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9화 (9/203)

# 9

현세귀환록

009. 대학(1)

문제는 그들의 나이였다. 그들은 현재 27살로, 지금 당장 수능을 치더라도 28살에 신입생이 될 것이다. 이는 신입생치고는 많이 늦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 늦은 편이라는 기준도 졸업 후 취직이나 결혼 같은 생애 주기적 이벤트를 보았을 때 느린 것이지 그를 다 이뤄놓은 강민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여유가 있는 장년층이나 노년층에서는 취미 삼아 대학을 다니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하여간 대학을 간다는 강민의 말에 한미애는 반색하며 말했다.

“그럴래? 그래, 나도 네가 아무리 유리 씨가 있다 하더라도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학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머니 말씀대로 고등학교 정도는 졸업해야 나중에 사회생활이 편하겠죠.”

“그래, 잘 생각했다. 민아, 그럼 유리 씨도 같이할 거야? 유리 씨도 너랑 같이 있었다면 학교 졸업 못 했을 건데.”

“네. 그렇게 하려고요.”

“그래 말 나온 김에 결혼식은 나중에 하더라도 너희 혼인신고도 하고. 너희가 이미 부부 관계라고 해도 법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그간 혼자서 고민을 많이 했는지 한미애는 강민과 유리엘의 결혼 이야기까지 꺼냈다.

“그래, 오빠. 법적으로도 혼인신고를 해야 부부지, 그냥 같이 살면 동거라고, 동거! 유리 언니를 아내로 생각한다면 혼인신고도 해야지.”

강서영도 이미 한미애와 이야기를 했는지 한미애를 거들고 나왔다.

한미애와 강서영의 말에 강민과 유리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로 빙그레 웃었다.

강민과 유리엘은 법률혼 따위가 없더라도 그 누구보다도 강한 연대를 가지고 있는 관계였다.

세상 어디에 있다고 해도 강민은 유리엘을 찾아낼 수 있었다. 유리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둘의 영혼은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둘의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이들은 충분히 걱정할 수 있는 문제였기에 자신들을 신경 써주는 두 사람에게 고마웠던 것이다.

“유리,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요.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차피 우리 부부잖아요. 뭐 혹시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호홋.”

“뭐야, 오빠 지금 망설이는 거야? 유리 언니 섭섭하게~!”

“아니, 망설이는 게 아니라…….”

“그게! 망설이는 거라고! 흥. 유리 언니, 우리 오빠 저런 사람인데 괜찮아요?”

“어쩌겠어요. 그게 제 복이면 어쩔 수 없죠. 호호호.”

둘은 어느새 친해졌는지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고, 한미애와 강민은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말했다.

“그럼 혼인신고는 내일 제가 가서 하고 오겠습니다. 검정고시하고 수능 일정도 알아볼게요.”

“그러렴. 그리고 결혼식은 대학 졸업하면 하든지 하자.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하객도 없을 테니 식이 의미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아무튼 엄마는 그간 사라졌던 우리 민이가 이렇게 커서 결혼까지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구나…….”

갑자기 감정이 북받치는지 한미애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이를 본 강민이 살며시 한미애를 안아 주었다.

이를 지켜보던 강서영이 속으로 생각했다.

‘오빠, 돌아와 줘서 고마워…….’

검정고시는 8월 초에 시험이 있었고, 합격자 발표는 8월 말이었다. 수능 원서 접수 또한 8월 말이었으니, 올해 검정고시를 보고 수능까지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강민과 유리엘은 검정고시와 수능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도서관을 다녔는데, 검정고시는 별도로 공부할 것도 없었고 수능 역시 일주일 정도 공부하니 모르는 문제가 나오지 않아서 도서관의 다른 책을 읽는데 시간을 쏟고 있었다.

도서관은 강서영이 있는 한국대학교의 도서관이었다.

강민과 유리엘을 본 학생들은, 아니, 유리엘을 본 학생들은 유리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유리엘이 지나갈 때 유리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벽에 부딪히는 학생이 한둘이 아니었다.

오늘도 한 무리의 남자들이 지나가다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와. 저기 봐. 중도 여신 지나간다.”

“대체 어느 과지? 연예인 데뷔해도 되겠는데?”

“저기 같이 다니는 여자애는 많이 본 것 같은데?”

“저 애 인문대에서 수업 같이 들은 거 같아. 불문과였던가?”

“아, 기억났다. 불문과 과외 여왕 강서영! 맞아, 강서영이야.”

사실 강서영도 학교에서 꽤나 인기 있었다. 전교급의 외모는 아니었지만, 단대에서는 꽤나 미인으로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남학우들의 고백도 많이 받았다.

물론 강서영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말로 단칼에 거절했지만 말이다.

“근데 저 남자는 누구지? 중도 여신이랑 친한 것 같은데?”

“오늘 처음 봤어? 중도 여신 남자친구 같아. 맨날 붙어 다니더라고.”

“윽,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남친이야?”

“남친 아니라도 네깟 게 중도 여신에게 가까이나 갈 수 있겠어?”

“뭐? 그러는 너는!”

저 멀리 몇 무리의 남자들 역시 비슷한 대화를 하고 있었고, 여학생들조차 질투할 생각도 못 하고 유리엘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유리엘은 가벼운 흰색 블라우스에 스키니진 정도의 기본적인 옷차림이었는데 검정색 긴 생머리와 잡티 하나 없는 맑은 피부, 완벽하다고 할 만한 얼굴, 172센티미터의 늘씬한 키, 매력적인 볼륨감 덕분에 옷이 유리엘의 덕을 보는 듯 빛나는 선녀의 날개옷으로 보였다.

강민 또한 187센티미터의 큰 키에 탄탄하게 균형 잡힌 몸과 어디에 둬도 빠질만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유리엘의 옆에 있기에는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보였다.

상당히 귀여운 얼굴의 강서영도 스스로의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리엘과 다니면서 상당히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에휴, 유리 언니랑 다니면 내가 오징어가 되는 기분이야.”

“우리 서영이도 충분히 예쁜걸.”

유리엘이 강서영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으으, 언니 눈에 내가 예쁘게 보일 리가 없어. 거짓말이야, 거짓말!”

“거짓말 아냐. 저기 봐. 서영이 보고 있는 남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안 보여?”

“윽, 언니. 저 눈들 안 보여요? 다 언니 보는 거라고요. 흥, 앞으로 오빠 고생 좀 하겠어~ 저렇게 예쁜 언니를 두고 어디 밖에 다닐 수나 있겠어?”

“밖에 못 다닐 건 뭐야. 우리는 서로밖에 안 보이는데. 후후.”

“으윽, 이 닭살 커플! 어서 도서관으로 가버려! 흥!”

“그래, 서영이도 수업 잘 듣고 나중에 집에 갈 때 보자~”

유리엘은 손까지 흔들면서 강서영이 휙 하고 뒤돌아가는 것을 배웅했다.

도서관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강민이 옆에서 계속 붙어 다녀 남자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테지만, 알게 모르게 훔쳐보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잠깐 차 한잔 마시고 오노라면 유리엘이 앉았던 책상에는 각종 음료수가 포스트잇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이거 드시고 쉬엄쉬엄하세요!’

‘건강하세요!’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등등의 자신을 밝히지도 않는 메모는 애교 수준이었고,

‘010-3XXX-4XXX, 연락만 주시면 제가 풀 코스로 쏩니다.’

‘데이트 신청합니다. 사진 보고 연락 주세요. 제가 옆에 다니는 그 친구보다 낫지 않나요? 010-9XXX-6XXX.’

같잖은 데이트 신청 메모도 있었다.

포스트잇은 그나마 무시하면 되었지만 가장 귀찮은 것은 직접 들이대는 것이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는데 꽤 괜찮게 생긴 남학생 한 명이 유리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뇨, 이야기할 시간 없는데요.”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만요.”

유리엘이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하자 남학생은 유리엘의 팔을 잡아챘다.

하지만 남학생은 이내 그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오한이 들면서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기 때문이었다.

남학생에게 약간의 기를 발출한 강민이 말했다.

“거기까지.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라.”

강민은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며 유리엘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존재감을 드러낸 강민은 더 이상 유리엘의 병풍이 아니었다. 자연스럽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풍긴 탓에 주위에 몰려 있던 학생들이 전부 한두 걸음 물러났다.

학생들이 얼어 있는 사이를 자연스럽게 빠져나온 강민과 유리엘은 다시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민, 지금이 방학이라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이 정도지 개강하면 장난 아니겠는데요?”

“이게 다 유리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라고. 하하핫.”

“이렇게 생긴 걸 어떡하겠어요? 호호.”

“뭐, 시간 지나면 다 익숙해질 테지만 역시 처음은 조금 귀찮네.”

여기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과거 다른 차원에서는 유리엘의 미모를 탐낸 황제 때문에 한 제국을 멸하기도 하였으니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유리엘이었다.

어차피 절대적인 힘을 보이면 다 물러설 것이지만 아직은 [은둔]과 [적응]을 방침으로 하고 있기에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개강하면 더 소란스러워질 것 같은데 당분간 다른 곳으로 갈까?”

“어차피 이 학교 학생이 되면 겪어야 할 일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서영이가 좀 곤란한 것 같더라고. 입학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려질 테지만 지금은 서영이 말고는 접점이 없으니 서영이만 곤욕을 치르는 것 같아.”

사실 강서영은 이미 몇몇 친구에게 강민과 유리엘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며 시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방학이니 견딜 만했지 개강을 하고 나면 더 심해질 가능성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강민과 유리엘은 강서영 말고는 학교에 아무런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민과 유리엘에 대한 질문은 다 강서영에게 들어왔는데 강서영조차 강민이 10년 전에 실종되었다 돌아온 오빠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것도 없었기에 대답이 곤란했다.

결국 외국에서 일하다 왔고 이제 학업을 시작한다는 납득할 만하지만 다소 궁색한 변명으로 강민과 유리엘을 설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요, 그럼 오늘 서영이에게 말해야겠네요.”

“서영이도 유리랑 다니는 것을 좋아하니까 별다른 말은 안 했겠지만 상당히 곤란했을 거야.”

“저보다 민이랑 다니는 걸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아냐, 그 녀석 유리를 동경하는 것처럼 보이던데. 일종의 롤모델처럼 본 건가? 후후.”

“이 세계의 기준으로는 저는 그냥 무학의 백수 아닌가요? 호홋.”

“무학은 아니지. 고등 검정고시 통과했으니 고졸이지. 그리고 미모는 여자에게 절대적이라고.”

강서영은 유리엘과 같이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했지만 동시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헤헷, 사실 개강하고 나면 어떡할까 엄청 걱정했거든. 언니의 미모가 워낙에 출중해서 말이지. 오빠는 좀 더 분발하라구!”

“무슨 분발?”

“자기 여자를 지키려는 분발 말이야~ 우리 학교에도 연예인이나 재벌 2세같이 밖에서 잘나가는 사람들 엄청 많아. 특히 자유전공학부 애들은 아예 차세대 리더 전형인가 하는 기부금 입학으로 들어온 애들이라 집안까지 빵빵하다고. 잘생긴 애들도 많으니까 오빠도 긴장해야 할걸?”

“우린 부부인데도 긴장해야 해?”

“부, 부부이지만, 사,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강민의 마지막 말에 강서영은 조금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하하하. 그래, 그래, 알겠어. 오빠가 긴장할게.”

강민은 강서영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웃음기 띤 말투로 말했다.

“민이 어떻게 긴장하는지 저도 지켜볼게요. 호호호.”

그렇게 강민과 유리엘은 한국대학교 도서관의 출입을 그만뒀고 한국대학교에서 유리엘은 전설로 남아 있었다. 유리엘이 입학하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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