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현세귀환록
047. 습격(1)
“쥰이치, 나다.”
-네, 대사형.
“아직도 사이토의 행방은 못 찾은 것이냐?”
-죄송합니다. 지금은 일광회도 다 와해된 상태라 다시 하나씩 짚어가며 찾는 중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사이토의 행방을 찾지 못하면 사부님이 이번 일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할 수도 있어. 그러기 전에 결론을 지어야 할 거야.”
-네, 대사형.
슌스케가 사이토의 행방을 찾는 일에 이토록 적극적이었던 것은 애초에 사이토가 일광회를 도우러 한국으로 넘어간 것 자체가 그가 꾸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회주의 망나니 아들 사이토가 갑자기 C급에 오른 것부터 시작되었다.
천방지축에 안하무인인 사이토는 회주의 아들로 후계자군에는 속해 있지만 실력이 D급에 그쳐 대제자인 슌스케나 이제자인 쥰이치에 비해서 존재감이 미미하였다.
장자 승계의 원칙을 갖고 있긴 하였지만 C급도 안 되는 사이토에게 후계자의 지위를 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이토가 C급에 오르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샤이닝 소드를 쓸 수 있는 C급은 D급과는 질적으로 다른 단계였다.
사이토가 C급이 되자 수면에 가라앉았던 장자 승계의 이야기가 나오며 사이토는 급속히 야마토의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B급 대제자인 슌스케가 있었으나 야마토 내의 원로들은 장자 승계의 원칙을 내세웠고 그 원로들의 입김이 생각보다 강했기 때문에 대제자인 슌스케의 후계자 자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대제자인 슌스케는 사이토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고, 실권을 쥐고 있는 유키오 장로 역시 천방지축에 안하무인인 사이토보다는 슌스케가 야마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슌스케의 계획를 적극 도왔다.
유키오 장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장자 승계의 고리타분한 원칙보다는 야마토의 발전이었기에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이제자인 쥰이치 역시 어릴 적부터 회주의 아들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사이토와 항상 충돌이 있었기에 사이토를 제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이토가 카도쿠라구미의 일에 자원한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는 유키오 장로와 슌스케의 부추김이 상당히 들어갔다.
최근 C급에 올라 자신감이 붙어 있던 사이토는 한국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부추김과 일광회에서 지급한다는 5억 엔에 넘어가 한국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사이토가 한국에 가면 몰래 그의 뒤를 따른 쥰이치가 일광회의 일을 마친 사이토를 처리하고 그 책임을 한국의 이능 단체에 덮어씌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분노한 야스오의 주도하에 야마토가 회주 아들의 복수를 한다는 명목하에 한국 진출을 추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이토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사이토가 한국에 들어가서 일광회와 접촉한 것까지는 파악했는데, 그 후 그를 뒤따라간 쥰이치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사이토의 행방이 요원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쥰이치는 한국에 남아 사이토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휴~”
전화를 끊은 쥰이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왼쪽 볼에 있는 긴 칼자국 흉터가 인상적으로 보이는 쥰이치는 검은 머리를 올백 스타일로 모두 넘기고 깔끔한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쥰이치는 깔끔한 옷차림과 함께 날렵한 몸매에 눈매가 좁고 날카로운 것이 치밀한 성격이었다. 슌스케는 보이는 것처럼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그의 성품을 믿고 사이토의 뒤를 치는 일을 맡겼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이토가 실종된 이후 슌스케는 그 평가를 다소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느끼고 있는 쥰이치는 다시 한번 사이토가 남긴 흔적들을 하나하나 짚어가고 있었다.
‘조폭 간의 단순 세력싸움이 아니란 이야긴데…….’
처음에는 이일광의 요청을 조폭 간의 단순 세력 싸움 정도로 생각했던 쥰이치였으나, 이일광의 행태를 하나씩 쫓다 보니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일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일광저축은행의 전 지분을 정리하고, 집이나 땅의 부동산 역시 급매로 다 정리해 버렸다.
또한 일광회가 영역으로 삼고 있던 구역 또한 측근들에게 다 할당하여 다 정리해 버렸던 것이었다.
‘모든 걸 현금화하고 튈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이일광의 아들이 원래 있었다던 창신 정신병원에 가 보았더니 어디로 이송되었는지 알 수조차 없었으며, 이일광 역시 사이토와 함께 그날 이후로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혼자서는 더 이상 흔적을 찾기는 무리라고 판단한 쥰이치는 전부터 친분이 있던 불곰파의 불곰에게 이일광을 찾기 위한 협조를 얻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방계까지 다 치면 수백 명의 조직원을 자랑하는 불곰파라면 인력을 동원하여 적극적인 수색이 가능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불곰을 찾지 않았던 것은 최대한 일을 은밀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지시에 따른 것이었는데, 이제는 은밀함보다는 신속함이 더 중요하게 되었기에 불곰을 이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쥰이치, 한국에는 어쩐 일이오?
“철민, 도움이 필요하다.”
“하, 천하의 쥰이치가 도움이 필요하다니. 그것도 이 일개 조폭 이철민한테 말이야. 세상이 뒤집힌 것은 아닌가 싶네, 하하하하.”
“이번 도움으로 자네와 나 사이의 빚은 없던 것으로 하지.”
쥰이치가 빚을 운운하자, 불곰 이철민의 기세가 달라졌다. 날선 칼을 보듯이 날카로운 기세로 다시 쥰이치에게 반문하였다.
“정말이오?”
“그렇다. 사무라이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지.”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일광회의 이일광의 행방과 그와 함께 있던 일본인 사이토에 대한 정보.”
일광회라는 말에 이철민은 눈을 반짝였다.
“좋소. 야! 쌍칼 들어와 봐.”
이철민의 부름에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 한 명이 응접실에 들어왔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깍두기 머리의 전형적인 조폭에게 이철민은 지시를 내렸다.
“여기 쌍칼이 일광회에서 얼마 전 우리에게 넘어온 인물이지. 쌍칼, 여기 쥰이치 상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도록.”
이철민의 말에 쥰이치는 쌍칼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쌍칼은 이철민의 지시에 따라서 쥰이치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였다.
쌍칼이 대답을 못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른 수하를 불러서 대답하게 하였고, 그것들을 종합해 본 결과 이일광의 마지막 행적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사이토 역시 정황상 그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자 불곰은 쌍칼에게 말하여 이일광의 마지막 행적이 드러난 곳으로 쥰이치를 안내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도착한 곳은 서울 외곽의 이일광의 별장이었다. 쥰이치는 쌍칼과 불곰이 보내준 운전사를 차에 두고 혼자 내려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마당에 잡초가 무성히 돋아나 있었고, 문도 잠가놓지 않아 손쉽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청소한 흔적도 몇 달이 넘어 보였는데, 거실과 부엌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상한 채로 식탁 위에 있었다.
쥰이치는 먼저 가장 큰 규모인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여행을 떠나려는 듯 잠겨 있는 여행 가방이 있었고 그 위에는 군청색 코트가 올려져 있었다.
코트를 살피던 쥰이치는 안에서 이일광의 여권과 밀항 일정이 쓰여 있는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이일광은 밀항하려 했던 것 같은데…… 캐리어나 여권도 챙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니 어떻게 된 것이지?’
방을 나온 쥰이치는 별장의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중 한 방에 들어갔을 때 눈을 번뜩였다.
“이것은!”
사이토의 여행 가방이었다. 사이토의 옷가지가 여행 가방 위쪽에 널브러져 있었기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이토가 이곳에 머물렀다가 사라졌음을 확인한 쥰이치는 샅샅이 방을 수색하였는데, 사이토가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더 이상의 정보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마당으로 나온 쥰이치의 눈에는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올 때는 별장 안에 관심을 두었기에 잡초가 무성한 마당은 자세히 보지 않았었는데, 별장의 계단 위에서 마당을 내려다보자 한눈에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잡초가 무성하게 돋아난 사이사이로 부러진 각목이나 휘어진 쇠파이프, 널브러진 회칼들이 눈에 띄었다.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쥰이치는 마당으로 내려가 잡초 사이사이의 바닥을 좀 더 자세히 살폈는데, 결국 그는 마당의 한편에서 끝이 부러져 있는 사이토의 일본도를 찾을 수 있었다.
“이거다!”
모든 게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야마토의 일본도는 각 일본도 마다의 특색이 있었다. 쥰이치가 사이토의 일본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던 것은 손잡이인 검병 부분 하단에 묶어놓은 붉은 색 끈 때문이었다.
죽은 사이토 어머니의 유품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주변에서 그것을 달고 다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음에도, 사이토는 꼭 자신의 일본도에 끈을 달고 다녔다.
그런 사이토였기에 이렇게 자신의 일본도를 챙기지도 못하고, 아니, 그 끈도 챙기지 못하고 부러진 채로 방치했다는 것은 사이토가 치명상을 입었거나 죽었다고 보아도 괜찮을 듯하였다.
이일광 또한 처음에는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을 알고 사고를 치고 밀항을 했다고 판단했으나, 싸움의 흔적과 정리되지 않은 집을 보니 그 역시 죽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결론이었다.
문제는 이일광과 사이토가 누구와 싸웠냐 하는 것이었다.
C급 능력자인 사이토의 일본도를 부러뜨린 존재가 있었다면 그 역시 분명 C급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인과 조폭 사이의 다툼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진 상황이었기에 별도의 보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쥰이치는 슌스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사형, 쥰이치입니다.”
-그래, 사이토는 찾았느냐?
“사이토는 아마 죽은 것 같습니다.”
-죽어? 누가 그랬는지는 확인했느냐? 그런데 아마라니? 확인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슌스케의 당연한 의문에 쥰이치는 자신이 확인한 정황을 말했다. 특히 C급의 사이토를 죽인 사람이나 단체가 있을 것이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음, 확실히 일리가 있어. 그런데 대체 누가 그런 것이지?
“그 부분은 아직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능 단체가 개입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당연한 말이겠지. 천왕은 아닐 테고…… 설마 백두?
“백두일맥은 최근 활동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도 모를 일이지……. 어쨌든 좋다. 어차피 사이토는 죽을 운명이었구나. 누가 그랬는지는 차차 밝힐 문제고, 사이토의 죽음도 확인했으니 다음 단계로 가야겠구나.
“다음 단계라면…….”
애초의 계획에 따르면 다음 단계는 사이토의 죽음을 야스오에게 알리고 복수를 천명하는 단계였다.
-그래, 사이토의 부러진 검 정도면 사부도 인정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야. 사이토의 복수를 천명해서 한국에 진출할 때가 온 것이지.
“그럼 백록원이 가지고 있는 제주도의 웜홀 포인트를 다시 노리는 것입니까?”
-그래, 십여 년 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었던 제주도의 고정 웜홀 포인트를 이번에는 가져올 수 있을 것이야.
“이번엔 한국의 이능 단체들도 섣불리 막을 수 없겠지요?”
-죽은 후계자의 복수인데 그들도 막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야.
“그렇겠지요.”
-당시 백록원에서 탈취한 신물 등이 있으니 내가 그곳에 사람을 보내 백록원에서 한 짓이라는 증거를 만들 것이다. 쥰이치, 넌 사이토의 검을 갖고 있다가 증거물과 함께 귀국하거라.
“네, 대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