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57화 (57/203)

# 57

현세귀환록

057. 입사(1)

앤더슨의 말에 벤자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누군가가 생각났다는 듯 대답하였다.

“이 혼란을 수습하려면 최소 마스터급은 되어야 할 텐데, 지금 일본에 마스터는 나카타가 유일할 겁니다.”

“아, 그렇군요. 몇 년 전에 나카타가 마스터급에 들었다고 했지요. 마스터에 오른 후 헤이안 쇼군에 도전했다가 패해서 다시 수련한다고 하는 것까지는 들었는데 아직도 수련 중인가요?”

“그렇습니다. 북해도에서 수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그라면 이 혼란을 수습할 수 있겠지요. 아마 위원회에서도 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일본을 이대로 둔 것을 보면 부총재님 말씀대로 확실히 거부권이 나온 것 같군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흐음……. 만약 그가 나와서 이 혼란을 조기에 수습해 버린다면 우리가 일본을 장악하기는 힘들겠군요. 북해도에서 혼자 수련하니 아직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을 테지만 그 역시 일부 추종자가 있었으니 조만간 움직일 수도 있겠지요.”

“나카타는 수련에 미친 검귀 같은 자라 이런 정치 놀음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모르지요. 일단 일본의 주요 조직에게 나카타에 대한 이간계를 사전에 작업해 놓도록 합시다. 어차피 헤이안과는 척을 지고 지냈던 인물이니 일본의 주요 능력자들에게 인정을 받기는 힘들 것이고, 만약 나카타가 그들을 척살하여 일본을 장악하려 한다면 AA1팀을 운용하는 것으로 하죠. 그것도 힘들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총재님! 총재님이 직접 나선다면 위원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앤더슨이 직접 나선다는 말에 벤자민은 깜짝 놀라 외치며 그에게 빠르게 말을 했다.

앤더슨은 그런 벤자민에게 손을 들어 말을 막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위원회의 경계선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일본을 포기했다면 제가 나카타를 막는다 하더라도 나서지 않을 테고, 그것이 아니라면 저를 저지할 테지요. 어차피 목숨을 붙여놓는다면 위원회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최후의 방법이지요. 너무 걱정만 하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AA1팀의 역량을 어서 빨리 끌어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마스터 한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어야 우리가 승부를 해볼 만할 텐데 말이죠.”

“지금도 한 명 정도 발은 묶어 둘 만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는 안 돼요. 마스터가 발을 빼고자 한다면 막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우선은 나카타가 안 움직이는 것이 우리에게는 베스트겠지만 대비를 안 할 수 없겠지요. 일본의 상황이 심각하니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네, 총재님.”

일본의 상황은 유니온의 정예가 투입되면서 다소 진정 국면에 들어갔고, 수십 개로 나눠진 헤이안의 내·외부 조직 및 산하 조직이 합종연횡하며 크게 4개의 조직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헤이안 산하에 있지 않았던 조직들도 하나의 세를 형성하여 지금 일본에는 크게 봐서 5개의 조직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 헤이안 산하의 4개 조직은 지금은 서로를 견제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땐 통합을 하여 다시 헤이안을 구성해 쇼군을 뽑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일단 구심점이 될 만한 마스터급의 강자가 없었기에 통합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는데, 그들 중 누구도 그 이면에 유니온의 이간계가 들어간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한창 취업 시즌이다 보니 친구들은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는 한국대학도 취업 한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다른 대학보다는 더 좋은 곳으로 취업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모두가 취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시에서 떨어진 친구는 떨어져서 내년 시험을 대비하고, 이미 2차까지 합격한 친구는 3차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공기업 입사를 노리는 친구들은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서 보내며 회사별, 차수별 합격 여부를 확인했고, 혹시 새로 채용공고가 뜬 곳이 없는지 각 회사 홈페이지나 취업 관련 사이트를 연신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서영은 조금 입장이 달랐다. 강민이 오기 전만 하더라도 전공과 무관하게 연봉이 센 대기업에 입사를 준비할 계획이었으나, 강민이 돌아오면서 ‘돈을 벌기 위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강민이 강서영이 들어가고자 하는 그런 대기업을 세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취업 시즌이 되어서도 친구들과는 다소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면접에서 떨어지고 온 김세나를 달래주기 위해서 간단히 맥주 한잔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녀 스스로는 한 번도 취업 원서를 쓰지 않았기에 제대로 된 공감은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면접관이면 면접관이지, 지가 뭔데 부모님이 이혼했냐 마냐 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짜증 나.”

“요즘은 압박 면접이라더니 그런 것도 물어보나 보네. 근데 그게 업무 능력하고 무슨 상관이 있길래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생긴 것도 먹다 남은 꼴뚜기같이 생긴 게 느물거리면서 물어보는 게 짜증 나 죽는 줄 알았어!”

김세나는 한참을 더 면접관을 욕했다. 하지만 강서영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김세나가 강서영에게 물었다.

“야, 강서영. 너 또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 말 듣고는 있었어?”

“생각은 무슨 생각. 네 말 듣고 있었지, 헤헤.”

“야! 눈이 딴 곳을 보고 있던데 듣기는 뭘 들어! 기지배 너 오빠 잘 둬서 이런 고민도 없이 살고 좋겠다, 좋겠어~!”

“히히. 좋지~ 나중에 정 갈 데 없음 나한테 말해. 오빠한테 채용시켜 달라고 할 테니까. 헤헷.”

원래는 이런 말이 나오면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던 김세나였기에 강서영은 평소와 같이 농담을 던졌던 것인데 이미 몇 차례 면접에서 떨어져 자신감을 잃었던 김세나는 반색하며 말했다.

“진짜? 그렇게 해줄 수 있어? KM이면 10대 기업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인데 뽑아만 준다면 나야 감지덕지지, 감지덕지!”

“야, 너 예전의 그 패기는 어디 갔냐? 예전엔 백산도 우습게 알더니…… 김세나 다 죽었네, 다 죽었어.”

“그래, 이 기지배야. 예전에 김세나 이미 죽었어. 죽고 백골이 진토됐으니 좀 넣어주라."

“세나야, 그렇게 힘들어?”

“에휴…… 취업이 뭐길래 날 이렇게 힘들게 하냐.”

강서영의 납치 사건 이후로 둘은 더 친해져서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좀 심하다 싶은 농담도 스스럼없이 주고받고는 하였다.

“근데 넌 진짜 어쩔 거야? 오빠 회사로 들어갈 거야?”

“그게…… 아직 잘 모르겠어. 오빠는 뭐든 나 하고 싶은 거 하라는데 내가 아직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에휴. 부럽다, 강서영. 부러워 정말. 근데 농담이 아니고, 나 진짜 너네 오빠 회사에 취직 좀 시켜주면 안 돼? 너도 알다시피 우리 과가 취직이 잘되는 과가 아니잖냐. 이대로라면 취업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어…….”

“그 정도야?”

“그래, 기지배야. 넌 원서도 안 넣어 봐서 모르겠지만 우리 과에서 그나마 취직되는 애들도 불어는 기본에 영어까지 연수를 갔다 와서 네이티브급으로 하니……. 나 같은 순수 국내파는 정말 힘들다 힘들어.”

불문과라 불어를 잘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문과도 아닌데 영어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강서영이었다.

“야, 우리가 영문과도 아닌데 영어까지 해야 하냐?”

“철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강서영. 야, 우리 과뿐만 아니라 어떤 과든 영어는 기본으로 하고 제2외국어를 본다니까. 독문과 친구도 영어 못한다고 타박만 듣고 면접에서 떨어졌다더라. 우리나라 사람들 참 희한해. 영어권 국가도 아니면서 영어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보면 말이야.”

“그렇구나…….”

“그렇구나는 무슨 그렇구나야. 그니까 이 기지배야, 나 좀 부탁해 주라. 그래도 네 베프잖아, 베프~”

강서영은 김세나의 농담을 가장한 진심을 듣고 정말 한번은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알겠어. 내가 말해 볼게. 근데 어느 부서 쪽을 생각하는 거야?”

“진짜? 말해주는 거야?”

“그래, 말해준다고. 어느 계열사에 어느 부서인지나 말해 봐.”

“야야, 내가 그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니다. 어디든 받아주면 다 갈 거야. 그럼 나 너만 믿고 KM에 원서 쓴다?”

“너 내가 안 들어줬으면 원서 안 썼을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크크큭. 그럴 줄 알았어, 김세나!”

“힝, 너도 내 사정 알잖아. 좀 봐주라~”

“그래그래, 히히.”

웃으며 이야기를 했지만 강서영은 김세나의 이야기를 꼭 강민에게 전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자신도 얼른 자신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 * *

강서영은 집에서 강민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가 강민과 유리엘이 집으로 오자 바로 강민에게 달려갔다.

“오빠, 잠깐 시간 돼?”

“무슨 일이야?”

“내 친구 세나라고 알지?”

“알지, 그때 납치 사건 때 전화했던 친구 아냐?”

“맞아, 그 친구!”

“근데 그 친구가 왜?”

“아, 다른 게 아니구…….”

강서영은 강민에게 김세나의 상황에 대해서 말을 전했다. 강서영의 말을 들은 강민은 흔쾌히 강서영에게 답했다.

“뭐,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네 제일 친한 친구인 데다가 그때 널 구하는 데도 도움을 줬으니 그 정도야 그때의 보답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네.”

“정말? 오빠 정말이야? 그럼 나 세나한테 합격했다고 말한다?”

기뻐하며 강민에게 말하는 강서영에게 강민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나는 알아둬야 할 거야.”

“어떤 거?”

“그렇게 낙하산으로 들어오면 분명 주변의 텃세는 있을 거라는 것을 말이야.”

“텃세라면…….”

“일반적으로 시기나 질투, 심하면 따돌림까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

“설마…….”

설마라는 강서영의 말에 옆에 있던 유리엘이 끼어들어 타이르듯 그녀에게 말을 했다.

“설마가 아니야. 많은 사람이 자신들은 노력해서 얻은 결과를, 노력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빽’으로 쉽게 성취한 사람들에 대해서 적개심을 갖는단다.”

“음…… 언니, 그럼 안 되는 거예요?”

강서영의 물음에 유리엘이 아니라 강민이 대답했다.

“아니, 아까도 말했잖아. 보답으로 해준다고. 다만, 세나라는 친구가 그런 텃세를 이겨내고 인정받으려면 취업하는 데 들였던 노력 이상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텃세를 못 이기고 스스로 회사를 나갈 수도 있겠지.”

“그렇구나…….”

“만일 그 친구가 그 텃세를 버티고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을 각오가 있다면 내게 말해줘. 얼마든지 원하는 자리에 취업시켜 줄 테니 말이야.”

“알겠어. 세나한테 말해 볼게.”

“그리고 어디까지나 널 구하는 것을 도와준 대가로 그러는 것이니 고마워 할 것은 없다고 말해주고. 그 대가는 취업을 도와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는 것도 말해줘. 취업한 이후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겠지. 버텨서 인정을 받든, 아니면 그만두든.”

다소 냉정한 강민의 말이었지만 강서영은 이해했다. 자신처럼 가족도 아닌, 단지 자신의 친구일 뿐이니 강민이 한없이 돌봐줄 수는 없을 것이다.

강서영은 강민의 친절과 호의는 거기서 끝이라는 것을 확실히 이야기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대답하였다.

“알겠어, 오빠. 오빠가 했던 말 정확하게 전해줄게. 그래도 하겠다면 좀 부탁해.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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