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현세귀환록
058. 입사(2)
강서영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있던 강민이 강서영에게 물었다.
“그래, 누구 부탁인데 내가 안 들어주겠어. 그건 그렇고 넌 어떻게 할 거야?”
“나? 나 뭐?”
“뭐는 무슨 뭐야. 너도 졸업반이고, 내년부터는 학생도 아닐 텐데 어떡할 건지 묻는 거지. 뭐 할지 생각은 좀 해봤어?”
“그, 그게…… 사실 나도 세나가 오빠 회사 들어간다면 세나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려고 했거든. 근데 오빠 말 듣고 보니 좀 아니다 싶어서 말이야.”
“텃세 말이야?”
“응. 그렇게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오빠 말 들으니 좀 그래서……. 그리고 괜히 낙하산으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좀 그렇고…….”
“넌 상황이 다르지. 너랑 세나는 상황이 달라. 네가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아까 오빠가 텃세 이야기를 하니까…….”
강민은 강서영의 말을 끊고 그의 생각을 말했다.
“서영아, 설마 신입 사원으로 들어오려 했던 건 아니지?”
“응? 당연히 신입 사원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세나가 너랑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세나는 신입 사원으로 들어올 것이고, 너는 최소 이사급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거지.”
재벌의 가족들이 그 회사의 이사급으로 오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특히 KM그룹 지주회사 같은 강민이 지분의 100%를 갖고 있는 비상장 회사는 눈치를 볼 주주 또한 없다.
그렇기에 강서영이 회사의 중역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시기나 질투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기나 질투는 신입 사원이 낙하산으로 들어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낙하산으로 들어온 신입 사원에게는 텃세를 부릴 수 있지만,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사에게는 텃세는커녕 오히려 잘 보이려 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사? 나는 회사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사를 해?”
“회사 일은 천천히 배우면 될 거야. 우선 업무는 전담 직원을 붙여 줄게. 네가 할 일은 정책 방향을 결정할 일이지. 세부적인 업무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그래도…… 정책 방향이라 하지만 회사 내용을 알아야 방향을 결정하든가 하지…….”
강서영의 말이 더 합리적이었다. 대기업의 이사급 임원은 일반 직원들이 보기에는 그냥 놀고먹는 것 같지만, 많은 경험과 지식을 통하여 회사의 경영 방향을 제시하고 경영 전략을 수립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자리였다.
물론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내 막후 정치 싸움까지도 있는, 그야말로 직장 생활에 닳고 닳은 노련한 인물들이나 하는 자리였다.
이렇게 대학을 갓 졸업한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 맡을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강서영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강서영은 그녀 자신이 회장 가족의 일원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강서영의 걱정에도 강민은 한 번 더 그녀를 밀어붙였다.
“어차피 네가 회사에 들어오는 시기에 맞춰서 KM 복지 재단 설립을 추진하려고 했으니 재단 이사장을 맡아봐.”
“복지 재단? 이사장?”
“그래, 일단 사회 공헌 관련한 사회복지법인, 의료법인, 학교법인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 그것을 총괄하는 재단의 이사장을 맡는 것이지.”
“헐…… 오빠는 그렇게 큰 조직의 수장을 이렇게 경험 없는 사회 초년생한테 맡기겠다는 거야?”
“그래, 맡기겠다는 거야. 넌 업무의 디테일까지는 걱정할 필요 없이 네가 평소에 생각했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좀 큰 규모로 한다고 생각하면 돼.”
사실 이렇게 강민이 그녀에게 자리를 주려고 하는 이유는, 어차피 회사를 세운 목적 자체가 가족들이 무시 받지 않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강서영이 아예 이런 일에 관심이 없다면 자신이 배경으로 있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강서영은 사회 복지 쪽에 관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강민은 힘을 가지고 그녀의 생각을 추진해 보길 권하는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강민의 어머니 한미애는 이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고 가족끼리 화목하게 사는 것만을 원했기에 굳이 한미애에게 회사 일을 권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기업의 이윤 창출이 설립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인사는 행하기 힘들 것이었다.
물론 재벌가 회사는 자신의 가족들을 임원으로 등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들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경력을 쌓게 하여 진급을 시키거나 외국 대학의 MBA 등을 취득하게 해서 임원급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행동의 기저에는 주주의 눈치를 보는 이유가 있었지만 강민은 눈치를 볼 주주가 없었다.
우선 KM그룹 지주의 지분은 강민이 100% 소유하고 있고 이번에 만들 복지 재단도 KM그룹을 통해서 자금을 출연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강민 개인의 소유라 할 수 있었다.
또한 강서영이 잘못된 판단을 하여 손실을 보아도 충분히 커버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업무의 디테일한 측면은 강민이 장태성을 옆에 두고 중용하듯, 강서영 역시 우수한 인재를 붙여준다면 그녀의 뜻을 무리 없이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서영에게 수많은 경험을 한 강민과 같은 통찰력과 지식은 없겠지만, 어차피 큰 규모로 진행하는 사업은 강민의 결재를 득하여 진행될 것이기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치만…….”
“혼자서 할 건 아니고, 유능한 직원들이 같이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아까도 말했듯이 넌 방향만 결정하면 돼. 세부적인 사항은 밑에 직원들이 할 거야.”
“그냥 나 신입 사원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 좀 부담스럽기도 해서 말이야.”
강서영의 약한 모습에 옆에서 강민과 강서영의 이야기를 듣던 유리엘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서영아, 만약에 네가 신입 사원으로 들어온다면 아마 팀 직원들이 다 네 눈치를 볼걸?”
“그건…… 비밀로 하면 안 될까요, 언니?”
“이미 언론상에 네 이야기가 많이 나갔으니 비밀로 하긴 힘들 거야. 처음에야 비밀로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네가 민의 동생인 걸 다 알게 될걸?
“그럴까요……?”
“그래,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네게 직접 말은 못 하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속였다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야. 특히 신입 사원이라고 약간 함부로 대했던 이들은 네 앞에서 벌벌 떨걸?”
“그래도 회사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이사장이 된다는 것은 좀…….”
“정 부담스러우면 좀 더 생각을 해봐. 아니면 부이사장 정도에서 먼저 시작해 봐도 되고.”
“음……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언니.”
강민과 말을 끝낸 강서영은 자신의 일은 조금 이따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전화로 김세나에게 강민의 말을 전했다.
처음엔 KM그룹에 넣어준다는 강서영의 말에 뛸 듯이 기뻐하던 김세나는 낙하산에 따를 텃세 이야기를 듣고 다소 침울해졌다. 강서영의 말이 타당했기에 김세나는 반박도 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그렇지……. 텃세가 있겠네…….
“그래, 그러니까 말이야. 오빠도 그때 신세 진 것도 있으니 네가 한다고 하면 원하는 곳에 바로 넣어준대. 그치만 그 이후의 일은 네가 스스로 버텨야 한다고 하네. 그 이상은 도와줄 수는 없다고 말이야.”
강서영의 말을 듣고만 있던 김세나는 한참 고민하다 강서영에게 되물었다.
-서영아, 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김세나의 반문에 강서영 또한 잠시 고민하다 생각을 정리하고 김세나에게 말했다.
“음…… 난 네가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 내 생각엔 넌 회사 생활은 잘할 거 같아. 지금도 알바하면 싹싹하고 부지런하다고 칭찬받기도 하고 항상 밝은 표정 때문에 어른들이 다 좋아하잖아. 지금은 그걸 보여줄 기회조차 못 잡고 있는 거잖아. 여자라는 이유도 있고, 동안으로 어려 보이는 네 얼굴 때문에 괜히 트집 잡히고 말이야. 게다가 우리 과도 그렇게 취업 시장에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그렇지…….
“그러니까 일단 회사에 들어가서 한번 부딪쳐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만약에 안 된다면 1년 정도 해보고 다시 취업할 곳을 구해봐도 괜찮잖아.”
강서영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김세나는 마음을 굳힌 듯,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너밖에 없다, 강서영. 오빠한테 말해줘. 나 잘 버텨보겠다고 말이야.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부서로 간다고 할까?”
-난 홍보나 마케팅 쪽에 관심이 있는데…….
“알겠어, 그럼 그렇게 전해줄게.”
강서영은 굳이 자신이 복지 재단을 이끌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만일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의 신입 사원으로 들어오면 자신이 커버는 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김세나가 더 적응하기 힘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무리 친구지만 자신은 처음부터 이사장인데, 김세나는 신입 사원이라면 위화감도 들 수 있을 것이고 혹시나 멀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도 하였기에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계열사에서 암암리에 힘을 써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강서영은 생각했다.
* * *
언론에 공개했던 대로 KM그룹 설립 이후 처음 대규모 그룹 공채를 단행하였다.
공채 인원은 1,000명이 약간 넘었는데, 그룹 전체의 규모로 보아선 그리 많은 인원수는 아니었다.
서류 심사에 1, 2차 면접까지 거쳐서 최종 선발된 인원은 신입 사원 그룹 연수에 들어갔는데, 김세나와 강서영은 이 연수에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강서영은 아직 복지 재단이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우선 신입 사원 연수까지는 받고 싶다고 강민에게 말하였고, 강민도 연수를 받는 것은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강서영을 근접 경호하던 최강훈은 마나의 흐름이 과거와는 달라 일본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강서영이 연수를 받는 동안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여 폐관 수련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최강훈은 강서영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며 괜찮다고 말하였지만, 어차피 강서영에게는 경호라는 것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강서영이 강민의 동생인 사실을 비밀로 하고 연수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경호원이 곁에 있는 것도 맞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최강훈은 자신 역시 신입 사원을 가장하여 강서영을 근접 경호하겠다고 고집 아닌 고집을 피웠는데, 그런 최강훈을 강민은 한마디 말로써 수련에 몰두하게 하였다.
그 한마디는 단순했다.
“그 정도 실력으로 지금 내 동생을 지키겠다는 말이냐?”
이 말에 입술을 씹은 최강훈은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폐관에 들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강민의 능력을 본 최강훈은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서영은 최강훈과 떨어지는 것을 다소 아쉬워하였지만 그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만의 착각이었다. 강서영의 아쉬워하는 모습은 유리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1,000명에 달하는 인원은 KM연수원에서 한 달간의 그룹 연수를 거치고, 각 계열사별로 나뉘어서 다시 한 달간의 연수를 받을 계획이었다.
인사팀장과 연수원장은 강서영의 정체와 김세나의 배경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다른 이들은 그 사실을 몰랐기에 둘은 다른 신입 사원들과 같은 교육을 받았다.
회장의 동생이라지만 아직 회사에서 아무런 직함도 없는 강서영이었기에 그녀의 얼굴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물론 KM그룹이 설립될 때 강민의 가족 또한 화제가 되어서 신문이나 방송에 강서영의 얼굴이 노출되었지만, 웬만한 기억력이 아니고서야 그런 휘발성 정보까지 머리에 담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게다가 강서영 특유의 붙임성과 강민이 없는 동안 그녀가 어렵게 살아온 것이 어느 정도 행동에서 묻어나와, TV나 신문에서 강서영의 얼굴을 보았던 신입 사원들도 강서영이 그 재벌 강서영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물론 천 명이 넘는 사람 중 강서영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테지만 아직까지는 강서영이 강민의 동생임을 알아차리는 신입 사원은 없었다.
이렇게 강서영과 김세나는 자연스럽게 KM그룹의 신입 사원 사이로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