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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귀환록-7화 (7/203)

# 7

현세귀환록

007. 가족(2)

날이 밝고, 점심 무렵이 되자 강서영은 과외를 간다고 집을 나섰다.

방학 중이라 학기 중에 비해 과외를 2개나 늘렸기에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강서영은 꽤 빠듯한 일정으로 움직였다.

강서영의 학교는 국내 대학 중 최고의 대학이라 알려진 국립 한국대학교였다.

당시 수능을 쳤을 때 강서영의 선택은 4년 장학금을 받는 대학, 그중에서도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니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미애 혼자 버는 돈으로는 둘의 생활도 빠듯한 상황이었기에 언감생심 대학교 등록금을 말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대학교 학비는 단순한 아르바이트로는 메울 수 없는 큰 금액이었다.

그래서 꽤 잘 친 수능점수에도 4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대학으로만 찾으니 상대적으로 선택의 폭이 좁았다.

그때 강서영은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한 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집이 꽤 잘사는 친구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과외를 해왔고, 과외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달에 30~50만 원에서 실력에 따라서는 100만 원까지도 준다고 했다.

과외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니 좀 무리하면 4명에서 6명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룹과외라도 잡는다면 인당 단가는 낮아지겠지만, 시간당 단가는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달에 4명만 해도 최소 120만 원에서 130만 원은 벌 수 있을 거고, 행여 그룹과외 같은 걸 잡는다면 한 달에 200만 원도 더 벌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 정도 돈이면 학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잘하면 생활비도 다소간 보탤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과외 교사의 실력은 향후 학생을 가르치는 데 달렸지만 일단 면접은 학벌이었다.

국내 최고의 한국대라는 타이틀은 강서영의 과외 면접에 큰 도움을 줄 것이었다.

그래서 강서영은 4년 장학금을 포기하고 한국대를 지원했다. 비록 갈 수 있는 과가 한국대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과였지만 말이다.

그 후 강서영은 과외만으로 학비와 용돈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집의 생활비도 보태고 있었다.

오늘도 과외를 하고 밤늦게 온다고 너무 걱정 말라며 집을 나서는 강서영에게 강민은 말했다.

“앞으로는 오빠가 용돈을 줄 테니까 과외해서 돈 버는 것보다, 학교 공부에 집중하는 건 어때?”

“오빠, 나 전문 과외 강사 해서 돈 많이 벌 거야. 그게 어지간한 월급쟁이보단 낫다 하더라.”

“그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니?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봐. 오빠가 도와줄 테니까.”

“정말로 하고 싶은 일?”

“그래 정말로 하고 싶은 일. 돈 많이 벌려고 하는 과외 강사 같은 거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과외도 안 했으면 좋겠어.”

“음……. 일단 좀 생각해 볼게. 어차피 6개는 무리라 좀 줄이려고 하고 있긴 했어. 헤헷, 그럼 나 간다. 나중에 봐.”

강서영이 나가고 한미애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이제 일을 그만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어차피 그녀는 계약직이었고 재계약 때마다 어떻게든 인력을 줄이려고 하는 회사였기에 한미애의 퇴사 통보에 크게 괘념치 않았고, 순조롭게 퇴사 처리에 동의했다.

회사까지 정리한 한미애는 강민, 유리엘과 함께 예전에 살던 집을 보러 나왔다.

[유리, 조치는 다 취해 뒀지?]

[민, 벌써 유리엘보다는 유리가 더 익숙한 거예요? 호호. 네 일단 간단한 조치는 취해 뒀어요. 익스퍼트급 이상의 공격이 아니라면 굳이 우려할 것 없을 거예요. 나중에 공방이 만들어지면 마스터급 공격에도 버틸 만한 조치를 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 유리. <은둔>보다는 <보호>가 우선이니 좀 드러난다 해도 <보호>를 철저히 해줘.]

[그래요, 민. 걱정 말아요.]

얼마 걸리지 않아서 옛날에 살던 집에 도착했다.

굳게 닫혀 있는 대문 앞에서 한미애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서 있다가, 강민이 그만 가자고 할 무렵에서야 두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집을 떠나올 때만 하더라도 다시는 여기에 못 올 줄 알았는데…….’

한미애의 심정이 이해가 갔는지 강민도 한미애가 마음을 가라앉힐 때까지 좀 더 기다렸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자 한미애도 진정이 되었는지 충혈된 눈으로 강민에게 말했다.

“민아, 이제 부동산으로 가 보자. 매물로 나왔으면 좋으련만…….”

잠시 후, 부동산에 도착한 그들은 부동산 업자의 말을 듣고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 그 집은 매물로 나온 집이 아닙니다. 대신 그 옆집은 어떠신가요? 그 집보다 정원도 크고 건평도 더 넓은데 말이죠. 집주인이 급매로 내놓은 거라 가격도 괜찮답니다. 못해도 20억은 받을 만한 집인데 지금은 16억이면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까 우리가 처음 본 집 같은 경우는 시세가 얼마나 하나요?”

“주택 시세는 아파트랑 다릅니다. 사고파는 타이밍이 맞아야죠. 주택은 일반적으로 거래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싸게 산다면 시세의 60~70% 선에도 매매되는 경우도 있지만, 팔지 않는다면 뭐 시세보다 웃돈을 주어도 사기 힘든 경우도 많죠.”

부동산 업자는 꽤 진지하게 듣는 강민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뭐 평창동, 성북동의 고급주택촌 같은 경우에는 인근 주민들이 들어오는 사람을 가린다는 말도 있지만 여긴 뭐, 그 정도는 아니니 그럴 일은 없지요.”

부동산 업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첫 번째 집에 미련이 남은 듯한 한미애의 표정을 보고 부동산 업자는 선심 쓰듯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처음 그 집 같은 경우는 잘 받으면 12~13억 정도 할까요? 전 주인이 10억에 사서 들어왔다는 것 같은데……. 여튼 아까 제가 보여드린 주택이 여기서는 아마 베스트일 겁니다. 다른 곳 가봐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서 매매하신다면 제가 복비 조금 빼주리다.”

강민 역시 안타까워하는 한미애의 표정을 보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 부동산 업자에게 말했다.

“그 처음 집에서 예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예전 아버지 사업에 실패한 이후 집을 넘겼는데, 지금 형편이 괜찮아져서 꼭 다시 사고 싶습니다. 일단 사장님이 말씀하신 그 집 제가 사지요. 우선 그리로 이사 가겠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결정을 내린 강민을 보며 한미애와 부동산 업자는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뒤에 이어진 말은 그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그리고 제가 처음 말했던 123-1번지 집 주인께 사장님이 말 좀 전해주십시오. 그 집을 20억에 사겠다고 말입니다. 언제 구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입가의 두 배라면 섭섭지 않을 겁니다.”

“민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니? 지금 이 사장님이 말씀하신 집도 좋아 보이고 오히려 넓다고 하니 그쪽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니?”

“만약 지금 주인이 끝끝내 안 팔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추억이 있는 집인데 말이에요.”

“그치만 돈이…….”

“돈 걱정은 하지 마시라니까요.”

통 큰 강민의 결정에 부동산 사장은 잠시 당황했다.

‘젊어 보이는데 몇십억의 돈을 이리 쉽게 써? 로또에라도 걸렸나? 아니 요즘 로또도 일등이 이십억밖에 하지 않을 텐데……. 아무튼 복비만 해도 얼마냐? 흐흐’

“알겠습니다. 젊은 사장님이 시원시원하시네. 내 그 집주인에게 꼭 전해드리리다. 그럼 123-2번지의 저 집은 언제 입주하실 예정이오? 아, 일단 집부터 봐야겠죠? 집주인이 외국으로 나가서 지금 빈집이고 내가 열쇠를 들고 있으니 대금 결제 후에 간단한 입주 청소만 하면 언제든지 입주가 가능합니다.“

“아, 그래요? 그럼 지금 전액 납입하면 오늘부터 살아도 된다는 겁니까?

“네? 아, 물론 그래도 되지만 빈집이 된 지 몇 달째니 청소하는 데만 해도 하루는 걸릴 거요. 그리고 가재도구나 가전제품 같은 것도 없어서 지금 당장 살기에는 좀 불편하실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계약금 2억을 입금해 드릴 테니 계좌 불러주시고요. 입주 청소 업체 연락해서 청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잔금은 삼일 뒤 입주하는 날 다 치르겠습니다. 복비는 두둑하게 드릴 테니 신경 좀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드님 참 잘 두셨소. 돈도 돈이지만 일도 똑 부러지는구먼.”

부동산 사장의 말에 한미애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니, 일단 백화점에 들러서 가구하고 가전제품부터 사야겠네요.”

“그, 그래.”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일에 한미애는 약간 당황했지만 아들이 능력이 생겼다는데 기분 나쁠 부모는 없었다.

집구경에 백화점에 들러 가전과 가구까지 다 주문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 이미 밤이 되어버렸다.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네.”

“그러게요. 어머니, 힘 안 드세요?”

“우리 집 생기고 우리 집에 가구 넣는 일인데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힘들지 않지. 호호호. 유리 씨도 괜찮아요? 하루 종일 우리 따라 다닌다고 힘들었을 텐데.”

“말씀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어머님. 전 괜찮아요. 하루 이틀 민을 따라다닌 것도 아닌데요, 뭘.”

“그, 그래요?”

단순 연인 사이가 아니라 둘 사이에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을 한미애도 눈치를 챘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어머니, 이제 힘든 시간은 끝났습니다. 제가 돌아온 이상 예전만큼, 아니 예전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어머니도 서영이도요. 약속드려요.”

“난 네가 돌아온 것만 해도 하늘에 감사드리고 있단다. 네가 능력이 된다고 하니 더 이상은 말리지 않겠지만 결코 무리하지는 말거라. 돈 조금 없어도 우리 세 가족, 아니, 이제 유리 씨까지면 네 가족 먹고사는 데 지장 없어요. 그러니 절대 무리하지 마라. 또 네가 어딘가 가버린다면 엄마는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을 거야.”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이후에도 사고를 수습하고 보험금으로 빚을 처리하느라 아무것도 없을 때, 작은 방이나마 이 달동네 방을 구해온 건 강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의 어린 나이일 때지만 조숙했던 강민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정신없는 한미애를 대신하여 갖은 일을 다 처리했었다.

때문에 생활비를 벌어보겠다고 신문 배달을 시작한 지 삼 개월 만에 사라진 아들 탓에 한미애는 만약 강서영이 없었다면 스스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몰랐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유리엘이 강민에게 전음을 하였다.

[민, 서영이한테 일이 생긴 것 같아요. 내가 가 볼까요?]

[아냐, 내가 갈게. 저 녀석들 더러운 이야기를 하는군. 유리가 조치해놨다고 했으니 당장은 문제가 없을 테지만……. 여튼 내가 가 볼 테니 유리는 어머니랑 같이 좀 있어 줘.]

[그래요, 얼른 갔다 와요. 누군지 몰라도 불쌍하네요. 민의 가족을 건드리다니, 후훗.]

한미애에게 화장실을 간다고 방을 나온 강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 아가씨, 같이 좀 놀자고. 너무 빼지 말고.”

“왜, 왜 이러세요!”

“앙탈은! 같이 좀 놉시다. 빳빳하게 굴지 말고.”

양복을 입은 깍두기 머리의 덩치 두 명이 강서영이 올라가는 계단의 초입을 가로막고 있었다. 딱 봐도 조폭, 조직폭력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말 맞지? 예쁘지? 내 여기 근처 왔다 갔다 하며 일 처리하는데 이 동네에서 이 년만큼 예쁜 년은 없다니까.”

“크크, 그렇네. 여기까지 왔으니 너 먹고 나면 나도 한번 하자.”

“크, 짜식. 오자고 할 땐 빼더니. 크큭. 그래, 아무튼 나 먼저 먹어 보고. 크크큭.”

조폭들의 대화에 강서영은 이 조폭들이 자신을 노리고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최악의 상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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