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현세귀환록
078. 사연
서울 외곽의 한 정신병원에는 오늘도 괴성을 지르는 이형태가 있었다.
“크아아악! 크악!!”
“야, 잡아! 얼른 진정제 한 방 더 넣고!”
건장한 남자 간호사 두 명이 이형태를 양옆에서 붙잡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이 급하게 진정제를 찔러넣었다.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치던 이형태는 진정제가 들어가고도 한참을 더 버둥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형태를 진정시킨 스포츠머리의 간호사가 잠든 이형태를 바라보며 두건을 쓰고 있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휴…… 이 환자 상태가 점점 심해지는데.”
“그러게 말이야. 들어올 때부터 심한 것 같더니 점점 더하네. 야, 근데 그거 알아? 이 환자 입원할 때 말고는 한 번도 보호자가 찾아온 적이 없어.”
주사기를 들고 있던 간호사가 둘의 말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끼어들며 물었다.
“그래? 그럼 그쪽인가?”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그 간호사를 바라보며 대답을 해주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근데 이 정도 중증이면 일반 정신병원에 넣어도 될 것 같은데 왜 이쪽으로 데리고 온 거지?”
“난들 아냐. 원장님이 다 생각이 있겠지.”
이형태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남자 간호사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들의 말처럼 이곳은 일반 정신병원은 아니었다. 사실 이 병원은 재산 분쟁 등으로 멀쩡한 가족을 정신질환자로 만들어서 감금을 대행하여 주는 병원이었다. 현행법상 가족 2명의 동의와 의사의 처방만 있다면 멀쩡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병원의 원장은 그 처방을 내어주는 사람이었기에, 이곳에는 멀쩡한 정신의 정신질환자가 많았다. 즉, 이곳은 사설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하지만 이형태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 병원의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이일광이 강민과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만 잠시 머물 곳을 찾다가 이형태를 여기에 입원시켰는데, 그 이후 이일광이 다시 나타날 수 없었기에 이형태는 지금도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일광이 죽은 후 아무도 그를 돌봐주지 않았지만, 병원장은 이형태를 소홀히 대할 수는 없었다. 이일광이 일광회라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이고 이형태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일광이 죽은 줄 모르는 병원장은 이일광이 몇 달간 이형태를 방치한다 하더라도 그를 내팽개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이일광이 나타나서 이형태를 찾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몇 달, 몇 년 동안 가족들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경우가 드물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일광에게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그런 이형태에게 오늘은 방문자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잠든 새벽 시간대라 정상적인 방문이 아닌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것도 병실의 문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창문을 부수고 들어왔다는 것이 방문이 아닌 침입을 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흰 셔츠에 검은 정장을 입은 40대의 중년인이 병원 침대 위의 이형태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호오, 이 정도로 쌓인 악기라니. 크큭.”
창문의 파손으로 인해 사방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년인은 이형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골수까지 악기가 가득 찼군. 근래 보기 드문 좋은 재료야. 이놈을 얻는 것만으로도 한국까지 온 보람이 있는데?”
중년인이 이형태를 살피는 사이, 병원의 남자 간호사들이 이형태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형태가 발작으로 결박된 끈에서 빠져나와 창문을 깼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병실 안에는 뜻밖의 괴인이 이형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 광경을 보고 순간적으로 멈칫하였다.
3명의 간호사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30대의 남자 간호사가 그들의 대표하여 중년인에게 외쳤다.
“당신은 누구요!”
남자 간호사의 외침에 이형태를 살피던 중년인은 고개를 돌려 간호사들을 바라보았다. 그 중년인의 눈이 무척 특이하였다.
중년인의 눈은 검은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고 흰자위만 보이는 괴이한 눈이었는데, 중년인은 그 눈으로 세 명의 간호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중년인의 시선에 왠지 오싹해진 세 명의 간호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런 간호사들의 모습에 중년인은 클클대며 웃더니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크크큭. 오늘은 최상급의 재료를 얻은 좋은 날이니 네놈들을 죽이지는 않으마.”
말을 마친 중년인은 자연스레 이형태의 결박 끈을 끊어내고 이형태를 어깨에 들쳐 멨다. 그런 중년인의 모습에도 간호사들은 나서지 못했는데, 중년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그들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형태를 어깨에 멘 중년인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부서진 창문을 통하여 병실을 빠져나갔다. 중년인이 나가고 나서야 간호사들은 창가에 서서 그의 행방을 눈으로 좇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중년인은 자동차보다도 빠른 속도로 숲의 저 너머로 사라졌다.
중년인이 이형태를 데리고 사라지고 나자 간호사들은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듯 당황해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어쩌지?”
“어쩔 수 없지. 일단 원장님께 보고하는 수밖에.”
원장에게 보고한다는 스포츠머리 간호사의 말에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간호사가 이야기하였다.
“근데 우리가 아무런 제지도 안 하고 환자를 보낸 것을 알게 되면, 원장님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철 형님?”
기철이라 불린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머지 둘을 보며 말을 시작했다.
“일단 방에 있는 CCTV 기록을 지우고, 우리끼리 좀 싸워서 반항의 흔적을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할 말이 생기겠지.”
기철의 말에 나머지 두 간호사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로 주먹질을 하여 싸웠던 흔적을 만들어냈다. 외부의 침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방어한 것으로 보이기 위해서였다.
* * *
얼굴 군데군데에 멍이 들고 입술이 터진 채 보고 하는 기철의 모습에 김태용 원장도 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원장이 보기에도 기철과 나머지 두 간호사는 최선을 다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CCTV에는 그 괴인의 모습이 찍혔겠지?”
김태용 원장은 CCTV라도 확보를 하여 나중에 이일광이 그를 찾았을 때, 그 장면을 보여주며 면피를 할 목적으로 기철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기철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원장에게 대답하였다.
“그, 그게…… CCTV 케이블이 빠져 있어서 찍히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허어…….”
기철의 대답에 원장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굴렸다.
‘이일광이 연락처를 남기지 않아서 연락도 먼저 못하는데 어쩌지…… 조폭이라면 나 하나쯤 묻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도망을 쳐야 하나……. 몇 개월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미 버린 자식 아닌가? 흐음, 일단 이일광을 만나서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봐야겠네…….’
원장은 경찰 수사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경찰을 부르기엔 자신이 걸리는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만일 경찰을 불렀다가 자신의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면 자신이 감옥에 가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었다.
하지만 김태용 원장에게는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이일광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김태용 원장이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었다.
이형태의 납치 사건 이후, 김태용은 서울에서 이일광을 만나기 위하여 수소문하였지만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일광회가 와해되었는 사실과 이일광이 실종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 사실을 들은 후 김태용은 안심할 수 있었다. 조폭이 실종되었다는 말은 이미 실각하여 산에 묻혔거나, 드럼통에 넣어져서 바다에 던져졌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김태용은 더 이상 이형태 건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형태는 흔적도 없이 한 괴인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 * *
창문을 등지고 있는 가죽 의자에는 70대 노인이 앉아 있었고, 그 앞의 고풍스러워 보이는 테이블의 앞에는 50대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아버지, 우리도 이제 가문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70대 노인에게 50대 중년인이 약간 강한 어조로 말을 하였는데, 50대 중년인의 말로 보아서 부자지간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테이블에 신문을 펼쳐놓은 70대 노인은 아들의 말에 고개를 들었는데, 그 노인은 현승그룹의 회장 유현승이었다.
하지만 유현승 회장은 아들 유태우의 질문에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단지 나지막한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그런 유현승 회장의 모습에 유태우는 답답하다는 듯 다시 한번 말했다.
“언제까지 천왕가의 가신으로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말이 좋아 가신이지 이건 숫제 하인 취급 아닙니까! 아버지께서 현승그룹을 일으킨 것은 당당한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이지, 이렇게 돈줄 취급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유현승 회장은 아들의 울분이 이해가 갔다. 얼마 전 다녀온 가문의 회합에서 여전히 유현승과 유태우에 대한 대접은 좋지 못했다.
아니, 좋지 못했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유현승과 유태우가 사회에서 받는 대우가 너무 좋았다.
사회에서는 한국에서 서열 2위의 재벌 회장과 부회장이었다. 누구나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천왕가의 회합에서의 취급은 회합장의 한 귀퉁이에 간신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것도 유현승만 회합장에 앉았을 뿐이고, 유태우는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자리야 그렇다 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유태우와 동년배 정도의 인물이 유현승을 얕잡아보며 이야기하는 것에 유태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면 유태우가 지금 유현승의 자리에 앉을 것이었다. 만일 자신이 아버지 유현승처럼 그런 굴욕을 받으면 자신의 아들 유세진이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니 유태우는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유태우의 울분에 유현승도 나지막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 가문을 나가자는 말이냐? 우리가 나간다고 하면, 가문에서 우리를 순순히 보내줄 것으로 생각하느냐?”
유현승의 대답에 유태우는 반색하며 대답했다.
“역시 아버지도 가문의 행태에 불만이 있으시군요.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방법은 제가 찾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 현승이 천왕가의 돈줄 역할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체 어쩔 생각이냐? 그들은 일반인이 아니다. 초인이야 초인. 우리가 대책 없이 그들을 등졌다가는 우리 일가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야.”
“아버님은 태상가주님 때부터 천왕의 밑에 있어서 그런 두려움을 갖고 계실 테지만 저는 다릅니다. 준비하고 있습니다.”
“준비? 어떤 준비 말이냐?”
“현승 디펜스에 있는 S포스입니다.”
현승 디펜스는 현승 계열에 있는 경호 업체였다. 그리고 S포스는 그 현승 디펜스의 정예 요원을 모아놓은 요인 경호팀이었다. 이를 알고 있는 유현승은 의아해하며 유태우에게 되물었다.
“S포스? 그건 특별 요인 경호팀 아니냐?”
“표면상으로는 그렇지요. 천왕가에서 보낸 최 실장을 속이기 위해서도 그랬고요. 하지만 S포스는 능력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팀입니다. 유니온에게서 마나 장비도 사들여 마물 사냥도 해봤습니다. 웬만한 능력자는 S포스로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허어…….”
유현승 회장은 아들이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S포스가 생긴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아들의 이런 생각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대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언젠가 가문과 우리 현승이 분리된다면 자구책을 갖추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가문과 직접 대립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유태우의 말에도 유현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겠지…… 원체 남의 밑 가는 가문을 박차고 나갈 생각을 하였을 것이야……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태상가주는 다른 사람과 다른데…… 흠…….’
하지만 유현승은 눈을 빛내고 있는 유태우를 포기시킬 수는 없었다. 자신 역시 가문의 그런 대우에 부당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아직 젊은 아들은 오죽하겠는가. 결국 당부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태우야. 네 생각은 알겠다. 하지만 가문에는 정말 초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 네가 키운 S포스들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결코 섣불리 나서지는 말아라. 두 번, 세 번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야.”
유현승의 암묵적인 승낙에 유태우는 기뻐하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저도 우리 일가의 생사가 달린 문제인데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현승은 그런 아들의 대답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사연들을 품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