비었다. 강훈아.”

최강훈의 회전이 끝나기도 전에 강민의 바스타드 소드가 아래쪽에서 위쪽을 향하여 최강훈의 하체를 노리며 날아왔다.

최강훈이 공격을 고집한다면 공격이 목에 닿기도 전에 자신의 몸이 좌우 양단될 판국이었다.

이를 악문 최강훈은 환도를 멈추지 않으며 왼손에서 장력을 쏘아냈다. 장력으로 강민의 검 면을 쳐내 방향을 틀려고 했다. 몇십 번의 공세 만에 얻은 기회였기에 기세를 늦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의 검세는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의 움직임처럼 최강훈의 장력을 흘려내며 애초 목표로 했던 최강훈의 하체를 공격했다.

강민의 공격은 평범한 검세가 아니었다. 기이한 현기를 품고 있는 검세는 검 자체에 마나를 담은 것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최강훈의 모든 공격과 방어를 쉽게 흘려내며 검이 노렸던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크윽…….”

이대로라면 자신의 공격보다는 강민의 공격이 빠를 것이었다. 물론 그 차이는 미미하였기에 강민이 막지 않고 공격을 고집한다면 거의 동시에 공격이 이루어질 것이지만, 실제 전투에서 최후의 순간에 사용되는 동귀어진의 수라면 모를까 이런 수련에서 쓸 만한 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검세는 결국 강민의 방어에 막힐 것이고 강민의 검은 자신을 갈라버리려는 목표를 이룰 것이기에 쓸 수도 없었다.

어차피 대련이 아닌 실전이라면 강민에게 이런 기회를 얻을 새도 없이 자신의 목이 날아가고 말았을 것이기에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을 아까워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최강훈은 공격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며 하체로 날아오는 강민의 검을 피해갔다.

공격을 피하며 다시금 공격할 기회를 보았지만 이미 공격의 주도권은 강민에게 넘어갔다. 최강훈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그 검을 피했지만, 현기를 머금고 있는 검은 그냥 사라지지 않았고 끝내 최강훈을 쫓아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는지 최강훈은 강민의 검세가 그를 따라옴에도 당황하지 않고 눈을 빛내며 결의를 다졌다.

‘오늘은 기필코…….’

이제껏 강민과 함께하는 수련에서 저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검이 나올 때마다 최강훈은 속수무책이었다. 최강훈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강민의 검은 이리저리 그의 공세를 흘려내고 결국은 그의 목 앞에서 멈췄기 때문이었다.

이 검은 최강훈에게는 언제나 체크메이트의 한 수였던 것이었다.

최강훈은 전면으로 검세를 뿌리며 두 걸음 정도 더 물러났다. 강민이 그를 봐주고 있어서인지 강민의 검세는 강대한 마나도 실려 있지 않았고 그 속도 또한 빠르지 않았다. 그저 꾸준히 최강훈의 목을 향해 날아갈 뿐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본다면 강민이 장난처럼 찔러 넣는 검을 최강훈 혼자 날뛰다 결국 검 앞으로 목을 갖다 대는 꼴로 보일 정도로 강민의 검세에는 강렬한 힘은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검이 최강훈에게는 피할 수 없는 무적의 검세로 여겨졌다.

오늘도 물러난 최강훈을 향해서 강민의 검은 느릿느릿 다가왔다. 그리고 그 검을 보는 최강훈의 눈빛은 점점 강해졌다. 그의 집중력이 올라가고 있었다.

주위가 조용해지고 세상에 강민과 최강훈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것이 그의 인식에서 사라졌다. 아니, 강민마저 사라지고 강민이 내지른 검만 남았다. 그런 검이 최강훈을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도 느린 검세였지만 최강훈의 집중도가 올라가면서 더 느려지고 있었다.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검세가 한 단계 더 느려졌다. 아니, 느려진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마치 슬로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느리게 보였다.

검세가 슬로비디오처럼 느려지는 것과 동시에 검에 서려 있는 마나의 그물이 최강훈의 눈에 서서히 드러났다. 강민의 검 주위에는 마나의 그물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어 그 검세를 막으려고 하는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고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그물은 대기의 마나와 동화되어 있어 그냥 대련을 할 때는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르자 그 정체가 최강훈의 눈에 드러났던 것이었다.

‘아…… 이래서 모든 공세를 피해가며 날아왔구나.’

강민의 검에 펼쳐진 마나 그물을 확인한 최강훈은 이번에는 검이 아니라 그 마나 그물을 잘라내기 위해서 자신의 환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이는 강민의 검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환도 역시 너무도 느렸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마나 그물을 잘라내 검세를 막고 반격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움직임은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최강훈은 이를 악물며 마나를 돌렸다. 체내의 마나가 급가속 됨에 따라 최강훈의 검세는 더욱 빨라졌는데 여전히 그의 생각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최강훈의 환도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마나의 흐름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 아지랑이는 이내 불길이 타오르는 것처럼 검 전체에 일렁거렸다.

검기, 소드 오러의 발현이였다.

소드 오러까지 발현한 최강훈의 검은 여전히 슬로 모션처럼 보였지만 조금 전보다는 약간 빨라져 결국 강민의 검에 서려 있는 마나 그물을 일부 잘라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연결 동작으로 잘려나간 마나 그물의 틈 사이로 소드 오러를 머금은 자신의 환도를 찔러넣었다.

캉-!

강민의 검과 최강훈의 환도가 부딪치며 낸 소리였다. 그리고 둘의 검은 멈추었다. 수십 차례의 대련 만에 드디어 최강훈이 강민의 그 검세를 막아냈다.

강민은 최강훈이 자신의 검을 막아내자 추가적인 공격을 하지 않고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아직도 어리둥절하며 서 있는 최강훈에게 다가서며 말을 건넸다.

“마나 그물을 잘라낸 것을 보니 드디어 하이퍼 모드에 들어갔구나. 하이퍼 모드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그 그물을 볼 수 없었을 테니 말이야.”

강민의 말에 정신을 차리며 최강훈은 강민에게 되물었다.

“하이퍼 모드요?”

“아, 초월의 영역 말이야. 그것이 초월의 영역이다. 나는 하이퍼 모드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지만 여기서는 초월의 영역이라고 주로 하니…….”

“아…….”

방금 그것이, 그 느낌이 강민이 말한 진정한 마스터의 기준인 초월의 영역이었다.

초월의 영역에 대해서는 최강훈도 강민이 말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과거 스승인 한진문에게 배울 당시 화경에 이르면 범인과는 다른 영역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진문도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스승에게 말로만 들은 경지를 전해준 것이었다.

최강훈도 한진문에게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을 단지 듣기만 하였기에 실제로 그 초월의 영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자신이 초월의 영역에 들어가 놓고도 무슨 일을 한 건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야 진정 마스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 소드 오러만 쓸 수 있다고 다 마스터가 아니야. 마스터 간의 대결에서는 초월의 영역에서 얼마나 자유로이 움직이느냐가 더 중요한 부분이니 말이야. 너도 이제 초월의 영역에 들어와 봤으니 앞으로 그 영역에서의 수련에 더 집중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형님.”

최강훈이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것은 그가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선 지 세 달 만의 성취였다.

지난 3년여간의 수련 동안 최강훈은 B등급에서 마스터 등급인 S등급까지 실력이 급상승하였다. 유리엘이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든 마나 집적진과 마나 비약에다가 강민의 지도까지 합쳐지자 최강훈의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할 수 있었다.

물론 최강훈의 재능이 뛰어났고 스스로의 의지가 강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최강훈은 3년간의 수련에서 수면시간도, 식사 시간도 줄여가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수련하였다. 그랬기에 B등급에서 S등급까지 실력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즉, 타고난 재능과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강인한 의지의 삼박자가 맞춰졌기에 이런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그가 마스터가 되기까지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몇십 년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마스터에 오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최강훈은 운이 좋게도 그것들을 다 갖추고 있었다. 특히 강민과 유리엘의 지원을 얻은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행운이었다.

마나 집적진이나 마나 비약 없이, 단지 수련만 했다면 마스터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마나를 쌓는 것에만 몇십 년의 노력은 필요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의지나 재능이 없었다면 아무리 강민과 유리엘의 지원이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마스터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단적으로 같이 수련을 시작한 정시아가 아직 A+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만 보아도 그녀보다 두 단계나 낮은 능력 등급을 갖고 있던 최강훈이 그녀보다 먼저 마스터가 되었으니 그 의지와 재능의 차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강민과 최강훈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정시아는 둘의 대화에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자신은 아직도 마스터가 되는 길에 대해 감조차 못 잡고 있었는데, 최강훈은 이미 3개월 전 마스터가 되었고 오늘은 말로만 듣던 초월의 영역에 들어서 강민에게 진정한 마스터가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상황이니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수련의 초반에만 하더라도 정시아가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에 정시아의 능력 등급은 A등급이었고 최강훈은 B등급이었다. 정시아가 두 등급이나 높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대련을 할 때도 초반에는 정시아가 어렵지 않게 최강훈을 제압했다.

게다가 정시아 역시 피의 각성을 받고 말론도에게 체술과 뱀파이어의 기술을 배우며 수련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하지만 재능과 의지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재능을 둘째치고라도 그 노력의 정도 역시 차이가 났다. 정시아도 노력한다고 하였지만, 최강훈은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하였다.

정시아는 수련 마법진에서 한 번의 미션을 클리어하고 나면 진이 빠져서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최강훈은 없는 힘을 끌어 모아서라도 두 번, 세 번 들어갔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척추가 끊어질 뻔했을 때도 유리엘의 치료 마법을 믿었는지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하였다.

결국 1년 만에 정시아는 최강훈에게 따라잡혔다. 정시아 역시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기에 A등급에서 A+등급으로 한 등급 상승하였지만, 최강훈은 B등급에서 A+등급으로 세 등급이나 급상승하였던 것이었다.

둘 다 A+등급에 오른 이후 정시아는 더 이상 최강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타고난 전투 센스도 최강훈에게 미치지 못했고, 생존 감각 또한 최강훈이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 대련을 하면 정시아가 최강훈이 모르는 새로운 기술을 쓰지 않는 이상 90%는 최강훈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 상황에서 최강훈은 마스터에 올랐고, 더 이상의 대련은 의미가 없어졌다. 정시아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최강훈을 이길 수가 없어진 것이었다.

최강훈이 마스터가 된 이후에는 정시아는 강민과 최강훈이 대련하는 것을 종종 지켜보았다. 둘의 대련에서 그녀가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가 스스로 부탁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대련할 때마다 강민이 슬쩍 내지른 검에 최강훈이 긴장하면서 화려한 검세를 뿌리고 마나를 쏘아내며 날뛰다가 결국은 검세에 무릎 꿇는 것을 보고 왜 저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강민에게 부탁해서 자신도 그 검세를 상대해 봤는데 정시아의 실력으로는 그 검세를 잠시도 막기 힘들었다. 그제서야 정시아는 최강훈이 왜 그렇게 날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검세마저 막아낸 것을 보니 둘 간의 격차가 더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실에 자신의 재능이 확실히 최강훈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어 자괴감마저 생기는 정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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