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24화 (24/203)

# 24

현세귀환록

024. 개입(3)

[민도 영락없는 오빠네요. 호호호.]

[오랜만에 보는 가족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나 없는 10년간 고생 많이 했잖아.]

[음…… 그래요. 어차피 서영이 진정되면 대강 전후는 말해줄 테니 조금 빨리 알았다고 생각하죠.]

말을 마친 유리엘을 곧 마나를 일으켜 강서영의 마법 팔찌의 마나와 감응하였고 어제의 기록을 빠르게 살폈다.

“음……”

이윽고 사정을 알게 된 유리엘은 강민에게 강서영과 한수찬의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간략히 말해주었다.

[결국 돈 때문인 거네. 서영이도 여기 기준으로 충분히 많은 돈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나에 대해서 조금만 말했더라면 저런 대우는 받지 않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서영이가 그렇게 사치 부리는 애가 아니잖아요. 아마 민이 준 카드도 거의 쓴 적이 없을 거예요. 과외 하나 남긴 것도 자기 용돈 하려고 남긴 아인데요 뭘. 아마 민이 가진 재산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저런 말에도 반응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서영이는 민의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모를걸요?]

[일상을 지켜주려다 오히려 상처를 입힌 건가.]

강민은 축제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가족의 일상과 가족의 보다 나은 삶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고민했었고, 아직은 일상에서 오는 행복감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에 따로 움직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없는 것과 다름없다 할 수 있다.

일상은 괜찮겠지만 행여 재력을 지닌 이들과 엮이면 다시금 재력 때문에 무시당할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하고자 강민이 재력을 보이면 강민이 능력을 보이는 것과 다른 의미로 가족의 일상이 깨질 가능성이 컸다.

강민은 거듭 고민하다 입을 뗐다.

[유리엘, 전에 말했듯이 힘을 좀 보여야겠어.]

[전엔 일단 보류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마나 능력을 보이는 것은 보류했지만 재력은 어느 정도 보여야겠어. 일반 세계에서는 재력이 오히려 마나 능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니까 말이야. 이능 세계도 아닌 일반 세계에서까지 굳이 능력을 숨겨서 이렇게 가족들이 무시당하게 하고 싶진 않아.]

[민도 알죠? 모난 돌은 정 맞는 걸요. 일반 세계라도 두드러져 보이면 기존의 기득권층을 건들 테고 결국 마나 능력도 보여야 할지도 몰라요.]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 일이 아니라도 어차피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조금 힘을 보일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야, 뭐.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보이려고요?]

[딱히 한도를 정하진 않았어. 우선 어머니와 서영이하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마나 능력을 보이는 것은 이능 자체와 무관한 가족에게 말할 문제가 아니었지만, 재력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받아들여야 할 문제였기에 강민은 독단적으로 판단하기보단 가족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또한 자신이 얼마만큼의 재산이 있는지 정도는 어머니와 서영이가 알았으면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돈 때문에 무시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저녁이 되자 강서영도 어느 정도 진정했는지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왔다.

한미애는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자리를 비웠기에 강민, 유리엘, 강서영 세 명이서 저녁을 함께했다.

우느라 퉁퉁 부은 얼굴이었지만 애써 괜찮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강서영이 강민은 안쓰러웠다.

유리엘의 말처럼 어차피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 인간관계라지만, 서로의 마음이 식은 것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돈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가 반대해서 헤어진 것이니 강서영이 마음을 다치지 않았을까 염려스러웠다.

“서영아, 괜찮아?”

“언니, 저 이제 괜찮아요. 한바탕 울고 났더니 상쾌해졌어요.”

강서영이 애써 웃어 보이는 것을 보니 강민은 다시금 마음이 불편했다. 과거 여러 지인을 만들기는 했지만 가족과는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수찬이하고 잘 안 된거야?”

“네, 그렇게 됐어요. 헤헷.”

“이유를 물어도 될까?”

“성격 차이? 히힛, 연예인들이 성격 차이 운운할 때 핑계 댈 것이 그것뿐이냐는 생각이었는데 저도 같은 말 하네요. 그냥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어요. 뭐 이제 만난 지 두 달밖에 안 돼서 상처 입고 그런 거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언니.”

유리엘과 강서영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강민은 강서영에게 말했다.

“서영아, 혹시 전에 오빠가 했던 말 기억하니?”

“무슨 말?”

강서영은 강민이 한수찬과의 일을 물어볼까 봐 살짝 긴장했다가 과거의 일을 물어보니 긴장을 풀며 반문했다.

“과외 그만두게 하면서 했던 말. 네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생각해 보라고 했잖아.”

“아, 그 말……. 아직 확실히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는데. 지금 당장 이야기 해야 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오빠가 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던 이야기를 네가 혹시 너무 좁게 생각할까 봐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어서.”

“먹고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라는 말 아녔어?”

“아니야.”

“그럼?”

“오빠는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회사를 다 사고도 남을 만큼 돈이 있어. 그러니까 돈이 얼마나 들던, 돈에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라는 이야기야.”

“뭐?!”

가진 귀금속을 현금화한다면 강민은 세계 전체를 쥐락펴락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말한 금액만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세계부자의 1위부터 10위까지의 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으며 중동의 유력 석유 가문의 재력보다도 많은 돈이었다.

강서영은 강민의 발언에 계산이 안 되는지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서민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던 강서영은 지금 강민이 말하는 돈이 얼마만큼의 돈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회사 전체를 산다고? 그…… 그게 가능한 일이야?”

“그래, 충분히 가능하지.”

강서영은 그래도 안 믿긴다는 듯 유리엘을 바라보았다. 강서영의 시선을 받은 유리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민의 말에 동조해 주었다.

“어, 어떻게 그런 돈을…….”

“어떻게 갖게 되었냐는 불필요한 이야기지. 아, 기준에 맞지 않는 불의한 돈은 아니니 걱정 말고. 이 돈을 앞으로 어떻게 쓰냐가 중요한 것이지. 지금까지 오빠는 너랑 어머니가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살기를 바랐어. 하지만 생각해 보니 단순히 돈 걱정 없이 산다는 것은 너무 좁은 생각 같아. 난 너랑 어머니가 돈 걱정 없는 것을 넘어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원해.“

강민은 굳이 한수찬의 일을 언급하진 않았다. 강서영의 표정을 보니 나름 홀가분하게 털어 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강서영의 말대로 고작 두 달 만났는데 한수찬 어머니의 그런 행태까지 넘어갈 애정이 형성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유리엘의 말마따나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점점 올바른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인간관계에 성숙해져 갈 것이다.

지금 한수찬 어머니의 행태를 보면 강민이, 아니, 강서영이 재력을 보이면 어떤 태도로 나올지도 예상할 수 있었다.

자존심이 있다면 속으로 아까워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다시 들러붙으려 할 것이다. 만일 들러붙으려 한다면 자신의 말처럼 구질구질한 상황이 되겠지만 말이다.

강서영은 강민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고 강민은 그런 강서영을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강서영의 생각이 길어지자 강민이 하나의 제안을 했다.

“서영아. 아직은 돈의 규모도 감이 안 올 것 같고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더더욱 모를 것 같아. 그래서 오빠가 우선 생각한 방법이 있는데.”

“어떤 방법?”

“전부터 네가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한 것을 알아. 과외 그만두고 나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산동네에 야학도 나간다며?”

“알고 있었어?”

“내 동생 일인데 내가 모르면 안 되지, 하하.”

“민, 남자 친구 있는지도 한동안 몰라놓고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녜요?”

확실히 그 부분에는 둔감했던 강민은 유리엘의 핀잔에 머리를 긁적였다.

“여튼, 오빠가 우선 네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줄게. 일단 10조 원 정도 지원할 생각이야. 계속 사업을 원칙으로 해야 할 거니 여기서 나오는 이자를 가지고 네가 원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생각해 봐.”

“10조 원?”

강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강서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10조 원이면 적극적으로 투자를 벌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단순 이자수익으로만 연간 2천억 이상은 생길 거야. 서영이 네가 사업을 벌이는 규모에 따라 추가 출연할 수 있으니 아까 말한 대로 돈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봐. 어차피 지금 더 큰 금액을 말해봤자 사용도 못 할 것 같으니 일단은 이정도로 시작해 보자.”

아무 말 없이 강민을 바라만 보고 있는 강서영을 향해 강민은 말을 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일단 네가 하는 야학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고, 거기에 좋은 선생들을 고용할 수도 있겠지. 아무래도 규모가 커지면 자원봉사자만으로 운용하기는 힘들 테니까. 좀 더 생각해 보면, 공부에는 열의가 있지만 형편이 안 되어서 공부를 할 수 없는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고, 더 크게 생각하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설립할 수도 있겠지. 대학 설립은 2천억으로는 부족할 테니 계획만 생기면 내가 추가 자금은 출연해 줄게.“

강서영은 야학을 위한 공간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대학의 설립까지 나아가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한참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가 강민은 대화의 흐름과 관계없는 질문을 하였다.

“서영이 넌 밖으로 드러나고 싶어 아니면 평범히 살고 싶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네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서 복지 정책을 펼치면 네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 거야. 그렇게 되면 네 이름은 어느 유명 연예인 못지않게 유명해지겠지. 어떻게 보면 일상생활은 사라질 수도 있어.”

강서영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며 고민에 잠긴 듯 했다. 강민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너도 유명 연예인들을 봐서 알겠지만 일상이 없이 공개되는 삶은 상당히 피곤할 거야. 물론 연예인보다는 덜하겠지만 어린 나이에 그 정도 재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슈가 될 만한 일이지.”

강민의 말에 강서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강민은 말을 이었다.

“만약 네가 그런 게 싫다면 표면에서 네 이름은 감추고 재단을 컨트롤 하게 해줄 수도 있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네게 맡길게. 다만 이건 알아줘. 어떤 경우에도 네가 무시받을 일이 생기는 것은 오빠가 싫다. 네가 구체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대강 생각해 봐도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고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면 좋은 상황으로 헤어진 것은 아니겠지.”

강민은 굳이 강서영의 상황을 살펴서 알게 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강민의 말처럼 조금만 추측해 봐도 좋은 상황으로 헤어진 것이 아님은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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