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3화 (3/203)

# 3

현세귀환록

003. 귀환(3)

“대강의 사정을 알겠군요. 혹시 하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부탁인지요? 진명 사제의 생명의 은인이신데 저희 금강선원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는 한국 국적이 있는데, 유리엘은 현재 국적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릴 적부터 산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리엘에게 국적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굳이 차원 이동에 관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기에 강민은 산속에서 수련하였다는 최초의 이야기를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

“국적이라……. 금강선원은 중립적인 위치이지만 있는 곳이 북한이다 보니 남한에 영향력은 좀 약한 편입니다. 음…… 지리산에 있는 천왕가가 남한에서는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하니 제가 천왕가에 부탁을 해보겠습니다.”

진운의 말에 강민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어찌 됐든 유리엘의 국적만 만들면 되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아니면 유니온의 일원이 되시면 어떻겠습니까? 유니온의 멤버가 되면 유니온 차원에서 신분을 보장하기에 어느 나라에서나 활동하시기에 편하실 것이고 등급에 따라서 혜택이 꽤 됩니다.”

뜻밖의 제안에 강민과 유리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이능력자이시니 이능의 세계에서 활동하실 가능성이 큰데 유니온의 멤버가 되면 좀 더 편하게 활동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유니온에 직접 소속되어 일하지 않더라도 무소속의 C 등급 이상 멤버에게는 품위 유지비로 일정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사고 치지 말라는 것이지요, 허허.”

“유니온의 멤버라……. 가입 절차가 어떻게 됩니까?”

“연고가 없다면 유니온 국가별 본부로 찾아가서 테스트를 받아야 하지만, 저희가 요청을 한다면 유니온 등급 담당 직원을 이리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 금강선원이 나름 한국에서는 3대 선문으로 불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허허허.”

“아, 대단한 곳이었군요.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대단은 무슨, 허명에 불과하지요. 허허, 그럼 제가 연락을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진운 스님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자 강민과 유리엘은 간단한 심어를 주고받았다.

[유리엘, 아무래도 유니온의 일원이 되는 게 은둔하기 편하겠어. 마나 기반 문명이 이면에서 이렇게 있다면 결국은 이쪽에 노출이 될 거야. 이런 상황에서 힘을 숨기다 갑자기 드러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래요, 민. 민의 뜻대로 해요.]

밖으로 나온 진운 스님은 스마트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이봐, 창수. 날세.”

-아, 진운 스님께서 웬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고, 유니온에 가입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말이야.”

-신입 회원입니까?

“신입 회원은 맞는데……. 최소 B등급 이상은 되어 보인다네.”

-신입이 B등급이요? 확실한 겁니까, 스님?

“내가 B 등급인 걸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내가 경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네.”

-오호라, 그 정도인가요? 그런데 그 정도 실력의 신입이 소속이 없는 건가요? 왜 금강선원에서 연락을 주시는 건지?

“아, 그분들이 10년간 산속에서 홀로 수련하다 이번에 처음 출도했는데 제대로 된 안내자가 없었던지라 이능의 세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더군. 그래서 이번에 내가 안내자가 되었다네. 허허”

-그러신가요? 혹시 이름은 알고 계십니까?

“두 분인데 남자 시주는 강민, 여자 시주는 유리엘이라 한다네.”

-강민과 유리엘이라……. 카오틱에빌의 신분 세탁 뭐 이런 건 아니겠지요?

“그레이 울프라면 몰라도 카오틱에빌은 아닐세. 눈빛과 기가 맑아.”

-스님의 안목이야 정확하지요, 하하.

“금강선원이 보증한다면 가입 안내 담당을 보내줄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자네가 오면 좋겠는데 말이지.”

-네, 누구 부탁인데요. 스님의 부탁이라면 제가 열 일 제쳐놓고 가야지요, 암요. 안 그래도 요즘 제 밑으로 신입들이 들어와서 좀 한가합니다. 오늘 일 좀 처리하고 내일 오전 중으로 가겠습니다.

“고맙네, 창수.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네, 스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김창수는 유니온의 직원이었는데 과거 진운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흔쾌히 진운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강민은 방에서 진운과 김창수와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진운의 기꺼워하는 말투에 일이 잘 풀려 간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방에 들어온 진운이 웃으며 강민에게 말을 건넸다.

“강민 시주님, 이야기가 잘 풀려서 내일 유니온에서 사람을 보내준다더군요. 내일 유니온에서 등급을 인증받고 신분증을 받으면 유니온 소속 이능 단체가 있는 나라에서는 운신에 제약이 없으실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

“뭘요, 진명 사제를 구해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럼 산에서 내려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쉬시지요.”

강민과 유리엘을 방에 두고 진운과 진명은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이상하지요?”

“그래, 묻지도 않는다는 건 뭔가 알고 있다는 건가?”

“그래도 적의는 없으니 크게 생각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뭐, 조만간에 이유가 밝혀지겠지. 아니라도 상관없는 일이고.”

“그렇지요.”

진운은 강민과 유리엘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제의 은인이라 해도 아무런 의심 없이 안내자까지 자처하며 이능의 세계에 관해서 친절하게 알려줬다.

진명 역시 강민과 유리엘이 우리말도 영어도 아닌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의문도 표시하지 않았다.

사실 산에서 10년간 수련했다는 강민과 유리엘은 그 옷차림만 해도 앞뒤가 안 맞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 물어본다면 나름의 납득할 만한 대답을 준비하긴 했지만 수련이나 옷, 언어에 관해 묻지 않는다는 것은 강민이 생각하기에도 다소 의아한 일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강민은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반색했다.

“아, 컴퓨터가 있네.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다면 웬만한 정보는 여기서 다 얻을 수 있을 거야.”

“이건 데케인 차원에 있는 마나 패널과 비슷한데요?”

“그렇지? 나도 마나 패널을 처음 보고 컴퓨터를 생각했으니 말이야. 물론 마나 패널은 마나를 이용한 훨씬 고차원적인 기기지만, 이 컴퓨터는 마나가 없는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이 높은 기기이니 어느 것이 낫다는 말을 하긴 힘들겠지.”

컴퓨터는 두 대가 있었기에 강민은 유리엘에게 간단한 조작법을 알려준 뒤 인터넷을 통해 지난 10년간의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다.

“민, 잠깐 이거 봐요.”

강민은 부른 유리엘은 어느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흰색의 셔츠와 짧은 핫팬츠 스타일의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C컵은 족히 되어 보이는 볼륨감 있는 가슴과 탄력적이고 탄탄해 보이는 S라인이 그대로 드러난 늘씬한 몸매는 서구적인 얼굴과 매우 잘 어울렸다. TV 속의 연예인도 따라갈 수 없는 절대적인 미모였다.

“유리엘? 그 옷은 뭐야?”

“여기 젊은 여자의 기본적인 옷차림이래요. 인터넷이라는 곳에서 사진을 보고 한번 만들어 봤어요. 민도 그 옷보다는 이런 스타일의 옷이 어때요?”

유리엘이 말을 마치며 손가락을 튕기자 강민의 몸에서 빛이 나며 흰 반팔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바뀌었다.

강민은 큰 키에 탄탄해 보이는 체형이라 이런 기본 스타일의 옷만 입어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고, 얼굴도 상당히 준수한 편에 강인해 보이는 큰 눈이 매력적인, 소위 말하는 훈남 스타일이라 실제 모델을 해도 괜찮을 정도의 외모였다.

“이런 옷 스타일, 정말 오랜만인데?”

“마법진을 새긴 제대로 된 옷은 나중에 따로 만들 테니, 일단은 아쉬운 대로 이렇게 입는 게 어때요? 기존의 옷감에서 스타일만 여기 스타일로 바꾼 거예요. 차원 이동할 때마다 다시 마법진 새기는 것도 상당히 귀찮다니까요. 에휴.”

차원을 이동하는 경우 마나의 반발이 일어나는 건 생명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나를 가진 생명이야 당연히 마나 반발이 생기지만, 생명체가 아닌 경우도 마나를 품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마나 반발이 발생한다.

강민과 유리엘의 장비와 의복은 대부분 유리엘이 마법적인 조치를 취해놓았는데 차원 이동 시 마나 반발로 마법력을 잃어서 다시금 제작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차원 이동은 단순히 불편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 사람들 옷차림을 보니 여기도 상당히 개방적인 곳 같아요.”

“뭐, 개방적이라면 개방적인 곳이지. 예전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이 세계는 한창 변혁기가 진행 중인 것 같아.”

강민의 말에 유리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질 문명이 이처럼 발전했는데 이능이 감추어진 세계라면 조만간에 큰 변혁이 진행되겠지. 유니온 같은 단체를 만들어 감추려고 하지만 변화라는 건 그렇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유리엘도 잘 알잖아.”

“그렇죠. 딜라인 차원에서만 해도 그렇게 감추려던 이능이 드러나면서 이능력자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그를 반대하던 이능력자와의 싸움 끝에 대다수의 문명이 파괴되었으니 말이죠.”

유리엘은 그 당시가 떠오른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데케인 차원에서처럼 이능력자들의 우위를 인정하고 지배, 피지배 관계가 빨리 성립되어 버리는 것이 문명의 유지 발전에는 더 좋을수도 있어요.”

“웜홀에서 나오는 마물이라는 것이 이런 변혁을 더 촉진시킬지도 모르지.”

“그렇죠, 외부의 적이 있다면 내부적 단결이 쉬울 테니까요.”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강민은 진운과 진명과 함께한 저녁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듯했지만 10년간의 정보를 대부분 수습할 수 있었다. 유리엘 역시 이 세계의 문명과 문화를 파악한 듯했다.

강민은 본래 그가 있던 차원이니 10년간의 정보 업데이트만 필요할 뿐이었고, 유리엘 역시 강민에게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자주 들었기에 다른 차원에 비해 적응의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물며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있는 상황에서 이제 둘은 이 세계의 토박이와 다름없는 지식 수준을 가질 수 있었다.

데엥, 데엥.

아침이 되었는지 멀리서 장엄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어둑어둑한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숲 속에서 짹짹거리는 산새 소리가 아직은 그들이 산속에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파란 천에 검은색 땡땡이가 그려진 잠옷과 분홍 천에 흰색 땡땡이가 그려진 잠옷을 커플로 입은 강민과 유리엘도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여긴 기운이 참 맑아서 그런지 푹 잘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민.”

“유리엘, 근데 우리 꼭 이런 잠옷까지 입어야 해?”

“뭐 어때요? 이번엔 [적응]하기로 했잖아요, 호호홋.”

“그래도 이런 옷까진……. 하핫.”

강민이 쑥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에 귀여움을 느낀 유리엘은 옆구리를 쿡 찌르며 간지럽혔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진명 스님이었다.

“시주님들 일어나셨으면 아침들 드시지요.”

“네, 스님. 나갑니다.”

유리엘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그들의 옷은 어제와 같은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커플룩으로 바뀌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