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현세귀환록
011. 대학(3)
“아무튼, 내일이면 입학인데 기분이 어때? 28살의 신입생! 으으, 노땅이라고 아무도 안 놀아줄 수도 있어~ 호호호.”
“아무도 안 놀아주면 유리하고만 놀지 뭐.”
“나도 안 놀아주면요?”
“뭐라고?”
강민의 과장되게 충격받은 듯한 얼굴이 우스워 보였는지 강서영과 유리엘은 웃음을 터뜨렸고 한미애는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오늘 차 인도받기로 했지? 내 차가 생긴다니 가슴이 다 설레네, 히히. 오빠, 고마워.”
“서영아. 근데 그 차면 되겠니? 더 좋은 차 몰아도 돼.”
힘들게 살아온 한미애와 강서영에게 뭐든 더 좋은 것으로 보답을 해주고 싶은 강민의 마음이었다.
“아냐, 그냥 국산 경차 살랬는데 오빠가 하도 안전 문제를 말하니까 저걸로 바꾼 거지. 사실 저것도 난 부담스럽다고. 학교 가면 애들이 뭔지 물어볼 텐데, 대답하기 곤란하기도 하고…….”
“그냥 10년간 사라졌던 오빠가 외국에서 성공했다고 그래.”
“안 그래도 그런 식으로 둘러대고 있네요. 흥.”
수능이 끝나고 겨울방학 동안 네 가족은 모두 운전면허를 땄고, 각자 한 대씩 차를 샀다.
강민은 유리엘과 함께 다니니 둘을 위한 스포츠카 한 대를 구매했고, 패밀리 카로 고급 SUV를 한 대 별도로 구매했다.
한미애와 강서영에게도 차를 선물하였는데 극구 국산 경차만 탄다는 둘에게 안전 문제를 들먹이고 나서야 외제 차를 사줄 수 있었다.
그렇게 고른 차는, 한미애는 큰 차는 싫다며 벤츠 B200을 골랐고, 강서영은 BMW 미니쿠퍼를 골랐다.
개인용 차로 페라리 스파이더, 패밀리카로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래피를 고른 강민이 무색해질 정도로 한미애와 강서영은 큰돈 쓰는 걸 싫어했다.
“엄마, 학교 다녀올게!”
“어머님, 저도 다녀올게요. 첫 등교라니 기분이 묘하네요.”
“어머니, 어머니도 집에만 계시지 말고 근처 백화점에 문화 센터 다니시거나 예전 친구분들 만나고 그렇게 하세요.”
“이놈아,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직은 집에서 한가롭게 혼자 쉬는 게 좋아. 나중에라도 생각나면 그렇게 할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어서들 다녀와.”
“네!”
강민과 유리엘은 페라리 스파이더로, 강서영은 미니쿠퍼로 각각 등교했다.
강서영은 곧장 첫 강의를 들으러 갔고, 강민과 유리엘은 입학식을 가야 했으나 대학의 입학식은 큰 의미가 없기에 곧바로 첫 강의가 시작될 상경대 건물로 갔다.
강서영의 미니쿠퍼는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잘사는 집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차였기에 주위의 시선을 받는 정도가 덜했지만, 강민과 유리엘의 페라리는 조금 달랐다.
웬만큼 사는 집 학생들도 몇억씩 하는 페라리는 쉽게 살 수가 없는 차였기에 페라리가 상경대학의 주차장에 들어서자 많은 학생이 누구의 차인지 싶어 페라리를 주목했다.
강민과 유리엘은 수업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은 것을 확인하고는 차를 주차한 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자 주위의 학생들이 다소 거리를 두고 강민과 유리엘에게 시선을 주목했다.
“야, 저기 누구야? OT 때 못 본 거 같은데?”
“글쎄, 신입생은 아닌 것 같은데? 여자 쪽은 모르겠는데 남자 쪽은 나이가 좀 있어 보인다. 복학생인가?”
“근데 우리 과 학생 맞아? 전과한 건가? 처음 보는 얼굴 같아서…….”
“헉! 중도 여신이다!”
한 무리의 남학생이 유리엘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지난 여름방학 때 유리엘을 본 건지 중도 여신이라는 언급을 하며 아는 체를 했다.
“중도 여신? 아~ 그 소문만 무성하던 중도 여신?”
“뭐? 네가 하도 중도 여신 이야기해서 2학기 내내 중도 들락거렸는데 한 번도 안 왔잖아.”
“그래! 근데 지금 저기에 있잖아! 역시 연예인보다 이쁘네.”
“와, 진짜 예쁘네. 근데 여기 있는 것 보니 우리 과 학생인가?”
“작년에 중도에 나타난 이후 중도 여신 수소문해 봤는데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라던데?”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우리 학교로 편입했나? 설마 재수나 장수생인가?”
그들은 강민과 유리엘의 정체에 대해서 분분한 의견을 나눴는데 그것은 이 남학생들의 무리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몇 차례 왔었으나 강민과 유리엘은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참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각각의 무리를 이루면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다른 신입생들과는 달리 강민과 유리엘은 어느 무리에도 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별로 낄 생각도 없었다.
굳이 학교 생활에 뜻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한미애의 바람에 따라서 학벌이라는 타이틀을 따고 싶었던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리엘은 강민의 뜻을 따랐을 뿐이었다.
여하튼 그런 학생들의 대화를 강민과 유리엘이 못 들을 리 없었다.
“유리, 중도 여신이라는데? 후훗.”
“중도면 중앙도서관을 말하는 것 같은데, 여신이라……. 여튼 기분 좋은데요? 근데 여신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난 건데, 여기에도 신이 있을까요?”
“글쎄, 종교적 의미에서 신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보아왔던 인격신이라면 현재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나중에 내가 경지를 찾으면 보일지도 모르지.”
“마나의 이능이 활성화된 세계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지요.”
강민과 유리엘이 한가로이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하는 사이 수업 시간이 되었고, 시간을 확인한 둘은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는 경영학 원론으로, 교수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출석 체크가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엘의 이름이 불릴 때 전 강의실의 이목이 유리엘에게 집중되었다.
본격적인 강의는 다음 시간부터라는 교수의 말과 함께 교수는 한 학기 동안의 강의 계획 정도를 설명하고 강의를 마쳤다.
예상보다 이른 강의 종료에 철모르는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 * *
침대 위에서 한 남녀가 관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의 정복감 가득 찬, 기분 좋은 기색이 완연한 얼굴에 비해 여자는 무미건조하고 마치 목석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수치심마저 어린 여자의 표정으로 보아선 강제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는데, 여자의 신체를 구속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여자 또한 표정과 달리 반항을 시도하는 어떠한 몸짓도 없었다.
이는 정상적인 남녀 간의 성관계라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띠리리, 띠리리.
한참이나 이어지던 관계가 끝나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남자는 휴대폰을 흘낏 보더니 휴대폰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약간 의아한 듯 전화를 받았다.
“창민아, 웬일이냐? 무슨 일 있냐?”
-최현호~ 뭐 하냐?
“아, 오늘 그동안 작업했던 애 마지막 마무리했다.”
“작업했던 애? 아, 그 연습생? 크큭. 지금 같이 있는 애가 걔냐? 2년을 공들이더니 기어코 성공했네. 대단한 새끼, 크크크큭. 나도 한번 만날 수 있냐?”
“야 이 새끼야. 너 줄 수 있는 애였으면 이렇게 공들이지도 않았다. 여튼 용건이나 말하라고.”
전화를 받은 최현호는 여자에게 눈짓을 하고 방에서 나가 거실로 이동했다.
남겨진 여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단발머리가 귀여운 스타일이었다. 한눈에 보기엔 볼륨감 있는 몸매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운동을 해왔는지 적당히 나온 가슴과 군살이 없는 예쁜 몸매를 가진 아가씨였다.
최현호가 전화를 받으러 떠나가자 수치심 가득한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용건을 말하라는 최현호의 말에 김창민은 말을 이었다.
-야, 중도 여신 떴다.
“중도 여신? 아, 작년 여름방학 때 걔? 근데 뜨다니? 다시 중도 들락거리는 거냐?”
-아니, 이번 16학번 신입생이래. 경영학과고.
“신입생? 신입생 나이로는 안 보였다더니.”
-몰라, 장수생인지. 소문에 의하면 외국에서 살다가 작년에 왔다던 거 같더라. 20대 중반은 된 것 같던데? 여튼 네가 전부터 보고 싶다길래 연락하는 거야.
“크큭, 그래. 고맙다, 새끼야. 만약 뒤탈 없는 년이면 너도 한번 하게 해줄게.”
-그래, 이 새끼야. 내가 그 말 기다렸다, 크큭. 그럼 학교에서 보자.
최현호와 김창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자는 수치심에 찬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이불을 꽉 쥐며 분노를 삭이다 이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차례로 옷을 입었다.
전화를 끊은 최현호가 능글거리게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야, 혜림아. 한 번 더 하자?”
“약속은 한 번이었어. 그리고 약속 지켜.”
“혜림아. 이제 몸까지 섞은 사인데 좀 부드러워지자. 응?”
“미친 새끼! 약속이나 지키라고!”
“약속? 무슨 약속?”
“뭐?!”
“야야, 장난이야. 그래 알겠어. 다음번 데뷔 그룹에는 너도 들어갈 거야.”
신혜림은 18살의 나이에 스스로 SG 엔터에 연습생으로 들어왔다.
어느 정도 외모에도 자신이 있었고 노래에는 더 자신이 있었던 그녀였다. 자신보다 노래를 못 부르는 친구가 가수가 되는데 자기라고 못 할 거 없다는 생각을 하며 가수의 꿈을 안고 SG 엔터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 유명 가수가 되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연습생 시절 3년은 정말 열심히 했다.
실제로 연습생 중에서는 인정도 받기 시작했고 3년 차가 되면서 데뷔 이야기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기에 신혜림도 자신도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4년 차가 되고 5년 차가 되어 나이가 스물셋에 이르렀는데도 데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보다 늦게 들어온 3, 4년 차 연습생들이 데뷔하는 상황이었기에 자신감은 점점 떨어져 갔다.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신혜림에게 다가온 사람이 최현호였다.
처음엔 SG 엔터 사장의 아들이자 이사로서 잘해주는 거라며 환심을 사다가, 계속되는 작업에도 신혜림이 몸을 허락하지 않자 본색을 드러냈다.
삼촌이 고위직은 아니었지만 지방 경찰서에 재직하고 있어서 강제로 하지는 못했지만 그간 그녀가 데뷔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수작임을 은근슬쩍 드러내며 자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데뷔는 없을 거라는 식의 협박을 가했다.
실제로 최현호가 발굴했다 알려진 드림걸즈의 박민주는 데뷔 예정자였던 최하진을 밀어내고 드림걸즈로 데뷔했다.
박민주는 한국대 영문학과의 학생이었는데, 최현호의 입김으로 드림걸즈로 데뷔해 지금은 어느 정도의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이 되었다. 반면 최하진은 아직도 연습생 신세였다.
최현호의 아버지 최수광은 인기를 얻을 만한 아이돌을 보는 눈이 있는 최현호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기에 이사의 직함을 주고 아이돌 데뷔에 관해서는 최현호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신혜림은 타 기획사로 옮길 수도 있었고,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SG의 연습생, 데뷔를 앞둔 연습생의 위치를 버리기 힘들었다.
결국 최현호에게 한 번의 잠자리만 하면 데뷔를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이런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쾅!
옷을 다 입은 신혜림이 오피스텔의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갔다.
최현호는 아직 벌거벗은 채로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는데 천장 구석에 붙은 조그만 검은 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런 식의 결말은 내 취향은 아닌데. 뭐, 아무튼 컬렉션이 하나 더 생겼네.”
말을 마친 최현호는 리모컨 눌러 80인치 TV를 켰고 익숙하게 조작하더니 조금 전의 관계를 찍은 동영상을 재생했다.
한참을 바라보던 최현호는 자위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온 절정에서는 이아현의 이름을 외쳤다.
“언젠간 갖고 말 테다, 이아현.”
SKY그룹의 손녀딸인 이아현은 최현호로서는 언감생심이었다. 그가 목표로 하기엔 너무 높은 상대였지만 최현호는 이아현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목표로 한 여자는 어떤 수를 동원해서라도 정복하고 마는 정복욕을 가진 최현호로서는 마치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산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이아현을 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최현호는 옆에 놓아둔 와인 잔을 다시 들어 한 모금 하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중도 여신이라 어떤 년인지 궁금하네. 얼마나 걸리려나?”
이곳은 최현호의 아지트인 오피스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