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현세귀환록
008. 가족(3)
“서영아 잠시 쉬고 있으렴.”
강서영의 뒤쪽에서 나타난 강민은 강서영의 수혈을 짚어 잠이 들게 하였다.
그러고는 한걸음 나와 강서영의 주위에 펼쳐놓은 막을 벗어났다.
갑자기 나타난 강민에 조폭들은 흠칫했지만, 한 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내 호기롭게 말했다.
“넌 누구냐? 그년 서방이라도 되는 거야?!”
“너흰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
“무슨 X같은 소리야, 씨X. 야! 쳐!”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강민에게 기세가 눌린 키가 작은 조폭은 키 큰 조폭에게 외치며 강민에게 덤벼들었다.
손짓 한 번이었다. 강민의 손짓 단 한 번에 둘은 계단 벽에 처박혀 버렸다.
아직 기절하진 않았는지 신음을 내뱉으며 일어서려고 힘을 주고 있었다.
“너무 약했군.”
후들거리는 키 큰 조폭에 비해서 키 작은 조폭은 깡이 있는지 억지로 일어났다.
“이 자식 뭐야!”
손이 닿지도 않았다. 주먹을 맞고 뼈가 부러지고 칼을 맞아 살이 뚫리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손도 닿지 않았는데 단순한 손짓에 두 명이 날아가서 벽에 처박히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상황이어서인지 몰려드는 공포감을 부정하고 있었다.
“죽어, 새끼야!!”
이 상황에서 공포보다는 분노가 치밀었다.
품속에서 사시미 칼을 꺼내 든 키 작은 조폭은 강민에게 뛰어들며 칼을 휘둘렀다.
“칼? 살의? 이렇게 쉽게 살의를 품는 녀석이라. 살 가치가 없겠군. 어차피 서영이에게 그런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도 너희들은 죽은 목숨이지만.”
잠시 중얼거린 강민은 칼을 휘두르는 조폭을 향해 다시금 손을 휘둘렀다. 조금 전엔 손등으로 휘둘렀다면 이번엔 손날을 휘둘렀다.
쉭-!
데구르르르, 털썩.
키 큰 조폭은 눈이 찢어져라 부릅뜨면서 경악하였다. 키 작은 조폭의 머리통과 몸통이 분리된 것이었다.
머리통이 잘린 단면은 불에 탄 것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키 큰 조폭은 아무 말도 못 한 채로 서 있다가 들려오는 강민의 물음에 허둥지둥 대며 말했다.
“어디서 온 놈이냐?”
“예? 예, 저는 경동 실업에서 나왔습니다.”
“경동 실업? 철거 용역이 너희들이군. 난 너희 일은 잘 몰라. 관심도 없고. 다만 너희는 건드려선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다.”
“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키 큰 조폭은 키 작은 조폭이 그렇게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공포에 몸이 잠식되어 있었다.
“난 그렇게 자비로운 사람은 아니지. 특히 너 같은 쓰레기에게는.”
강민은 말과 함께 손을 휘둘러 조폭을 문자 그대로 ‘지워냈다’. 조폭이 있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강민은 다시금 손을 휘둘러 시체마저 지워 버렸다.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바람만 남아 있었다.
마음 같아선 본거지를 찾아가서 뒤집어버리고 싶었지만, 이 녀석들은 꼬리일 것이다.
이 녀석들이 몸담은 곳 역시 꼬리일 것이고, 그 위로 수차례의 꼬리를 더 잘라내야 할 것이다.
이능이 있는 세계에서는 그 정점에 분명 이능과 관련된 인물이 있을 것이고, 그를 처리하고 나면 결국 스스로가 뒷배가 되거나 마음에 드는 하수인을 세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강민과 유리엘이 드러날 가능성이 컸고, 결정적으로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드러나 일반적인 생활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충분히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동생의 일상생활은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그들과 엮이기 싫었다.
‘또 엮이면 모르지. 두고 보자고.’
모든 걸 처리한 강민이 강서영을 깨웠다.
“오, 오빠? 오빠가 어떻게 여기에…….”
“비명을 듣고 뛰어 내려왔어.”
“아, 그 조폭들은? 어떻게 됐어? 오빠가 쫓아낸 거야?”
“그래, 이 녀석아. 네가 기절하는 바람에 이 오빠가 꼭지가 돌아서 흠씬 패서 다시는 못 오게 했으니 너무 걱정 마.”
“오빠~ 흐아아앙~”
강서영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강민을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삼 일 뒤면 안전한 옛집 근처로 이사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때까진 내가 매일 데리러 나올게.”
“흐흐흑, 오빠 고마워. 흐흑.”
강민 가족이 새집으로 이사 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2층 주택의 1층은 한미애와 강서영이 사용하고, 2층은 강민과 유리엘이 사용하기로 하였다.
한미애는 10년이 넘게 하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니 몸이 어색한지 도우미 아줌마를 고용하자는 강민의 말도 거절하고 연신 집안일을 했고, 강서영은 그런 한미애의 뒤를 쫓아다니며 말렸다.
강서영은 강민의 말을 듣고 과외를 끊는다고 말했는데 그중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한 명만 수능 때까지 봐주기로 하였다.
“민영이는 내가 꽤 좋게 봤던 학생이라 수능 때까진 해주고 싶어. 달에 30만 원이라 다른 과외보다 금액은 적지만 그 아이도 나를 잘 따르고 성적도 꽤 괜찮은 편이라. 그리고 나중에 후배로 들어올 수도 있고 해서 민영이만 해줄게. 어차피 오빠가 용돈을 준다고 했으니 말이야, 히힛.”
“아무튼, 앞으로 서영이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봐. 오빠가 도와줄게.”
“알았어. 고마워, 오빠!”
강민은 유니온에 부탁해서 유니온 신분증 겸 블랙 카드에 연계된 패밀리 카드 두 장을 발급받았다.
처음엔 각각 1억 한도의 카드를 발급받았는데, 1억이라는 돈에 놀란 강서영과 한미애는 분실의 위험을 이야기하면서 한도를 줄여달라 하였고 결국 천만 원 한도에서 합의를 보았다.
“오빠, 인터넷 찾아보니 이 카드 디멕스의 VIP 전용 카드라는데 이런 거 내가 써도 되는 거야?
“그래, 괜찮으니까 얼마든지 쓰렴. 모자라면 오빠한테 말해. 한도 더 늘려줄게.”
“한도는 됐고. 그럼 나 옷 한 벌만 산다? 전부터 봐둔 원피스가 하나 있긴 한데 좀 비싸서 용돈 아끼고 있었거든.”
“얼마든지 사. 걱정 말고.”
강민의 말에 강서영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익숙하게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 들어갔다.
주소를 치고 익숙하게 옷을 클릭하는 것이 그 옷을 찾아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이내 분홍빛 파스텔 톤의 플레어 원피스 하나를 고른 강서영은 기쁜 표정으로 강민을 돌아보았다.
“이거야, 오빠. 다음 달 과외비 받으면 살려고 했었는데 오빠 덕에 한 달 빨리 살 수 있겠다. 헤헷.”
비싸다고 한 옷의 가격은 17만 원이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강민은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쓰렸다.
강서영은 22살의 풋풋한 대학생이지만 명품 가방, 명품 옷은커녕 웬만한 중저가 브랜드 옷 하나 없는 알뜰살뜰 짠순이였다.
옷도 늘 인터넷 쇼핑몰에서 저가의 옷만 구매했는데 5만 원 이상의 옷을 산 적이 없었다.
한미애가 어떻게 돈을 버는 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다 마련해야 했기에 변변찮은 옷 하나에도 두 번, 세 번 생각하면서 구매를 해왔던 것이다.
돈도 백도 없는 힘없는 모녀 둘이서 세상을 살아나간다는 건 이렇게나 힘겨웠다.
그런 강서영이었기에 돈이 생겼다고 해도 펑펑 쓰는 건 아직 무리였다.
“뒤에 0이 한두 개 더 붙은 옷도 상관없으니 마음껏 사렴.”
“0이 한두 개? 한 개면 백만 원, 두 개면 천만 원이 넘는 돈인데? 에이~ 그런 옷을 어떻게 사? 난 저거면 괜찮아.”
강서영은 17만 원짜리 원피스 하나에도 너무도 좋아했다.
한미애도 일을 그만두었고, 강서영도 방학에다 과외를 1개로 줄여서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강민은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시간은 주로 유리엘과 책을 읽었다.
인터넷으로의 정보는 논문 등의 정보를 제외하고는 피상적인 정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으로의 책을 구매하여 읽었다.
“민아,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저녁 식사 후에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다과를 즐기다 갑자기 한미애가 말을 꺼냈다.
아들과 함께한 일주일간의 행복한 시간이 지나자 한미애는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 강민은 가족들의 삶을 지켜주는 것 외에는 원하는 게 없었다.
어차피 길어야 100년인 인간의 삶, 어머니는 이미 50이 넘은 나이라 강민이 손쓰지 않는다면 앞으로 50년도 채 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몇만 년을 살아온 강민은 이 짧은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소중했기에 별다른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미애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일반인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멀쩡한 아들이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모습을 대한민국의 어느 어머니가 그냥 두고 보겠는가?
물론 강민은 누군가처럼 취직을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취직해서 돈을 모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연예인 뺨치는 엄청난 외모의 배우자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강민 나잇대의 남자가 취업 준비에 아등바등하는 이유가 뭔가? 대부분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좋은 직장을 구해야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좀 더 나은 수준의 배우자를 고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집을 살 수 있겠지.
결국 자아실현 등의 고차원적인 문제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취직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돈도, 배우자도, 집도 일반인이 꿈꾸는 모든 것을 이미 가진 강민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미애는 아들이 단지 집에서 놀고먹는 것 보다 나가서 사회생활을 하길 바랐다.
어쩌면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났다는 것을 주위에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 한미애의 한마디에 강민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한미애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일반인 사회에서 통하는 타이틀. 그것을 원하는 것이었다.
이능의 세계에서는 본신 능력의 백 분의 일도 보이지도 않고 A+급의 강자라고 평가받는 강민이지만, 일반인 세계에서는 고등학교 중퇴의 백수일 따름일 뿐이니까.
‘물론 그 백수가 엄청난 부자지만. 하긴, 부자인 것도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냥 백수인가? 후훗.’
생각을 가다듬은 강민은 한미애가 원하는 일반인으로서의 좋은 타이틀을 갖기로 결정했다.
그 시작은 학벌을 채우는 것.
“어머니, 일단 고등학교 중퇴로 되어 있으니 검정고시부터 치고 수능을 쳐서 대학에 가도록 할게요. 대학에 간 이후는 그때 생각해 보죠, 뭐. 하하.”
“대학교? 와~ 오빠도 우리 학교 오면 좋겠다. 히히.”
“한국대학교? 그래, 그쪽으로 생각해 볼게.”
“그쪽으로 생각? 풋, 오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냐? 나름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고.”
한국대가 국내 최고 대학이지만 강민이, 유리엘이 가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았다.
강민은 그랜드 마스터 이상의 경지에 있어 일반인과는 다른 암기력, 이해력, 통찰력 등을 가지고 있었고 유리엘 또한 현재의 마법술식과는 다르지만 9서클 이상의 마법사로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암기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