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현세귀환록
026. 개입(5)
강민의 존재감 발현은 길지 않았다. 이내 평상시처럼 존재감을 거둔 강민은 그의 존재감에 놀라고 있는 좌중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럼 금을 받으실 장소로 옮기시죠.”
“예, 예…….”
부총재와 함께 있어 자신감에 차 있던 김세훈 지부장의 말투가 며칠 전 강민의 페이스에 말렸던 그 때의 목소리로 돌아갔다.
[민, 굳이 검기를 보일 필요도 없겠어요.]
[그래, 힘을 보여주려 했는데 때마침 잘되었지, 뭐. 벤자민이라는 자도 A급은 되는 것 같은데 이 정도 기세를 봤으니 앞으로 조심하겠지.]
벤자민 부총재의 시험에 대한 대응으로 존재감을 발휘하였기에 검기를 발현하는 등의 별다른 시위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잠시 얼어 있던 김세훈 지부장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강민과 유리엘이 타고 온 엘리베이터의 키패드를 열어 조작했다. 그는 곧 키패드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강민, 유리엘, 김세훈 지부장과 벤자민 부총재까지 네 명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한참을 밑으로 내려가다 멈추었다.
그들이 내린 곳에는 축구장 열 개를 합친 부지보다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공터는 마법으로 밝혀놓았는지 전등 없이도 대낮처럼 환하여 지하에 내려온 것 같지 않았다.
남산의 지하에 이런 공터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마법적 조치가 들어갔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유리엘이 심어로 강민에게 말을 건넸다.
[공간 왜곡 마법이 시현되어 있네요. 마나 흐름을 보니 정말 깔끔한데요? 마법진을 동원했다고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6서클은 되겠어요.]
“여기에 금을 놓아주시면, 확인되는 대로 유니온 카드와 연계된 통장에서 120조를 인출할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유리 부탁해.”
[민, 아공간 사용을 보여도 되겠어요?]
[어차피 힘을 보이려고 했잖아. 굳이 마법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도 숨길 필요는 없겠지.]
강민의 말에 유리엘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튕겼다. 유리엘의 손짓에 거대한 마나 유동이 발생하더니 밝은 공터 가운데 커다란 검은 홀이 생겨났다.
파지직!
여기에 펼쳐진 마법과 유리엘의 아공간이 부딪치는지 마나 충돌에 따른 스파크가 발생하여 약한 소음을 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 검은 홀은 나타남과 동시에 이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 홀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검은 홀이 사라진 곳에는 엄청난 양의 금괴가 누런빛 광채를 빛내며 존재하고 있었다.
김세훈 지부장과 벤자민 부총재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둘이 놀란 이유는 각각 달랐는데 김세훈 지부장은 그간 무투형 능력자로 생각한 유리엘이 마법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 놀랐다.
그리고 벤자민 부총재의 놀라움은 더욱 컸는데 경악한 표정으로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아니, 공간 왜곡이 펼쳐진 상태에서…… 어떻게 물질 전송을……. 그렇다면 좌표가 맞지 않을 텐데, 어떻게……. 아니, 이건 물질 전송의 마나 흐름이 아닌데…….”
한동안 중얼거리며 마나의 흔적을 더듬던 벤자민 부총재는 더욱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외치듯 말했다.
“아공간! 이 흔적은 아공간의 발현! 헉, 이 정도 규모로 아공간을 만들어내다니…….”
그도 아공간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차량 하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를 유지할 뿐이었다.
더 크게 아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공간을 늘리는 데도 엄청난 양의 마나를 사용하여 허차원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여야 하므로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었다.
하물며 방금 유리엘이 연 아공간의 크기는 어느 정도의 마나가 소모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공간 자체는 3서클의 마법이었지만 그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마나량의 차이였다.
그런데 유리엘이 방금 오픈한 아공간의 규모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마법사 수십 명이 함께해도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엄청난 규모였다.
사실 아공간의 마법은 차원마다 그 활용도와 규모가 달랐다.
원차원과 허차원간의 차원막의 두께에 따라서 아공간을 확보하는데 사용되는 마나량이 달랐는데, 태생적으로 아공간을 열 수 있었던 유리엘은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얼마나 어렵게 아공간을 생성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전 차원에 있던 마법사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아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였기에 이 정도 규모의 아공간을 오픈하는 것에 대한 벤자민의 경악을 눈치채지 못했다.
단지 김세훈 지부장과 같이 무투형 능력자라고 생각했던 유리엘이 마법을 쓰는 것에 대한 놀라움을 표시한 것 정도로 이해하였다.
벤자민 부총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어떤 방법으로 마법을 수련했는지 모르겠지만 메르딘이라도 이정도 아공간은 불가능할 것이야. 전설의 칼로파라면 몰라도……. 그럼 어떻게 저런 아공간을…….’
벤자민은 한참 동안 생각을 이어나갔다.
‘아, 그렇지! 저 황금! 혹시 과거에 사라진 연금의 일족인가……. 그래! 연금의 일족은 아공간을 자유로이 다뤘지. 그렇군, 그래. 저자들은 연금의 일족이거나 그들의 유산을 얻었군. 그렇기에 저렇게 아공간을 다루면서 정도 규모의 황금이 나올 수 있었군! 그게 아니라면 저 아공간은 설명이 불가능하지. 총재님께 보고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늘었는데. 연금의 일족이 출현하다니……. 음, 위원회에는 알리면 안 되겠군.’
벤자민 부총재는 한참을 잘못 짚고 있었지만 강민과 유리엘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사실 유리엘의 아공간은 일반 마법사들이 생각하는 아공간과는 달랐다. 단순 마나 기반의 마법적인 아공간이라면 차원 이동을 할 때마다 리셋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엘의 아공간은 그녀의 영혼과 함께하는 특수한 아공간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영혼이 존재하는 한 어디서든 그녀와 함께 하는 무한의 공간이었다. 벤자민이 생각하는 연금의 일족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동시키기 편하게 금괴 형태로 된 것들만 준비했어요.”
“고마워, 유리엘.”
강민과 유리엘의 대화에 김세훈 지부장이 놀라서 물었다.
“그, 그럼, 이것보다 더 많은 금이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나중에 필요할 때 또 연락드리지요. 혹시 더 이상 처분할 ‘역량’은 안 되시나요?”
강민의 말에 김세훈 지부장은 벤자민 부총재를 바라보았다.
김세훈 지부장의 눈길을 받은 벤자민 부총재는 아공간에 놀랐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유니온의 힘은 그 정도가 아니지요. 시간이 다소 걸리긴 하겠지만 이것보다 많은 양도 얼마든지 처리가 가능합니다.”
어차피 유니온의 주요 수입원은 마나 물품의 판매였고 지금 유리엘이 꺼낸 금도 시장에 매각할 것이 아니라 대부분 마나 물품을 생산하는 데 원재료로써 사용될 것이다.
최근 이계의 마수들이 출현하는 빈도가 10년 전보다 급증한 상태라 마나 물품에 대한 수요도 급등하였기에 그에 발맞추어 금의 사용량도 상당히 늘어났다.
사실 최근 몇 년간 금의 가격이 계속 고공행진을 한 것에는 마나 물품의 소비가 주요 이유 중의 하나였다.
“벤자민 님의 말씀만 믿겠습니다. 조만간에 또 뵐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거래는 완료된 것인가요?”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벤자민은 공간 왜곡이 걸린 공간을 향해 마나를 집중했다. 잠시 마나의 반응을 느끼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강민에게 말했다.
“순금 삼천 톤 확인했습니다.”
말을 마친 벤자민은 간단한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었다. 벤자민의 주문과 함께 거대한 공간이 점점 줄어들더니 금과 함께 사그라져 없어졌고 남아 있는 공간은 축구장 하나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공간 왜곡의 기초에 텔레포트를 깔아놨군요. 고정 좌표 방식이니 이 방식으로는 생명체를 이동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여기의 마법 수준도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네요.]
[그래, 마나의 흐름이 정제되어 있는 것이 꽤 오래전부터 마법이 존재했던 것 같아.]
마법을 마친 벤자민이 강민에게 말했다.
“거래는 완료되었습니다. 강민 님 명의의 유니온 계좌에서 언제든지 120조 인출과 이체 가능하실 겁니다. 백억 단위 이상을 인출하실 때는 저희 유니온 뱅크로 가시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 없을 겁니다. 저희는 지점별로 공간이동 마법이 있으니 일시 출금하셔도 문제가 없을 테지만 일반 은행은 그렇지 않거든요. 하긴, 어차피 현금을 출금하실 일은 없으실 것 같군요. 허허.”
“그렇군요.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올라가시지요.”
거래를 마치고 올라가는 동안 강민은 김세훈 지부장에게 전에 요청했던 사람을 구하는 일에 대해 물어봤다.
“혹시 말씀드렸던 사람들은 구해졌나요?”
“네 사람 정도 추려놨습니다. 올라가면 아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요? 어떤 사람들인가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 보시고 판단하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괜한 선입견이 생기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강민과 김세훈이 이야기하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응접실에 도착하였다.
응접실에 도착하자 김세훈 지부장은 대기하고 있는 직원에게 요청한 사람들이 도착했는지 물었고, 직원은 옆 대기실에 대기하고 있음을 알렸다. 직원의 말을 들은 김세훈은 벤자민과 일행에게 말했다.
“부총재님, 잠시 제 방에서 쉬고 계십시오. 저는 강민 님과 남은 일이 있어서요.”
“그러시죠. 그럼 강민 님, 오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저도 깔끔한 거래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군요. 앞으로도 좋은 거래 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 유니온에 연락을 주세요. 그리고 유리 님도 안녕히 들어가시길.”
벤자민의 인사에 유리엘은 고개를 숙여 답했다. 벤자민은 정중히 강민과 유리엘에게 인사를 하고 김세훈 지부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벤자민이 들어간 후 강민은 김세훈과 함께 응접실 옆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긴 테이블이 있었고 네 명의 사람들이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여기 이 사람들의 프로필입니다.”
김세훈이 건네준 프로필에는 이름과 신체 사이즈, 경력 등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강민은 프로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유리엘, 역시 그렇지?]
[네, 그러네요. 약간씩 차이는 있어 보이지만 이들이 보이는 마나 성향은 전형적인 스파이네요.]
강민과 유리엘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마나의 성향에 따른 사람의 성향 또한 개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김세훈 지부장이 선보인 4명의 마나 성향은 과거에 많이 보아왔던 전형적인 스파이의 마나 성향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프로필은 볼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