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현세귀환록
038. 복수(3)
강서영이 잠드는 것을 본 강민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형태? 그게 누구지?
“누군지도 모른다? 하. 한국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건물에서 네가 한 짓을 벌써 잊은 거냐?!”
-한국대학교에서라면……. 아, 그 발정 난 미친개 두 마리 말이군. 그중 어느 쪽 애비지? 손이 박살 난 쪽?
으득!
이일광이 이를 악물어 이가 바드득 거리는 소리가 강민에게까지 들렸다.
“그래, 손이 박살 난 쪽이다. 내가 형태의 아버지 이일광이다. 넌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네가 아끼는 동생도 그 꼴이 될 테니 두고 보자! 그때도 지금처럼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야, 오함마 준비해!”
사람을 잘못 건드린 사람이 누군지 아직 모르는 이일광에게 한쪽 옆에 서 있던 깍두기 머리의 덩치가 건설현장용 해머를 들고 다가왔다.
지금 이일광은 물불 가릴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이번 일을 벌이기 전에 일광저축은행의 지분도 다 처리하여 현금화시켰고, 전국구는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십위권 정도인 조직인 일광회도 불곰파에 다 넘겼다.
여기에 모인 조직원들 또한 자신에게 충성심이 깊거나 급전이 필요한 애들로만 모아 일이 끝나면 몇 년간 함께 필리핀 등에 잠적하기로 결심까지 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형태 또한 서울 외곽의 조그만 병원으로 이송시켜 놓았기에 강민이 협박에 굴복해 이리로 온다면, 즉각 이형태 원상태로 돌리고 강민과 강서영을 죽여 버린 후 밀항할 계획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제 남은 건 독기뿐인 이일광은 물불 가릴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해머를 들고 오라는 이일광의 목소리에도 강민은 태연하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그건 알 거 없고, 네 동생 년 손이 박살 나는 소리를 라이브로 들으면 아마 우리 형태 비명 듣는 내 마음도 이해하겠지? 네 동생 년을 죽이지 않으려면 우리 형태를 원래대로 만들어줘야 할 거야. 일단 손모가지 하나만 먼저 시범으로 날려주마. 야! 쳐!”
그런데, 강민의 비명을 기대하였지만 전화기에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고, 해머 내려치는 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야, 뭐 하는 거야?”
해머를 내려치지 않는 덩치를 타박하려고 그쪽을 바라보니 기절한 강서영의 몸 주위 1미터 정도 유백색의 구체 형태를 갖춘 막이 둘러싸고 있었고 해머를 내려친 덩치는 해머와 함께 뒤로 튕겨 나가 있었다.
“이건 뭐야?”
이일광은 손가락으로 그 구체를 찔러보았지만 강한 탄성을 지닌 구체의 막은 마치 고무공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주며 손가락을 튕겨냈다.
구체의 탄성에 이일광은 전화기를 내팽개치고 평소에 품고 다니는 회칼을 꺼내서 구체는 회칼 역시 튕겨냈다.
“이익!! 이게 뭐야!!”
이일광의 짜증에 대한 대답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뭐긴 뭐야. 너 같은 새끼들에게서 내 동생 보호하는 마법이지. 이 정도로 일을 벌인 걸 보면 각오는 되어 있는 거겠지?”
강민은 마치 유령처럼 이일광 옆에 서서 대답을 하였고, 같이 나타난 유리엘은 강서영을 수습하였다.
강민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이일광은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한걸음 물러났다.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지? 큭, 아니, 어떻게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 왔다. 여기서 널 반 죽여서 우리 형태를 건든 걸 후회하게 해주마!”
사실 강서영의 몸에 둘러쳐진 구체의 막이나 강민이 갑자기 나타난 것만 하더라도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하지만 이미 분노에 휩쓸린 이일광은 그런 사안들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으리라.
“애들아! 쳐라!”
이일광은 강민에게서 빠르게 뒤로 물러난 뒤 주위에 있는 조폭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전에 이야기된 것인지 조폭들은 다들 연장을 꺼내 들고선 강민을 덮쳤는데 덮친 것보다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갔다.
퍼퍼퍽!
삼십여 명의 조폭 중 우선 가까이 있던 예닐곱 명이 먼저 덤볐다가 튕겨 나갔고, 이어 두세 차례의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대여섯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10여 미터 이상씩 나가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보자 남은 대여섯 명은 덤벼들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안 온다면 내가 가지.”
말을 마침과 동시에 강민이 번개처럼 그들에게 붙어서 팔다리 한쪽씩을 박살 내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결국 모든 조폭이 팔다리 중 한 군데 이상씩 부러져서 바닥을 뒹굴며 끙끙대고 있었는데 그런 조폭들을 잠시 바라보던 강민이 말했다.
“하나같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군. 이 정도 악기라면 그냥 지워 버리는 게 낫겠어.”
일광회의 정예 조폭들이었는지 하나하나마다 쌓여 있는 악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결정을 내린 강민은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려 쓰러진 조폭들을 향해서 손을 휘저으려 하였다.
그때였다. 건물 안에서 한 인영이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강민에게 검격을 날렸다.
30여 명이 넘는 조폭이 쓰러지는 것에 당황했던 이일광은 그 인영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나타난 것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그 총알 같은 인영 역시 날아왔던 속도, 아니, 그 이상의 속도로 튕겨 나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나뒹구는 다른 조폭들과는 다르게 그 인영은 제대로 착지하여 다시금 강민을 노려보며 일본도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전력을 다한 건지, 아니면 충격을 다 이기지 못한 건지 일본도를 부여잡은 손은 다소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에 처리하려 했더니 벌써 나온 건가. 네가 믿고 있던 최후의 보루가 저 녀석인가?”
강민은 당연하게도 이일광이 기대하고 있던 그 인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앞에 있는 조폭들을 쓸어버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잡아 배후를 물으려 하였기에 먼저 처리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유니온 기준으로 대충 C급 정도의 능력자인 것 같은데 행색을 보아하니 일본 쪽이군.”
강민의 말처럼 일본 사무라이 전통의 복식을 한 괴인은 한눈에도 날카로워 보이는 일본도를 중단세로 들고 강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강민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강민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일본인이 한국말을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강민은 일본어로 다시 물었다.
“한국말을 못하는가? 넌 누구냐?”
강민과 유리엘은 지구상에 있는 주요 언어들은 이미 원어민 수준으로 할 수 있었기에, 통역 마법 없이도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괴인의 정체를 물었다.
강민이 일본어에 흠칫 놀란 괴인은 이내 표정을 굳히고 대답했다.
“난 사이토 하나부사다. 넌 누구냐! 아니, 어디 소속이냐? 천왕가는 아닐 테고 화랑이냐? 백록원이냐! 아니, 백록원은 아니겠군. 명맥만 간신히 유지한다 했으니…….”
“화랑? 백록원? 난 그런 소속은 없는데? 그러는 너는 어디 소속이지?”
“소속이 없다고? 그럼 그레이 울프인가? 그레이 울프치고 이 정도 수준은 드문데?”
소속이 없다는 강민의 말에 사이토는 잠시 생각하다 하나의 제안을 하였다.
“소속이 없다면 우리 야마토와 함께하는 것이 어떠냐! 우리 야마토는 이름 높은 헤이안 산하 계열 조직이다. 너 정도 능력이라면 헤이안 본진에서도 높이 살 것이야. 그레이 울프로 사는 것보다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사이토는 제안을 하면서 강민이 알고 싶은 정보를 제 입으로 술술 말해주었다. 굳이 배후를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일광은 일본어를 할 줄 알았는지 사이토의 제안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사이토 상 무슨 소리요! 저놈을 처리해 주기로 하지 않았소! 사이토 상을 모셔온다고 우리가 들인 돈이 얼만데! 당장 저놈을 처리해 주시오!”
“칙쇼! 하찮은 조센징이 어디서 입을 나불거리느냐! 우리 야마토가 그깟 돈 때문에 날 여기까지 보낸 줄 아느냐!”
“그, 그럼 무엇 때문이오! 약속을 지키시오!”
이일광의 재촉에 사이토는 잠시 눈을 빛내다가 이일광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약하지만 분명 검풍이었다. 검풍을 쏘는 것을 보니 확실히 C급에는 오른 인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사이토의 검풍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강민이 손을 휘저어 막았기 때문이었다.
“내 먹잇감에 손대지 마라.”
“큭. 그래 저놈은 네가 처리하면 될 것이고, 내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레이 울프로서 있어 보아서 알 것 아니냐. 소속이 없다는 것의 어려움을!”
말을 쉰 사이토는 이일광에게 잠시 눈길을 주다 다시 강민을 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이놈들과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야마토로 들어온다면 이놈들을 처리하는 것에는 우리가 전혀 개입하지 않겠다. 네 뜻대로 하면 될 것이야. 어떠냐?”
“누굴 처리하고말고는 내 뜻으로 하는 것이지, 네놈들 따위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야마토든 헤이안이든 내 뜻을 막는다면 같은 꼴로 만들어주지.”
강민의 말에 사이토는 이를 악물더니 내뱉듯이 말했다.
“지금 네가 나보다 실력이 좋다고 우리 야마토를 얕보는 것 같은데. 우리 야마토에는, 아니, 헤이안에는 너보다 월등한 능력자가 수십 수백 명이다. 이쯤에서 우리 헤이안과 손 잡는 것이 좋을걸!”
처음엔 야마토의 이야기를 하던 사이토는 어느새 상급 단체처럼 말했던 헤이안과 야마토를 동일시하며 강민을 협박했다.
아마 헤이안의 이름이라면 충분히 강민이 겁을 먹을 것이라 판단했기에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었다.
“여튼 네놈이 지금 저 이일광의 사주를 받아서 온 것 아니냐? 네놈을 처리하고 야마인지 야마토인지 하는 놈들이 오면 그놈들도 같이 처리해 주마. 헤이안인가 하는 놈들도 오면 같이 처리해 줄 테니 너무 아쉬워는 말고.”
강민의 비아냥에 사이토는 분노를 담은 눈빛으로 일본도에 마나를 주입했다. 분노가 치밀지만 사이토는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는데 처음 충돌에서 강민의 실력을 가늠해 본 사이토는 강민이 자신보다 뛰어난 강자임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마나의 주입에 따라 일본도가 점차 빛을 내는 샤이닝 상태, 즉 어기충검에 들어갔는데 그런 사이토의 모습을 강민은 기다려 주고 있었다.
‘네 오만이 결정적인 실수가 될 것이야!’
C급에 들어선 지 오래되지 않았던 사이토는 샤이닝 소드를 발현하는 것에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그 파괴력만은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샤이닝 소드를 기다려 준 강민에게 사이토는 내심 비웃음을 지었다.
사이토의 검이 화려하게 빛을 발하자 그는 지체없이 자신의 가장 확실한 검격을 강민에게 펼치며 번개처럼 강민의 왼쪽 목덜미를 노렸다.
하지만 사이토의 예상과는 달리 사이토의 검은 강민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잡혀버리고 말았고, 마치 프레스 기기로 누른 것처럼 빠지지 않았다.
“어, 어떻게……”
땅! 푸슉!
사이토의 신음과도 같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민은 손가락으로 잡은 검극의 끝은 부러뜨려 사이토의 가슴에 쏘아서 박아넣었다.
그제서야 조금 전 그가 예상했던 실력보다 강민의 실력은 훨씬 윗줄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이토는 깨달을 수 있었다.
“쿠, 쿨럭…… 우, 우리의 형제들이…… 욱, 쿨럭쿨럭…… 복수…….”
사이토는 복수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믿었던 사이토가 그렇게 비명횡사하는 것을 본 이일광은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아들의 복수로 눈이 돌았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 나를 어, 어쩌려는 것이냐!”
호기 있게 외치고 싶었지만 떨려 나오는 목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여기에 오면서 생각했지. 그간 고생했던 우리 가족을 건드린다면 세상을 엎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이야.”
이일광은 강민이 말하는 여기가 여기 이 장소를 뜻한다고 생각했지만, 강민이 말하는 여기는 이 차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강민은 이일광에게 독백처럼 말을 이었다.
“내가 힘이 없어서 그냥 두고 보는 것이 아니야. 난 우리 가족이 행복하길 원해서 두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내가 힘을 쓰는 게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너 같은 쓰레기들은 전부 다 지워 버릴 수 있어.“
강민의 선언과도 같은 말과 함께 발하는 그의 기도에 이일광은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