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현세귀환록
028. 회사(1)
유니온 그룹의 상층부의 인사 대부분 능력자였고, 능력자가 아닌 경우에는 유니온의 존재와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었다.
실무진의 경우에는 능력자보다 능력자가 아닌 사람들이 훨씬 많았는데 일반인을 상대하는 일이 대부분인 유니온 그룹에서 모두를 이능력자로 채우는 것은 오히려 인력 낭비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니온 그룹에 내려진 김세훈의 지시는 이능의 세계를 잘 모르는 일반인 실무자가 담당하였다. 그 직원은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더 철저하게 검증한 삼십여 명을 추려 강민에게 연락했다.
연락을 받은 강민은 실제로 만나서 판단하고 싶다고 하여 이렇게 면접을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면접자들에게는 유니온 그룹과 개인 거래를 하는 유력 인물이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인재를 선발한다는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였다.
그 외에 알린 정보로는 새로 창립하는 회사의 설립 자금으로 자그마치 10조 원을 투입한다는 이야기와 1년간은 유니온 그룹의 평균임금을 지급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정보만으로도 엄청난 지원자가 몰렸다. 10조 원의 자금이라면 단번에 시가총액 기준 20위권에 드는 규모였고, 유니온 그룹의 평균임금은 연봉 2억 원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채용은 공개 채용은 아니었다. 각종 헤드헌터 업체를 통해서 알음알음 알려졌던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수백 명의 지원자가 달려들어 담당했던 실무자는 옥석을 가리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다.
지금 서류 심사를 통해서 선발한 35명의 인원은 그야말로 고르고 고른 인원들이라 어디에서든 자신의 몫은 충분히 할 인물들이었다.
“그럼 김 과장님, 면접을 시작하시죠.”
“네, 강 대표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1차 서류 심사에서 총 35명이 통과했습니다. 이들을 5명씩 7개 조로 나누어서 면접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아직 회사를 설립한 것도 아니었지만 유니온 그룹의 김상민 과장은 자연스럽게 강민에게 대표 직함을 붙여 말했다. 면접을 진행하려던 김상민 과장은 갑자기 생각난 듯 강민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런데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최종 선발 인원을 알 수 있습니까?”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인원이 없다면 전원 탈락일 수도 있고 마음에 든다면 전부 합격일 수도 있겠지요.”
“아, 그러시군요.”
김상민 과장은 조금 놀란 듯하였으나 강민의 덤덤한 표정을 보곤 곧바로 면접을 진행했다.
“그럼 1조부터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상민 과장은 옆에 있던 진행 요원에게 지시해 1조를 불러들였다. 1조의 면접자 5명이 면접장으로 들어왔다.
면접자들이 들어오기 전 서류를 살펴보니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나이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고, 학력은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은 무학에서 박사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 경력 또한 일반 회사원부터 막노동을 하던 사람까지 다양했다.
사실 강민이 원했던 ‘업무 능력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은 매우 두루뭉술한 말이었다. 업무 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회계에 강하고, 누군가는 영업에 강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기획에 강점이 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연구 개발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어떤 회사를 어떻게 설립한다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업무 능력이 우수한 인재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그것처럼 막막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김상민 과장은 그가 어떤 사업을 할 것이며, 어떠한 인재를 원하는지 파악해야 했다.
그러나 강민과 직접 통화를 해본 결과 아직 제대로 된 계획은 없고 지금 선발되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 계획을 잡고자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 선발된 사람은 분야별로 우수한 사람을 총망라한 상태였다. 기획, 영업, 회계, 연구 개발 등 각자의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창립하여 사업을 경영했던 사람도 있었다.
말 그대로 회사를 처음부터 만드는 상황이었기에 우수한 사람들을 다방면으로 모집하려 하였다.
어찌보면 이렇게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모하고도 무모한 일이었다.
좋은 아이템을 잡아서 시작해도 열에 아홉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 사업인 상황에서 아이템조차 없이 막무가내로 사람을 끌어모아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망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초기의 거대한 투자 자금이 이런 리스크에도 ‘도전’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실패한다면 엄청난 손해를 감당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금 면접을 보러온 사람들도 연봉에 혹해서 온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무모한 도전에 한 번쯤 인생을 걸어보고 싶어서 온 경우도 있었다. 돈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강민의 돈을 통해서 실현시켜 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우선 1조 사람들은 40대 남성 3명과 30대 여성 1명, 20대 여성 1명이었다.
면접의 분위기는 신입 사원을 뽑는 면접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다들 사회적으로 이룬 것도 경력도 많았기에 신입 사원 면접과 같은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의 면접은 아니었다.
면접장 안의 7명은 마치 간담회를 하듯이 편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오셔서 좀 놀라긴 했습니다. 대화를 나눠야 하니 간단히 자기소개부터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가슴 쪽에 명찰이 붙어 있긴 했지만 이름뿐이었고, 나머지 정보는 강민과 유리엘을 제외하고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기소개부터 시작하였다.
40대 남성들이 먼저 말을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전일환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전자 회사 부장 출신이었고, 이차건이라는 자는 건축 회사의 차장 출신이었다. 이들은 각자 회사에서 이룬 자신의 성과들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나머지 한 명의 40대 남성은 조무회라는 사람으로 조그만 사업체를 경영하다 실패하여 지금은 건축 현장에서 노가다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사업에 실패했던 사유를 길게 설명했는데, 그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 말했다.
물론 그 천재지변에 대한 대비도 해야 했던 것 아니냐 묻는다면 그의 실수가 없다고는 못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가 이루었던 성과를 보았을 때 결코 그의 능력이 낮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30대 후반의 여성 최화숙은 조그만 화장품 회사의 CEO였는데 저가 화장품 컨셉으로 시장을 선도하다 중국 및 동남아의 저가 공세에 최근에는 사업을 정리하고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마지막 20대 후반의 여성 이미영은 중학교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뒤 20대의 어린 나이에 교수에까지 임용되었는데, 그보다는 도전적인 일을 더 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지원했다고 하였다.
평범한 경력과 경험이 아니었기에 각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강민이 가벼운 질문을 해도 각자의 전문 지식을 뽐내며 장황하게 대답하였다.
자기소개 후 한참 이야기가 이어지다 강민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다들 우수한 인재라 했는데 과연 듣던 대로군요. 모두 같이하는 것으로 하죠. 이번 달 말까지 신변을 정리하시고 다음 달 1일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강민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것을 본 강민은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일단 10조 원의 자금을 들여서 초기 사업을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향후 사업의 진행에 따라서 이것의 몇 배가 되는 돈도 투입할 수 있으니 혹시 생각하고 있는 분야의 사업이 있다면 돈과 관계없이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여 주시면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강민의 말에 다 들 눈을 반짝였다. 이곳에 온 사람 중 자신만의 사업을 하고 싶었으나 금전적인 한계라는 측면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자금을 사용할 수 기회를 준다니, 아마 대부분이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사람들의 표정을 본 강민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인력이 필요한 경우 10명 한도에서 재량껏 선발하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지금 인원으로는 사업을 추진하기 힘들 것 같으니 말이죠. 아, 그렇게 선발된 사람들의 연봉은 여러분 연봉의 반으로 하지요. 이 연봉은 어디까지나 한 해 동안만 유효한 것이고, 내년부터는 각자의 성과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연봉이 지급될 것입니다. 성과에 따른 성과급도 물론 지급될 것입니다.“
사람을 데려올 수 있다는 강민의 말에 조무회가 질문을 했다.
“열 명으로 한정되는 것입니까? 쓸 만한 사람들이 있는데 조금 더 데려오면 안 되겠습니까?”
“일단 열 명입니다. 더 필요한 경우에는 일단 창립하고,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시 판단해 보지요. 그리고 향후에는 회사의 성장에 따라서 공개 채용을 할 생각도 있습니다.”
조무회는 강민의 말에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없으시다면 다음 달 1일에 뵙겠습니다.”
이후 7조까지 면접이 모두 끝났다. 이번엔 김세훈 지부장이 장난질을 치지 않았는지 한 명도 스파이 기질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35명 중 악인의 마나 성향을 가진 3명을 합격에서 배제하고 나머지 인원에게 1조와 같은 내용으로 합격 통보를 내렸다.
그중 이번 면접에서 가장 연장자인 58세의 장태성은 별도로 남게 하여 면접 후 별도의 시간을 마련했다.
장태성은 월급쟁이에서 시작해 재계 순위 50위권의 회사를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대가로 결국 전 재산을 잃었고, 다른 곳에서 불러주는 곳이 없어 초라한 말로를 보내는 중이었다.
“장태성 씨, 제가 장태성 씨를 따로 부른 이유를 아시겠는지요?”
월급쟁이부터 시작해 대기업까지 만들었던 장태성은 잠시 생각하더니 상황을 파악하고 강민의 질문에 답했다.
“음,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신 것 아닙니까?”
그 역시 회사를 만들어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회사를 창업하는 사례는 전례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일반적인 경우에는 아이템을 잡고 혼자서, 필요에 따라 사람을 한두 명씩 구해서 쓰는 것이 상식적이었다.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많은 돈을 투입해 사업을 하려 한다면 창업보다는 기존의 조직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강민의 방식은 아이템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단지 돈으로만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장태성은 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해 줄 컨트롤 타워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을 했다. 특히 자신의 경력을 보았으면 충분히 나올 만한 제의였다.
“그렇습니다. 역시 예리하시군요. 저는 그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장태성 씨가 맡아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전략기획실장 정도의 직함이라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보시다시피 제가 아직 젊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사 경영에 대해 많이 미숙합니다. 때문에 장태성 씨에게 회사의 조직 구성부터 사업 추진 방향까지 전권을 위임해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