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63화 (163/175)
  • 163화 김사범, 2026시즌(이삭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하여)(2)

    “마약, 마약이라.”

    내게 결과를 전해들은 수리가 방안을 맴돌며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삭, 어쩌자고…….’

    차라리 경기력 향상 약물인 게 낫지.

    그건 위증만 하지 않으면 형사적 처벌을 받지는 않으니까.

    ‘아니, 그것도 문제지. 정신 차리자, 사범아.’

    “자기, 안되겠어. 이건 우리 선을 떠난 문제야. 론에게 말하고 도움을 구하자. 나도 아빠한테 말해 볼게.”

    “장인어른에게?”

    “이쪽으로, 아니 마약 쪽 말고 스포츠 쪽 말하는거야. 아무튼, 요즘 스포츠 쪽에 많이 투자를 하나 봐. 그러니까 우리보단 좀 더 정확한 대안을 말해 줄 수 있겠지. 잠깐, 뭐부터 해야 하지? 아빠에게 말하는 거? 아니면 론에게 말하는 거?”

    조금 많이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저렇게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수리를 보니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리가 만난 지도 꽤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이 됐지만, 사실…… 어린 나이니까.

    “수리, 됐어. 내가 할게. 장인어른에게도 말할 필요도 없고.”

    “그치만, 이삭이…….”

    “그놈이 정신이 있으면 먹진 않았을거야. 그것도 저런 싸구려 합성 마약을. 했어도 좀 더 강하고, 비싼 걸로 했겠지.”

    “그런가?”

    “일단, 내가 이삭에게 말해 볼게. 그게 먼저인 거 같네. 아무튼. 이만 자자. 복잡한 건 잠시 잊고.”

    살아온 세월로만 따지면 난 3이라는 숫자보다 4가 더 가까운 사람이다.

    어른은, 어른의 방법이 있는 법이니까.

    * * *

    다음 날.

    “그래서, 할 말이란게 뭔데?”

    “일단 마시자.”

    캔자스시티와의 낮경기를 승리로 이끈 이삭을 끌고 -폴리와 케이시의 방해를 뚫고- 주거지역의 조용한 펍으로 향했다.

    “붐, 넌 술 안 먹잖아? 맨날 악마의 피 어쩌구 하면서.”

    “오늘은 악마가 내 혀에 깃들어야 하는 날이거든.”

    사실, 술을 마시려 온 건 아니다.

    그냥 조용한 장소가 필요해서 온 것뿐인데, 술이 필요해졌을 뿐.

    ‘……내가 아싸였다니.’

    이삭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동안, 나는 뜻하지 않은 자아성찰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내 시간이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조금 더 많았다고 해도…… 대부분이 야구에 관련된 시간이었다는 사실도.

    “진짜 중요한 일인가 본데? 마침 잘됐네. 나도 요즘 술이 땡기던 참인데. 마시자. 내일은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술이 술술 들어갔다.

    이삭과 나의 입안으로.

    “그래서, 내가 그 녀석을 얼마나 아꼈냐면, 내 생일날 선물 받은…….”

    변비가 문제일까? 아니면 약 때문에?

    이삭은, 평소와 다르게 빠르게 취해 갔다.

    기회는, 지금이다.

    “이삭, 나 너한테 물어볼게…….”

    “그래서! 내가 엄~청 신경 쓰고 있다 보니까, 발견했어. 그걸. 그 녀석의 비밀을. 그랬는데, 그걸 본 안드레가 어땠는지 알아? 막 울더라고. 막.”

    뭐라는 거야? 타이밍이 늦었나? 제길…….

    “아니, 그러니까 이삭. 내가 우연히…….”

    “그 녀석은! 울지 않던 녀석이었어. 내가 그걸 아니까 이러는 거야. 근데 그 녀석이 울었다고. 안드레가! 안드레!”

    내가 울게 생겼다, 이 빌어먹을 멕시칸.

    “잠깐, 잠깐만. 내 말에 집중해 봐 이삭.”

    “응?”

    “하나만 물어볼게. 진짜 딱 하나만. 알겠지?”

    “그래…… 그래……. 근데! 그 자식이 약을 할 뻔했대.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갔대. 다른 자식들은 약빨로 매년 한 단계씩 올라가는데, 자기는 뒤쳐져 있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구했대. 멍청한 놈. 어리숙한 놈.”

    “제바…… 어?”

    “그저 으슥한 속에 있는 멕시칸이면 다 제 친구인 줄 알았던거지. 그래서 제대로 된 약도 못 구하고, 마약이나 숨겨 놓고. 정작 무서워서 입에도 못 댈 거면서…….”

    잠깐.

    이거……?

    “이삭! 이삭!”

    내가 뭘 한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게 먹혔다.

    그리고…… 다행이다.

    ‘잠깐만. 약물로 올라갔다고? 다른 자식들?’

    원래와 다른 의미로, 이건 구단에서 알아야 할 이야기인데?

    다음 날, 술에서 깬 이삭을 설득하고 설득해서 -마마의 도움이 컸다- 이른 아침부터 불이 켜져 있는 론의 방을 찾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보통 이렇게 예상 못 할 이벤트가 벌어지는 건 아주 좋거나, 나쁜 경우인데…….”

    저게 연륜이네.

    내 건 연륜도 아니었어.

    “……음. 나쁜 이야기로군. 들어오게.”

    론의 손짓에 따라, 감독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나와 이삭.

    마실 걸 내오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론이 허허거리는 너털웃음을 뱉었다.

    “허허허, 큰일이 났군. 그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긴가?”

    “……구단 차원에서 움직여야 할 이야기입니다.”

    이삭의 대답에 굳어지는 론의 표정.

    론은 이내 몸을 세우며 이삭에게 물었다.

    “그래……. 그렇군. 뭐지? 뭔데 그렇게…… 제길! 약물인가?”

    “네. 저희 둘은 아니고…….”

    “뭐? 하…… 후, 그래. 그래.”

    정말 안심한 듯, 소파에 깊게 몸을 묻는 론.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 10년은 늙어 보였다.

    “그, 제 동생이 이리에 있는 건 아실 겁니다.”

    “그래, 알고 있지. 이름이…… 안드레아였나?”

    “안드레스.”

    “그래, 안드레스. 계속하게.”

    이삭은, 살짝 더듬거리면서도 정확하고, 사실만 담은 설명을 이어 갔다.

    마치 녀석의 수비처럼.

    “……그래서 구단 차원에서의 도핑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면, 막을 수 있으니까요.”

    “구단 차원이라……. 음…….”

    “보스, 우린 일을 덮으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알잖아요?”

    “그래. 후우…….”

    한참을 고민하던 론이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게임에서 이건 이미 일상과도 같은 일이지. 작년 한 해만 해도 얼마나 많은 마이너리거가 도핑 검사에 적발됐는지 아나? 101명이야. 그중 30명은 두 번째였지. 한 명은 세 번째였고.”

    그럴 만도 하지.

    이 메이저리그라는 곳은, 그런 시스템이니까.

    철저한 강자생존, 약육강식.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사바나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일찍 깨달은 어린 녀석들은, 때론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사고를 치기도 한다.

    “아무리 교육을 한다 한들, 성공을 위한 욕구로 똘똘 뭉쳐 있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말리겠나. 알겠네. 이건 구단과 협의해서 진행하도록 하지. 철저하게,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미첼 리포트 이후 20년, 마냥 선수들을 감싸던 선수노조도 이젠 서서히 도핑을 ‘필요악’으로 여기고 있는 세상이다.

    ‘어쩌면, 올바르려는 노력마저도 악으로 규정하는 그들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걱정 말게. 들어 보니 약을 직접 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구매한 것뿐이니까. 물론, 그것도 범죄행위지만……. 아마 증인으로 채택된다면 그리 큰 사달은 나지 않을 거야.”

    조금씩 떨리던 이삭의 어깨가 론의 말을 듣자마자 울컥거렸다.

    “흑……. 저는…… 저는…….”

    “그래, 이해하네, 이해해. 걱정 말고,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돼.”

    그렇게. 우린 이삭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었다.

    뿌욱.

    아니, 정정한다.

    우린 이삭의 대장이 다시 활동을 개시할 때까지…… 우욱.

    * * *

    [아아아! 넘어갑니다! 넘어갔어요! 400번째, 400번째 홈런을 마침내 기록하는 김사범 선수!!]

    [캔자스시티의 브래디 싱어 선수, 마운드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네요. 마치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고민하는 표정같습니다.]

    [배리 본즈 이후 첫 400-400을 기록한 김사범 선수! 이제 목표를 더 크게 잡아야죠!]

    [김사범 선수의 나이가 이제 27살입니다. 만으로는 26살이죠? 앞으로 10년 이상 뛸 수 있다는 말이죠.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가슴속에서 막혀 있던 뭔가가 뚫리자, 환호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삭 페레데스! 또다시 안타! 안타입니다!]

    [오늘 경기, 5안타 경기를 펼치고 있는 이삭 페레데스 선수! 사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굉장한 슬럼프에 빠져 있던 선수거든요? 심지어 각종 칼럼에서 하위타순으로 내려야 할 선수로 지명당하기도 했어요.]

    [아, 그렇군요!]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습니다. 보세요, 2할 6푼까지 떨어졌던 타율이 오늘 경기로 다시 3할에 도달했습니다.]

    [국내에선 김사범 선수와 굉장히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이저리거치고는 작은 체구와 항상 김사범 선수에게 당하는 모습 때문에…… 아, 이건 방송용 별명이 아니군요.]

    [조심해야 합니다. 큰일나요.]

    그건 이삭도 마찬가지였다.

    후련한 속으로, 후련한 경기를 펼치고 있는 이삭.

    난, 그런 녀석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잘했어! 빵셔틀! 내가 부를 때까지 거기 가만히 있어!”

    이삭은 내 말을 아주 잘 듣는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빠아악!

    [8회 말, 김사범 선수가 자신의 홈런 기록을 또 늘렸습니다! 투런 홈런! 아니, 401호 홈런!]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코메리카 파크의 인터뷰 룸은 그야말로 시장판이 따로 없었다.

    “붐,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 400-400을 달성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좋습니다. 딱 오늘 밤 즐겁게 잠잘 수 있을 만큼.”

    “어떤 전문가들은 본즈의 기록을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400-400 클럽 달성자인데, 어떻게 생각하시죠?”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고, 그게 어떤 기록이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의 기록 옆에는 ‘별’이 떠 있을 거고, 제 기록 옆엔 아무것도 없겠죠.”

    “그 말은…….”

    “여기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미 끝났습니다.”

    질문, 답변, 질문, 답변, 답변, 그리고 가끔 쓰레기, 그럼 나도 쓰레기.

    이 ‘특별한’ 기록을, 아니 ‘특한’ 기록을 기념하기 위해, 구단은 기자들에게 자그마치 한 시간을 던져 줬다.

    그 결정 때문에 물고, 물리는 사람은 나였고.

    “마지막 질문 받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프런트 직원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질문 기회를 똥으로 만들어 버린 어떤 기자에게 쏟아지는 날카로운 눈빛들을 외면하고, 난 그의 말대로 지금 느끼고 있는 소감을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와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계를 쉽게 인정하지 말고, 아니, 인정하더라도 조금 더 차분하게 시선을 돌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라고. 그리하면 야구란 스포츠가 가진 아주 많은 길 중 하나가 보일 거라고. 네. 이상입니다.”

    400-400을 달성한 타자로서의 김사범이 아닌, 2할 언저리의 타율을 겨우겨우 유지하던 김사범으로서 하는 말이었다.

    ‘적어도 난, 그래 왔으니까.’

    나라고 유혹에 빠지고 싶지 않았을까.

    나라고 그렇게 뛰고 싶었을까.

    그렇지만, 참았다.

    그러다 보니…… 뭐, 이런 행운도 찾아왔고.

    그러니까…… 다들 잘 참았으면 좋겠다. 쏟아지는 유혹을, 그리고…… 달콤한 치팅의 맛을.

    * * *

    [디트로이트, 붐! 살아있는, 아니 살아가는 레전더리로서의 길.]

    [마이크 트라웃, ‘언제나 말해 왔지만, 난 그에게 비교될 만한 선수가 아니다. 물론, 그 사실이 기분 좋은 건 아니지만.’]

    [배리 본즈, ‘아직 500-500에도 도달하지 못한 애송이에게 남길 말은 없다.’]

    [붐의 활약 이후, 동아시아에 쏠린 스카우터들의 관심.]

    [붐의 동료, 그를 평가하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그 녀석은 야구를 생각한다. 그리고, 야구를 위한 운동을 한다.’]

    [마이너리그에 불어닥친 심상치 않은 바람, 한시적인 도핑 검사 주기와 대상자의 확대. 선수노조 ‘우린 당당하기에,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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