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39화 (39/203)

# 39

현세귀환록

039. 인연(1)

“오늘은 네놈들만 먼저 처리하마. 네놈들의 악기를 보아하니 네놈들 같은 쓰레기는 그냥 치워 버리는 것이 낫겠구나.”

말을 마친 강민은 손을 휘둘러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모두를 ‘지워’버렸다. 여기에는 아까 쓰러진 사이토 하나부사의 시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멀쩡한, 아니, 어디 한 군데는 다 부러져 있어서 멀쩡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아 있던 사람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먼지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만일 필요했다면 팔다리를 끊고 목을 자르는 등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피할 강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굳이 누군가에게 보일 전시 효과를 노릴 것도 없었기에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하지만 강민은 사라진 그들이 지르는 영혼의 단말마를 들을 수 있었다.

강민의 기술은 단순히 영육을 끊어 내는 것을 넘어 각자의 그 악기만큼 영혼에게 더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악인에게는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조폭들을 처리한 강민에게 잠든 강서영을 안은 유리엘이 다가왔다.

“서영이는 어때?”

“잘 자고 있지요. 호호.”

“그런데 저 녀석들이 어떻게 내가 한 일인지 알았을까? 그때 유리가 만들어준 인식 장애 마법도 펼쳤는데 말이야.”

“아마 그 마법을 만든 쪽 사람이 풀었던 것 같네요. 어차피 그때 잠시 본 마법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서 만든 거니 원천 기술이 있다면 쉽게 풀 수 있었겠지요. 일반인만 대상으로 했더니 이런 단점이 있네요. 여튼 인식 장애의 원리는 파악했으니 나중에 제 술식으로 변환해서 다시 걸어줄게요. 아마 제 술식으로 건다면 여기 수준으로는 풀어내지 못할 거예요.”

유리엘의 독창적인 마법 술식이라면 이곳의 수준으로는 힘들 것이다.

만약 9서클 이상의 대마법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유리엘의 마법은 그녀 스스로가 오랜 세월 동안 체계를 세워 올린 것이었기에 단순히 술식을 이해하는 데만 해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 * *

강서영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익숙한 모습들이 보였다. 강민과 유리엘이었다.

“오빠~!”

눈을 뜨자마자 강서영은 강민의 목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하던 강서영은 그제야 진정이 되었는지 주위를 살펴보았는데 익숙한 주변의 모습은 자신의 방이었다.

“오빠, 어떻게 내가 여기에……?”

“내가 다 해결했어. 기절해 있는 널 이리로 옮긴 거야.”

기절이 아니라 수면 마법이었지만 강서영에게는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나으리라.

“해결? 어떻게 해결한 거야?”

강서영이 만약에 앞으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의 사실은 말해주는 것이 그녀를 위해서 좋겠다는 판단에 강민은 입을 열었다.

“서영아, 오빠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돈만 벌어온 게 아니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힘도 생겼어. 그때 산동네에서 조폭들 만난 거 기억해?”

“아, 기억나. 근데 그게 왜?”

“그때 널 보호하는 막이 생겼던 거 기억나?”

“아…….”

당시에 강서영은 구체의 막이 생겼던 것이 꿈인 줄 알았다. 실제로 강민이 나타나자마자 잠이 들었기에 꿈이라는 생각을 의심치 않았는데 지금 강민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 분명히 조폭들이 날 공격하지 못하고 허우적댔던 거 같은데……. 설마…….’

생각을 정리한 강서영이 강민에게 물었다.

“그럼, 그걸 오빠가 한 거야?”

“내가 했다기보다는 유리가 만든 장치가 한 일이지.”

강민에 말에 강서영은 옆에 서 있는 유리엘을 바라보았다. 강서영이 본 유리엘은 예의 따뜻한 미소를 짓고 강민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서영아, 세상엔 네가 모르는 많은 일이 있잖아. 이것도 그중의 하나지. 여튼 지금 말하고 싶은 건, 널 보호할 만한 충분한 힘이 내게 있으니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보호할 힘…….”

“이번에도 그들이 널 조금이라도 다치게 할 생각이었다면 그때와 같은 보호막이 생겨서 넌 안전하게 보호받았을 거야.”

강민의 말에 강서영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신은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강서영이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자 옆에 있던 유리엘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까지는 서영이 네가 위급한 상황이 되면 그 보호 장치가 스스로 발동되게 하였는데, 이번 일을 겪고 보니 네 판단에도 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어. 지금 차고 있는 팔찌를 보렴.”

유리엘의 말에 강서영은 유리엘이 선물했던 팔찌를 보았다. 거기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자그마한 붉은 수정 장식이 달려 있었다.

“어? 이건 없던 장식인데…….”

“그래, 이번에 조금 고친 거야. 앞으로는 네가 스스로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 팔찌에 있는 붉은 수정 장식을 앞으로 빼서 살짝 돌려보렴. 그럼 그때처럼 널 보호하는 장치가 가동될 거야. 장치가 가동되자마자 우리가 알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될 테구.”

수정 장식은 의도적으로 빼서 돌리지 않는다면 생활하면서나 실수로 작동될 가능성은 없도록 조치되어 있었다.

“서영아. 이번 일로 충격이 컸겠지만, 넌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항상 안전하게 보호받을 거야. 그러니 이제는 걱정하지 마.”

강민은 나지막하지만 강하게 말하며 강서영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오빠…….”

* * *

납치를 당한 사건은 이십 년 넘게 평범하게 살아온 강서영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론 본인이 잠든 사이에 모든 것이 해결되고,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였기에 어떤 상황이 벌어진 건지는 몰랐지만 납치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충격이었다.

물론 강민이 그녀가 항상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다독였기에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된 상태였지만 아직은 평상시와 같은 쾌활함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강서영의 기분을 풀어주고자 강민은 가족 여행을 계획하였다. 한미애 역시 근래 강서영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을 걱정했기에 여행에 즉각 찬성하였다. 다만 강서영이 그녀의 납치 사건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기에 그 사건은 모르고 있었다.

처음엔 해외로 계획하였으나 아직 심신이 불편한 강서영 때문에 가까운 제주도로 일정을 잡았다.

1,500억 원 가량을 들여서 구매하고 인테리어를 한 KM그룹 전용기의 첫 비행치고 제주도는 너무도 가까운 곳이었지만, 전용기에 들어서자 표정이 밝아진 강서영의 모습에 그 돈은 충분히 값어치를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전용기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 강서영은 전용기 안의 시설들을 하나씩 이용해 보았다.

비서실 직원들 또한 교육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 전용기에 탑승한 것이라 어색하고 신기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내 적응하여 강서영의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하였다.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비행시간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기에 금방 제주 공항에 도착하였고 예약된 렌트카를 수령했다.

장태성은 어차피 주중 근무시간이었기에 비서실의 직원을 교대로 강민 옆에 대기시키려 하였지만, 강민은 가족들과 오붓이 보내고 싶다는 말로 거부하였다.

평일이라 텅 빈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서울의 꽉 막힌 도심에서 운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쾌감을 선사했다.

흰 구름이 드문드문 있는 높고 푸른 하늘과 우측에 반짝거리며 빛나는 파랗게 펼쳐진 바다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였다.

“와~ 제주도도 좋구나~ 그러고 보니 나 해외는 처음이네.”

“제주도가 해외야?”

“바다 건너왔으니까 해외지~ 헤헷.”

“으이그, 담엔 진짜 해외 가자. 하와이나 몰디브나 뭐, 그런 곳 말이야.”

“몰디브는 안 돼.”

“왜?”

“몰디브는 예전부터 신혼여행으로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단 말이야. 히히.”

“허~ 그래, 알겠다. 대신 제대로 된 놈 구해와야 오빠가 허락할 거야!”

“그래~ 알겠어~”

이미 전적이 있었기에 강민의 말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는 강서영이었다.

“근데 오빠는 신혼여행 어디 갔었어?”

“신혼여행?”

“그래, 설마 안 간 건 아니지? 결혼한 지도 오래 된 거 같은데…….”

강서영이 강민을 공격하려는 눈치가 보이자 유리엘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민과 난 삶이 여행이야. 매 순간순간 여행을 하고 있는걸.”

“뭐야~ 안 갔다는 말이잖아요. 언니~!”

강서영의 말에 그녀 옆에 앉아 있는 한미애도 한마디 거들었다.

“민아, 그래도 이제 대기업 회장인데 신혼여행도 안 갔다는 말 들으면 남들이 욕하겠다. 조만간 시간 내서 다녀오도록 해.”

”네, 어머니. 한번 다녀오도록 할게요.“

“근데 그러고 보니 결혼식도 못했구나. 원래는 졸업하고 한다 생각했는데 이미 이렇게 결혼한 사이인 걸 다 알았으니 다시 거창하게 하기도 좀 그렇긴 하고. 어쩐다…….”

“어머님, 저희는 괜찮아요. 어머님 말씀대로 민하고 신혼여행만 한번 다녀오죠, 뭐. 호호.”

“그래, 그렇게라도 해.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겠어.”

웃고 떠드는 사이에 차량은 첫 번째 목적지인 한림공원에 도착하였다. 많은 세상의 기이한 광경과 웅장한 자연경관을 무수히 보았던 강민과 유리엘에게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공원이었지만, 수학여행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여행을 나온 강서영은 모든 것에 신기해하였다. 한미애 역시 이제까지는 여행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여행이 무척 즐거웠다.

한림공원을 거쳐 인근의 협재해수욕장을 들렀다. 여름이 지난 상황이라 해수욕을 즐기기엔 힘들었지만 고운 흰 모래사장과 대비되는 푸른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올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몇 군데 명소를 더 들른 후 저녁 무렵 한라산 자락의 예약된 리조트에 도착하였다. 예약한 숙소는 독채로 떨어져 있는 풀빌라 스위트룸이었기에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가족끼리 이렇게 여행을 온 것은 강민이 웜홀에 빠지기 전까지를 포함해도 처음 있던 일이었다.

강철수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강철수가 너무 일에 몰두해 있어서 가족 여행을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고 강철수 사후에는 힘들어진 집안 형편상 여행은 불가능했다.

강민이 돌아온 뒤에야 이렇게 여유가 났는데 한미애와 강서영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니 강민은 앞으로 자주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군다나 납치 사건으로 힘들어졌던 강서영이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하고 있어 더욱 여행 온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숙소를 두고 여기저기 명승지와 관광지를 다닌 강민 일행은 어느덧 3박 4일 일정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강서영은 아쉬워하였지만 대기업을 운영하는 강민이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서영은 대놓고 아쉬움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다만 강민은 그런 강서영의 심정을 알아차리고 앞으로는 자주 여행을 가자며 강서영을 달랬다.

모두가 잠든 밤, 숙소 뒤편의 산에서 마나의 뒤틀림을 느낀 강민과 유리엘이 동시에 눈을 떴다.

“웜홀이군.”

“그러게요. 인적이 드물고 마나가 충만한 곳이다 보니 웜홀도 생기나 봐요.”

사실 서울에서는 웜홀 보기가 극히 힘들었고 웬만한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의 기운이 충만한 산간벽지에서나 마나의 응집에 따른 웜홀이 가끔 발생하였다.

“여기도 웜홀을 지키는 무리가 있나 보네요. C급 두 명에 E급 한 명이군요.”

유리엘의 말처럼 웜홀이 등장하자 인근의 능력자들이 급히 웜홀로 이동하였다.

“가 볼까?”

“그래요. 어떤 녀석이 튀어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호호.”

강민과 유리엘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공간이동을 하여 웜홀의 발생장소로 이동하였다.

전과 마찬가지로 투명화 마법과 함께 기척을 감추는 마법을 사용했기에 웜홀의 발생 장소에 도착했지만 다른 능력자들은 강민과 유리엘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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