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30화 (30/203)

# 30

현세귀환록

030. 회사(3)

“저는 제가 만드는 기업이 제가 가진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최초 기업 문화는 내가 뽑은 내 사람들이 만들어야겠지요. 어차피 중후장대 산업으로 회사를 빨리 확장하려면 기존의 회사를 인수 합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진출한 분야의 사업에서 M&A가 가능한 매물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할 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 반드시 알아두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강민의 나지막하지만 강한 어조에 장태성은 침을 삼키며 강민의 말을 경청했다.

“저는 돈을 벌려고 이렇게 회사를 차리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민의 말에 장태성은 놀라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짐작했던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 강민이 투입한다는 10조 원만 해도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의 큰 금액이다. 연간 이자만 2천억 원이 넘게 나오는 상황이니 단지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뜻으로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은 당연히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사업을 하시는 겁니까?”

장태성은 약간 도전적인 말투로 강민에게 물었다. 그에 강민은 잠시 장태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장태성의 눈빛은 60세가 다 되어가는 노년의 눈빛이 아니었다. 장태성의 눈은 젊은이의 그것처럼 불타올랐다.

“세상에 나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네?”

“말 그대로입니다.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장태성은 강민의 말에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회장님의 말씀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입신양명의 그런 이야기인가요?”

“뭐, 그런 맥락이지요.”

그 입신양명의 목적은 어머니와 여동생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에서 온,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유였지만 그것까지 장태성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이제 새로운 일에 열정을 보이고 있는 사람에게 힘이 빠지게 하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데 가장 큰 원칙을 말씀드리지요. 먼저 어렵더라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앞으로 ‘규정이 어렵고 복잡해서 좀 쉽게 가겠다’ 따위의 말은 제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입니다.”

“그럼…….”

“수익은 포기하더라도 원리원칙대로 하십시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규정을 다 지켜가면서 회사를 운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하지만 애초에 수익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행이 아니라 정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정도…….”

장태성의 나지막한 읊조림을 들은 강민은 좀 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또한, 실수로라도 구설에 오르는 일은 최대한 없도록 해주세요. 겪어봐서 아시겠지만 우리가 행하지 않은 일들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순간부터 우리가 한 일처럼 왜곡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망친 이미지를 다시 바로 잡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따라서 애초에 구설에 오르는 일은 최대한 없도록 해주십시오.”

“하지만 경쟁 기업이나 블랙컨슈머의 악의적인 루머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태성의 타당한 지적이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막아달라는 것은 우리의 실수를 막아달라는 의미입니다.”

강민의 어조는 확고했다.

“악의적인 루머까진 우리가 막을 수 없겠지요. 그런 경우에는 강력한 법적 대응은 물론이거니와 전방위적 언론 보도를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아 재야에 있는 우수한 변호사를 고용하려고 했었지요.“

“변호사라면 대형 로펌을 이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 변호사들은 대부분이 올바르지 않는 길을 걷는 경우가 많더군요. 우리가 함께 갈 변호사는 단지 의뢰인을 위해서 스스로 마저도 속이는 그런 변호사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걸고 옳은 일을 행사는 변호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변호사가 있을까요?”

오랫동안 기업을 운영하였던 장태성은 그런 변호사가 있다는 것에 회의감을 표시하였다.

“판사 세계나 검사 세계가 자신의 가치관과 달라 자신의 양심을 꺾지 않고 사표를 던지고 나와 공익 변호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주로 영입해 주십시오. 그분들이라면 충분히 악의적인 루머에서 우리 회사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물론 법적 절차는 오래 걸리고 그동안 우리 이미지는 상당히 나빠지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신문과 방송을 확보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강민의 생각은 구체적이었다. 이미 자신의 행동이 다른 기업에게 위협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문, 방송까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기존의 기업들은 기존의 언론과 많은 친분이 있을 테니 우리에게 유리하게 기사를 써주지 않을 것이죠.”

“그렇겠지요.”

“우선 온라인 거대 포탈을 최대한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탐사 보도에 강한 청렴한 언론사를 후원하는 것도 좋겠지요.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신문사를 설립하고, 지상파는 아니더라도 케이블 방송사 정도는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M&A가 안된다면 어느 정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해야겠지요.”

강민이 M&A를 언급하였기에 장태성은 의아해하며 강민에게 되물었다.

“M&A는 안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요. 이제부터는 M&A도 허락하겠습니다. 다만 부도덕한 기업, 문제가 있었던 기업과의 M&A는 어떠한 경우에도 없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새로 만들면 만들었지 그렇게는 하지 마십시오.”

강민의 말이 진행될수록 장태성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이미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노리고 성과에만 포커스를 맞추다가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면 엄벌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면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더라도 회사 이미지 개선에 큰 공을 세우면 성과 연동 성과급과 별도의 포상을 내리지요.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손해 보는 사업이면 곤란하겠지요.”

“음…… 회장님은 ‘존경받는 기업’을 원하시는 군요.”

“그렇습니다. 잘 표현하셨네요.”

애초에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사회적인 힘을 갖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물론 다른 기업처럼 수익성만 추구하여도 그 힘은 따라오겠지만, 강민은 이왕 이름을 날리는 것 좀 더 존중받고 존경받는 이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회장님의 의도 잘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M&A를 검토했던 기업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 * *

강민은 1학기를 마친 후 유리엘과 함께 휴학을 했다. 아무리 장태성이 전략기획실장으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사업의 초창기라 강민의 판단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스스로가 말했듯 자신이 원하는 기업 문화를 갖추기 위해서는 초반에 그 틀을 잡아놓아야 했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남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비록 장태성이 강민의 의도를 잘 이해하였다 하더라도 강민과는 엄연히 다른 사고방식의 일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강민이 한국대학교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그녀가 원했던 첫발을 내디뎠고, 오히려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단계를 다 건너뛰고 아예 회사를 세워 버렸으니 더 이상 강민의 대학 졸업을 강권하지는 않았다.

강민 역시 일종의 유흥거리로써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것이고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 생긴다면 굳이 학교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 회사 일은 반년 정도면 틀을 잡을 것 같았기에 그만두는 절차까지는 밟지 않고 휴학계를 제출했다.

8월이라 한창 더운 날씨였지만 사무실 안은 시원했다. 사실 강민과 유리엘은 수화불침이라 온도 차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쾌적한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강민과 유리엘이 출근하기가 무섭게 장태성이 회장실로 들어왔다.

“회장님, 기획실장입니다.”

장태성은 전략기획실장은 부르기가 너무 길다 판단하여 기획실장이라 줄여서 스스로를 지칭하였다.

“무슨 일이시죠?”

“드디어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아. 그렇군요. 언론 보도 자료 준비도 끝났습니까?”

“네, 홍보팀에서 일괄적으로 각 언론사에 배포할 예정입니다.”

“이제 시작이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KM그룹을 창설하고 가장 먼저 만든 계열사는 KM자산운용이었다. 10조의 자본금을 가지고 단지 은행 예금 이자만 받는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자산운용사를 설립하여 그 돈을 컨트롤하였다.

물론 그 수십 배가 되는 더 많은 돈이 은행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직원들이 알았다면 더 놀랐을 테지만 그들이 알 수는 없었다.

그 후 몇 달간 각 사업부서의 부서장들과 회의를 통하여 M&A 대상 기업들을 선정하였다.

그들은 사실 강민의 말대로 비도덕적인 기업을 걸러내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올리는 기업마다 다 퇴짜를 맞기 시작하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온 기업 중에서 깨끗하기만 한 기업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탈세의 의혹이 있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임금 체불의 경력이 있는 기업, 환경 단체와 문제가 있는 기업, 산재를 인정하지 않아 구설에 오른 기업까지. 흠 하나 없는 기업은 매우 적었다.

그래서 몇몇 사업부에서는 기존 회사에 M&A하는 것을 포기하고 강민의 허가를 받아 도덕적인 인물들만 별도로 접촉하여 새로 조직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깨끗한 기업을 찾기는 힘들었으나 장태성과 사업부서장들은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찾아서 고른 기업 중에는 M&A를 거부하는 기업도 있었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듬뿍 안겨주니 몇몇을 제외하고는 기업의 매각에 동의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실 지분 가치보다 훨씬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쳐준다고 해도 M&A를 하지 않으려는 기업은 대부분 경영자가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키운 회사를 넘기는 것을 아쉬워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KM그룹에서 고른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에 비해서 깨끗하게 사업을 하는 기업들로, 현재 사회 풍토상 각종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기업들은 규정을 어겨가며 편법을 이용해 노동자를 쥐어짜고, 거래처를 쥐어짜서 단가를 절감하는 데 반해 이 기업들은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가며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으니 상당한 수익을 포기하여야 했다.

더군다나 이해관계자를 설득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바람에 사업 진행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그들은 대기업 집단에 속해 있는 회사가 아니었기에 대기업을 등에 업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물량 공세를 하는 것에 고초를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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