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27화 (27/203)

# 27

현세귀환록

027. 개입(6)

일단 강민은 김세훈 지부장에게 저 네 명을 내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곤 강민은 김세훈에게 말을 건넸다.

“지부장님, 제가 나이가 어려 보이지만 사람을 볼 줄 압니다. 저 사람들은 아닌 것 같군요.”

“아니 왜 그러시죠? 프로필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수한 인재들입니다. 유니온에서 같이 일하자고 해도 거부한 인재들인데 최고 대우를 약속한 강민 님의 말을 듣고 여기까지 왔지요. 무슨 사유로 아니라고 하는지요? 아까 보니 프로필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는 것 같던데…….”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사람을 ‘볼’ 줄 압니다. 저는 능력보다 믿을 만한 사람을 원합니다. 제 사람은 제 말을 듣고 움직여야지 제가 고용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모습은 보기 싫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민은 김세훈 지부장에 말에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김세훈은 강민의 무언의 압박에 깨닫고 말았다.

‘헉, 알아차린건가……. 아니, 어떻게…….’

김세훈의 표정에 강민은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사람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니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모두가 자리를 떠나고 김세훈 지부장은 벤자민 부총재가 기다리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벤자민은 김세훈의 자리에서 의자를 돌려 뒤통수가 보이게 앉아 있었는데 김세훈이 들어오자 천천히 의자를 바로 하며 말했다.

“김 지부장. 사람을 심는 것은 어떻게 되었나? 몇 명이나 선택되었지?”

“한 명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음? 왜 그런가? 나름 우수 인재들이라 하지 않았나?”

“우리 쪽 사람인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 그쪽 계통으로 일류라 하지 않았나?”

“그랬는데 강민은 그걸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더군요. 한눈에 알아차린 것 같았습니다.”

김세훈의 이야기를 들은 벤자민은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음…… 일단 사람을 심는 계획은 당분간 보류하게.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네, 부총재님.”

“그리고 오늘 일, 위윈회에 보고하는 것은 보류해 두게. 본부 차원에서 적절한 시기에 보고하겠네.”

“알겠습니다, 부총재님.”

“혹시 위원회의 감사관이 나서서 이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자네가 아는 사실을 밝히고 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내가 지시했다고 해도 좋네.”

“아니, 그렇게까지…….”

“아닐세, 자네 혼자 막기에는 사안이 너무 커.”

“알겠습니다.”

어차피 김세훈이 아는 것은 그들의 재력과 유리엘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 정도였다. 위원회의 감사관이 와서 사실을 파헤친다 할지라도 김세훈을 통해서는 그 이상 알기는 힘들었다.

‘그 남자 적어도 S급이야, 아니, 어쩌면 S+급일지도. 그리고 연금의 일족이라…….’

* * *

강서영은 일주일째 고민 중이었다. 강민이 말한 내용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서영에게 친한 친구인 김세나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서영아 요즘 무슨 일 있어? 계속 고민이 있던 것 같은데……. 혹시 수찬 오빠랑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응? 아, 우리 헤어졌어. 헤헷.”

“뭐? 그래서 요즘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거야? 왜 그랬대? 네가 헤어지자 한 거야? 아니면 오빠가? 뭐야? 말 좀 해줘 봐.”

“야, 하나씩만 물어봐. 헤어진 건 뭐 그냥 여차여차해서 헤어졌어.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네.”

“아, 그래. 그럼 그거 때문에 요즘 말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다녔던 거야? 야, 만났다가 헤어지고 그러는 거지, 뭘 그런 거로 그러냐. 괜찮아, 괜찮아. 이 언니가 다음에 좋은 자리 만들어줄게.”

“됐네요~ 너나 잘하세요.”

“야! 내가 뭐!”

“너 모태 솔로 아니었냐?”

“윽, 계집애. 그걸 건드리냐! 흥.”

“건드리는 게 아니고 네가 좋은 자리 운운하니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러는 거지. 유일하게 남은 우리 과 모태솔로!”

“야! 강서영!”

“히히히.”

강서영이 한창 과외를 할 때는 둘 다 모태 솔로로 철벽녀의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만 강서영이 연애를 시작하며 모솔녀라는 타이틀은 김세나의 차지로 돌아갔다.

160센티미터 중반대 정도의 보통 키에 아담한 체형의 김세나는 외모가 그리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직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김세나는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면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더 차갑게 굴었고, 먼저 좋다는 남자는 항상 그 마음을 의심하다가 결국 남자가 지쳐서 떠나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불문과의 몇몇 학생은 김세나가 동성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김세나의 그런 행동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몰랐지만, 강서영은 김세나의 가정환경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두 차례 이혼하며 겪은 일은 김세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 이후로는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무척 두려워졌다.

결국 김세나는 감정적으로는 안정적인 연애를 간절히 원하면서 이성적으로는 독신주의를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세나야, 나 헤어진 거 때문에 그러는 건 아냐. 사실 헤어진 뒤로 몇 번 연락 왔는데 받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연락도 없네. 근데 나 신기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

한수찬의 어머니가 그렇게 일을 벌이고 난 다음 날 한수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하지만 강서영은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아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였다.

강서영이 전화를 받지 않자 한수찬은 엄청난 장문의 문자를 남겼는데, 요약하면 ‘어머니가 좀 별난 구석이 있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내 사정을 좀 이해해달라, 그리고 어머니 몰래 다시 만나자, 만나다 보면 설득이 될 것이다’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식어버렸던 강서영은 한수찬의 문자에 완전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마마보이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문자의 어디에도 자신을 통제하려는 어머니와 맞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결국 강서영은 한수찬에게 그럴 생각 없고 앞으로 맞는 사람과 만나라는 간단한 답장으로 둘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 이후 몇 통의 전화와 문자가 더 왔지만 강서영은 한수찬을 차단해 버렸다.

“그래? 계집애,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독한 구석이 있다니까. 근데 그럼 왜 그러고 있어?”

“음……. 세나야, 넌 누가 너한테 10억을 그냥 쓰라고 준다면 어쩔 거야?”

“10억? 음, 일단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남는 건 저축하든가……. 헉! 설마 너 로또라도 당첨됐냐?”

“아, 아냐. 로또는 무슨.”

“아니야, 아니야. 강서영 너 외제 차 몰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오빠가 외국에서 돈 벌었다는 말도 거짓말 아냐? 네가 로또 당첨된 거 아니냐고!”

“아 참, 아니라니까. 오빠가 외국에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어서 앞으로 돈 생각 없이 나 하고 싶은 거 하라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뭐? 대체 얼마를 벌었길래? 아! 그럼 너네 오빠가 너한테 10억 준거야? 헐, 대박…….”

“아니, 아직은 아닌데 곧…….”

“뭐! 진짜로?!”

강서영은 김세나의 반응에 오빠가 10조를 줘서 이자로 매년 2천억을 쓸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하긴 나도 지금 믿기지도 않는 일이니…….’

김세나는 오빠에게 돈을 받으면 진짜 제대로 한 턱 쏘라는 말을 하며 강서영을 귀찮게 굴었다. 강서영은 결국 알겠다는 말을 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마 일반인에게 10억을 준다면 대부분 집이나 차를 사고 남는 돈은 저축한다는 평범한 대답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니면 해외여행을 얘기하거나, 돈 쓰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면 명품 옷이나 가방 등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억이 아니라 100억이라면, 아니, 100억이 아니라 1,000억이라면 과연 어떻게 사용할까?

누군가가 그랬다. 돈이 돈으로 보이는 건 30억 정도까지라고. 30억까지는 돈 모으는 재미가 그렇게 좋을 수 없는데 그 이상 넘어가자 돈이 아니라 그냥 숫자로 보인다고.

그만큼 강민이 강서영에게 제시한 돈은 비현실적인 숫자였다. 강서영은 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런 큰돈을 쓸 자신이 없었다.

‘그냥 오빠가 처음 말한 것처럼 야학에 지원이나 조금 해달라 하고 말아야겠다. 돈 벌려고 그렇게 아등바등했는데 막상 돈이 생기니 쓰지도 못하네. 나도 참…….’

* * *

“서영이는 어때요?”

강민은 유리엘의 뜬금없는 질문에도 맥락을 바로 이해한 듯 대답했다.

“아직은 체감을 못 하고 있더라고.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

“그렇죠. 돈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고요. 10조에 연간 2천억씩 주는 건 돈을 좀 써봤다는 사람한테도 까마득한 금액일 걸요?”

“아마 그렇겠지. 그냥 서영이의 그릇을 보고 싶었어. 돈으로 그 그릇을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돈이라는 제약이 없다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그릇인지 말이야. 뭐 스스로가 못하겠다면 내가 뒤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으로 충분하겠지.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무시 받을 일은 없을 거야.”

강민은 강서영이 뜻을 펴고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이었지, 걱정과 고민을 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강서영의 역량이 된다면 그것을 펼칠 만한 모든 것을 해주겠지만, 역량이 안 되는데도 무리하게 맡길 생각은 없었다.

강민은 강서영의 반응에 따라 복지 재단을 만드는 것은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그 스스로가 먼저 회사를 만들어 일반 세계에서 강서영의 힘이 되어주기로 생각했다.

훗날 강서영이 백수로 살지라도 대기업 회장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은 큰 힘이 되지 않겠는가.

“여하튼 오늘은 저번처럼 그런 장난질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이번에도 그렇다면 유니온에게 실망할 것 같아요.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니까요.”

강민과 유리엘이 이야기하고 있는 곳은 서울에 있는 유니온 그룹의 한국 지부였다.

남산에 있는 유니온의 한국 지부는 이능력자 세계의 한국 지부였고, 이곳은 일반 세계에서 초거대 글로벌 기업 유니온 그룹이라고 불리고 있는 곳의 한국 지부였다.

물론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조직이니 같은 조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둘은 엄연히 분리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니온의 통제하에 유니온 그룹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강민은 황금을 거래한 날 이후 김세훈 지부장에게 능력이 없는 일반인 중 업무 능력이 되는 사람으로 재추천을 부탁하였다.

벤자민 부총재의 언급도 있었기에 김세훈은 별도의 작업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강민의 부탁을 들어주려 하였다.

이능력자 세계의 유니온 못지않게 일반 세계의 유니온 그룹도 충분한 힘을 발휘하는 조직이었다.

일반 세계에서 더 큰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유니온보다 유니온 그룹이 더 막강한 집단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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