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59화 (59/203)

# 59

현세귀환록

059. 만남(1)

그룹의 주요 현안들을 보고받고 있는 강민에게 비서실의 인터폰이 울렸다.

“회장님, 김창민이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김창민?”

“네,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분이라 나중에 약속을 잡고 다시 오시길 말씀드렸는데, 금제 때문에 왔다고 그 말이라도 전해달라고 워낙 간곡히 부탁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비서의 금제라는 말에 강민은 한사람이 바로 떠올랐다.

“금제라. 그 녀석인가 보군.”

지금까지 강민이 금제를 건 적은 한 번밖에 없었기에 옆에 앉아 있던 유리엘 역시 바로 누군지 알아차렸다.

“아, 그때 그 녀석들 말이에요?”

“그래, 근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어차피 전에 그 조폭들이 내 정체를 알아차렸길래 이 녀석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뭐, 불러보면 알겠죠.”

“그렇겠지. 일단 장 실장님 잠시 자리 비켜주시겠습니까?”

어차피 중요한 보고는 다 마친 상황이었기에 장태성 실장은 인사를 한 뒤 회장실을 나섰다.

누가 왔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사생활까지 물을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가면서 그 손님을 얼핏 보니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무슨 금제 말이지?’

장태성은 궁금했지만 끝내 묻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사무실로 내려갔다.

강민은 장태성이 나가자 인터폰으로 김창민을 들어오라 하였고, 그는 회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강민과 유리엘에게 외쳤다.

“강민 회장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앞으로 평생 사회에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김창민은 다짜고짜 한 번의 기회를 달라 부탁하며 강민에게 머리를 숙이며 조아렸다.

강민이 본 김창민은 정말 의외의 모습이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기질 문제였다.

금제를 걸 당시의 김창민은 갖은 악행과 악한 마음으로 마나의 기질이 악인과 진배없었기에 강민이 그를 금제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살인을 행한 적은 없어 최후의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김창민은 악인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금제를 건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김창민의 기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과거의 악한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일반 사람들보다도 선량한 마나 기질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본질적인 악인이었다면 이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완벽히 기질이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창민은 본질적인 악인이라기보다 오냐오냐하는 가정교육과 주변에 나쁜 친구들과 어울린 것이 그의 성정을 그리 변화시켰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처음에는 고통을 겪으며 악한 마음을 다스려 나갔고 나중에는 자신의 잘못된 과거조차 후회하여 기질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동안 했던 잘못에 대한 면죄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잘못은 어떤 이유를 들어도 잘못이기 때문이었다.

김창민이 개과천선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그전까지 그가 행하였던 쓰레기 같은 행동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나무에 박힌 못을 뽑아내더라도 흔적은 남아 있듯 김창민의 나쁜 행동들은 많은 피해자를 남겼다.

그렇기에 강민은 냉정하게 김창민에게 말을 했다.

“한 번의 기회라……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

“앞으로 다시는 그런 잘못은 없을 것입니다. 회장님의 선처를 바랍니다.”

강민의 질문에 김창민은 재차 고개를 조아리며 강민의 선처를 구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널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나쁜 마음을 먹으면 고통을 주는 금제를 풀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서, 성 기능을 금제해 놓은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김창민이 말하는 것은 성 기능을 살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어차피 악한 마음을 가질 때 고통을 주는 금고아의 금제는 지금 김창민에게는 없어도 될 정도로 김창민은 기질이 변하였다.

하지만 그 금제와는 별개로 현재 김창민은 소위 말하는 고자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성 기능에 대한 금제를 풀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강민이 반응하기도 전에 김창민은 계속 말을 이었다.

“단순히 금제를 풀어달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현호에게 듣기로는 완전 불구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관계를 할 수 있다는 제약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만 금제를 바꾸어주신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강민이 건 금제인데 그 금제를 바꿔주는 것에 은혜 운운하는 것은 우습기도 했지만 김창민에게는 간절한 일이었다.

사실 김창민이 강민을 만나러 오는 것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같이 금제를 당했던 이형태의 아버지 이일광은 강민을 처리한다는 말을 남기고 이형태와 같이 실종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강민을 건들다가 반대로 자신들이 처리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름 있는 폭력 조직에서조차 강민을 처리하지 못했다. 오히려 역공으로 그들을 처리해 버리는 강민에게 금제를 풀어달라고 오는 것은 김창민에게도 큰 결심이었다.

김창민이 이렇게 두려움을 무릅쓰고 강민에게 사정을 하게 된 이유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김창민은 금제를 받은 후 초반에는 이형태와 마찬가지로 악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점차 악한 마음을 가질 때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어 갔다.

그 결과 악한 생각을 가라앉히고 과거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서 후회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특히, 악한 마음을 다스리는 중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한동안 금제가 발동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정말 열심히 봉사활동을 다녔다.

그러던 중 같은 장애인 복지원에서 봉사를 하는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여학생은 김창민의 봉사하는 모습에 호감을 갖고 그를 대하였다.

그 여학생은 열심히는 하지만 서툴러 보이는 김창민에게 친절히 설명하며 도와주었는데, 그런 여학생의 모습에 김창민 또한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 여학생, 이현미는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니었다. 오히려 김창민이 그간 만나왔던 여자들에 비하면 못생긴 얼굴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얼굴의 이현미가 김창민은 정말 좋았다.

사실 김창민은 호감 가는 첫인상은 아니었다. 작은 키에 다소 못생긴 얼굴이었기에 대부분의 여성은 그의 배경을 알기 전까지는 그를 무시하거나 피하였다.

그렇기에 김창민은 삐뚤어진 여성상을 갖고 명품 옷, 명품 시계 등으로 몸을 치장하여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 허영기가 있는 여자를 꼬여 여자 친구로 삼거나, 하룻밤을 지내곤 하였다.

그런 허영이 있는 여성들은 김창민의 성품과 외모는 싫지만 그의 재력과 배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그의 여자 친구가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이현미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봉사활동을 다니는 김창민의 옷차림은 평범했고, 외모는 여전히 못생긴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현미는 그런 김창민의 외모를 본 것이 아니라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호감을 주었던 것이었다.

김창민은 자신의 조건이 아니라 자신 그 자체만을 보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처음 만났던 것이었다.

그래서 김창민은 그녀를 놓치기 싫었다. 서툴지만 처음으로 진심을 다하여 그녀에게 구애를 하였고, 그녀는 그런 김창민을 받아들여 주었다.

여전히 이현미는 김창민이 DK건설 사장의 아들인지 모르고 있었고, 김창민도 자신의 재력을 보이지 않았다.

김창민은 재력을 과시하지 않았는데도 정말 자신을 좋아해 주는 그녀에게 점점 더 깊은 감정을 느꼈다.

이런 이현미와 결혼까지 생각한 김창민은 그제서야 자신의 문제가 되는 부분을 인지하고 낙심했다.

지금 자신은 성불구자로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조차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의 성욕 때문에 낙심한 것이 아니라 그녀와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는 평범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또한 그녀가 자신이 성불구라는 것을 알게 되어 떠나진 않을까 두려운 점도 있었다.

이렇게 낙심하던 김창민은 그나마 학교에서 친했던 최현호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자신의 문제를 언급했다.

김창민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것에 마음이 동한 최현호 역시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였다.

최현호는 유리엘에게 집적거리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관계를 할 수 없는 조건부 성불구 상태가 되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전문 병원부터 나중에는 이름난 한의원까지 다녔지만 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한의원에서 기맥이 막혀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속에서 수련한다는 도인들에게 거액을 주고 기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지금도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기공술을 배우며 기공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차도는 없는 상황이었다.

최현호의 이야기를 들은 김창민은 그 금제 역시 강민이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최현호의 금제는 유리엘이 걸었지만 항상 강민과 유리엘은 붙어 다녔고 이미 부부인 것이 다 알려졌기에 누가 그 금제를 건 건지는 크게 관계는 없었다. 둘 모두 능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최현호의 금제를 들은 김창민은 자신 역시 이일광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과 함께해 주는 이현미와의 미래를 위해서 최현호식의 금제로 바꾸어달라는 부탁을 하러 이 자리에 왔던 것이었다.

김창민의 구구절절한 사연 설명을 통해서 강민은 그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개과천선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절망에 빠뜨려 다시 재기할 수 없게 할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기질 변화는 확실히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오히려 금제를 변경하지 않으면 절망에 몸부림치다 다시 악한 마음을 먹을 가능성마저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면 김창민에게 희망 정도는 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도 강민은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김창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강민의 표정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김창민은 마지막으로 묻는다는 심정으로 강민에게 체념하듯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제 금제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래, 좋다. 불과 몇 개월 전의 네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지긴 했군. 네 기질의 변화를 높이 사서 마지막 기회를 주마.”

강민이 기회를 언급하자 김창민은 감격하여 두 번 세 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고. 유리, 부탁해. 그 방법이면 될 거야.”

강민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 듯 유리엘에게 자연스럽게 부탁을 했고, 유리엘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김창민 앞으로 나섰다.

“민이 말한 마지막 기회를 줄게. 마지막이니만큼 쉬운 것은 아닐 거야.”

“어떤 일이라도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혹시 모르지. 방법 자체는 간단해. 네가 여태껏 저지른 악행을 기록하여 그 악행에 대한 피해자 하나하나를 찾아가 사죄를 하는 것이야. 물론 네가 사죄한다고 피해자가 그걸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겠지. 그러니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피해자들이 만족할 만한 보상을 하여 네 사죄를 받아들이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거야. 피해자가 네 사죄를 받아들인다면 네 잘못을 기록한 곳에 피해자의 용서한다는 글을 받아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김창민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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