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현세귀환록
056. 후담(3)
다른 세계라는 말에도 의장은 별다른 목소리의 변화 없이 자연스럽게 대답하였다.
“일단은 그렇게 추정하고 있소. 이곳의 마법 중 내가 모르는 마법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니……. 그리고 마나 파문 역시 기존에 등록된 자는 아니었소. 물론 그레이 울프나 카오틱에빌이면 마나 파문을 등록하지 않겠지만……. 결론적으로 최소 몇 세대는 거쳐서 내려온 듯 높은 완성도를 가진 마법 체계였소. 그렇기에 일단은 다른 차원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소. 사실 그런 전례도 이미 있지 않소?”
의장은 모든 마법을 안다는 광오한 말과 함께 전례가 있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인물을 바라보았다. 의장 옆의 인물은 의장의 시선을 느끼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우리 일족은 무관합니다, 의장님. 괜한 생사람 잡지 마시죠.”
“알고 있습니다. 로드 일족의 마법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마법 체계였습니다. 로드 일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마시오.”
그때 의장의 말을 끊는 남자가 있었다.
“의장, 그래서 이렇게 회의를 소집한 이유가 뭐요?”
다른 사람들이 의장에게 존대를 하는 것에 비해 이 남자는 평대로써 의장을 불렀다.
“급한 성정은 여전하시오. 그 성정을 가지고 어떻게 그 경지까지 올랐는지 원……. 지금 말씀드리려 했소이다. 비어버린 쇼군의 자리를 채워야 하지 않겠소?”
의장이 빈자리를 채운다는 말에 다른 쪽에 앉아 있는 남자가 말을 꺼냈다.
“혹시 의장님께서는 생각해 놓은 인물이 있는지요?”
“특별히 생각했다기보다는, 흩어진 헤이안을 다독이려면 일본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누구 말입니까?”
“나카타가 어떻소? 어차피 일본에 그 말고는 마스터급에 오른 사람도 없지 않소?”
의장이 나카타라고 말하는 순간 의장에게 평대를 했던 남자는 콧방귀를 뀌었고, 의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거리를 하였다.
“나카타라니, 초월지경에 들지도 못하는 반쪽짜리 화경을 말이오? 그딴 녀석을 위원회에 넣는다니 나는 반대요!”
나카타라는 말에 어처구니없어하는 남자를 보며 의장은 되물었다.
“지금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오?”
“그렇소. 자격이 안 되는 자를 영입할 만큼 꼭 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소.”
“음…… 알겠소. 상임위원의 거부권이라면 나도 굳이 고집하지 않겠소. 그럼 일단 일본 쪽은 나카타가, 아니, 다른 누구라도 자격을 갖출 때까지 잠시 두고 봅시다.”
의장이 말을 끝내자 이제껏 조용했던 한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일본을 그냥 둬도 괜찮겠습니까? 안 그래도 요즘 유니온의 행태가 심상치 않던데……. 여태껏 일본은 헤이안이 꽉 쥐고 있어서 유니온에서 나서지 못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헤이안을 포기한다면 일본을 유니온에게 넘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나도 그래서 나카타라도 넣어서 다독이려 했더니, 저렇게 거부권을 행사하니 어쩌겠소.”
거부권을 행사했던 남자는 의장의 말이 끝나자 다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다.
“유니온 따위가 잠시 설치는 것이 무슨 상관이오? 정도를 넘는다면 내가 유니온을 징계할 테니 걱정 마시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위원회 내에서도 나름 권력의 크기가 다른지 거부권을 행사한 남자의 말에 질문을 했던 남자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아까 의장이 생각한 인물을 물은 남자가 다시 한번 의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복수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남자의 복수라는 말에 의장 대신 의장에게 평대를 했던 남자가 말을 받았다.
“복수?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요? 복수라니? 능력이 없어 죽은 놈인데.”
“물론 능력이 없다면 그리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흉수가 우리 위원회를 적대하는 놈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본보기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인식 장애도 못 풀었는데 어떻게 찾아서 복수 한다는 것이오? 아니면 그놈 하나 잡자고 온 세상을 들쑤시자는 말이오?”
“그래도 우리 위원회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누는 무슨. 오히려 역량이 안 되는 위원이 있다는 것이 누가 되겠지. 역량이 안 되면 이렇게 알아서 떨어지는 것이 낫지 않겠소? 나는 오히려 나카타인지 하는 반쪽짜리보다는 쇼군을 죽인 퍼니셔가 우리 위원회로 들어오면 좋겠구만.”
분위기가 과열되는 듯하자 의장이 둘 사이의 말을 끊고 나섰다.
“일단 인식 장애 결계를 해제하고 난 뒤에 이야기합시다. 해제한 뒤에는 퍼니셔의 실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니 그때 그의 의중을 물어보고 우리와 생각을 같이 한다면 위원회에 넣을 수도 있겠지요. 그때도 만일 우리 위원회를 적대한다면 그때 척살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렇게 좌중을 정리한 의장은 회의를 마치는 말을 꺼냈다.
“그럼 헤이안은 포기하는 것으로 하지요. 당분간 위원회는 8인 체제로 운영하겠습니다. 제가 별도로 알려드리지 않는다면 다음 회의는 예정된 정기모임 때일 것입니다. 그럼 들어들 가시오.”
들어가라는 의장의 말에 각 자리에 앉아 있던 실루엣들이 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애초에 본인이 직접 온 것이 아니라 허상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 *
헤이안이 무너지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헤이안의 수뇌부가 일시에 척살당한 이후 일본의 이능 세계는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어지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헤이안의 내부 조직부터 외부의 방계 조직까지 헤이안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서 하나같이 정통성을 주장하며 쇼군의 자리에 오르려 하여 하루에도 수차례의 소규모,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헤이안의 통제가 무너진 틈을 타서 카오틱에빌들도 여기저기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벌이는 등 일본의 이능 세계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나마 유니온이 있기에 일반인에 대한 피해는 최소화하고 있었으나, 유니온 일본 지부는 일본의 이능 세계 규모에 비해서 그 힘이 상대적으로 많이 약했다.
이는 평소 헤이안의 행태 때문이었다. 유난히 단결이 잘되는 일본의 이능 조직들은 헤이안을 구심점으로 하여 일본의 이능 세계를 장악하였다.
이능 단체 간 문제가 생기거나 이능력자가 일반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하면 유니온이 나서기도 전에 자신들이 처리해 버리는 일이 많았다. 때문에 유니온 본부에서 일본 지부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헤이안이 무너지고 구심점을 잃어버리자 일본의 이능 세계를 통제할 조직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었다. 헤이안 조직 간의 전투로 다수의 이능력자들이 희생되자 이제는 웜홀 포인트를 지키는 일에도 소홀해졌다.
심지어 몇몇 웜홀에서 나온 마물이 일반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다행히 적응력이 강한 마물은 없었기에 큰 인명 피해를 주지는 못하고 마나 반발로 사라졌지만 언제 적응력이 강한 마물이 나와 큰 피해를 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헤이안에 들지 않았던 이능 조직이나 중립 성향의 그레이 울프들은 유니온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헤이안에서 내부적으로 정리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위원회에서 나설 것이라 생각했던 유니온의 수뇌부는 일본의 혼란이 지속되자 위원회에서 헤이안을 방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결국 위원회에 공식적인 질의를 하였다.
주요 내용은 쇼군의 부재에 대해서 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앤더슨 총재와 벤자민 부총재는 쇼군이 위원회의 위원이었기에 차기 쇼군 역시 위원회의 위원이 될 것으로 판단했는데 위원회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기에 당연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시기의 문제지 위원회에서 일본을 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요즈음 위원회의 행동은 드러내 놓고 유니온을 견제하고 있었기에, 유니온의 세력을 더 펼칠 수 있는 쪽의 판단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위원회에서 돌아온 답은 당분간 헤이안의 상황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고 유니온의 수뇌부, 앤더슨 총재와 벤자민 부총재는 다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위원회에서 일본을 포기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유니온에게 기회였다.
유니온의 본부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앤더슨 총재와 벤자민 부총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총재님, 위원회의 속셈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위원회 감사관의 행동이나 무력단체에서 정예를 빼는 행동을 보면 요즘 우리의 행보를 좋지 않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저도 조금 의아한 부분은 있지만, 이건 위원회 전원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일부 위원들 간에 의견 충돌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의견 충돌이라면?”
“상임위원 중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요.”
거부권이라는 벤자민의 말에 앤더슨은 잠시 팔짱을 끼며 생각을 하다 말을 이었다.
“음, 거부권이라……. 누굴까요?”
“일단 두 명 정도가 떠오릅니다. 한 명은 순리를 따지는 백두 쪽이고, 한 명은 원래 쇼군을, 아니, 일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무림맹 쪽이겠지요. 의장은 위원회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니 말입니다.”
“흐음…… 블러디 로드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시는 건가요?”
“로드는 오히려 혼란이 가속되는 것을 우려하는 쪽일 겁니다. 혼란이 가속되다 보면 전처럼 또 변종이나 중독자가 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할 테니 말이죠.”
벤자민의 말에 동의하며 앤더슨은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긴 하지요. 그렇다면 부총재님은 백두와 무림맹 중 어느 쪽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보십니까?”
“제 생각엔 무림맹 쪽이 더 가까워 보입니다. 과격한 성격의 무림맹주는 충분히 그런 발언을 할 만한 존재지요.”
“그럼 백두는?”
“물론 백두 쪽에서 위원회가 헤이안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순리에 맞지 않아서 거부권을 행사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백두는 은둔자적 성향이 강하니 위원회에도 안 나왔을 가능성도 높지요. 설령 나왔다 하더라도 별말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백두의 은둔자적 성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앤더슨 총재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벤자민의 말을 받았다.
“언제나 그가 생각하는 순리라는 것은 참 모를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조국이 일본의 점거를 받을 때도 자신이 나서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다는 말로 은둔해 있었으니……. 저 역시 그가 생각하는 순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백두는 백두였고, 이번은 유니온에게는 확실히 기회였다. 앤더슨은 벤자민을 바라보며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여튼 위원회가 저렇게 나온다면 좋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 지부의 역량을 극대화시켜 일본의 이능 세계를 통제해 봅시다. 어차피 지금 헤이안의 역량으로는 고정 웜홀 포인트를 지키기도 버거운 상황일 테니 우리가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하나씩 우리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해보지요.”
“알겠습니다. 준비된 정예를 투입하지요. 이번에 새로 개발한 R5모델의 마나 라이플, G3 마나 건과 M4모델 마나 슈트를 사용한다면 C급 능력자 일 개 조로도 B급 웜홀을 지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정예를 보내서 고정 웜홀 포인트를 지킨다는 벤자민의 말에 앤더슨은 다소 목소리를 낮추고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웜홀도 중요하지만 다시 헤이안이 일본의 이능계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우리 유니온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이간계 등을 사용해서 이 상황을 길게 끌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위원회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기회를 줄 때는 과감하게 잡아야겠지요.”
“네, 이번에는 AA2팀과 AA 3팀을 같이 투입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공작을 위한 IA1팀도 보내겠습니다.”
“AA1팀도 급한 임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서 AA1팀은 본부에 있다가 기동타격대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게 하지요. 어디서 사건이 터질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혼란을 수습할 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은 없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