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51화 (51/203)

# 51

현세귀환록

051. 신위(2)

마법기가 비싼 이유 두 번째는 코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코어에 마법술식을 고정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코어가 하드웨어라면 마법술식은 소프트웨어였다. 우수한 코어라 하더라도 마법술식이 제대로 고정되지 못하면 마법기의 효율은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술식의 고정도가 심하게 떨어지는 경우에는 효율의 문제를 넘어 내구도마저 떨어져 일회용 마법기로 전락한다. 그렇기에 마법술식의 고정은 마법기 제작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보통 C급이라 불리는 4서클의 마법사가 전력을 다하여 마법술식을 고정시키면 한 달에 하나 정도의 마법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마법술식을 고정시키는 것에 전력을 다한 마법사는 그다음 한 달 정도는 충분히 쉬어야 다음 달에 다시 하나 만들 수 있다. 그 정도로 마법술식의 고정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물론 같은 수준의 마법기를 만든다면 고서클의 마법사는 저서클의 마법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수고를 들일 수 있었으나, 고서클의 마법사는 고등급의 마법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 어려움은 저서클의 마법사에 비해 적다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마법 물품은 비쌀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마정석의 부스러기나 마물의 다른 부위들을 기존의 무기나 장비에 접목시킨 마나 물품들이 대체재 아닌 대체재가 되고 있었다.

성능은 마법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지만 가격이 천만 원대 정도부터 시작할 정도로 저렴하니, 돈이 없는 저등급 능력자들이나 이능 세계를 아는 일반인들은 마법기보다는 마나 물품을 선호하였다.

이처럼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마법기였기에 최강훈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백록원의 재정 상황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무공을 주로 하는 백록원의 풍토상 그런 외물의 도움을 받는 것을 터부시하였기에 최강훈은 마법기를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것을 본 적조차 없었다.

사실 유리엘이 강서영이나 한미애에게 만들어준 마법기를 여기의 마법사들이 본다면 기절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한 마법기에 둘 이상의 마법만 담겨도 그 가치는 수 배에서 수십 배가 오르는데 유리엘의 마법기에는 대여섯 가지의 복합 마법이 담겨 있었고, 그 마법의 등급조차 고서클이었기에 가치를 환산하기도 힘들 것이었다.

유리엘조차 이런 마법기를 만드는 것은 손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엘의 아공간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있었고, 오랜 경험을 통해서 여기의 마법사들보다는 월등히 효율적으로 마법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

다만 유리엘 역시 그 두 개의 마법기를 만들었을 때 한동안 마법을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후유증을 겪었다. 한미애와 강서영에게 만들어준 마법기는 그만큼 대단한 마법기였다.

사실 강민은 기본적인 생존 마법과 좌표 확인 마법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유리엘에게 마법기를 부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유리엘은 강민의 영혼을 통해 몇만 년 만에 만난 가족에 대한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랬기에 그녀에게도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최상의 생존 마법기를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최강훈에게 언급한 비행 마법 하나 정도를 담는 마법기라면 아무런 무리 없이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들 수 있었다.

“음, 어차피 만들 거 통역 마법도 넣어줄게. 외국에 다니거나 하면 불편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아, 고정 좌표 설정 마법도 하나 넣어놔야겠다. 그래야 필요하면 부르거나 그리로 갈 수 있으니.”

최강훈의 상식에는 하나의 마법기에는 하나의 마법이었다. 더블 캐스팅이 되는 마법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리엘은 당연하다는 듯 두 세 개의 마법을 이야기했기에 최강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 마법기에는 하나의 마법만 담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응? 그럴 리가. 아, 여긴 실력이 별로 없나 보다. 호호호. 그래도 개중에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트리플까진 가능할걸? 아마 네가 잘 모르는 걸 거야.”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마법 물품 만드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라 하던데…… 누님 괜찮으신가요?”

최강훈도 마정석이 없다면 마나 결정으로 마법기를 만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따로 마정석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기에 당연히 마나 결정으로 마법기를 만든다고 생각하였고, 마정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법술식을 고정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했기에 최강훈은 유리엘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호호호. 그런 저서클 마법을 담는 마법기는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들 수 있어. 무리 안 되니까 걱정하지 마.”

유리엘과 최강훈이 마법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강민은 결계 속을 뚫고 헤이안 본진 내 인물의 기척을 모두 파악하였다.

“마나가 없는 일반인들을 제외하면 200명 정도의 이능력자가 있구나.”

“형님, 200명이나 되는 겁니까?”

“수뇌부가 되려면 A급 정도의 능력을 갖추었을 테니, 그들만 보면 10명 정도 되는구나. S급의 우두머리는 제외하고 말이다. 일단 넌 물러나 있거라.”

최강훈을 뒤로 물린 강민은 잠시 마나를 조절하더니 전면의 성을 향해 강한 기파를 순간적으로 내뿜었다 거둬들였다.

퍼-엉! 쏴-아아악!

폭발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전면에 마나의 공동이 생기며 이내 마나가 다시 빈 곳을 채우려는 듯 사방에서 몰려들어 마나의 바람이 불었다.

“오랜만인데 여전하네요. 호호호.”

“일반인을 살리려고 조절해서 하려니 좀 시간이 걸렸어.”

강민이 사용한 방법은 전방에 마나를 일순간 소진시켜 버리는 것으로 그 범위 안에 들어 있는 생명체의 마나도 순간적으로 끊을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끊은 마나이니 바로 이어지겠지만 그 강도에 따라서 일반인은 물론이고 마나 능력자들까지 순간적으로 기절시켜 버릴 수도 있었다.

강민은 이 기술로 단순한 기절이 아니라 죽음까지 이르게 하여 대량 살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잠시간의 마나를 끊는 것에 비해 대상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마나를 끊는 것은 엄청난 마나가 사용되기에 그럴 바에는 다른 기술에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이 기술에 저항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마나 능력이 강할수록 그 충격을 버텨내며 마나가 끊겨 기절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민이 사용한 마나는 B급 정도의 능력자까지는 견디기 힘든 정도의 위력으로 기술을 보였기에 아마 지금 헤이안에는 A급 능력자 이상만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강민의 기술이 발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의 성채에서는 십여 명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다양한 복색을 한 남자들로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부터 일반 정장, 잠옷 심지어는 일본의 전통속옷인 훈도시만 입고 나온 장년인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같이 일본도를 챙겨왔고 도착하자마자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누구냐!”

“웬 놈이냐!”

“무슨 짓을 한 거냐!”

정확하게 10명의 인원이었는데 하나같이 A급 이상의 강자였다. 하지만 쇼군이라 불리는 헤이안의 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허, 이 정도 상황인데도 두목이라고 지켜만 보고 있겠다는 건가? 일단 이놈들을 치워야 스스로 기어 나오겠구나.”

자연체의 강민이 서서히 마나를 끌어올리며 기세를 더하였다. 10명의 헤이안 수뇌부는 강민의 기세에 흠칫 뒤로 물러났다.

강민이 자연체로 있을 때는 그의 역량을 알아볼 수 없었는데, 강민이 기세를 올리자 그제서야 강민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올 때도 별다른 기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특별한 마법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합공을 주저하지 마라.”

그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70대 노인이 일본도를 빼 들고 지시했고, 주위 인물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귀찮게 한두 명씩 오지 말고 전체가 합공해.”

겉보기에는 손자 정도의 나이대로 보이는 강민의 반말에도 강민의 기세를 느낀 노인은 섣불리 대거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젊은 40대의 정장 중년인이 발끈하며 강민의 말을 받았다.

“뭐야! 네놈이 강한 것은 알겠지만 네놈 혼자서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쇼군께서 오셔서 네놈의 목을 잘라 버릴 것이다!”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그 쇼군인지 쇼걸인지 빨리 나오라고 그래. 아니면 네놈들을 처리하기 전엔 안 나오나? 대가리가 이건가?”

강민의 도발에 결국 참지 못한 중년인이 일본도를 빼 들고 강민에게 검격을 날렸다.

70대의 노인도 이번에는 막지 않았는데, 그 역시 강민의 말에 분노해서라기보다는 중년인을 희생시켜서라도 강민의 무위 정도를 파악하려 한 것이었다.

단지 기세만으로 느끼는 수준과 공방을 보면서 판단하는 것은 질적으로 달랐기에 노인의 입장에서는 그중년인을 희생양으로 쓴 것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였다.

촤-악!

사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중년인은 후방으로 분수 같이 피를 쏟아내며 양단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중년인의 공격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라 다른 누군가 개입할 여지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중년인이 공격하자마자 반으로 갈라진 모습밖에 보지 못해 경악만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노인은 그나마 상황을 알아볼 수 있었다.

중년인은 뛰어오르면서 상단에서 하단으로 일도양단의 기세로 강민의 머리를 향해 검격을 뻗어냈고, 강민은 그 검격을 오른손으로 받아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공방이었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마나 하나 머금지 않은 것으로 보이던 강민의 오른손이 중년인의 검격을 받아낸 기세 그대로 그의 머리끝에서 엉덩이까지 반으로 갈라 내버렸던 것이었다.

강민은 보통 피를 보지 않기 위해서 양강의 진기를 실어 절단면을 지져서 출혈을 막았으나, 이번엔 일부로 그대로 갈라버려 잔인한 광경을 연출하였다.

그런 광경을 지켜본 나머지 9명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강민의 기세가 단순한 기세가 아니라 실질적인 무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70대 노인이 또 다른 40대 중년인에게 말을 건넸다.

“허…… 이치로.”

“네!”

“쇼군을 모셔와야 할 것 같다. 우리로서는 역부족이야.”

“네, 알겠습니다. 원주님”

원주라 불린 노인의 지시를 받은 40대의 중년인이 잠시 강민의 눈치를 보더니 뒤로 훌쩍 뛰어서 다시 성채로 들어갔다.

어차피 이런 시위를 통하여 쇼군을 부르려고 했던 강민은 한 명의 이탈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노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제 두목이 나오는 것이냐?”

“네놈의 무력은 잘 알겠다. 하지만 쇼군이 나선다면 네놈도 곧 저기 나카무라와 같은 꼴이 되고 말 테니 자신하지 말아라.”

“스스로 나서지도 못하는 늙은 개가 주인이 온다고 위세를 보이는 것이냐?”

강민의 비아냥에도 노인은 입술만 깨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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