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31화 (31/203)

# 31

현세귀환록

031. 회사(4)

그래서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경영자도 있었으며, 사업체를 넘기고 편한 노후를 살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KM그룹의 기업 정신을 설명하며 설득하자 많은 경영자가 M&A에 동의하여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의 지분과 함께 경영권을 넘겼다.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경영자에게는 KM그룹의 기업 정신에 동의하면 일정 이상의 지분 인수를 통하여 계열사로 편입하고 경영권은 보전하는 형태의 M&A 방식을 취하여 기업 운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애초에 깨끗하게 경영을 했던 경영자들이라 KM그룹의 정신을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그리하여 결국 크고 작은 25개 업체를 인수하기로 최종 결정되었다. 총 계약금이 14조에 달하는 초대형 M&A를 단행하기로 하였는데 장태성과 각 사업부서장이 골라온 업체를 보고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강민이 추가로 5조의 자금을 출자하였던 것이었다.

원래 장태성은 강민이 그중에서 선별해서 10조에 맞추기를 바랐으나 강민은 그들이 골라온 업체 모두를 인수하기로 했다.

단순 거래 금액이 아니라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30조가 넘어 기업 집단 순위, 소위 말하는 재계 순위 11~12위 정도 수준의 회사가 된 것이다.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업체는 3조 원에 매입한 대룡 건설이었고, 가장 작은 업체는 주방용품 전문회사인 키친스타로 5백억 원에 매입하기로 하였다.

그 외에도 2조 규모의 미림 중공업, 1조 5천억 규모의 DC유통, 1조 규모의 UTS 화학 등 한 회사가 한 번에 매입하기에는 불가능할 정도의 M&A가 시행되었다.

25개 기업 중에는 같은 분야의 업체도 있었는데 같은 분야라도 세부적인 사업 내용이 달랐기에 두 업체 다 인수하여 하나의 계열사로 재편하였다.

25개 업체 중 19개의 업체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상장회사였기에 지분의 변동이나 대표이사의 변동 등은 모두 공시 사항이었다.

산발적으로 공시나 기사가 나온다면 KM그룹 출범의 파급력이 약해질 것이라 판단한 장태성는 업체들과 협의를 통해서 같은 날로 계약을 체결하여 극적인 효과를 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KM그룹의 공식 출범에 맞추어 일괄적으로 공시와 보도자료를 뿌려 KM그룹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알리기로 하였다.

그 모든 준비가 오늘 끝난 것이었다.

정오를 기점으로 금감원 공시와 더불어 언론사들에게 공식 보도 자료를 뿌렸다.

M&A 대상 기업에서 정보가 조금씩 새어나갔는지 며칠 동안 조금씩 올랐던 대상 기업들의 주가가 보도자료를 기점으로 하나둘 상한가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홍보팀에서는 각 언론사에서 오는 전화로 모든 전화가 통화 중이었고, 각 언론사 경제부 기자들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조치에 상황을 파악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것은 한울 경제신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 김 기자. KM이 뭐 하는 곳이야? 전에 네가 조사하지 않았어?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도 아닌데 한 번에 14조를 동원하다니 대체 뭐 하는 회사야? 대출받아서 하는 것도 아니라며?”

“편집장님, 그래서 제가 그때 KM좀 더 조사해 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 않았습니까.”

한울 경제신문의 김한모 기자는 몇 달 전 친하게 지내던 헤드헌터에게 KM그룹이라는 곳에서 헤드헌터 업체를 통해 인력을 수급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었다.

사실 헤드헌터 업체가 인력을 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취재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10조 규모의 창업 자금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김한모는 간단한 조사 후 편집장에게 심도 있는 조사를 통해 기사를 내고 싶다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편집장은 창업 자금 10조에 대해서 단지 부풀려진 이야기라 판단했고 다른 일로 바쁘니 다음에 조사하자는 의례적인 말로 KM그룹 건을 덮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도 제대로 된 실체를 갖추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KM그룹이었기에 김한모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KM그룹은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물밑에서 엄청나게 움직이다 한방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크흠, 그때는 그때고. 지금부터 심도 깊게 조사해 봐. 창업자가 누군지, 어떤 사업을 주력으로 할지. 그런 것들 모두 말이야. 얼마 전에 무너진 ST그룹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뜬 기업은 없지 않나? ST ST그룹조차 이렇게 일시에 M&A를 하진 않았잖아. 하긴 ST그룹도 M&A로 덩치를 불리다 그렇게 되었으니 KM그룹도 반짝하다 망할지도 모르지.”

편집장은 다소 회의적인 어조로 말했다.

“여튼 그런 것들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기사 한번 써봐. 그리고 일단 전에 모았던 기초 자료라도 취합해서 인터넷 기사로 올리고, 오늘 중으로 기본 조사 완료해서 내일 인쇄본에 싣도록 해. 시리즈로 낼 테니까 계속 조사하고.”

“네에, 네에. 편집장님.”

김한모와 편집장은 원래부터 격의 없이 친한 사이였기에 김한모는 농담을 가장한 약간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답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보도자료를 봐도 사업 연관성이 없는 계열사가 더 많잖아.’

일반적으로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는 경우에는 관련 사업부터 확장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철판이 많이 필요한 자동차 회사는 철강 회사를 설립하고, 해외 원자재가 많이 필요하여 상사를 만드는 등 사업 연관성이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KM그룹의 계열사들은 이런 사업 연관성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없는 경우도 많았다. 막말로 건설사와 주방용품사가 어떤 사업 연관성이 있겠는가. 모르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야말로 중구난방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 * *

KM그룹의 등장은 재계에도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아무런 전조도 보이지 않다가 혜성처럼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일단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규모의 M&A를 무차입으로 했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컨소시엄을 구성해 여러 투자자가 자금을 조달한 것이 아니라 오너 단독으로 자금이 조달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오너 개인의 재산만으로 백산그룹의 회장 백무산과 현승그룹의 회장 유현승의 뒤를 이어 국내 3위의 자산가인 것이었기에 놀라움은 더 했다.

물론 실제 현금화되어 있는 강민의 재산은 세계 1위의 재산까지도 훌쩍 뛰어넘겠지만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그저 KM현승그룹을 만들면서 알려진 재산만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주요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견기업, 한국경제인연합(한경련)에서까지 KM그룹 오너의 실체를 궁금해했다.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부서들은 하나같이 KM그룹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려 애썼고, 특히 KM그룹의 계열사와 겹치는 사업 영역을 가진 회사들은 경영 방침 등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더 노력하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인테리어되어 있는 전형적인 회장실에 50대 장년인이 결재를 받으려는 듯 테이블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테이블에는 70대 노인이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서류를 한번 훑어본 노인은 장년인에게 물었다.

"최 실장, 이번에 나타난 KM에 대해서 사전에 들은 것이 있나? 이런 보도 자료 말고 말일세.“

“죄송합니다. KM에 대해서는 아직 상세히 조사된 바가 없습니다.”

최경호의 말에 유현승은 고개를 들어 최경호를 바라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최 실장도 요즘 많이 나태해졌어. 이런 일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말이야.”

유현승의 말에 최경호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표시를 했다. 다만 주먹이 굳게 쥐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고, 유현승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최경호 기획조정실장은 현승그룹의 오너 유현승 회장의 최측근으로 유회장의 손발과 같은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둘의 분위기는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유현승은 수족 같은 수하를 질책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최경호를 견제하는 분위기였고 최경호는 최측근으로서 유현승의 질책에 죄송스러움을 표한다기보다는 그의 질책에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잠시간의 침묵 뒤 유현승이 최경호에게 물었다.

“가주님께서는 별도로 말씀 없으셨나?”

“네, 가주님께서는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음…… 자금 출처가 유니온 그룹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말씀이 없으셨다니. 유니온과는 관계가 없었나? 아니야, 유니온과 관계없이 유니온 그룹에서 독단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거래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

처음엔 최경호에게 묻는 말처럼 시작한 유현승의 말은 독백으로 끝났고 최경호는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 *

KM그룹이 전격적으로 등장한 지한 달 정도가 지나자 KM그룹에 대한 관심은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간 신문이나 방송에서 엄청난 양의 기획 보도와 탐사 기사 등이 방송 및 발행되어 KM그룹은 다른 국내의 굴지 대기업과 같은 인지도를 얻은 상황이었다.

KM그룹 내부적으로도 중복되는 기능을 정리하고 사업 연관성이 높은 사업 위주로 그룹을 재편하는 등 혁신에 가까운 내부적인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KM그룹보다 더 유명세를 보고 있는 사람은 KM그룹의 창업자 강민이었다. 모두가 강민에 대해서 궁금해했지만 강민은 언론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사실 대기업 회장이 방송에 직접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신문이나 잡지사 인터뷰 정도도 매우 드물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강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본적인 정보밖에 알려지지 않은 강민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은 무척이나 컸다. 그래서 가십성이 짙은 이야기도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소규모 인터넷 뉴스 등에 많이 게재되었다.

한수찬은 평소와 같이 인터넷 기사를 클릭하고 있었다. 대형 포털에서 조회 수가 높은 기사 위주로 클릭을 하다 눈에 띄는 제목의 뉴스를 발견했다.

[KM그룹 강민회장의 가족관계도]

올뉴 뉴스라는 인터넷 신문사의 기사였는데 기사 최상단에는 강민이 가족과 외식을 하는 사진과 함께 강민, 유리엘, 강서영, 한미애의 사진을 각각 게재하여 강민의 가족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사실 강민의 가족 관계는 큰 비밀도 아니었다. 애초에 학교 입학 전부터 강서영, 유리엘과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종종 보아왔기에 강서영이 강민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이미 학교 내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한미애의 경우는 많은 사람이 알지는 못했지만 비밀도 아니었기에 이 인터넷 신문은 거기까지 조사해서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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