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67화 (67/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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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세귀환록

    67. 연수(2)

    이예나는 KM그룹에 사촌 오빠가 다니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사실 이 모임 역시 이예나가 주도하여 만든 것이었다.

    타고난 미모 덕분에 사람 다루는 법을 빨리 익힌 그녀는 이렇게 무리를 만들어 돋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멤버들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이예나는 이어서 계속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 사촌 오빠가 그러는데, 이 회사는 탄탄하니 걱정 말고 들어오라더라고. 너희들도 처음 입사할 때 KM그룹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걱정했지? 걱정 붙들어 매셔. 이미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는 회장님이 회사에 출자하지 않은 돈이 출자한 돈의 몇 배나 된대. KM그룹 전체가 망해도 다시 세울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말 다했지 뭐…….”

    같이 밥을 먹던 남자 중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가 그녀의 말을 받으며 말했다.

    “하긴 얼마 전에 유통 전쟁에서도 다른 유통 3사가 공격해도 뚝심으로 버텨내서 결국은 다들 손 놓고 물러섰다잖아.”

    스포츠머리의 말에 투블럭컷을 한 남자가 자신도 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 기사는 나도 봤어. 그 기사보고 회장님이 진짜 금광이라도 들고 있나 했다니까. 아니면 중동에 유전이라도 감추고 있던지 말이야. 다른 빅3 유통 업체는 납품 업체를 쥐어짜서 치킨 게임을 하는데, 우리 KM마트는 납품 업체를 쥐어짜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했으니…….”

    두 남자의 말에 다른 남자들도 자신들도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빅3 업체의 PB 상품을 만드는 납품 업체의 반 이상을 인수해 버렸다고 경제 신문에 나온 거 나도 봤어.”

    “그래, 그래서 회사 규모가 이렇게 커진 거라잖아.”

    그래도 KM그룹에 지원했던 신입 사원들이라 회사의 최근 정보에 대해서는 나름 조사를 하여 유명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유통 대전은 사실 심층 기사까지 나온 유명한 사건이었다. KM그룹의 인지도도 이 유통 대전으로 대폭 올라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자산 규모로는 10대 그룹에 들어온 KM그룹이었지만 아직 생긴 지 1년도 되지 않아 안정감이 많이 떨어졌다.

    불과 몇 해 전에 ST그룹이 창립 5년도 못 채우고 최종 부도 처리되어 계열사가 뿔뿔이 흩어진 것도 KM그룹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데 한몫을 하였다.

    최소 10년 정도 지속적으로 사업을 유지하고 그룹을 이끌어가지 않는다면 단순히 자산 규모만으로는 시민들에게 신뢰도를 주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통 대전을 통해서 KM그룹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사실 유통 대전의 초기부터 KM그룹의 행동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최초 유통 3사가 쥐어짜며 KM마트를 시장에서 고사시키려는 전략을 사용하였으나, KM마트는 그런 타사들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파격적인 가격정책을 사용하였다.

    더군다나 타사들처럼 납품 업체를 쥐어짜는 것도 아니라 납품 업체와 상생하는 정책을 유지하였기에 주식시장에서 KM마트의 주가는 나날이 하락폭을 키워가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KM마트 측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략을 포기하거나 사업을 포기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것이 주가에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그 시기에 동요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다독거리고자 실시한 전 직원 정규직 전환이라는 KM그룹 전체의 인사 방침이 알려지면서 KM마트뿐만 아니라 다른 상장된 전 KM그룹 계열사들 또한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비정규직이 많은 KM마트는 하한가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KM그룹에 대한 시장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비정규직은 노동의 유연화라는 측면에서 기업 경영을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서 인정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런 KM그룹 지주의 방침에 계열사의 주주들 역시 큰 반발을 하였고 주식매수청구권까지 요구하는 주주들도 있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회사의 존립 사항의 변경에 대해 소액 주주들이 피해가 없도록 회사가 공정 가격으로 이들의 보유주식을 의무적으로 매수하도록 한 제도인데, 사실 비정규직의 정규직은 이 주식매수청구권을 요구할 사항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는 사업의 양수도 및 기업의 인수 합병에나 이 청구권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KM그룹 지주에서는 이를 다 받아주었다. 청구권을 받아들일 법적인 의무는 없었지만 굳이 반대하는 주주들과 함께할 필요는 없다는 강민의 판단이었다.

    이런 강민의 대처에 혹자는 사업을 모르는 20대 청년이 출처도 모르는 과도한 돈을 얻어서 그것을 사용할 줄도 모르고 쓴다는 식의 비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민의 개인 회사라고 할 수 있는 비상장사인 KM그룹 지주에서 계열사들에게 대규모 출자를 다시금 단행하였기 때문이었다.

    출자는 모든 계열사에 동시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는데 이 출자 역시 처음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래서 첫 번째로 KM마트에 대해서는 추가 출자할 때는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신주의 인수를 포기하는 주주들 또한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시장에 분위기는 KM그룹 전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KM그룹 지주는 그런 주주의 주식까지 대량 매수하여 오히려 KM그룹 지주의 지분율을 상승시키는 기회로 삼았다.

    두 번째 KM전자에 대한 출자를 할 때도 시장의 분위기는 우려스러웠다. 하지만 KM화학, KM중공업까지 모든 계열사에 대해서 대규모 추가 출자가 들어가자 시장의 시각은 달라졌다. 그리고 강민의 재산이 얼마인지 더 궁금해했다.

    때마침 익명을 요구한 내부 직원이 지금 KM그룹이 망하더라도 같은 규모의 그룹을 몇 개를 더 만들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사업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자 더 이상 KM그룹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오히려 최근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주식이 KM그룹 계열사 주식이었다.

    이런 영향이 이번 신입 사원 채용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기존의 대기업들보다 KM그룹이 더 각광을 받는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있는 중장년들은 전통의 대기업을 선호하여 자식들이 KM에 간다 하면 전통의 대기업을 권유하기는 하였다.

    이야기가 한참 동안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는 것 같자, 신애린이 분위기를 끊으며 이예나에게 다시 물었다.

    “언니, 근데 그 임원 아들이 누구예요?”

    “아,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어. 아마 연수원 직원들은 아는 것 같던데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 말이야. 아, 혹시 너희들은 들었어?”

    이예나는 혹시 같이 지내는 남자들이라면 알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해 앞에 있는 남자 신입 사원들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도 소문만 들었어.”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누군지 알면 친하게 지내자고 할 텐데. 크크큭.”

    “그래그래. 알게 되면 나한테도 좀 말해주라. 하하하.”

    남자 사원들 역시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신애린은 눈을 반짝이며 내심 생각했다.

    ‘여기서 제대로 된 신랑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녀의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더 빠른 길이 부잣집 도련님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대를 다닐 때도 사회 상류층이라고 불리는 자유 전공 학부 애들을 만나고 싶어 했었다. 그들 중 한 명만 잘 잡으면 자신 역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녀의 생각에 KM그룹의 임원 아들이라면 완전히 부자 상류층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KM그룹 자체가 한창 뻗어 나가고 있는 기업이었고 그 그룹의 임원이라면 전도유망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룹 임원의 며느리가 된다면 자신 역시 KM그룹에서 소위 말하는 한자리를 차지하기도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부잣집 며느리가 되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자신의 지위 자체가 올라가서 부자가 되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전제는 그 임원의 아들이라는 남자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할 때의 이야기였지만 신애린은 자신이 있었다.

    * * *

    1,000여 명의 신입 사원은 작게는 1조부터 20조까지 50명의 조 단위로 나누어 소규모 수업을 듣고 있었고, 크게는 가, 나, 다, 라의 네 개의 반으로 나누어져 250명 규모의 대규모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이 다르면 한 달 내내 얼굴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연수원을 마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전체가 모이는 날은 입소식과 퇴소식뿐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오늘같이 외부 인사의 초청 강연이 있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전체가 모이기도 하였다.

    오늘은 KM그룹에서 신입 사원들을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릴레이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4명의 명사를 초청하였는데 어느 한 분야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인선하였다.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위한 강성욱 영화감독, 이윤근 야구 감독의 강연부터, 자신의 분야에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의 사례를 위한 피아니스트 최설아, 연기파 배우 김진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로 구성된 강연이었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져 하루 종일 강연만 들었는데 부르기 힘든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반별로 나누지 않고 1,000명이 다 수용이 가능한 대강당에서 모두 모여 강연이 진행되었다.

    한 달을 계획한 그룹 연수도 20여 일이 지나 막바지로 가고 있어 신입 사원들의 수업 집중도는 다소 떨어져 있었는데, 보기 힘든 외부 인사들의 강연에 신입 사원들은 간만에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강연에 집중하였다.

    강성욱 영화감독부터 첫 강연을 시작했다. 강성욱 감독은 ‘역전’, ‘거자필반’ 등 작품성 있는 영화뿐만 아니라 ‘피의 왕좌’, ‘토네이도’ 등 상업적인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성공을 거둔, 한국 영화사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잡은 몇 안 되는 유명 감독 중 하나였다.

    그는 강연에 익숙했는지 천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강연을 진행했다.

    “그러니까 친구들 두세 명이서 독립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수십 수백 명이 함께하는 큰 프로젝트의 영화를 하는 상황이라면, 리더는 단지 앞만 보고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앞에 녹색 티셔츠 입은 분 아까 제가 뭐라고 그랬죠?”

    강성욱의 지적을 받은 연두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 신입 사원이 갑작스러운 지적에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신입 사원의 모습에 빙그레 웃음을 짓더니 강성욱은 말을 이었다.

    “제 강의가 재미가 없었나 보네요. 집중을 안 하는 학생이 있는 걸 보니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을 하자 청중석 군데군데에서 아니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여하튼 아까 하던 말을 이어서 하면, 리더는 앞을 보고 방향만 지시한다고 리더가 아니라, 자신이 리드해야 하는 사람들을 그 목표로 했던 곳까지 이끌어가는 것이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영화판이 많이 열악합니다. 스텝이나 엑스트라들은 아직도 최저 생계비조차 못 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영화판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도 그랬어요.”

    강성욱 감독은 영화판의 제일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기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잘나갔던 사람이 영화판의 열악함을 이야기했다면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나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의 이야기라 진정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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