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36화 (36/203)

# 36

현세귀환록

036. 복수(1)

“으아아아악!! 으아아악!!!”

침대에 묶여 있는 이형태는 발버둥을 치며 비명을 질렀다.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남자 간호사 3명이 다가와 2명은 이형태를 붙잡고 나머지 한 명은 진정제를 투여했다.

급성 발작을 막는 진정제인지라 이형태는 곧 잠잠해졌는데 몸의 움찔거림은 남아 있었다.

“이 환자 대체 왜 이래?”

“몰라. 최 박사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하더라고. 처음엔 나름 열심히 치료하시려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손 놓은 거 같더라.”

“근데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아냐? 이대로라면 다른 환자들에게도 피해가 갈 거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근데 이 환자 배경이 장난이 아니라 하던데. 그래서 아직도 여기 있는 거 같더라.”

“그래? 아무튼 이렇게 진정제 너무 많이 맞다 보면 정말 안 좋을 텐데……. 오늘만 해도 벌써 10번 가까이 되지 않아?”

“뭐, 박사님이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간호사들은 이형태를 진정시키느라 문 앞에 이일광이 서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일광은 간호사들의 말을 듣고는 이를 악물고 서 있었고 뒤늦게 이일광의 존재를 알아챈 간호사들은 눈치를 보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이일광은 잠시 생각을 하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김 사장, 이일광이요.”

-이 회장, 어쩐 일이요? 혹시 형태가 차도라도 있소? 아니면 범인의 흔적이라도?

“아직 아닐세. 그런데 전에 알아본 기 치료는 어떻게 되었소?”

-아, 기 치료 말씀이시구려. 창민이한테 물어서 그 친구에게 연락이 닿았는데 아직 별 차도가 없다 하여 내 이 회장에겐 별도로 말하지 않았소. 사기꾼 아닌가 싶어서 말이오.

“그렇소? 휴…… 그럼 다른 방법은 없겠소? 내 더 이상 형태의 모습을 그냥 지켜보기가 힘드오.”

-허, 그 정도요? 음…… 우리 창민이가 많이 나아졌으니 형태에게 한번 가보라고 하겠소. 창민이가 쓴 방법이 형태한테도 듣는다면 나을지도 모르잖소.

“부탁하오. 우리 형태가 너무 힘들어한다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복도에 서 있는 이일광에게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환자 보호자 되시는가요?”

“그렇소만.”

“저렇게 힘들어하는 환자는 제 의사 생활 동안 처음 봐요. 큰 기대는 마시고 이쪽으로 한번 연락해 보시지요.”

의사는 이일광에게 하나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건넸다.

“이게 누구 전화번호인지?”

“확실한 건 아닌데 정신 질환이 심각한 환자의 보호자들 사이에서 종종 알려진 번호입니다. 100% 치료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종종 치유가 되는 경우가 있다더군요.”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악인이라 알려진 이일광 역시 한 명의 부모임은 틀림없었다. 의사의 호의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구요. 차도가 없는 경우도 있다 하니 말입니다. 근데…… 비용이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얼마가 들든 괜찮습니다. 아무 방도가 없었는데 이런 기회만으로도 감사하지요.”

의사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이일광은 의사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이일광이라고 합니다. 창신 정신병원의 의사분 소개로 전화드렸습니다.”

-아, 거기……. 환자가 있나요?

“네.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있습니다.”

-증상이 어떻지요? 환청? 아니면 환각?

“환청이나 환각인지는 모르겠고 한 시간에도 수차례씩 머리가 아프다고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각종 검사를 다 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해서 일단 정신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있구요.”

-그런가요? 그럼 제가 내일 세시까지 창신으로 가겠습니다. 거기서 뵙지요.

“비용이 혹시……?”

-최소 10억부터 시작하고 상황을 봐서 더 오를 수 있습니다. 다만 고치지 못한다면 받지 않도록 하지요.

“10억!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0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게다가 최소 10억이라 함은 더 오를 수 있는 여지도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치지 못하면 받지 않는다 하지 않는가. 아내와 사별하고 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기에 10억이라 해도 충분히 낼 용의가 있었다.

또한 치료도 하기 전에 착수금이나 선수금 같은 비용부터 이야기했던 수많은 사이비들과는 다르게 고치지 못하면 비용을 받지 않는다고까지 말하니 더 믿음이 갔다.

전화를 끊은 이일광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김도관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알렸고, 김도관 역시 내일 김창민을 데리고 오기로 하였다.

* * *

이일광과 김도관 부자가 이형태의 병실 앞에서 어제 통화했던 신원 미상의 인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민이 너는 이렇게 다녀도 될 만큼 괜찮아진 거냐?”

“네, 요즘엔 발작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이일광이 그 사건이 있고 난 직후에 김창민을 보았을 때는 이형태와 비슷한 상태였다. 김창민 역시 이형태처럼 한 시간에 수차례씩 발작을 하며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지금의 김창민에게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표정이 편안해져서 인상마저 다르게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된 거냐? 우리 형태도 그럴 수 있는 거냐?”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이렇게 만든 괴인…… 윽……!”

김창민은 말을 하다가 머리에 통증이 왔는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하아……. 여튼 그 괴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들립니다.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가 뜻하는 바가 무언지는 알아냈습니다.”

“뭐? 어떤 말이냐?”

“정확하지는 않지만 착하게 살라는 의미의 소리인 것이 분명한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봉사활동 같은 소위 착한 일을 하면서 지내니 확연히 머리가 아픈 일이 줄어들었거든요. 조금 전에도 그 괴인에 대한 원망을 조금 떠올리니 머리가 아팠던 거고요.”

“그, 그런……. 혹시 형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냐?”

“아마 형태도 머릿속의 말을 들을 수 있을 테니 아마 알 거 같아요.”

김창민의 말에 따르자면 김창민은 어느 정도 개과천선을 해서 머리의 통증을 제어하기 시작하는데, 이형태는 전혀 개과천선이 되지 않아 계속 그런 고통을 느낀다는 말이었다.

최근 들어 아이들의 병을 고치는 일에 관심을 덜 보이던 김도관이 이해되었다. 김창민은 이제 고통을 제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폭 두목 이일광의 아들인 이형태가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것은 뻔했다.

이일광은 이형태가 어릴 때부터 사내는 독기가 있어야 한다며 이형태가 거칠고 독선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것을 조장한 감도 있었다.

그래서 범죄를 짓고 다니는 아들을 혼내지도 말리지도 않았는데 결국 그런 행동이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왔다.

김창민과는 달리 이형태는 그런 고통에도 마음을 고쳐먹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오후 3시가 되자 이일광의 휴대전화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액정에 표시된 전화번호는 어제 의사가 말한 사람의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창신에 왔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아, 307호로 오시면 됩니다. 그 앞에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그리로 가지요.

전화를 끊고 3분 정도가 지나자 복도 끝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은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노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노란 머리 청년은 그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는데 모든 이가 청년의 인사에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방금 전화드린 스티븐 파머라고 합니다.”

노란 머리 청년은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오늘 보기로 한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익숙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아, 반갑습니다. 제가 이일광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

“여기 온 지도 10년이 넘었으니까요. 여튼 환자는 옆에 이분이신가요?”

짧게 인사를 나눈 스티븐은 김창민을 보고 환자인지 물었다.

“아, 창민이도 환자이긴 하지만 지금 병실 안에 있는 환자가 더 중환자입니다.”

김창민을 보려는 스티븐을 막고 김도관이 나서서 이형태부터 치료해 주길 바랐다.

애초에 스티븐에게 연락한 것도 이일광이었고, 현재 김창민은 많이 나은 상태였기 때문에 중환자인 이형태부터 치료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였다.

이형태는 진정제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어 있는 상태였다.

잠든 이형태를 보자마자 그의 머리에 마나를 이용한 금제가 있음을 알아차린 스티븐은 이형태의 머리에 손을 얹고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마법보다는 이곳의 도술에 가까운 방식인데……. 해제하긴 힘들 것 같네. 하지만 술법 자체의 악기는 없어 보이는데. 이 친구 자체의 악기가 너무 심하군. 잘못하면 골수까지 악기가 파고들겠는데……. 악기를 생각한다면 악한 사람이 벌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음…….’

술법을 살펴보던 스티븐이 손을 떼려는 찰나 이형태의 머릿속에서 얼굴이 흐려진 괴인이 떠올랐다.

‘음? 이건 인식 장애가 걸린 기억이군. 이 방식은 올림포스의 방식과 비슷한데? 올림포스 쪽에서 나온 건가? 아, 아니야. 원리는 비슷한데 구현 방식은 조금 다르군. 그럼 이걸 이렇게 노이즈를 지우고 필터링하면…….’

이형태의 머리에 손을 대고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스티븐은 눈을 뜨며 이일광에게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뭐부터 말씀드릴까요?”

“나쁜 소식부터 듣지요. 여기서 더 이상 뭐가 나빠지겠소.”

“나쁜 소식은 제 손으로 치료하긴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 그럼 좋은 소식은요?”

“좋은 소식은 치료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뭐요? 누구요? 어떤 사람이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아는 분인가요?”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술법을 건 당사자입니다.”

스티븐의 말에 이일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말은 자신도 할 수 있는 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이없음은 분노의 감정으로 이어졌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고함을 치려는 이일광을 스티브의 이어진 말이 막았다.

“아마 지금 이 청년의 기억으로 보아 누가 술법을 건지 모르는 것 아닌가요? 제가 그걸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기억을 못 하고 있다던데…….”

“기억을 가로막는 수법은 제가 풀 수 있는 수법이라서요.”

“아!”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이 청년의 악기가 보통이 아닌 것으로 보아 선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을 것 같군요. 아마 이 청년이 이런 상태가 된 것은 죄에 대한 징벌에 가까울 것 같네요.”

스티브의 말에 이일광은 반발하지 못하였다. 그 자신도 그렇고 이형태도 그렇고, 선인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일광의 표정을 본 스티븐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청년이 이 상태까지 온 건 정도가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이렇게 누가 이 수법을 행하였는지 알려드리는 겁니다. 일단 제가 얼굴을 그려드리죠. 얼굴만 안다면 찾기가 힘들지는 않을 것 같네요.“

얼굴을 그려준다는 스티브의 말에 이일성은 반색했다. 어차피 대학에서 발생한 일이었기에 얼굴만 제대로 안다면 거기서부터 탐문해 가면 찾기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그림이 엉망이라면 힘들 수도 있지만 자신 있게 말하는 걸로 보아선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수준으로 그려줄 것 같았다.

만약 찾는다면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그 당사자에게 지옥의 고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 가족과 지인까지 포함하여.

하지만 스티브의 마지막 말에 이일광은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청년을 이렇게 만든 인물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보아하니 꽤나 힘이 있는 분 같은데 복수를 생각하는 건 접어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 사람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엔 여러분들이 모르는 세계가 있답니다.”

아마 이렇게 말해도 이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함부로 행동하고 박살 난 이후에야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스티븐이 거기까지 조언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떡하라는 말이오! 잡아서 족쳐 우리 아이를 낫게 해달라 해야 하는 거 아니요!”

“아마 그 사람은 악인이 아닐 겁니다. 인정에 호소하여 향후 개선을 약속한다면 다소 강도를 낮춰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저기 같은 수법에 걸려 있는 청년이 잘 적응한 것으로 보아 악의를 품고 했다고 보기는 힘드네요.”

말을 마친 스티븐이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실력이 꽤 좋아 완성되고 나면 충분히 그림 속의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이일광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에 가까워지자 김도관과 이일광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 속 인물은 경제계의 가장 큰 이슈로 이름나고 있는 KM그룹의 강민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이, 이 그림이 정녕 범인의 얼굴이요?”

“그렇습니다. 아는 분인가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KM그룹의 강민 회장이요!”

“그래요? 거기까진 몰랐군요.”

스티븐은 최근까지 일 때문에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강민의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여튼 유명한 분이니 굳이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겠군요. 치료까지 끝냈다면 30억은 받을 만한 상황이지만 치료가 안 되었으니 약속대로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사람을 찾아드린 건 서비스 정도로 해드리죠. 그럼 이만.”

스티븐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병실 안에 남은 김도관과 이일광은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이 아파하는 원흉이 일반인도 아닌 KM그룹의 강민 회장이라니 너무도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회장, 어쩔 거요?”

김도관의 질문에 이일광이 정신을 차리고 반문했다.

“김 사장은 어쩔 생각이요?

“일단 우리 창민이는 안정을 찾고 있으니 좀 더 두고 볼 생각이오. 착한 마음을 먹는다면 고통이 없다 하니 이번 기회에 마음을 수련한다 생각할 수도 있고…….”

과연 안정을 찾고 있는 김창민의 아버지 김도관은 이일광에 비해서 강민과 맞설 의지가 약했다. 하지만 이일광은 아니었다.

“김 사장! 발을 빼겠다는 것이오?!”

“발을 뺀다기보다는 일단 천천히 두고 보겠다는 거요.”

“그 말이 그 말이지! 됐소. 김 사장은 빠지시오! 나 혼자라도 그 자식을 잡아 주리를 틀어서라도 형태를 고쳐놓도록 하겠소. 나 이일광, 일광회의 회장이요!”

역시 스티븐의 경고는 이일광에게 먹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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