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75화 (완결) (175/175)
  • 175화. 수리 킴, 그리고 육아일기(에필로그)

    # 1일

    드디어 수아를 만났다.

    # 15일

    뭐가 맘에 안들었는지 밤에 깨서 온 동네에 우렁찬 목소리를 자랑한 김수아. 그이가 없는 게 다행이다. 있었으면 분명 깼을 테니까.

    # 60일

    요즘 그이는 수아만 찾는다.

    요즘 들어 경기에서 다른 투수들이 잘 상대해 주지 않아서 그런지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거 같아서 조금 서운하지만 그냥 같이 웃어 줬다.

    아직 수아가 너무 어려 올스타전은 보러 가지 못한다고 말했더니 조금 삐진 거 같다.

    이럴 때 보면 수아보다 더 아기 같기도 하고.

    아직 우리 수아는 삐지는 거도 모르거든.

    맞지?

    # 100일

    수아가 자다가 갑자기 열이 올라 당황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라서 그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비몽사몽하던 목소리가 바로 또렷해져서 놀랐다.

    다행히 해열제를 먹이고 옷을 벗겨 놨더니 열이 내렸다.

    경기에 지장이 없어야 할 텐데…….

    # 117일

    타이거즈가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매직넘버가 0이 되는 경기에서 홈런을 치는 사람이 파티를 열기로 했다는데, 내가 볼 땐 모두가 짜고 그이를 놀리려는 게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내기는 내기니까 팀원 모두를 초대해서 파티를 열었다.

    그 와중에 주니어가 수아와 철이에게 장난감을 빼앗겨 조금 울긴 했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클리서 씨가 나타나서 해결해 줬다.

    아이들은 클리어의 말투를 좋아하는 거 같다.

    #152일

    그이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항상 원정경기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바람에 직접 가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번엔 그이도 아쉬울 거다.

    아빠가 우승할 걸 안 것처럼 수아도 오늘 처음으로 기어서 앞으로 나갔으니까.

    경기도 끝났겠다, 찍어 놓은 영상을 보내 줘야겠다.

    # 213일

    요즘은 로라와 하별이와 자주 티타임을 가진다

    이젠 주니어가 제법 커서 아기들과 같이 놀아 주려는 모습도 보이고, 또 귀여워하는 게 보여서 그게 귀엽기도 하니까.

    # 215일

    깜짝 놀랐다.

    어느 날처럼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주니어가 갑자기 뛰어 들어와 말했다.

    “수리!! 여기 보세요!! 스와가 섰어요!”

    그 말에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간 놀이방에는, 어린이용 소파를 잡고 선 수아가 있었다.

    # 12개월

    “아빠!”

    수아가 갑자기 TV 속 그이를 보고 말했다.

    “뭐라고?”

    “아빠!”

    그동안 엄마라고만 말해서 그이가 조금 삐져 있었는데, 드디어 아빠 소리를 들려줄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렜다.

    “다시 한 번 해보자, 누구야?”

    “아! 빠!”

    동영상을 보냈다.

    좋아하겠지?

    # 다음 날

    기가 차서 말도 안나온다.

    아빠 소리를 직접 듣고싶어서 그랬다고?

    후우…… 내가 참아야지. 그래도 수아가 나중에 보면 좋아할 것 같긴 하니까,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놓을 거다. 내 손으로 쓰긴 싫어.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붐’. 몸에 맞는 볼에 격노하여 마운드로 뛰어 올라가. 인디언스의 트래빗 셔튼 등 3인 30일 DL 등재.]

    # 15개월

    오랜만에 휴식일이다.

    올 시즌 팀의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나도 그렇고 그이의 기분도 좋은거 같다.

    요즘 들어 상대팀도 포기했는지, 경기 초반엔 고의사구를 지시하는 경우도 드물고……. 아무튼 너무 좋다.

    “으아아아앙!!”

    수아가 넘어져서 얼굴에 상처가 나기 전까진 모든게 좋았다.

    # 17개월

    맙소사.

    포스트 시즌에서 20K 기록을 세우다니.

    하별이와 나, 그리고 수아와 철이의 첫 포스트시즌 관람에서 정말 대단한 기록이 나왔다.

    그런데…… 케이시의 표정이 아주 좋진 않다.

    저, 저…… 눈치 없는 사람.

    이럴 때면 좀 헛스윙도 하고 그러지. 하필 이런 경기에서 홈런 포 더 사이클을…….

    아무래도 집에 오면 말해 줘야겠다.

    내가 애를 두 명 키운다, 정말.

    # 18개월

    우승 축하를 위한 파티에 드디어 아이들이 뛰어놀기 시작했다.

    폴리는 여전히 춤췄고, 로라는 항상 그랬듯 창피해하다 같이 춤췄다. 주니어도 같이!

    그이는 힘들지도 않는지 수아를 안고 파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은근히 수아의 귀여움을 뽐내고 있었다.

    저러다가 계속 안아 달라고 하면 나만 힘든데.

    #24개월

    어쩐지, 수아의 생일 축하를 그렇게 어마어마한 규모로 하는 게 이상했다.

    엊그제인가, 잠깐 흘리듯이 디트로이트가 좋냐고 물어봤던 게 그런 이야기였어?

    아무튼, 그이는 디트로이트와의 계약을 연장했다. 10년 더.

    # 36개월

    오늘도 육아일기를 위해 노트를 펴는 내게 그이가 물었다. 이제 슬슬 그만 써도 되지 않냐고.

    물론, 내 대답을 듣자마자 당황하며 얼른 자는 척을 했지만.

    저렇게 단순해서 어떻게 투수와 수싸움을 하는 걸까? 자기는 그냥 보이는 걸 세게 친다고 말하긴 하는데…… 그렇다기엔 너무 잘 친다.

    아, 간만에 취미생활이 끌리는 날이다.

    # 38개월

    경기를 보려고 잠깐 눈을 뗐을 뿐인데, 수아가 거실 곳곳에 벽화를 그려 놨다.

    급하게 지울 수 있는덴 지우고, 자기 그림을 지웠다며 우는 수아를 달래고 TV를 봤는데……. 맙소사. 놓쳤다.

    이번 원정 때 600-600을 달성하면 특별한 세레머니를 보여 준다고 했는데.

    서둘러 앞으로 돌려 보니 만루에서 홈런을 친 그이가 1루를 밟자마자 유니폼 옷깃을 잡고 좌우로 뜯어내는 게 보였다.

    ‘수아 ♡ 수리 ♡ 사범’

    참 대단히 특별한 세레머니다.

    나중에 보면 분명 창피할 텐데…….

    일단 저장해 놔야지.

    # 56개월

    케이시가 디트로이트를 떠났다.

    시즌 중 이상함을 느낀 그이가 최선을 다해 막아 봤지만, 이미 마음을 정했는지 전혀 듣지 않는 케이시.

    그걸 깨달은 날, 거의 처음으로 술에 취한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쓰러지듯 누워 상태창이니, 힘이니 중얼거리는 모습이 뭔가 귀여웠다. 안쓰럽기도 하고.

    # 64개월

    챔피언십 1차전.

    병헌씨와 케이시는 옷만 바꿔 입은 채 2026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1회 초부터 시작한 0의 행진은 9회 말까지 계속됐고, 양 팀은 약속이라도 한듯 연장 10회에도 두 명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리고.

    “엄마, 나 졸려…….”

    수아의 말을 그이가 들었나?

    11회 초, 케이시의 변화구를 받아 친 공이 양키스타디움의 담장을 넘겼다.

    그리고, 병헌씨는 11회 말에도 나와 경기를 마무리했고.

    # 72개월(6살)

    “긴장돼서 미칠 거같아. 잘 할까?”

    이이는 킨더가든 때도 그러더니, 초등학교 입학 땐 더 심해졌다.

    아빠처럼 될 거라고 막대기 하나 들고 온 동네 아이들을 쥐잡듯이 잡는 아인데.

    타석에서나 그렇게 긴장하라고 했더니 웃으며 대답하는 그이.

    “내가 타석에서 이만큼 긴장했으면 난 아직도 마이너에 있을걸?”

    그 말이 맞긴 하다.

    어느 마이너 투수도 로봇처럼 걷는 타자에겐 안타를 내주지 않을거니까.

    # 73개월

    요즘들어 날 빼놓고 둘이 있는 시간이 잦다.

    “절대…… 안 돼…… 조심…….”

    “응…….”

    “비밀 수호천사가…….”

    뭔가 나만 모르는 게 있는 거 같은데.

    # 97개월(8살)

    오늘은…… 평화로웠었다.

    2주간의 긴 원정을 끝내고 돌아온 그이는 수염을 길러 본다며 덩치에 안 맞는 조그마한 면도칼을 들고 하루종일 욕실에서 살고 있었고, 학교에 다녀온 수아는 그런 아빠를 안아 주고는 철이와 함께 어디론가 놀러 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헐떡이며 달려온 철이의 한마디가 평화롭던 시간을 깨트렸다.

    “고모!! 수아가!!”

    난 그때의 그이보다 빠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철이를 안고 정말 미친듯이 뛰어간 그이.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정리가 끝나 있었다. 앞 타이어가 찌그러져 거리에 나뉭굴고 있는 자전거와 함께 울고 있는 아이와, 구석에서 아빠와 함께 쪼그려 앉아있는 수아.

    나는 옆에 있는 철이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저 자전거가 수아한테 왔는데…… 수아가 팡! 했더니 막 날았어요!”

    뭐가 날아? 아니, 팡?

    “아뇨아뇨! 그게 아니라…… 음……. 모르겠어요!”

    다친 아이의 부모님을 불러 병원에 보내고, 조금 진정된 수아에게 물어봤지만 수아는 아빠가 비밀로 하랬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럼, 나도 다 생각이 있지.

    “으하…… 아니야. 그냥 혼날까 봐 그런거야. 돌멩이 같은 거에 걸려서 넘어진 거겠지. 수아도 얼굴 위로 바로 사람이 지나가는 바람에 많이 놀랬더라고…….”

    이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니다.

    오늘은 꼭! 진실을 들어야겠다.

    # 100개월(8살)

    어제 육아일기를 쓰는 내개 그이가 말했다. 이 정도면 그냥 일기 아니냐고.

    딱히 부정할 말이 없어 그냥 웃고 말았다.

    그나저나…… 왜 아직 소식이 없지? 혹시…….

    # 101개월(8살, 16주)

    그이가 전설이 됐다.

    이미 600-600부터 전설이었지만, 정말 오늘은…… 1000-1000이라니.

    도루야 2년 전부터 이미 1000개를 넘어섰지만, 홈런은 생각보다 잘 쌓이지 않아 고민하던걸 봐 왔기에 더 기쁜 하루다.

    때마침 오늘은 원정에서 돌아오는 날이니까…… 내가 준비한 최고의 선물을 줘야지.

    혹시 너무 기뻐 심장이 멎을까 자동 제세동기도 거실에 갖다 놨다.

    그리고,

    그이가 처음 수아와 만난 그날처럼, 그이는 기뻐했고,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춤췄다.

    그 바람에 잠에서 깬 수아가 조금 이상한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긴 했지만…… 별 상관 없겠지.

    # 102개월(8살, 20주)

    수아와 배 속의 아이만 없었더라면, 난 지금 필라델피아로 날아갔을 거다.

    하별이의 집에서 다같이 본 월드시리즈 1차전.

    그이는……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었다.

    # 107개월(8살, 0살)

    현아가 태어났다.

    수아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큰 고구마를 닮았다.

    그이도 감격한 거 같다.

    같이 샤워할 수 있는 아이가 생겨서 그런가?

    # 114개월(9살, 7개월)

    그이가 다시 필라델피아로 떠났다.

    정규시즌은커녕 디비전 시리즈까지 타격감을 끌어올리기 바빴던 그이를 뭘 보고 월드시리즈 로스터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갔다.

    나는 수아와 현아를 안고 기도했다.

    # 114개월(9살, 7개월)

    1차전, 대타 만루홈런.

    2차전, 4번타자로 나와 2홈런.

    2연승을 이끈 그이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승기록? 다시 시작하면 된다. 모두가 내 나이를 말하며 은퇴를 예상했지만, 난 다시 여기서 서 있다. 그리고, 내가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디트로이트는 항상 이기는 팀일 거다.”

    #120개월(10살, 1살)

    이삭이 은퇴를 결정했다.

    최근 계속된 햄스트링 부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은퇴를 발표할지는 몰랐다.

    그이에게도 충격이었는지, 어젯밤엔 조금 훌쩍이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 124개월(10살, 1살)

    후반기가 시작되자마자 시작된 이삭의 은퇴 투어.

    누구는 배트, 누구는 흙, 누구는 1루 베이스, 누구는 3000개의 공.

    마지막 홈경기에서는 수아가 이삭을 위한 축사를 하기도 했다.

    아직도 결혼을 안 한 이삭은 그런 수아의 모습을 보며 엉엉 울었고 -둘이 그렇게 친했는지 엄마인 나도 처음 알았네-, 그런 이삭을 보는 그이도 한참 동안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좋은 팀, 좋은 동료, 좋은 팬. 그리고 3000개의 안타. 성공한 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은 이제 여기서 접어 두고,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홈 팬들 앞에서 인사하는 이삭의 모습이 마치 그이 같아서 나도 조금 슬펐다.

    # 148개월(12살, 3살)

    “이번 포스트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겁니다. 아직도 충분히 던질 순 있는데…… 사인이 안 보여. 슬슬 갈 때란 거지.”

    폴리가 갑자기 은퇴를 발표했다.

    놀라서 그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 줬다.

    “얼마 전부터 한쪽 눈이 거의 안 보였대. 저런 눈을 하고 666세이브를 달성할 거라며 뛴 게 대단한 거지. 아니…… 멍청한 건가…….”

    구단에서는 폴리를 포스트시즌 경기에 내보내지 않을 거란다.

    폴리라면…… 나가겠지만.

    #160개월(13살, 4살)

    밤중에 차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가 봤더니, 수아가 엎드려서 뭔가를 줍고 있었다.

    슬쩍 다가가 봤더니, 깜짝 놀라는 수아.

    알고 보니 지 아빠가 100달러 지폐를 차고에 숨겨 놨다고 그걸 찾느라 그런 거란다.

    아무튼, 장난기는.

    근데…… 내가 차를 저렇게 딱 붙여서 대놨나? 운전석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겠는데?

    # 176개월(15살, 6살)

    그이가 내게 처음으로 은퇴를 말했다.

    스프링캠프 때 주니어를 만났다나.

    갑자기 온몸이 아프더란다. 슬슬 버티기가 힘들다는 소리도 했고.

    슬퍼하는 그이를 보다 보니 나도 슬퍼져서 한참을 같이 울었다.

    #178개월(15살, 6살)

    구단 측에 공식적으로 은퇴의사를 밝혔다.

    파크에서 나오는 그이는 뭔가 후련해 보였다.

    요즘 들어 방송인지 뭔지를 한다고 이것저것 사기 바쁘던데, 아직 시즌도 시작 안 했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은 거 같아서 그냥 놔두고는 있지만.

    #190개월(16살, 7살)

    그이의 은퇴식 날, 디트로이트 시의 모든 공장은 문을 닫았다. 너도 나도 휴가를 내서 일할 사람이 없다더니.

    마치 월드시리즈 우승 퍼레이드 같은 은퇴 퍼레이드가 끝나고, 파크에 도착해 소감을 말하던 도중 그이가 우는 바람에 모두 눈물을 쏙 뺐지만, 어찌 됐건 아주 즐겁고, 뜻 깊은 순간이었다.

    #191개월(16살, 7살)

    “안녕하세요. 김붐입니다. 오늘은 발렌 사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저 스킬을…….”

    도대체 언제 저렇게 게임을 했는지…….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현아가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수아?

    수아는 신경도 안 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춘기를 겪고 있거든.

    이상한 가면을 만드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 같은데……. 기계를 뒤집어쓰고 뭐라 중얼거리는 인간 케어하기도 바빠서 신경을 못 쓰고 있네.

    * * *

    [어둠 속 히어로, 오늘도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 사람들은 그녀를 ‘터프 걸’이라 부른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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