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41화 (41/203)

# 41

현세귀환록

041. 인연(3)

강민의 말에 옆에 있던 제자와 아들이 충격을 받았는지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사부님!”

“아버지!”

한진문은 강민에게 쓴웃음을 짓더니 제자와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난 괜찮다, 괜찮아. 어서 유니온에 연락하여, 아…….”

말을 하다 무언가 생각난 듯 멈춘 한진문은 잠시 강민을 바라보다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저 마물의 처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 정도 마물이면…… 족히 100억은 쳐줄 것 같습니다만.”

웜홀 포인트를 수호하는 조직의 가장 큰 수익은 마물의 시체였다. 마물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그 마물이 남기는 것에 따라 대가는 천차만별이었는데, C급 마물만 해도 20~30억 정도의 가치가 있었으니 이 정도 B급 마물의 시체는 100억 정도는 충분히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만약 스스로가 마나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자체 제작해서 시장에 팔아 더 큰 수익을 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역량이 되는 조직은 드물었기에 대부분의 소규모 조직에서는 유니온에 사체를 매각하였다.

유니온 역시 이런 마물의 시체를 가공하여 만든 마나 기반 무구나 장치가 시장에서 인기가 많았기에 매입에 적극적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웜홀 포인트를 지키는 조직에 우선권이 있으나 지금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처리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죽을 뻔한 상황에서 그들을 구하고 강민이 잡은 것이었기에 우선권을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진문은 지금 돈이 급한 처지였다. B급 마물의 시체면 꽤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약재와 포션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딸을 위한 약재와 포션이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강민에게 물었던 것이었다.

마물의 처리에 대한 부분은 유니온 가입 당시 규약집에 그 내용이 있었기에 강민 역시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우선권에 대한 것도 알았고, 지금의 경우 자신이 시체를 처리하고 돈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민은 굳이 푼돈 때문에 유니온에 마물을 처리를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큰돈이겠지만 강민에게는 푼돈일 뿐이었다. 게다가 강민이 유니온에 부탁하는 것만큼 유니온도 나중에 강민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올 것 같았다.

그랬기에 강민은 유니온에 마물 처리 따위의 쓸데없는 빚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따라서 강민은 이 무리의 몫이었던 마물의 시체를 탐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년인의 간절한 눈빛에는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마물의 처리는 그쪽에서 하시죠. 어차피 이번 일로 피해도 많았을 텐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년인뿐만 아니라 20대 청년과 10대 소년도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100억이 넘는 돈을 그냥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강훈아, 유니온에 연락해서 시체를 처리해달라고 하거라. 대금의 10%는 전처럼 약재와 포션으로 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유니온 통장으로 입금해달라 하고.”

“네, 사부님! 대신 이번엔 사부님 약재도 좀 쓰시지요. 매번 괜찮다 하셨지만 지금은 내상까지 입으셨지 않습니까.”

최강훈의 간절한 말에도 한진문은 씁쓸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처지였기에 상황을 보아서 이야기를 털어놓으려고 하였다.

우연히 다 알게 되어버렸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잘되었다는 생각으로 한진문은 사실을 이야기했다.

“난 이미 늦었다. 선천진기마저 다 사용해서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아. 지금 내게 약재를 써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짓이지. 차라리 수아를 살려야지, 우리 수아를…….”

“사부님!”

최강훈도 사부가 요즘 부쩍 피를 토하는 일이 많았기에 사부의 건강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부는 새로운 무공을 익히며 잠시 기혈이 흔들린 것이라고 최강훈을 안심시켰고, 사부가 백록원의 부흥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았기에 최강훈도 한진문을 말리지는 못했다.

“아마 앞으로 한 달도 장담하기 힘들 것 같다. 어차피 이번 일을 끝으로 이 포인트를 지키는 일도 유니온에 반납하려 했어.”

“사부님!”

“아버지 정말이에요?”

아직 미성년자로 보이는 한수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진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둘을 바라보던 한진문은 다시 강민과 유리엘 쪽으로 몸을 돌려 둘을 한참 바라보았다.

다소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었는데 이내 한진문을 말을 이었다.

“은인분들께 이런 이야기 드리게 되어서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만, 혹시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는지요.”

“어떤 부탁입니까?”

“저 불쌍한 녀석들 세상에 적응할 때까지 일이 년간만이라도 뒤를 보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진문은 원래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의 자리를 잡아주고 조용히 생을 마치려고 하였다.

만일 이번 내상만 없었다면 6개월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아이들을 세상에 적응시킬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최강훈이라면 한수아와 한수강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봐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부상으로 그것조차 불가능해진 것 같았기에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진문은 강민이 KM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100억이 넘는 돈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내어주는 것을 보고 물욕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강민과 유리엘의 눈빛이 너무도 맑고 의지가 굳건해 보여 이런 부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강민이 아무 말 없이 잠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자 한진문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 대가 없이 무리한 부탁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백록원의 36대 원주 한진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백록원은 1천 년의 역사가 있는 유서 깊은 무문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제의 이능 단체들에게 갖은 핍박을 받으며 그 세가 크게 약화되었고, 십여 년 전 또 한 번 일제의 공격을 받은 후 지금은 이렇게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우리 백록원이 천 년간 쌓아온 무학과 무리는 남아 있습니다. 그 비의을 알려드릴 테니 저의 제자와 아이들을 좀 돌보아주십시오. 은인!”

한진문의 구구절절한 말에 한진문의 제자 최강훈은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사부님! 저희 백록원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제가 남아 있고 여기 수강이가 남아 있습니다! 저희가 반드시 백록원을 다시 일으켜 헤이안에 복수를 할 테니 사부님은 그런 말씀 거둬주십시오!”

“아버지! 강훈이 형 말이 맞아요. 강훈이 형이랑 제가 노력할게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엉엉.”

한수강은 아직 어린 나이라 감정이 북받쳤는지 결국엔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들의 눈물에 한진문은 비감 어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집으로 여태까지 꾸역꾸역 백록원을 이어왔지만 더 이상은 그럴 힘도 여력도 없었다. 또한 최강훈에게 무거운 짐만 떠넘기기도 싫었다.

그리고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최강훈이 어린 나이에 백록원의 새 원주가 된다면 백록원의 복수를 한다고 무리를 하다가 비명횡사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진문에게 최강훈은 성인은 되었지만 수련에 집중하느라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로만 보였다.

처음에 자신이 사라진 다음 아이들을 생각한 마지막 방법은 유니온에 의탁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배경도 없이 C급에 오른 최강훈이 시기와 질투를 받을까 걱정되기도 하였고, 그러다가 다른 집단과의 전투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되었다.

그랬기에 굳이 이능을 드러내지 말고 일반 세계에서 살아가며 수련을 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달리 먹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강민과 유리엘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 상황을 보던 강민은 잠시 생각하다 한진문을 보고 이야기했다.

“백록원의 비의는 넣어두십시오. 다른 사람의 길을 참고할 시기는 지났으니…….”

“그럼…….”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강훈이를 고용하는 것으로요. 어차피 한 원주님도 아이들이 세상에서 자리 잡기를 원하셨으니 제가 고용해서 그 기간을 돌보아주지요.”

이번 강서영의 납치 사건으로 인하여 강민은 이능력자 수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강서영이 보호 장치를 발동시키면 자신이나 유리엘이 달려와서 처리할 수도 있지만 사소한 일에도 매번 그러는 것은 개미를 잡는 데 미사일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믿을 만한 능력자가 있으면 그에게 강서영의 경호를 맡겨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선한 마나를 지닌 의지견정한 최강훈은 그 적임자라 할 수 있었다.

“고용이라면?”

“제가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으로 고용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KM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강민이라고 합니다.”

“아, KM그룹…….”

한진문은 KM그룹 회장의 얼굴은 몰랐지만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다. 강민의 이름에 100억이라는 큰돈을 그냥 넘겨줄 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대가라면 좀 그렇지만, 그 대가로 아이들도 돌봐주겠습니다. 물론 강훈이의 급여는 별도로 지급하지요.”

강민의 말에 한진문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한 아이가 더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수아라는 아이인가요? 그 아이까지 포함해서 돌봐드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까 약재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어디가 아픈가요?”

“네, 수아는 수강이의 쌍둥이 누나인데 절맥증이 있어서 늘 자리에 누워 있지요.”

“절맥증이라……. 음, 일단 그리로 가 볼까요?”

강민의 말에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듯 한진문은 강민에게 집으로 가길 권하였다.

“아, 은인을 이렇게 세워두고 있었네요.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새벽 1시에 마물과 조우한 뒤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 한미애와 강서영이 일어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강민과 유리엘은 한진문과 한수강을 따라 몸을 날렸고, 최강훈은 유니온의 직원에게 마물을 시체를 인계한 후 곧 따라왔다.

한진문이 안내한 백록원은 한라산 중턱에 있는 고풍스러운 장원이었지만 최근에 손보지 않았는지 많은 곳에서 쇠락한 모습이 보였다.

“누추하지만 이리로 오시지요.”

“아닙니다. 바로 수아를 보러 가시죠.”

장원의 중앙 대청 오른쪽에 한수아의 방이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진한 약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리 수아입니다.”

침대에 잠들어 있는 한수아는 10대 중반으로 병약한 미소녀의 모습이었다.

강민이 본 그녀는 한진문이 이야기한 대로 다수의 세맥이 군데군데 끊겨 있고, 주요 대맥 또한 가느다랗게 간신히 연결되어 있는 절맥증을 앓고 있었다.

이런 절맥증을 앓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기맥이 약한데, 그 약하게 이어져 있던 기맥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끊어져 성인이 되기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한수아는 약재와 포션의 힘으로 그 약한 대맥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진문이 자신의 상황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행위라고 하였지만, 한수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힘든 상황이군요.”

“그렇지요. 유니온에 요청하며 치유 마법사도 불러보았는데 방법이 없다더군요…….”

통상적으로 치유 법사는 생명체의 활기를 불어넣는 방식이라 선천적으로 약한 대맥의 기운을 일시적으로는 완화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원천적으로 낫게 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기에 엄청난 비용의 회복 포션을 투여하고는 있는 상황이었다.

한수아가 살기 위해서는 한 달에 1억 가까이 되는 포션과 약재를 투여해야 했는데, 이번 마물을 처리한 대가로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한수아를 잠시 살펴보던 강민은 한진문에게 이야기하였다.

“이 아이의 절맥증은 제가 고쳐볼 수 있겠군요.”

“네? 정말입니까? 기공 치료사나 치유 마법사들도 포기했는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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