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68화 (168/175)
  • 168화 김사범, 2026포스트시즌(나와 닮은 누군가)(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

    - 타이거즈와의 월드시리즈를 앞둔 카디널스 선수단의 기세가 무섭다.

    시즌 19승 7패, 267개의 삼진을 수확한 카디널스의 알렉스 레예스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붐이 아닌, 디트로이트의 타선을 상대하는 일이다. 쉽진 않겠지만 해낼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으며, 이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다행스럽게도 챔피언십 시리즈를 5차전에서 끝낸 카디널스 선수단은 별다른 훈련 없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예정이며, 1차전 선발로 다코타 허드슨을 예고했다.]

    * * *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온화하기로 유명하다.

    그들은 상대 팀의 성공을 축하해 주길 주저하지 않으며, 때로는 상대팀이 감동받을 정도로 큰 환호를 보내 주기도 한다.

    단, 그 상대방이 시카고 컵스가 아니라면.

    그리고 난 지금 이야기로만 들었던 ‘신사’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막을 팀이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저 선수들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디트로이트에겐 월드시리즈라는 큰 무대를 그저 정규시즌의 한 경기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이 있어요. 선발투수가 나와서 7이닝을 막고, 마지막 이닝엔 마무리 투수가 나와서 세 타자를 상대했습니다. 그리고 2026시즌의 제일 마지막 승리를 기록하는군요.]

    [2020년부터 2026년까지, 6년의 기간 동안 여섯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세인트루이스 팬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우린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즐겁게 춤췄으며, 나는 손에 잡히는 동료들을 아무렇게나 하늘을 향해 던지고, 받았다.

    [2026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입니다!]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

    그리고 가능하다면 매 순간 즐기고 싶은 순간이었다.

    * * *

    [수리 : 피곤하지 않아?]

    [나 : 조금? 샴페인으로 샤워했잖아 ㅎㅎ]

    [수리 : 나 오늘 왠지 꽃다발을 받고 싶은데.]

    [나 : 꽃? 갑자기?]

    [수리 : 응. 이쁜 꽃.]

    [나 : 알겠어. 도착해서 한번 구해 볼게.]

    * * *

    디트로이트, 김사범의 집.

    [하스타 : 언니, 말했어요?]

    [수리 : 응. 근데 기대는 안 해.]

    [하스타 : 그렇죠? 사실 저도…… ㅎㅎ]

    [수리 : 태연 씨하고 말해 봤어? 아직 모르지?]

    [하스타 : 모르죠…… 걔나 오빠나 눈치란 게 없잖아요.]

    [수리 : (이모티콘)그건 그래. 아무튼 내가 먼저 말해 보고 알려 줄게!(이모티콘)]

    [하스타 : 언니 ㅠㅠ 진짜 저 어떡해요…….]

    [수리 :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다 잘 해결될 거야! 알지?]

    [하스타 : 네…….]

    “후우…….”

    김하별과의 메신저창에서 잠시 시선을 뗀 수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말하는 게 좋을 텐데……. 지금 말 안 하면 결혼식도 힘들 거고…….’

    평소의 당찬 행동과 다르게 극도로 소심해진 시누이를 생각하는 수리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바로 그때.

    띵동-

    기대하고, 기대하던 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왔어?”

    대답 대신 불쑥 내밀어진 김사범의 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들려 있었다.

    “이게 뭐야?”

    “꽃. 파는 데가 없어서 꺾어 왔지.”

    “좋네. 향도 좋고.”

    어느새 꽃다발 사이에 고개를 묻고 향기를 맡고 있는 수리의 모습을 보며 김사범은 슬쩍 웃음 지었다.

    “아, 몸은? 감기기운 살짝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느새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김사범이 수리에게 물었다.

    “응, 괜찮아졌어.”

    “그래? 그럼…… 선물은 오늘 줄 거야?”

    “응? 응. 잠깐만…….”

    대답과 함께 침실에 들어갔다 나온 수리의 손에는 꽤 커다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이거야? 크네? 스파이크인가?”

    “풀어 봐…….”

    그리고 마침내 김사범이 상자를 열고 안의 내용물을 봤을 때, 수리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거 뭐야?”

    “테스트기…….”

    “이게…… 두 줄이 그거지?”

    “응…….”

    아주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그럼, 나 이제…… 아빠인 거네?”

    “응…….”

    김사범은 여덟 시간 전, 우승했을 때보다 더 큰 함성을 내질렀다.

    “내가! 아빠다!!”

    * * *

    [고객님, 16주 이전의 임산부는 의사가 대동하지 않는 이상 항공기에 탑승할 수 없습니다.]

    “의사만 있으면 되죠?”

    [네? 네. 항공사 규칙상…….]

    “알겠습니다.”

    수리의 고백 이후,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필! 수리가!”

    [알고 있네, 같이 병원에 간 게 나야. 의사가 말하길 기적이라더군.]

    “아…….”

    [너무 섭섭해하진 말고. 수리 입장에서는 자네가 실망할까 봐 무서웠던 거야.]

    “그렇죠. 그래도 좀…….”

    [하하하, 적어도 수리 앞에서는 티 내지 말고.]

    “네. 아, 이번엔 바로 한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필도 같이 가실 건가요?”

    [아쉽게도 회사 일이 바쁘군. 수리와 둘만 다녀오게. 아, 그리고 항공사마다 임산부에 대한 규정이 다르니 그것도 알아봐야 할 거야.]

    “네. 고마워요 필.”

    필의 말대로 내가 애용하던 한국 국적의 항공사는 의사를 대동하지 않으면 탑승할 수 없었다.

    ‘몰랐으면 큰일날 뻔했네. 보자…….’

    이럴 때면 항상 부르는 그 이름, 짐.

    [산부인과 의사요?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꼭 같이 가야 해서요.”

    [음…… 아, 축하해요 사범.]

    “하하하…….”

    [그런 일이라면 내가 힘을 써 봐야죠. 같은 항공기에 타면 되는 거죠?]

    “네. 알아봐 주세요.”

    [Ok. 조금만 기다려요.]

    항공편을 알아보는 건 사실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내가 고생하는 거도 아니고. 짐이 다 해 주는 거니까.’

    무엇보다 나를 바쁘게 하는 건, 바로 수리를 케어하는 일이었다.

    “수리, 어디 불편한 덴 없어?”

    “드라마에서 보니까 막 토할 거 같고 그렇다던데, 괜찮아?”

    “뭐 사다 줄까? 먹고 싶은 건?”

    “설거지하지 마, 내가 할게.”

    “조금 더워도 참아. 임산부는 따듯하게 지내야 한대.”

    나도 모르게 쏟아지는 물음표들.

    솔직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서 거의 대부분의 질문이 인터넷에서 본 것들이었다.

    “자기, 난 괜찮으니까 가서 조깅이라도 하고 와.”

    “아냐. 그래도 내가 옆에 있어야지.”

    “아니면 이삭네 집에 놀러가서 시간 좀 보내고 와도 되고.”

    “아! 마마를 깜빡했네. 음…… 그래도 부모님에게 먼저 말씀드리고 말하는 게 맞는 거겠지?”

    “아니…… 그냥 가서 놀고…….”

    “그래. 그건 좀 그래. 아무튼, 어디 불편한 덴 없지?”

    “나가라고! 자기가 날 더 답답하게 만든다니까!”

    “어…… 그게…… 응…….”

    답답한 마음에 폴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폴리, 로라가 임신했을 때 기억나냐?”

    “기억나지.”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은 뭘 해야 하는 거야?”

    “임신했을 때? 처음? 아니면 나중?”

    “음…… 아마 처음?”

    “그냥 숨만 쉬면서 가만히 옆에 있어. 뭔가를 원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하지 마. 식사는 냄새가 풍기지 않는 음식으로 해결하고.”

    “음…… 냄새까지?”

    뭔가를 안다는 듯 날 보며 웃는 폴리.

    “집에서 요리하지도 말고. 제일 좋은 건 장모님에게 맡기는 거지. 그게 최고의 해결법이야, 친구.”

    짐이 티켓을 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틀.

    그 이틀 동안 나는 네 블럭 떨어져 있는 햄버거가게의 햄버거와 오지치즈, 차로 20분쯤 걸리는 곳에서 파는 중국식 볶음면과 중국식 튀김. 그리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어치워야 했다.

    내가 원한 건 아니다.

    기껏 사온 음식을 한두 입밖에 못 먹는 수리를 대신해서 ‘먹방’을 찍어야 했거든.

    * * *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오는 거라 기분이 좋네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평소보다 더 길게 느껴진 비행을 끝내고, 우리는 한국에 도착했다.

    “수리, 몸은…….”

    “괜찮아. 자기, 나 잠깐 화장실 좀…….”

    “응! 다녀와!”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안색이 안 좋던 수리를 화장실에 보내고, 멀뚱히 앉아 가족들을 기다렸다.

    “사범아!”

    “아버지! 금방 오셨네요?”

    “그럼. 누가 오는데. 근데 갑자기 웬 아버지?”

    “조금 있다 말씀드릴게요. 아, 수리는 잠깐 화장실에 갔어요.”

    “그래. 알겠다.”

    …….

    사실, 남자 두 명, 특히 그게 부자간이라면,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진 않는다.

    “수리가 늦구나.”

    “그러게요.”

    …….

    “아버님!”

    “수리 왔니? 그래, 아픈 덴 없고?”

    “네, 괜찮아요! 어머님하고 하별이는……?”

    “오늘은 집에서 기다린다고 하더구나. 가자.”

    어색한 말투의 아버지와 함께,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

    “사범이 왔니? 우리 이쁜 며느리는?”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

    “그래그래, 우리 수리, 아픈 덴 없지?”

    “그럼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아닌 수리를 반겨 주시는 어머니와,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김하별.

    “식사 준비한다고 안 했어? 어째 음식냄새가 안 나네?”

    “오늘은 그냥 밖에서 먹어요. 사범이 왔는데 몸보신도 시킬 겸.”

    “크흠…… 그럴까?”

    “오늘은 예비사위도 온다네요? 또 쓸데없는 걸로 트집 잡으면…… 알죠?”

    “이 사람이. 내가 언제 그랬다고…….”

    다행이다.

    요즘 수리가 한식을 잘 못 먹는다. 그 특유의 마늘냄새를 참기 힘들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김태연도 온다고?’

    왜 하필 오늘이야? 눈치 없는 자식.

    오늘 중대발표를 해야 하는데.

    괜찮겠지?

    잠시 후.

    “양식이야? 언제는 속 부대껴서 싫다던 사람이?”

    “그냥 먹어요. 오늘 내가 양식이 먹고 싶어서 그래. 수리도 괜찮지?”

    “네, 어머님.”

    “그래. 들어가자.”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김하별이 쪼르르 달려 나가 서버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아, 예약손님이시죠?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김하별이 왜 갑자기 나섰는지는 예약된 룸으로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장인어른! 장모님!”

    “크흠.”

    “어머, 우리 김 서방 왔어? 어쩐지, 하별이가 비싼 가게 예약해 놨다고 하더니.”

    “아하하, 제가 하별이에게 부탁했습니다. 코스 괜찮으시죠?”

    “그럼~ 사위 잘 둬서 호강하겠네~”

    “사위는 무슨…….”

    아버지의 투덜거림은 어머니와 김태연의 대화 사이에서 덧없이 스러져 갔다.

    “수리, 이거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지?”

    “응? 아니, 난 모르겠는데? 아, 자기. 우리 임신한 거, 언제 말할 거야?”

    “조금 있다 밥 다 먹고 집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그냥 지금 말하자. 지금 말해야 어머니, 아버지도 더 맛있게 드시지.”

    “그럴까?”

    “응. 난 그게 좋을 거 같아. 괜히 긴장하느라 아무것도 못 먹으면 억울하잖아.”

    어머니가 말하길, 남자는 아내 말만 잘 들어도 반쯤은 성공한 거라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좋은 소식 가져왔어요.”

    “좋은 소식?”

    “뭐냐?”

    괜히 내가 TV 속 진행자가 된 기분이다.

    “저, 아니, 수리가 임신했어요. 지금 4개월이래요.”

    잠시간의 침묵.

    익숙한 반응이다.

    그리고 이런 반응 후에는 보통…….

    “어허허허허허! 정말? 으하하하하! 잘됐구나, 잘됐어! 으하하하하!”

    이렇게 폭발적인 리액션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래, 고생했다. 힘들었지?”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는 수리의 손을 꼭 잡고 연신 고생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김하별은…….

    ‘어?’

    평소라면 자기가 더 난리쳤을 김하별이 웬일로 아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옆에 있는 김태연은 아주 무슨 한국시리즈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 같은 표정을 하고 있고.

    “장인어른!”

    “그래, 그래! 오늘은 내가 장인어른이라고 해도 봐…….”

    “하별이와 저, 결혼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쇼!”

    어?

    “사, 사실, 하별이도…….”

    “하별이도?”

    나도 모르게 김태연의 말을 따라하며 김하별을 바라봤다.

    아랫배 쪽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김하별.

    ‘설마?’

    “하별이, 아니, 저희 아이를 가졌습니다!”

    폭탄이 떨어졌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폭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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