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44화 (44/203)

# 44

현세귀환록

044. 공세(1)

순간이동으로 최강훈과 한수아를 집으로 데려온 강민과 유리엘은 그날 저녁 가족들에게 그들을 소개하였다.

강민의 소개에 강서영이 반문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 이 여자아이는 오빠 지인의 딸이고, 이 청년은 그분 제자라는 거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시면서 애들을 내게 맡기셨어.”

애라고 하기에 최강훈은 이미 성인이었지만 최강훈은 꽤 긴장하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단한 사정을 이야기한 강민은 가족들에게 최강훈과 한수아를 인사시켰다.

“자, 인사하렴. 여기는 내 어머니시고, 이쪽은 내 동생.”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긴장했는지 큰 목소리를 낸 최강훈과 부끄러웠는지 작은 목소리를 낸 한수아가 대비되어 웃음을 자아냈다.

한미애는 그런 둘은 인자한 미소로 맞이하였다.

“저는 여기 민이 엄마 한미애라고 해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니 얼마나 상심이 크겠어요. 우리 집에서 편히 쉬어요.”

강서영도 한수아의 귀여운 모습에 호감이 갔는지 환영하며 말했다.

“반가워, 수아야. 난 오빠 동생 강서영이라고 해. 혹시 몇 살이야?”

“열일곱 살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쪽은 나이가……?”

겉모습으로 보기엔 누가 더 나이가 많은지 알 수 없었기에 강서영은 말끝을 흐리며 최강훈에게 물었다.

“스물두 살입니다.”

“난 스물세 살이니 누나라 부르렴, 히힛.”

“네, 누님.”

“엥? 누님 말고 누나. 누님은 너무 나이 들어 보이잖아.”

“네, 누님. 아, 누나.”

“호호호~”

그렇게 최강훈과 한수아는 강민의 가족과 함께하게 되었다. 한미애와 강서영은 강민에게 구체적인 사정까지는 묻지 않았다.

강민의 잃어버린 10년부터 시작해서 KM그룹을 세우고, 강서영과 한미애를 지킬 수 있는 특별한 힘까지. 세상에는 그녀들이 모르는 많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강민이 알려줄 테니 굳이 먼저 파고들어 강민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들이 강민을 생각하듯 강민 역시 언제나 가족을 생각한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니 말이다.

* * *

일본 전통의 다다미방에서 일본 전통 의복을 입은 백발의 70대 노인과 선이 가늘게 생긴 30대 중년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이토는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느냐?”

“네, 사부님.”

야마토의 회주인 야스오는 오늘도 사이토를 찾았다. 사이토가 한국에 간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 연락 한 번 없었기에 야스오는 대제자인 슌스케를 불러서 사이토의 행방을 확인하였다.

원래부터 천방지축이었던 사이토는 회주이자 아버지인 야스오의 말조차 잘 듣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가족 식사 자리에는 꼭 나왔었다.

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나오지 않고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에 야스오는 사이토의 행방을 찾게 된 것이었다.

사실 사이토가 한국에 간 것을 알게 된 것도 처음 가족식사에 참석하지 않아 알게 된 것이었다.

수련에 집중한다고 대부분의 일을 유키오 장로에게 맡겨 놓았더니 이런 사소한 일은 보고조차 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국에 간 것을 알고 난 뒤로는 한국이니 곧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가족 식사에도 빠지면서 한 달이나 연락이 되지 않자 다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C급에 오른 능력자이지만 야스오에게는 철모르는 천방지축 아들일 뿐이었다.

야스오는 다소 걱정스러운 말투로 슌스케에게 말했다.

“분명 별일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야쿠자의 가벼운 요청에 응해 며칠 놀다 온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직도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음……. 한국 야쿠자는 어떤 곳이냐?”

“일광회라는 조직입니다. 조직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회장인 이일광은 한국에서 저축은행을 갖고 있는 재력가라고 합니다. 이능과는 무관한 일반인 조직입니다.”

처음엔 가벼운 일이라 생각했기에 어떤 일인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오래 연락이 안 되니 살짝 걱정되기 시작한 야스오는 슌스케를 통하여 좀 더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려 하였다.

“그 가벼운 요청이라는 건 무엇이지?”

“일광회에 문제가 생겼는데, 이일광이 그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카도쿠라구미에게 칼 잘 쓰는 애들을 한둘 요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 왜 사이토가 갔지?”

“유키오 장로님께서 일광회에 빚을 지워 두고, 우리 야마토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려 했기에 카도쿠라 칼잡이 애들 대신 우리 야마토에서 D급으로 두세 명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어차피 일반인 수준에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사이토가 자신이 가겠다고 자원을 하여 가게 된 것입니다. 사이토가 이번에 깨달음을 얻어 C급으로 올라선 지 얼마 안 되었지 않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자 자원했던 것 같습니다.”

“사이토가 혼자 간 것이냐? 수행원도 없이?”

수행원도 없냐는 부분에서 잠시 망설인 슌스케였지만 이내 아무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하였다.

“사부님도 사이토 녀석 성격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필시 그 녀석 귀찮다고 붙여준 수행원도 떼놓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슌스케의 말에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 대부분의 일을 유키오에게 맡겨 놓았다 하지만 아들이 움직이는 것 정도는 말해줬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굳이 그 생각을 언급하지 않고 슌스케에게 말했다.

“어쨌든 사이토 소식을 다시 한번 알아보거라. 알게 되면 즉시 내게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사부님.”

야스오가 있는 다다미방을 나온 슌스케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쥰이치가 처리한 것도 아니라 하는데 실종이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텐데…….’

* * *

최강훈은 강민이 계획했던 대로 KM가드에 들어가 강서영의 특별 경호원이 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무척 긴장하고 있었으나, 그 일이 강서영의 경호라는 말에 약간 맥이 빠진 최강훈이었다.

하지만 천성이 진지한 최강훈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진지한 자세로 임무를 대하였다. 자신은 수아를 살려주면 목숨을 내어준다는 약속을 하였고 강민은 수아를 살려 그 약속을 지켰다.

이제는 자신이 그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최강훈의 능력은 어떤 경호원보다 뛰어났으나 경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여 KM가드에서 한 달간의 특별 훈련을 받았다.

C급에 이른 최강훈은 그의 능력의 절반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체 능력에 모든 경호원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달간의 훈련이 끝난 최강훈은 35살의 베테랑 여경호원 이은실과 한 조를 이루어서 강서영의 경호를 시작하였다.

사실 재벌 2세도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까지 경호원을 붙이고 다니지는 않는다.

강서영 역시 KM그룹 설립 초창기에 많은 기자가 들러붙는 바람에 경호원을 두었던 것이지 특별히 경호 자체가 필요해서 경호원을 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룹이 안정권에 들어가면 강서영의 경호원도 모두 돌려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강서영의 납치 사건으로 인하여 경호가 더욱더 필요하게 되었다.

강서영의 납치 사건 이후 KM가드에서는 강서영의 경호에 대한 큰 경각심을 느끼고 10여 명의 경호원을 상시로 붙이려 하였다. 하지만 강민은 그 정도의 경호원은 불필요하다고 돌려보냈다.

특별한 행사도 아닌데 일상생활에서 10명의 경호원이 지속적인 경호활동을 한다면 일상생활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었고, 사실 강서영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KM가드는 절충안으로 최강훈과 다른 여성 경호원만 한 명 붙이기로 하였다.

강서영의 납치라는 큰 사건을 겪은 다른 경호원들은 이의를 제기하였기만, 그들 역시 최강훈의 실력을 보고 난 뒤에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최강훈은 훈련 때 원래 투입하려던 10여 명의 경호원을 가뿐히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누나, 이제 어디로 가나요?”

다른 경호원들은 과묵함을 원칙으로 하였는지 항상 묵묵히 강서영의 뒤를 따를 뿐이었는데, 최강훈은 아직 초보여서 그런지, 아니면 강서영과 친분이 있어서 그런지 종종 그녀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처음에는 이런 최강훈의 행동에 이은실이 주의를 주었으나, 강민이 최강훈의 후견인으로 강서영과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굳이 최강훈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후견인으로 한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강민 가족이 최강훈을 고용인이 아니라 가족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최강훈이 그런 포지션에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최강훈의 친분을 이용해 좀 더 안전한 경호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그리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강서영 또한 한집에 사는 동생 같은 최강훈을 다른 경호원처럼 대하기는 불편하였기에 이렇듯 말을 걸어주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였다.

“오늘 수업 끝났으니 이제 집으로 가려고. 근데 강훈이 넌 대학 안 가고 싶어? 너만 가고 싶다면 내가 오빠한테 말해서 그냥 다른 경호원으로 바꿔 달라고 말해줄게.”

“대학은 괜찮아요. 수련할 시간도 부족한데요, 뭘.”

한진문은 백록원의 종지를 일부러 최강훈에게 전해 주지 않았다. 한진문의 유언에는 백록원을 부탁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이었다.

한진문 그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니, 자신이 백록원을 이은 이후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했고 한순간도 쉬지를 못하였다.

처음에는 그도 복수심에 가득 차서 헤이안에게 복수하고 싶었지만 능력은 되지 않았고, 자신은 물론 자신의 딸조차 절맥증으로 죽어가고 있는 입장이었기에 백록원의 부흥과 복수는 자신에게 무거운 굴레이기만 하였다.

그 굴레를 최강훈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백록원 천 년의 역사는 자신의 손으로 닫기로 하였고, 최강훈은 스스로 오롯이 서기를 바랐다.

굳이 백록원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느꼈던 절망과 고난을 최강훈에게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수강과 한수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돌보아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강훈 스스로는 자신이 백록원의 37대 원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진문이 최후의 순간에는 마음을 달리 먹고 백록원을 닫겠다 하였지만, 어린 나이에 한진문에게 구해져 10년이 넘도록 백록원의 대제자로서 교육을 받아온 최강훈은 한진문이 타계한 지금, 당연히 스스로가 백록원의 원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밤마다 고생이겠더라.”

“고생은요. 가끔 민이 형님께서 막혔던 부분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셔서 제주도에 있을 때보다 실력이 빨리 늘고 있는 것 같아요.”

강서영도 이제 자세히는 몰라도 초인적인 힘을 사용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최강훈의 수련이 그에게는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대학이 필요 없다면 내가 오빠한테 말해서 그냥 너 수련에 집중하게 하면 안 될까?”

“누나, 저 진짜 괜찮아요. 지금 제가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형님께 얼굴을 들 수도 없을 것 같아요.

“네가 왜 얼굴을 못 들어?”

“누나를 지키는 일에 제 목숨을 드리기로 했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또래의 남자가 목숨을 바쳐 자신을 지킨다는 이야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하자, 순간 강서영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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