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66화 (66/203)

# 66

현세귀환록

066. 연수(1)

KM그룹의 신입 사원 연수를 받게 된 강서영과 김세나 둘 다 한 번도 이렇게 장기간 집을 떠나서 있던 적이 없었기에 마치 길게 여행을 온 듯이 즐거워하며 연수원에 들어왔다.

연수원은 6인 1실의 방이 제공되었는데, 당연히 처음 만나는 신입사원들은 서로 어색해하였다. 강서영과 김세나 또한 각자 다른 방으로 가게 되어 강서영 역시 방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어색해하며 있었는데, 그중 20대 후반으로 일행 중에서는 그나마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 신입사원이 먼저 인사를 하자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안녕하세요. 이제 한 달간 같이 있을 텐데 서로서로 인사하고 지내는 게 어때요. 저부터 소개할게요. 저는 임미라라고 합니다. 나이는 29살이구요. 여자치고는 약간 늦은 편인데 운이 좋게 합격을 했네요. 아, 저는 KM마트에 지원했어요.”

계열사별로 따로 선발을 하였지만 그룹 연수에서는 계열사와 관계없이 섞어서 방을 배치하였기에, 여러 계열사의 신입 사원들이 같은 방에 있을 수 있었다.

임미라가 먼저 인사를 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자 이내 서로서로 인사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26살 김진아가 소개를 하였고, 강서영 역시 세 번째로 자기를 소개하며 소개 릴레이를 이었다.

27살 박소영과 26살 이희은이 소개를 마치자 이내 마지막 신입 사원 차례가 되었다.

마지막 신입 사원은 지금 방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미인이었다. 얼굴만 따지자면 강서영보다도 눈에 띄는 미녀였다.

강서영은 미인이라기보다는 여동생처럼 귀여운 타입인 반면, 그녀는 현대적으로 생긴 전형적인 미인이었다. 아마 1,000명의 신입 사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미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미모였다.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는 별로 소개하고 싶지 않은 듯했으나 다들 소개하니 마지못해 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23살 신애린이라고 해요. 한국대 경제학과 나왔고요. KM그룹 지주에 지원했어요.”

필요한 말만 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은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기를 죽이려고 하는 듯하였다.

신애린 정도의 미녀가 학교까지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한국대에, 그것도 경제학과를 나온 재원이라면 누구나 인정을 할 만하였기 때문이었다.

신애린의 소개에 강서영을 제외한 나머지 신입 사원들은 다들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그것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강서영은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애써 나서며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하였다.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애린 씨. 동갑인데 말 놓고 편하게 지내는 게 어때요? 다른 분들도 편하게 불러주세요.”

동갑인 신애린만 제외하면 모두 강서영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강서영의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다들 성인이었고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회사인지라 손아랫사람이 먼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하기 전까지, 단지 나이가 많다고 반말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어린 강서영이 먼저 나서서 말을 편하게 하자는 것은 나이가 많은 언니들에겐 고마운 일이었다.

신애린 생각에는 강서영이 좀 나대는 것 같아서 불쾌하였지만 그녀는 굳이 그것까지 싫어하는 티를 내며 왕따를 자처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이렇게 강서영의 방은 서열 정리가 끝났다.

* * *

벌써 연수원에 들어온 지 보름이 지났다. 1,000명이 넘는 큰 규모라 20개의 조를 짜서 움직였는데, 강서영과 김세나는 서로 다른 조라 하루 한 번을 마주치기조차 힘들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50여 명의 조원과 움직였고, 그중에 특히 같은 방원들과는 숙식까지 함께하여 더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오후 수업까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였는데, 일반적으로는 같은 방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앉아서 밥을 먹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만큼 더 친해졌기 때문이었다.

강서영이 있는 2번 방의 사람들도 같이 식사를 하였는데 6명이 아니라 5명밖에 없었다. 신애린이 없었던 것이었다.

“오늘도 애린이는 저 애들 하고 밥 먹는거야?”

맏언니인 임미라가 다른 일행들에게 물었다.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박소영이 그녀의 말에 대표로 대답했다.

“네, 언니. 이젠 그 방에서 술도 마시고 들어온다니까요. 남자들도 같이 마셨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연수원은 서울에서 꽤나 떨어진 경기도의 시골에 있는지라 주변에는 논밭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수원 내 편의점이 있어 술을 마시고자 하면 못 마실 것도 없었다.

신애린은 연수원 남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F5 중의 한 명으로 불렸다.

F는 Flower, 즉 꽃의 약어로 연수원의 다섯 꽃이라는 의미였다.

그 F5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두 명씩 세 명씩 짝을 이루어 남자 쪽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신입 사원들과 자주 어울렸다.

오늘도 신애린은 다른 F5의 멤버와 함께 남자들 5명과 밥을 먹고 있었다.

박소영은 그런 신애린이 영 좋지 않게 보였는지 한동안 신애린 뒷담화를 하였다. 임미라와 강서영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도 신애린이 좋게 보이지 않았는지 그 뒷담화에 동참해서 한참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뒷담화의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자 임미라가 제지하였다.

“얘들아,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래도 우리 동기인데 말이야.”

임미라의 제지에도 박소영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녀에게 말했다.

“언니, 걔는 우릴 동기로 생각도 안 할걸요? 그러니까 지금도 저렇게 다른 곳에서 밥 먹고 있지요.”

그녀의 말에 김진아 역시 동참하며 말했다.

“아마 어차피 계열사로 각각 다 흩어지고 나면 다신 안 볼거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래서 지주사 애들은…… 아.”

그룹 지주사에 들어갈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려던 김진아는 강서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 말을 끊었다.

강서영 역시 지주사로 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복지 재단이 설립되지 않아 강서영은 지주사 소속으로 하여 연수를 받고 있었다.

김진아의 당황스러움을 느낀 동갑내기 이희은이 그녀를 돕기 위해 말을 이었다.

“얘, 지주사 애들이라고 싸잡아 이야기하지 마. 서영이처럼 이렇게 착하고 참한 아가씨도 있는데 말이야.”

“그, 그래. 내가 말이 헛나올 뻔했네. 미안해, 서영아. 그런 의도가 아니라…….”

“괜찮아요, 언니. 저렇게 행동하면 뒷말이 나올 텐데, 애린이가 너무 짧게 생각하는 것 같네요.”

강서영은 뒷담화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신애린의 행동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다소 비판적으로 말을 하였다.

세 테이블 뒤에서 밥을 먹으며 남자들과 이야기하던 신애린은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을 느꼈는지 문득 고개를 들어 강서영이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강서영과 임미라는 신애린을 등지고 있어 그녀를 못 봤지만, 다른 멤버들은 갑자기 말을 끊고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신애린의 얼굴에는 살짝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너희들과 나는 급이 달라. 그나마 강서영인가 하는 애는 한국대생이긴 하던데. 그래도 불문과 정도로는 안 되지. 얼굴도 나보다 떨어지고 말이야.’

어렵게 어렵게 살아온 신애린의 최고의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릴 적에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연예인도 꿈꾸었는데, 연예 기획사 오디션을 보고 자신이 카메라 울렁증인 것을 알게 되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 생각이 안 나, 그 예쁜 얼굴에도 연예계 데뷔는 생각도 못 했다.

결국은 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시절 죽도록 공부를 하여 한국대 경제학과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한국대 경제학과까지 왔지만 대학에 와서는 공부보다는 남자들을 만나고 노는 것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자신이 성공하는 방법도 있지만 부잣집 도련님을 만나면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래도 제법 산다 하는 집 아이들과 만났는데 눈이 높은 그녀의 눈에는 그마저도 차지 않았다.

어차피 그렇게 만나는 부잣집 애들도 그녀를 한 번 놀아볼 정도로만 생각했지 어린 나이에 결혼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녀 역시 그런 걸 알기에 그 남자들에게 올인하여 결혼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적당히 학교 생활을 편하게 하는 데에 그 애들의 부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애들을 만나며 결혼까지 생각하지 않은 것은 마음을 줄 만한 남자가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아니, 그녀가 마음을 줄 만큼 부자인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다만 한국대의 노블레스라 불리는 자유 전공 학부의 상류층 자제들과는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 보려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그녀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졸업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그것이 행운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으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이미 닳고 닳은 망나니 같은 자유 전공 학부 애들을 만났다면 결혼은커녕 농락만 당하다 버림받았을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애린은 남자들은 만나며 흥청망청 어영부영 대학 생활을 보내다 결국 졸업하여 취직을 앞두게 되었다.

학점은 좋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학벌도 있고 외모도 받쳐주는 신애린이라 취직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최종적으로는 유성건설과 현승물산, 그리고 KM그룹 지주에 합격하였다. 모두 다 10대 그룹 안에 드는 대기업이었다.

세 군데나 합격한 신애린은 남들이 보기엔 행복한 고민을 하였다. 세 회사의 연수가 비슷한 시기에 있어서 한 군데를 들어가면 다른 곳을 선택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우선 그녀가 판단해 본 결과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유성건설이고, 사내 복지나 인지도가 가장 좋은 회사는 현승물산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발전 가능성은 신생 KM그룹 지주가 가장 높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룹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지주회사가 일반 계열사보다는 좀 더 핵심적인 일이라 판단하였다.

또한 모든 것이 틀에 잡힌 전통 있는 대기업보다는 아직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은 신생 대기업이 승진이나 능력을 발휘하기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그 선택에 한몫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KM그룹은 아직 안정기에 들어가지 않아서 위험하다고, 과거 설립 몇 년 만에 무너진 ST그룹을 예로 들면서 만류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던 야심이 있었던 신애린은 고민 끝에 KM그룹 지주를 선택하여 연수원에 들어왔다.

들어온 연수원에서 같은 방의 멤버들은 그다지 기질이 맞는 사람이 없어 다들 별로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수를 받으며 다른 방에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언니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언니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F5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 F5 중에서 마당발이 있는지 한 언니가 같이 연수를 받는 남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였고, 남자들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신애린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금은 방 멤버들보다 F5 언니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사실 F5의 외모는 다들 막상막하의 미모였으나 학벌은 자신의 학벌이 가장 좋기에 신애린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오늘도 방 멤버들은 내버려 두고 그 언니들과 어울려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F5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이예나가 분위기를 주도하며 은근히 말을 꺼냈다.

“얘들아, 이야기 들었니? 이번 신입 사원 중에서 임원 아들이 있대.”

“사장 아들도 아니고 임원 아들이면 뭐 그냥 회사원 아들인 거 아냐?”

“얘 철모르는 소리하네. 임원들 올해 연봉 평균이 20억이래.”

“20억? 2억 아녔어?”

“성공적인 그룹 출범에 따라서 임원들 성과급을 연봉의 몇 배나 지급했다더라. 계열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20억은 받아갔대.”

“이야, 그게 연봉이라면 매년 로또 1등에 걸리는 거나 마찬가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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