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4화 (4/203)

# 4

현세귀환록

004. 귀환(4)

식사를 마치고 마루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니 저 멀리 하늘에서 헬기가 한 대 날아왔다.

“저 헬기에 유니온 직원이 타고 오는 거군요.”

“저것이 자연스럽게 보이십니까?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하시군요. 저기에는 인식 장애 결계가 펼쳐져 있어서 일반인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이능력자도 꽤나 집중해야 보일 텐데 말입니다.”

“듣던 대로요?”

“아, 아닙니다. 어제 진명 사제에게 들은 대로 말입니다.”

진운 스님은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강민은 굳이 추궁하지 않았다.

헬기는 곧 금강선원의 후원 쪽에 도착했고, 검은 양복을 입은 김창수가 서류 가방을 가지고 내렸다.

“아이고, 스님. 이게 얼마만이신가요?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우리 만난 지 한 일 년쯤 되었나? 내가 별고랄 게 뭐 있겠나. 자넨 별일 없는가?”

“네, 스님. 저도 뭐 그냥저냥 먹고 살지 말입니다. 하하하.”

둘이 편안하게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니 꽤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여기는 김창수 과장입니다. 유니온에서 인사 담당을 하고 있지요. 여기는 강민 시주, 그리고 이쪽은 유리엘 시주일세.”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아, 강민 님과 유리엘 님이신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지, 과장님이 부탁하실 것이 뭐 있겠습니까?”

“진운 스님 말씀으로는 B등급 이상의 능력자시라는데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하하하.”

김창수 과장은 170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단정한 머리를 한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진 중년 남성이었는데 상당히 쾌활해 보였다.

“일단 자리를 옮기시지요.”

진운은 어제 묵었던 봉래각과는 다른 응접실 분위기의 금강전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안내를 보는 시동이 차를 놓고 나가자 김창수는 가방에서 서류와 함께 휴대폰만 한 전자기기를 꺼내었다.

“원래 원칙은 본부에서 적합도 검사를 하고 등급을 확정해서 가입하는 건데, 금강선원과 진운 스님의 보증으로 출장 등록을 해드리는 겁니다. 하하.”

김창수는 진운에게 한쪽 눈을 찡긋 하며 강민과 유리엘 앞으로 서류를 놓았다.

“서류야 별것 아니지만 간단한 등급 테스트는 있습니다. 두 분 다 기공형 능력자라고 하셨죠? 일반적인 무술과 마나를 기로써 이해하는 능력자 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돌을 잡고 마나를 한번 불어넣어 보시겠습니까?”

김창수는 전자기기와 선으로 연결된 돌을 강민에게 내밀었다.

돌을 잡은 강민이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얼마 넣지도 않았는데도 수치를 확인하던 김창수의 표정이 경악스럽게 변했다.

강민은 그 표정을 보고 오러 소드를 발현하기 직전 마나 주입을 멈추었다.

‘A+! 그것도 마나량만 봐선 S급이 되기 직전이다!’

김창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강민에게 말했다.

“A+등급입니다. 대단하신데요, 정말.”

“A+인가? 역시 대단하십니다, 강민 시주님.”

진운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듯 김창수와 같은 놀라움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유리엘 님도 한 번 측정해 주시죠.”

강민의 전음을 들은 유리엘은 샤이닝 소드 상태에서 하울링을 발현할 정도의 마나를 주입하였다.

“A등급이시네요. 정말 두 분 다 대단하신데요? 정말 가르쳐 주는 이가 없이 이 정도 수준까지 독학하신 겁니까?”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죠. 살기 위해서 배워야 했고 익혀야 했으니…….”

강민이 기억을 더듬는 듯 잠시 저기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혹시 강민 님, 부친은 11년 전 사망하신 강철수 님, 모친은 한미애 님이 맞나요?”

“그렇습니다. 조사가 이루어졌나 보군요.”

“네, 기본적인 인적 사항은 미리 파악해 둬야 해서요. 그런데 유리엘 님은 아무리 찾아도 아무런 정보도 없어 애를 좀 먹었습니다.

“그럴 겁니다. 유리엘은 한 번도 여기 사람과 접촉한 적이 없으니까요.”

강민은 어제 진운과 김철수의 통화에서 아마 본인의 신분은 노출될 것이라 생각했다.

10년 전 한국에서 실종되었던 강민이라는 이름만 찾아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명을 쓴다면 당분간은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어차피 가족에게 돌아갈 마음을 먹고 있으니 굳이 숨기지 않았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능 세계와 아무 접촉이 없었는데 어떻게 10년 만에 이런 강대한 마나를 가지게 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것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가요?”

강민은 강자였다. 적절한 변명은 할 수 있지만, 너무 구구절절한 변명은 오히려 이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초능력자 같은 각성형 이능력자는 아무런 징조 없이 갑자기 B등급, C등급의 경지로 각성해 버리니 강민과 유리엘 같은 케이스는 드문 것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럼 유니온에 가입하신다구요?”

“그렇습니다. 저야 괜찮지만 유리엘은 신분이 필요해서요.”

“그러시군요. 국적은 강민 님과 같이 한국 국적이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음, 유리엘 님은 혹시 성이 어떻게 되시는지? 주민등록증에 성함을 기재해야 해서 말이죠.”

그 말을 들은 유리엘은 잠시 생각했다. 본명이 무척이나 길고 복잡했기에 굳이 그것을 다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유리로 해주세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하다는 김씨 성에 이름은 유리”

“유리? 좋은데, 유리엘? 하하.”

“네, 알겠습니다. 여기 유니온 멤버의 간단한 규약집이 있습니다. 권리와 의무 항목을 특히 주의 깊게 보시고 이의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간단한 규약집이라는 것은 책 한 권을 족히 넘는 두께였다.

강민과 유리엘이 꼼꼼하게 규약집을 읽어보니 어제 진운에게 들은 골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무 항목에서 유니온의 멤버는 유니온의 요청이 있을 시 부득이한 사정을 제외하고 유니온의 요청을 따른다는 항목은 어느 정도의 요청을 말하는 것이며, 거부했을 때의 페널티는 어떻게 됩니까?”

“아, 그 규정은 웜홀의 발생 시 처리해 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이지요. 드물게 다른 요청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뭐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페널티는 품위 유지비의 삭감 정도가 있지만 대부분의 능력자가 돈이 부족한 경우는 없으니 크게 개의치 않지요.”

“아, 의무 항목에서 유니온의 멤버는 일반인에게 이능의 노출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규정 말입니다. 혹시 노출했을 때의 페널티가 있는 건가요?”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능을 모르는 일반인에게 이능이 노출된다면 정보 관제를 하고 다소간의 기억 조작을 행하지요. 만약 그 노출이 악질적으로 지속된다면 단체에서 퇴출하고 사회에서 격리시킬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일반인의 스포츠 등에 끼어드는 것 역시 유니온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유니온의 규약집을 다 읽은 강민과 유리엘은 김창수가 제시한 서류에 사인을 하였고 김창수는 기분 좋은 얼굴로 서류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혹시 두 분 금강선원에 소속되신 겁니까?“

금강선원은 어릴 적부터 수련하여 제자를 기르는 단체였지만 다른 많은 능력자 단체가 스카웃 방식으로 능력자를 영입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김창수는 진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닐세, 난 안내자 역할만 하는 거네. 하지만 강민 님과 유리엘 님이라면 우리 선원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허허허”

“말씀은 감사하지만 아직 어디에 소속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유니온도 특정 단체가 아니라 능력자의 연합이라기에 가입하는 것뿐이지요.”

“품위 유지비는 들으셨지요? 소속된 단체가 있으면 품위 유지비는 없으나 무소속이신 경우는 C등급은 원화로 대략 월 1천만, B등급은 월 1억, A등급은 월 10억의 품위 유지비가 나갑니다. 두 분은 무소속의 A등급이니 합쳐서 월 20억씩 품위 유지비를 받으시겠네요.“

사실 일반인 사회에서 활동하는 웬만한 능력자 단체는 어마어마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기에 C등급만 되어도 단체의 역량에 따라 월 10억 이상은 쉽게 벌 수 있었다.

금강선원만 하더라도 일반 사회 활동을 별로 하지 않지만 몇십, 몇백억 단위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그렇기에 품위 유지비는 말 그대로 자잘한 돈 때문에 사고 치지 말라는 ‘품위’ 유지비였다.

유니온의 품위 유지비는 상당히 실질적인 제도였다.

사실 D등급 이하의 하위 등급이 문제를 저지르는 경우, 유니온 소속의 수호단이나 척결대가 나서서 충분히 제재할 수 있었다.

C등급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제재할 수 있으나, 만일 월 천만 원의 비용으로 그것을 다소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싸게 드는 일이었다.

B등급부터는 수호단도 피해 없이 잡기 위해선 여러 명의 B등급이 나서야 하고, 만일 B등급이 악한 마음을 품고 일반인을 공격한다면 피해는 훨씬 클 것이다. A등급은 말할 것도 없다.

소속이 있는 경우에는 소속된 단체에서 생활을 보장해 주고 어느 정도의 통제를 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지만, 무소속인 경우에는 단지 돈 때문에 능력을 이용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 정도 비용으로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정의 능력자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면 상당히 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에 시행되었고 그 성과도 꽤 있었다.

“만일 유니온의 멤버가 아니라 직원으로 함께하신다면 품위 유지비가 아니라 연봉이 나갑니다. 직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품위 유지비의 열 배가량 되는 연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창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어지간한 능력자 단체만 하더라도 그것보다 많이 주겠지만 유니온 직원이라고 함은 능력자 세계에 공무원 아니겠습니까? 생각보다 일반 사회에서나 능력자 세계에서나 힘은 좀 있답니다, 하하하. 물론 직원으로서 당연히 회사의 방침을 따라야겠지만요.“

“직원은 아직 생각이 없습니다.”

‘월 10억이라……. 월 80만 원을 벌려고 신문 배달하다 그랬던 것이 어제 일 같은데 참, 세상일이란…….’

직원도 아니라 멤버로서 가입만 하더라도 월 10억의 품위 유지비가 나온다는 사실에 예전 일이 스치듯 머릿속에 떠올라 강민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강민과 유리엘에게 돈은 의미가 없었다. 지금 당장 유리엘의 아공간에는 거의 백만 톤에 가까운 순금이 있었다.

어느 차원에서나 화폐로서의 가치를 하는 금이었기에 수만 년간 차원을 돌면서 모으다 보니 이토록 많아진 것이었다.

“아, 그러신가요? 알겠습니다. 일단 가입은 끝나셨습니다. 신분증과 회원증은 본부에서 받으시거나 아니면 내일 여기로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회원증은 신용카드도 겸하는데 한도는 연간 지급하는 품위 유지비와 같습니다. 한도가 초과된다면 추가 입금이 없는 경우, 품위 유지비에서 차감하고 있습니다.”

“본부로 가서 오늘 바로 수령하겠습니다. 갈 곳이 있어서요.”

“아, 집으로 가셔야 하지요. 10년 만인데 제가 너무 잡고 있었네요. 어차피 한국으로 오실 거였으면 그냥 헬기만 보내서 본부로 모시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게 창수, 내가 생각이 짧았네. 도와드린다는 생각이 앞서서 말일세.”

“아닙니다.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스님도 뵙고 좋지요, 뭘. 하하하.”

“그럼 저랑 같이 가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본부는 서울이니 서울에 들렀다가 관련 절차를 마무리 짓고 바로 어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사는 곳은…… 예전 그대로더라고요.”

“본부에 들렀다가 집에는 알아서 가겠습니다.”

김창수가 서류를 정리하는 사이, 진운이 강민에게 다가와 나직하게 말하였다.

“강민 시주, 혹시 나중에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부탁입니까? 이렇게 편의를 봐주시는데 웬만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때 곤란하시다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연락 주십시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