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21화 (21/203)

# 21

현세귀환록

021. 축제(5)

김창민이 알아보니 총 열네 명의 인원 중 자신을 포함한 5명이 스폰을 원했고 유선 쪽이 두 명, 은선 쪽이 세 명이었다.

김창민은 상대적으로 성숙해 보이는 유선 쪽에 나섰다.

유선과 은선이 간단히 음료를 마시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들은 간단히 가위바위보로 우선권을 정했고, 김창민은 유선의 스폰에 대한 우선권을 얻었다. 은선에 대한 우선권은 약간 험상궂게 생긴 덩치 이형태가 얻었다.

우선권이 결정되자 김창민이 그녀들에게 말했다.

“저기 옆에 별실이 있는데 거긴 분위기가 더 좋아요. 한번 가 보실래요?”

“그래요? 언니, 별실도 있대. 여기 장난 아니다, 그치? 학교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어.”

다들 매너가 좋고 분위기 또한 좋았기에 둘은 큰 의심 없이 별실로 자리를 옮겼다.

별실은 연회장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고급아파트처럼 꾸며져 있었다. 별실에는 유선, 은선 말고는 김창민과 이형태만 들어갔다.

“이야, 이 과는 뭐하는 데길래 이런 곳까지 있는 거예요?”

은선이 신기해하면서 김창민에게 물었다. 김창민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형태에게 시선을 주었다. 성질 급한 이형태가 대놓고 은선에게 말했다.

“대충 시세는 알죠? 여튼 그쪽 참 맘에 드네요.”

“시세요? 무슨 시세 말씀이신지?”

“너무 모른 척할 필요 없어요. 창민이 말 들으니 어느 정도 알고 왔다는 거 같더만.”

“알고 오긴 뭘 알고 와요?”

“야, 김창민. 이게 뭐야? 알고 왔다며?”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느낀 유선과 은선은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선 씨, 은선 씨 잠시만요.”

처음 자신들을 이끌었던 김창민이 나타나자 둘은 잠시 멈췄다.

“여기 스폰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

“스폰요? 무슨 소리예요? 학교 구경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학교 구경? 하. 내숭 그만 떨고 이제 그냥 말하지?”

“창민 씨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요. 은선아, 가자.”

김창민이 어이없어하며 말을 내뱉자 유선이 은선을 이끌고 나가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이형태가 앞을 가로막고 은선의 팔을 잡았다.

“악!”

“아 쌍, 그냥 가면 어떡하냐?”

“왜, 왜 이러세요……. 살려주세요……!”

험상궂게 생긴 이형태가 인상을 쓰며 은선의 팔을 잡아끌자 은선은 겁에 질려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런 은선을 보면서 유선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김창민에게 말했다.

“무, 무슨 이유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보내주신다면 여기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그러니 우리를 보내주세요.”

유선의 말에 김창민은 잠시 갈등했다.

“야, 형태야.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냥 보내주자. 스폰하러 온 거 아니라잖아.”

“아, 몰라. 네가 일 처리 똑바로 했으면 이런 일 없잖아. 난 이미 꼴렸다고, 새꺄.”

이형태는 일광저축은행 사주의 아들로 기부금을 입학하여 한국대학교에 들어온 학생이었다.

이 일광저축은행은 조직폭력배 일광회의 산하 기관으로, 이형태는 학생이라지만 사실 조폭에 더 가까웠다.

그동안 벌였던 사건들은 다 피해자와 합의를 했기 때문에 기록에는 남지 않았지만 상당한 전과를 갖고 있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물론 자유 전공 학부생들에게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가끔 이렇게 눈이 돌 때는 말릴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고민하는 김창민에게 이형태는 말했다.

“야, 얘네들 연예인이라며? 벗겨서 사진 좀 찍어두면 함부로 알리지는 못할 거야. 끝까지 고소한다 하면 같이 술 마시다가 동의하에 했다고 우기면 되지. 여기까지 따라 들어왔는데 정황상 합의하고 한 것으로 처리할걸? 법조계에 좋은 친구들도 많잖아. 크큭.”

이형태답지 않게 머리를 굴려서 나온 의견에 김창민은 상당히 흔들렸다.

“그래, X발! 안 그래도 나도 꼴렸어. 이리와!”

김창민은 유선을, 이형태는 은선을 거실에 넓게 펼쳐진 소파 위에 눕혔다.

별실에는 세 개의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지만 둘은 방으로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난교(亂交)를 했던 경험도 많았기에 오픈된 곳에서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으악!”

거친 남자들에게 눌린 두 여성은 적극적으로 저항했지만,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고 비명과 함께 살려달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야, 적당히 반항해.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냐? 강제로 당하는 것보단 그래도 돈이라도 받고 하는 게 낫지 않아?”

강제로 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이형태와는 달리 김창민은 강제로 하는 것보단 호응을 해주는 관계를 좋아했기에 그래도 마지막까지 유선을 설득했다.

“개소리하지 마! 내가 반드시 너네 감방에 처넣고 말 테야! 반드시!”

유선은 독기 품은 눈으로 김창민을 쏘아봤다. 김창민은 뜨끔했지만 욕정이 이성을 이겨냈기에 유선의 옷을 뜯다시피 벗기려 했다.

“악!”

김창민의 얼굴을 뇌리에 새길 듯이 쏘아보던 유선은 옆에서 들리는 비명에 은선에게 고개를 돌렸다.

은선은 입고 있던 옷이 모두 찢어져 있는 상태였다. 은선이 온몸으로 거부하며 반항했지만, 이형태는 굴하지 않고 손찌검까지 하며 그녀를 겁탈하려 했다.

“이년아 정도껏 해. 더 맞기 싫으면.”

뺨을 맞은 은선은 겁에 질려 더 이상 반항도 못 하는 채로 벌벌 떨고 있었고, 유선 역시 몸을 뺏길 수밖에 없다는 수치심과 무력감에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쾅!

굉음과 함께 거실 전면 유리창이 거미줄과 같은 균열을 일으키며 거실로 넘어졌다.

자동차 유리와 같이 필름의 이중 유리라 산산이 조각 나서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유리가 통째로 거실에 쓰러졌다. 그리고 한 인영이 나타났다.

“뭐야?”

“X발, 뭐야!”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은선을 제외한 세 명은 굉음이 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긴 뭐야, 저승사자지.”

그 인영은 강민이었다.

* * *

강민은 경영학과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는 벌칙에 걸렸다. 근처 매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살 요량으로 여유롭게 걷던 중이었다.

사실 강민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 이유는 학생회의 귀여운 음모 때문이었다.

유리엘이 주점에 들어오자 주점에 손님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것을 알아챈 경영학과 학생회가 유리엘만 남기기 위해 수작을 부렸던 것이었다.

물론 뒤에서 속삭이며 귀여운 계략을 꾸민 것을 강민과 유리엘은 알아차렸지만 속아주었다.

경영학과 학생들 대부분은 둘이 부부인 것을 알았지만 타과생이나 외부인은 잘 몰랐기에 유리엘의 미모를 활용하여 매출을 올리려는 심산이었는데, 강민이 있으면 그것이 힘들 것 같으니 아이스크림을 운운하며 강민을 보냈던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주점을 나왔던 강민은 급할 것도 없어 천천히 중앙도서관에 있는 매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 건물에서 비명이 들려 여기까지 움직인 것이었다.

사실 일반인이었다면, 아니, 웬만한 능력자였어도 밀폐된 공간에서 나는 소리라 들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강민은 특수한 능력으로 막은 것이 아닌 이상 반경 1㎞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대부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에 은선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강민은 이곳에서 정의의 사도인 양 모든 악을 해결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과거에 [정의실현]을 행동 양식으로 세웠던 차원에서 모든 악을 척결하려고 했던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인간이 희로애락의 감정과 자유 의지를 지닌 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모든 범죄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하며 깨달았다.

그렇기에 나중에는 그곳에서도 큰 범죄만 척결했을 뿐, 결국 사소한 범죄는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적응]과 [은둔]을 행동 양식으로 삼는 이곳에서 모든 범죄에 관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눈감을 정도로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강민처럼 힘이 있고 기준이 있는 강자는 오히려 눈앞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참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힘이 있고 의지가 있는데 왜 불의를 참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강민은 애써 범죄를 척결하지는 않겠지만 눈이 가는 범위, 손이 닿는 범위에서 벌어지는 범죄에는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이번에도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는 곳에 잠시 집중해 보니 그곳은 명백한 성폭행 현장이었다. 강민의 몸이 절로 움직였다.

강민의 등장에 잠시 얼떨떨했던 이형태는 욕설을 내뱉으며 강민을 협박했다.

“이 새끼야, 여기가 어딘지 알고 들어온 거야! 당장 나가!”

이형태는 욕정에 취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지 강민이 거실 유리를 박살 내고 들어왔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강민을 쫓아내고 하던 일을 마무리 하고 싶어 했다.

김창민은 깨어진 유리를 보고 정신을 차렸는지 말을 더듬으며 강민에게 말했다.

“어…… 어떻게 하신 건지……. ”

“일단 떨어지고.”

말과 함께 손을 흔들어 김창민과 이형태를 유선과 은선에게서 떼어냈다.

둘은 허공에 떠오르더니 벽에 퍽하고 부딪힌 후 떨어졌다.

그리고 거실의 테이블보를 털어 아직도 멍하니 정신이 나가 있는 은선에게 둘러줬다.

은선은 아직 혼비백산한 상태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유선이 자신의 뜯어진 옷을 추스르며 강민에게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흑흑…….”

그녀는 감사 인사를 하면서 안도감이 들었는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자, 아가씨는 이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어요?”

둘 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으면 적당히 처리하고 그녀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다음 마무리 지었겠지만, 유선이 정신을 차리고 있었기에 그녀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강민의 물음에 유선은 잠시 고민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신고를 한다고 해도 강간미수에 그친 김창민과 이형태가 무거운 벌을 받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송에 휘말린다면 이제 갓 데뷔한 자신들의 이미지도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들었다.

하지만 뺨을 맞아 얼굴이 발갛게 부어오른 채 넋이 나가 있는 은선을 보니 어떤 식으로든 벌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강민의 비현실적인 힘과 좌중을 지배하는 아우라를 보고 나니 무리한 요구라도 이루어질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유선은 생명의 은인에게 또 부탁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강민이 먼저 물어보았기에 망설인 끝에 대답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을 못 하게 해주세요…….”

“그러죠.”

강민은 가벼운 물건을 옮겨달라는 부탁을 들은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다시 손을 들어 김창민과 이형태를 가리켰다.

우당탕탕.

강민의 손짓에 따라 거칠게 날아온 둘은 거실 테이블을 박살 내며 나뒹굴었다.

“으, 윽……. 우리를 어쩔 셈이요?”

“윽……! 이대로 물러간다면 우리도 일을 크게 만들지 않겠다.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이러는 거야? 일광회에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형태는 본성을 숨기지 못하겠는지 되려 강민을 협박하려 들었다. 이형태의 말에 가소롭다는 미소를 살짝 띤 강민은 그들의 중심부에 마나를 쏘아냈다.

“악!”

“헉!”

한마디씩의 비명이 김창민과 이형태에게서 새어 나왔다. 둘의 중심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둘은 바지 속을 열어보진 못했지만 아마 불구덩이 속에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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