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현세귀환록
049. 습격(3)
유리엘은 일전에 최강훈의 신체를 점검하며 만일을 대비해 자신의 마나를 남겨 놓았기에 최강훈의 저항이 없다면 어렵지 않게 최강훈을 소환할 수 있었다.
사실 원거리에서 자신이 있는 자리로 소환을 하는 마법은 대응 마법진이 준비된 것이 아니라면 이 세계의 마법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유리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곧 화장실로 간 최강훈은 유리엘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유리엘은 순간이동 마법으로 최강훈을 제주도로 소환하였다.
잠시간의 눈부심이 지나자 최강훈은 강민과 유리엘 옆에 나타났다.
“형님, 누님.”
“어서 와. 저놈들이야.”
순식간에 서울에서 백록원으로 온 최강훈은 감회에 젖을 사이도 없이 주변을 살폈다.
그들의 주변에는 이미 이십여 명의 복면인이 땅에 누워 부들거리고 있었으며, 멀쩡한 인물은 앞에 보이는 30대 중반의 중년인과 70대로 보이는 노인밖에 없었다.
유리엘의 말처럼 그 노인에게는 최강훈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기운이 쏟아져 나왔고, 중년인의 기운 역시 최강훈이 섣불리 상대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최강훈이 갑자기 등장하자 슌스케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 신음을 흘렸다.
“아, 아니……. 대응 마법진도 없이 소환을 하다니…….”
야스오는 안 그래도 굳어 있던 표정이었는데 미간 사이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주변을 살핀 최강훈에게 강민이 말을 건넸다.
“어떠냐, 한번 해볼 테냐?”
서울로 올라온 다음 실력이 많이 늘기는 하였지만 아직 C+급 정도의 수준이었다. B급으로 보이는 슌스케의 상대는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최강훈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강민에게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죽진 않게 해주마. 한번 해봐.”
강민의 말에 최강훈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마법 주머니에서 1미터가 넘는 환도를 꺼냈다.
환도를 슌스케에게 겨눈 최강훈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슌스케에게 접근했다.
슌스케는 일견에도 자신보다 떨어지는 수준으로 보이는 최강훈이 자신을 노리며 다가오자 내심 코웃음을 쳤지만, 강민과 유리엘이 뒤에 자리하고 있어 둘을 경계하면서 최강훈을 상대했다.
어느새 검격을 뿌리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슌스케와 최강훈은 잠시 공격할 틈을 보았는데, 역시 슌스케가 수준이 높았던지 더 빨리 틈을 발견하고 움직였다.
쉭쉭-!
슌스케의 검은 번개처럼 최강훈의 좌우로 휘둘러졌고 최강훈은 움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슌스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한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고 이어 공격해왔다.
챙-! 챙챙챙챙!
슌스케는 좌우 중단 베기에 물러서는 최강훈의 빈틈을 노리고 물러서는 방향으로 크게 검을 휘둘러 우측 상단을 대각선으로 베어갔다.
그 공격을 최강훈은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막아냈는데 그에 실린 역도가 상당했는지 팔이 저릿저릿하였다. 그런 최강훈의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슌스케는 파상 공격을 하였다.
최강훈은 어떻게든 틈을 만들기 위해 단단히 방어를 굳히고 슌스케의 공세를 막아갔지만 한 번 놓친 기세를 다시 찾아오기란 쉽지 않았다.
챙챙챙-!
슌스케는 최강훈의 빈틈 이곳저곳을 노리며 검세를 펼쳐갔지만 최강훈의 방어도 만만한 수준은 아니었기에 결정타가 들어가지는 않았다.
한참 동안 슌스케는 공격을, 최강훈을 방어만을 지속하였다. 만일 이대로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수련 수준이나 마나량이 슌스케에 비해 한참 부족한 최강훈의 패배가 당연했다.
하지만 슌스케는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최강훈에게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것이 굴욕적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뒤에 있는 강민과 유리엘이 언제 이 전장에 뛰어들지 모르기 때문에 서둘러 최강훈을 끝내려 하였다.
슌스케는 결정타를 넣을 생각이었는지 수세에 몰린 최강훈에게 휘두르는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윽고 슌스케의 검은 어기충검의 샤이닝 상태로 들어갔는데 슌스케의 공세에 최강훈은 기를 모을 여유가 없었는지 그의 검에는 아직 빛이 돌지 않았다.
계속되는 공세에 최강훈이 약간 비틀거리는 빈틈을 발견하자 슌스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을 동반한 강한 검격을 날렸다.
“끝이다!”
슌스케는 최강훈의 검을 부수며 그의 가슴까지 갈라 버릴 생각을 하였다. 마나가 충반한 샤이닝 소드는 마나가 없는 일반 검을 두부 자르듯이 자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강훈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새 샤이닝 소드를 만든 최강훈은 슌스케의 검을 빗겨 막아냈다.
마나량으로 따지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기에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의 묘리에 따라 검을 빗겨내었던 것이었다.
슌스케는 최강훈의 검이 갑자기 샤이닝 상태가 된 것에 한 번 놀랐고, 전력을 품고 강하게 내지른 검격이 최강훈의 검에 빗겨난 것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격이 빗겨져 나가며 방어가 풀린 슌스케는 다가오는 최강훈의 검격을 보며 세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에 다가오는 검격을 방어하기엔 늦었고 피하기엔 자세가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래도 B급의 강자인 슌스케는 호락호락하게 목을 내주지 않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슌스케는 공격을 무시하고 빗겨진 검을 위로 쳐올리며 최강훈을 공격해갔다.
그 공격을 무시한다면 자신의 목숨은 잃을지언정 최강훈 역시 무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최강훈이 그 검을 피해서 물러날 것이라 판단했다.
최강훈이 한 번만 물러난다면 이제는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공격하여 그를 잡을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 생각은 생각만으로 끝났다. 최강훈은 슌스케의 공격에도 끝까지 그의 목을 잘라내었다.
물론 최강훈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슌스케의 검이 최강훈의 복부를 스치며 크게 검상을 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승자는 최강훈이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검상을 입은 복부를 부여잡고,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슌스케의 머리통을 보았다.
야마토의 대제자, B급 능력자에 어울리지 않는 최후였다. C급의 최강훈에게 당할 그의 수준이 아니었으나, 최강훈을 과소평가하고 무리한 공격을 날렸던 한 번의 실수가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최강훈은 자신의 실력이 슌스케에 미치치 못한다는 것을 알고 끈질기게 참아내다가 한 번의 기회를 잡아 그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슌스케의 방심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통상적으로 능력의 등급이 낮을수록 검에 마나를 불어넣는 샤이닝 상태로 만드는 것은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랬기에 슌스케가 최후의 공격이 들어갈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최강훈은 최근 강민에게 몇 가지 지도를 받고 샤이닝 상태의 발현을 통상적인 C급에 비해서 더 빨리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주요 원인이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최강훈에게 유리엘이 다가가 치료 마법을 걸었다. 유리엘의 치료 마법에 최강훈의 상처는 급속히 아물어갔다.
“왜 그렇게 무리했어?”
“그것밖에는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요, 누님. 그리고 형님이 죽진 않게 해준다 하셔서…….”
“너도 참…….”
최강훈은 방금 입은 상처는 아물었지만, 출혈도 컸고 마나 역시 거의 고갈되어 있었기에 비틀거리며 전면에서 물러났다.
최강훈이 비틀거리며 강민의 곁으로 오자 강민은 최강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했다.
“고생했다.”
“형님 덕분입니다. 윽…….”
“쉬고 있어, 마무리는 내가 지을 테니. 대신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네, 형님!”
최강훈을 뒤에 두고 강민이 전면으로 나섰다. 평소 이 정도 적은 손짓 몇 번으로 처리하였던 강민은 이례적으로 1미터가 훌쩍 넘는 바스타드 소드를 소환하여 들었다.
아마 최강훈에게 검을 쓰는 법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강민의 앞에 남은 건 이제 야스오 혼자뿐이었다. 슌스케의 죽음 이후 야스오의 미간은 좀 더 찌푸려졌다가 강민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미간의 주름이 펴지며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직도 강민의 힘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냥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치 쇼군을 보는 듯하군. 그분을 볼 때도 자네처럼 아무런 기도를 느낄 수가 없었지.”
“쇼군? 헤이안의 주인을 말하는가 보군.”
“그렇네. 하지만 자네도 그분의 상대는 안 될 것이야. 내 복수는 언젠가 그분이 해주시겠지.”
“과연 그럴까?”
야스오는 쇼군이라면 강민을 이길 수 있을 거라 확신하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 믿었다.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힌 야스오는 천천히 자신의 일본도를 빼 들었다.
야스오의 일본도는 칼집에서 나오면서부터 빛이 나는 샤이닝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야스오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하압!!”
기합과 함께 야스오가 강민에게 달려들었다. 마나가 실린 발걸음이라 둘의 대결을 보는 최강훈이 순간적으로 야스오의 움직임을 놓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야스오의 일본도는 강민의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파상적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강민은 샤이닝 상태도 아닌 바스타드 소드를 살짝 씩만 움직여 야스오의 공세를 쉽게 쉽게 막아내었다.
야스오가 한참을 공격했으나 강민은 공격을 하지 않고 방어만을 굳혔다.
강민의 방어에 야스오가 좀 더 강한 공격을 펼치기 위해 잠시 공세를 늦추고 힘을 모으려는 찰나 강민의 검이 번뜩이더니 야스오의 상투를 약간 잘라냈다.
조금만 더 내려갔다면 그의 목이 잘렸을 것이었다.
최강훈은 그 모습을 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 때 공세를 늦추어 더 강한 힘을 실으려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새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야스오는 강민이 그를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는데도 그렇지 않은 것은 강민이 자신을 조롱한 것이라 여겼다.
상투가 잘려 머리칼이 흩날리고 있는 야스오는 분노에 찬 얼굴로 강민에게 외쳤다.
“칙쇼! 네 이놈! 무사를 조롱하는 것이냐!”
“조롱이라 느끼면 어쩔 수 없지. 하나 네놈은 한 번 더 기회를 얻었다고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여튼 그런 것을 따지는 것 보니 네놈도 진정한 무사는 아니겠군.”
“뭐라!”
야스오의 분노에도 강민은 계속 말을 이었다.
“오히려 저기 강훈이가 무사에 가깝겠지. 자신이 열세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승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야스오는 강민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진원까지 자극하여 강대한 마나를 줄기줄기 뽑아내 그의 일본도에 담았다.
하지만 야스오가 단지 분노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다. 강민의 검을 도저히 뚫을 수가 없었기에 힘으로라도 빈틈을 마련하려고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더 강한 공격을 한다고 강민의 방어를 뚫어낼 수는 없었다.
강민은 한참 동안 야스오를 상대하며 그의 검세를 막아냈고 틈을 보일 때마다 공격했다.
그렇지만 어느 공격 하나도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지도대련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최강훈은 강민과 야스오의 대결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