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현세귀환록
046. 공세(3)
“어떤 건의?”
“너무 업체와 상생만 주장하지 마시고 어느 정도는 시장 관행을 따르자고요. 지금 빅 3처럼 너무 쥐어짜는 것도 문제겠지만, 지금처럼 우리만 업계 관행 무시하고 독야청청하다가는 조만간 회사 또 넘어가는 건 문제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음…… 황 차장 말도 일리는 있네. 이제 사장님도 바뀌었으니 내가 한번 건의를 해보겠네.”
“네, 부장님. 부장님만 믿겠습니다. 지금 점주 회의하면 다들 난리에요. 위에서 반대하면 점주 회의 한번 가 보라고 해보세요.”
“그래그래. 김 과장도 수고 많았어. 다들 좀 더 고생하고. 오늘 회의 결과는 내가 본부장님께 보고드리도록 할 테니, 김 과장은 업무 보고서 형태로 서류 꾸며서 가져오게.”
* * *
김진성 과장이 업무 보고서를 만들자마자 최흥식 부장은 곧장 경영본부장실로 올라갔다. 김대영 경영본부장 역시 막힌 인물은 아니었기에 최흥식 부장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최 부장 이야기는 내 잘 알겠네. 하지만 회사의, 아니, 그룹의 방침이라는 것이 있네. 회장님께서는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정도 경영을 원하셨지. 어찌 보면 전임 사장님과도 일맥상통한 경영 철학인 것이야. 하긴, 전임 황 사장님도 그랬기에 KM그룹에 DC마트를 매각한 것일 테지만 말일세.”
김대영 본부장 역시 DC마트 때부터 있던 인물이라 회사의 경영 철학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너무 허황된 철학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본부장님, 각 점포가 수익률이 너무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도 빅 3 인근 점포 중 30% 정도는 적자로 들어갔다더군요.”
“음…… 납품업체를 짜는 방식은 안 될 것 같고, 매출액을 올리기 위해서 추가적인 할인 행사는 보고해 보도록 하지.”
“판매 촉진비 부담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할까요? 관행상 50% 정도는 업체 부담으로 하는데 말입니다. 사실 50%가 법적 최고 한도인데 심한 곳은 60~70%까지도 한다고 합니다.”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겠지. 지금은 판매 촉진비 부담 비율이 어떻게 되나?”
“품목별로 다르긴 하지만 20~30% 정도입니다.”
“일단은 그 수준에서 진행하자고. 내 자네 보고가 아니었더라도 한 번쯤은 윗선의 의중을 다시 파악해 보려 했다네. 이렇게 계속 적자가 나다가 KM도 DC처럼 마트를 포기한다고 하면 그게 더 큰 낭패 아니겠나.”
“맞습니다, 본부장님.”
김대영 본부장 역시 직원들이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 또다시 회사가 넘어가길 바라지는 않았다.
KM그룹이야 DC의 경영 철학을 이어받아 감원 없이 그대로 사업장과 직원을 인수하며 오히려 더 공격적인 투자로 점포를 늘렸으나, 만일 KM그룹에서 유통업을 포기하여 다른 업체에서 다시 마트를 인수한다면 감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실제로 M&A는 인력 절감을 통한 비용 절감이 기초가 되므로 대량 감원을 동반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업체가 인수하든지 대량 감원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 규모만이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KM마트 사장을 거쳐 장태성 전략기획실장에게까지 올라갔고 결국 장태성은 강민에게 보고를 하러 회장실에 들어왔다.
“회장님, KM마트 건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내용이죠?”
“지금 점포별 수익률이 크게 저하 되어 있고, 몇몇 점포에서는 적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요?”
강민은 당연히 장태성이 그 이유도 파악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물었다.
“유통 빅 3 업체에서 할인 행사를 평소보다 더 빈번하게 하여 우리 매출액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입니다.”
“표면적 이유가 그것이라면, 실질적 이유도 있겠군요.”
“네, 실질적인 이유는 DC마트 때부터 이어왔던 납품 업계와의 상생 노력이지요.”
“음…… 우리가 그런 DC마트의 경영 철학을 보고 그곳을 인수한 것 아니었나요?”
“네, 맞습니다. 타사들은 업계의 관행대로 납품 업체를 쥐어짜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어 수익률 자체가 크게 낮은 상태에서 매출마저 떨어져 버리니 적자 폭이 크게 발생한 것입니다.”
장태성은 가지고 온 보고서를 강민에게 보여주며 정확한 수치를 통하여 현재의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하였다.
그 설명을 들은 강민은 장태성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장 실장님이 하고자 하는 말씀은 우리도 업계의 관행을 따라야 한다는 건가요?”
“회장님의 경영 철학은 저도 잘 알고 있으나 KM마트에 한해서는 좀 완화시키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장태성의 대답에 강민은 가만히 장태성을 바라보았다. 심연을 바라보듯 깊은 강민의 검은 눈동자에 장태성은 왠지 압도당하는 느낌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장태성을 바라보던 강민은 이내 말을 이었다.
“장 실장님은 제 경영 철학을 잘 안다 하시는데, 제 경영 철학을 몸에 체화시키지는 못하셨네요. 아직 옛날 방식처럼 생각하시는 것 보니 말입니다.”
“옛날 방식이라면……”
“전 분명히 말했었죠. 돈 때문에 하는 사업이 아니라고요. 돈을 벌고자 했다면 아까 말한 대로 그런 기업들 M&A하는게 빠르다는 것에는 장 실장님도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랬지요……. 그래도 만약에 장기간 적자가 난다면…… 사업 자체를 유지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만약 회장님의 경영 철학상 관행을 따를 수 없다면 차라리 사업 구조 조정을 통해서 KM마트는 매각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장태성은 강민에게 지속적인 적자를 볼 바에는 매각을 통한 구조 조정을 권했다. 사실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사고방식이었다. 어느 누가 적자만 안기는 사업을 계속해서 영위하려 하겠는가.
하지만 강민은 달랐다. 장태성의 말에 보고자료를 잠시 훑어보던 강민이 말했다.
“관행도 따르지 않을 것이고, 매각도 없습니다.”
“회장님!”
“장 실장님은 제가 파산할까 봐 걱정이신 것 같은데, 지금 KM그룹 규모의 회사는 열 개도 더 만들 수 있으니 걱정 마시고 일단 제 말대로 진행하시죠.”
지금 KM그룹에 강민이 투자한 돈은 초기 자본금에 중간중간 M&A 등 더 필요한 자금을 투입하여 물경 20조 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런 KM그룹을 10개나 더 만들 수 있다니, 장태성은 강민의 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하시려고…….”
“누가 살아남는지 한번 해봅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납품 업체를 쥐어짜는 일은 없을 겁니다. 판매 촉진금 부담률은 지금과 같이 유지합니다. 아니, 여력을 봐서 좀 더 낮추지요.”
“더 낮추신다고요?”
“네, 그리고 지금은 할인 행사의 할인 폭이 경쟁사보다 낮은데, 앞으로는 더 크게 해서 매출 증대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경쟁사가 따라온다면 더 낮추십시오.”
“여력이 있을지…….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적자 폭이 더 커질 텐데요.”
“관계없습니다. 다만 직원들에게 이걸 지시해 주세요. 어차피 그 빅 3 업체도 납품 업체를 쥐어짜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브랜드 상품은 일정 이상의 손해를 보려 하지 않을 테니 정도 이상의 과한 할인을 지속해서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그쪽에서 마지막까지 쥐어짜내는 곳은 PB 상품이겠죠.”
“네, 그럴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쪽 PB 납품 업체에 연락을 취해서 굳이 적자를 보지 말고 우리 쪽으로 옮기라 하십시오. 물량은 우리 쪽에서 충분히 소화해 줄 테고, 판매 촉진 부담도 원래 업체의 반도 안 될 테니 기꺼이 옮길 것 같네요. 아마 마트 측에서는 유연성을 높이려고 계약도 기간 단위가 아니라 물량 단위로 했을 가능성이 크니 우리랑 계약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군요. 아, 굳이 그쪽 계약을 해지하지 않았더라도, 우리와의 계약이 체결만 되면 지금 상황에선 그쪽을 포기하고 우리 쪽으로 올 것 같군요.”
장태성은 유통 쪽은 잘 몰랐지만 강민의 말은 유통 쪽에는 큰 지식이 없는 장태성이 듣기에도 합리적이었다.
“회장님 말씀은 타사의 PB 상품을 제작하는 모든 업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만일 자금이 필요한 곳은 우리가 대출이나 지분 투자도 가능하다고 해주세요. 지분 투자를 한다면 오히려 우리와 계약할 좋은 명분이 되겠군요.”
“그런 영세 업체에게 지분 투자나 대출을 시행했다가 부도나는 회사도 매우 많을 것입니다.”
“부도나는 회사는 우리가 인수해 버리십시오. 100개 중에서 20개만 살려서 큰다면 남는 장사일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굳이 납품 업체를 쥐어짜 내지 않는다면 더 많이 살겠죠. 어떻습니까?”
“마, 말씀은 맞지만…….”
“맞는 말이면 그대로 행하세요. 빅 3 업체의 우리 KM마트 길들이기가 끝날 때까지는 각 영업점은 수익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수익 대신 매출액으로 평가하지요.”
매출액만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추는 덤핑 판매를 하면 매출액은 올라갈 테지만 수익성은 더 떨어질 것이다.
결국은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가 될 수 있음에도 강민은 그것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또한 경쟁 업체의 PB 납품 업체를 우리와 계약시키는 건수에 따라서 별도의 성과급도 지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이건 누워서 떡 먹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듯이 원래 거래 업체의 횡포를 간신히 견디고 있는 기업에게 훨씬 더 나은 조건의 KM마트에서 계약을 하고자 한다면 어느 업체가 하지 않으려고 하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떤……?”
“직원들이 KM마트의 적자 폭이 커지면서 고용에 대한 불안이 많다고 보고서에 쓰여 있군요.”
“네, 아무래도 파견직이나 계약직이 많은 유통 업계 구조상 점포가 적자를 보면 그런 직원들이 가장 먼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직원들을 불안하게 할 필요는 없지요. 이번 기회에 전 계약직 및 파견직에 대해서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합시다.”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만연한 기업 경영 환경에서 전 직원의 정규직화는 엄청난 선언이었다.
“회장님! 그건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정규직이 된다면 요즘처럼 급격하게 경영 환경이 변하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인력 운용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노동 유연성의 저하는 기업 체질 자체를 변화에 적응하기 힘든 경직된 기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장태성의 말은 지금 경영 환경상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법이 비정규직, 즉 계약직과 파견직을 인정하는데 회사가 나서서 그들을 보호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을 보호하면 할수록 회사의 수익이 떨어지니 오히려 보호하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쓴 다음 쳐내고 버려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영 상식이었다.
하지만 굳이 강민은 그런 경영 상식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수익 창출이 가장 우선인 일반 회사와는 다른 목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 실장님은 좀 더 제 경영 철학에 대해서 숙지하시는 것이 필요할 듯하네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수익 추구를 가장 우선에 놓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돈 때문에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그렇지만…….”
“물론 계약직이나 파견직 근로자들이 정규직이 된다면 노동의 유연성은 떨어지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얻는 것도 많습니다. 직원들의 안정과 그에 따른 업무 생산력 향상. 가장 큰 것이 우리 KM그룹의 이미지 개선이지요.
그것을 위해서면 다소간의 비용은 충분히 감당하지요. 그리고 우리 KM그룹은 크지 않습니까. 만약 해당 사업부에서 적응을 못 하면 다른 사업부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적재적소라는 말에 맞는 인력 운용을 하면 크게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수익의 추구라는 대전제만 지우고 본다면 강민의 말이 틀린 것은 하나 없었다. 물론 일반 기업체에서는 그 대전제를 지우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치킨 게임을 벌려보자는 건데……. 누가 오래 버티나 한번 봅시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