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55화 (155/175)
  • 155화 김사범, 2022시즌(평천하(平天下))(12)

    [6회 초 프레디 프리먼 선수의 쓰리런 이후 타격전 양상으로 진행되는 경기입니다.]

    [경기 후반에 벌어지는 화끈한 시소게임, 팬들은 좋아하겠지만 선수들, 특히 투수 입장에서는 아주 피가 말릴겁니다.]

    [6회 말에 메츠가 다시 3점을 내며 크리스 아처 선수를 강판시켰고, 이에 자극받은 디트로이트도 7회 초에 이삭 페레데스 선수의 적시타로 2점을 따냈죠.]

    [스코어 변화가 아주 현란합니다. 1-0, 1-2, 4-2, 4-5, 6-5. 단지 숫자만 읽었을 뿐인데도 아주 흥미진진해요.]

    [거기다가 8회 초에는 김사범 선수가 다시 타석에 나서지 않습니까?]

    [네. 라테 헤미체 선수의 다소 고의적인 도루 실패로 다시 선두타자로 나서게 됩니다. 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투수 교체입니다.]

    오늘따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마운드를 향해 걸어가는 폴리.

    그럴 수도 없고, 그러면 안 되지만…… 뒤에서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고 싶은 그런 걸음걸이다.

    펑!

    퍼엉!

    풍!

    뭐야? 마지막 공, 뭔가 소리가 이상했는데?

    “폴리! 너 또!”

    폴리의 표정과 페이스의 움직임, 마지막으로 심판의 어이없다는 듯한 몸짓으로 봤을 때, 분명 슬라이더를 던진 거다.

    한없이 올곧은, 대쪽 같은 성품의 슬라이더를.

    “미안.”

    내 예상이 맞았는지, 스파이크에 뭍은 흙을 털면서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폴리.

    “미안은 내가 아니라 페이…… 아니다. 너 오늘 퍼펙트 해라. 꼭.”

    ‘내 쪽으로 오면 그냥 안 잡을 거니까.’라는 뒷말은 꾹 눌러 참았다.

    아무리 그래도 해도 될 말, 안 될 말은 구분해야지.

    “웬일이야? 고맙다.”

    씨익 웃는 얼굴 위에 꿀밤 한 대만 딱! 때렸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11개! 제이슨 폴리 선수가 아웃카운트 3개를 따내는 데 필요한 투구 수였습니다!]

    [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위력적인 투수로 변모하고 있는 제이슨 폴리 선수입니다. 더 놀라운 건 세 타자 모두 헛스윙으로 물러났다는 거예요.]

    [타순도 상위타순이었는데요. 괜히 리그 최고의 마무리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습니다.]

    “고맙다.”

    “어…… 어, 그래.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속으로 욕은 좀 했는데…….

    아, 괜히 미안하네.

    * * *

    [8회 초, 메츠도 강수를 뒀습니다. 에드윈 디아즈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오는군요.]

    [맞불작전인가요? 두 팀 모두 내일 4차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전력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야 오늘 승리하게 된다면 내일 다른 선발투수들을 끌어다 쓸 수 있지만, 메츠 입장에서는 조금 도박적인 수가 되겠군요.]

    [어차피 하루하루를 이겨 나가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하, 맞습니다.]

    시즌 최고 구속 98마일,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는 마무리 투수가 이른 타이밍에 등판했다.

    물론, 한 팀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이니 만큼 구위와 제구가 뛰어난 투수지만…….

    “볼!”

    이 동네가 꼭 그 두 개가 충족된다고 해서 완벽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다.

    따악!

    [파울! 아주 큰 타구가 외야를 향했지만, 아쉽게도 폴 밖으로 넘어갔습니다.]

    돌아오기 전에는 구경도 못 해 봤던 구속의 공이 순식간에 공간을 찢으며 내게 날아오지만.

    “볼!”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그 공을 보고 고를 수 있다.

    따아악!

    물론, 강하게 쳐낼 수도 있고.

    [이번엔 넘어가나요? 넘어가나요?]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향하는 패스트볼을 그대로 받아친 김사범 선수입니다!]

    [아아! 아아!! 갑니다! 갔어요! 갔습니다!!]

    [솔로 홈런! 김사범 선수가 점수 차이를 2점으로 벌려놓았습니다!]

    [이걸 치나요? 아니, 이걸 쳐서 넘겼나요? 이야, 대단해요. 대단합니다.]

    -Boooooooooom!!!!

    -끼아아아아악!!

    -좋아!!!! 이거야!!!

    적지인 시티 필드에서 당당하게 자신들을 표출하는 팬들의 함성소리를 들으면서, 덕아웃으로 향했다.

    “좋은 타격이었어.”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론의 한마디.

    그리고 광란의 현장이 펼쳐졌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이게 뭐야? 이거 진짜야? 잠깐, 잠깐! 다들 진정해!”

    “진정? 무슨 진정? 폴리! 다음 수비 땐 그냥 너만 나가! 나가서 삼진 세 개 잡고 들어와!”

    “좋-은 소리!”

    아직 경기 안 끝났는데.

    자꾸 이러면 나 여기서 편지 꺼낸다?

    이걸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해 달라고 누구에게 맡기면 그냥 역전 만루 홈런 맞고 뻗는 거 맞지?

    뭐…… 그래도…….

    기분은 째지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의심의 여지없는’ 승리.]

    [타이거즈 - 케이시 마이즈, 메츠 - 노아 신더가드. 4차전 선발 예고.]

    * * *

    어제 3차전과 같은 환호와 함성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단언컨대, 내가 지금까지 겪어 본 순간 중, 제일 고요한 10초였다.

    아니, 시끄러웠지만 내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케이시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공이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뚝 떨어졌고, 그것마저 예상한 듯한 타자의 배트가 공 윗부분을 때렸다.

    “붐!”

    타자의 발 앞, 1m 지점에서 한 번, 그리고 마운드를 살짝 지나서 또 한 번.

    마침내 타구가 내 글러브 안에 들어왔을 땐, 이미 몇 번의 바운드를 더 겪은 뒤였다.

    오른손이 글러브에 들어와 공을 만질 때까지 왼손의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의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양발을 띄워 올려 오른발부터 내딛는 스텝. 언제나 그랬듯이. 툭, 투둑.

    완벽한 그립으로 던지려는 강박관념은 중학교 이후 털어 냈지만, 그래도 손끝에 감각을 집중해서 최적의 그립을 찾아냈다.

    “흐읍!”

    호흡과 함께 힘껏 휘두른 팔.

    쓸데없고 화려한 동작들은 배제하고, 가장 효과적이고, 최단거리로 내 릴리스 포인트까지 팔을 ‘옮겼다’.

    쏘아지는 공.

    헬멧이 벗겨진 것도 모른 채 미친 듯이 뛰고 있는 타자주자.

    ‘바보 같긴. 상체를 숙여야 더 빠르지.’

    고요한 세상에서, 아니, 고요한 세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웃!”

    -우와아아아아아아!!!!!!!

    [22연승입니다. 22연승! 포스트시즌 연승 기록을 22경기로 늘리며! 마침내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월드시리즈를 4-0으로 스윕했습니다!]

    [케이시 마이즈 선수를 과감하게 선발로 내세운 론 가든하이어 감독의 승부수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완봉이에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만 두 번째 완봉을 수확하는 케이시 마이즈 선수!]

    우리 모두는 정말 미친 듯이 뛰어 마운드의 케이시를 덮쳤다.

    “미친놈아! 미친 자식아! 이 미친놈!”

    “3구 연속 스플리터? 마지막에? 그게 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야? 이거 맞지?”

    “으으아! 머리 때리지 마!”

    “왜! 때릴 거야!! 때릴 거라고!!!”

    때 아닌 폭행의 현장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거나, 그라운드에 엎어져 흐느끼거나, 정신을 차리고 폴리와 케이시를 떼어 놓거나.

    난, 관중석에 있는 가족들-엄마, 아빠, 그리고 수리-을 보며 인사했다.

    왠지 모르게 눈에서 땀이 조금 나는 거 같아 고개를 조금 오래 숙이고 있어야 했지만.

    그리고 경기 후.

    라커룸은 샴페인으로 물들었다.

    오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론과 케이시가 도착하기도 전에.

    “오늘 여기 케이시는 완벽한 투구가 뭔지 직접 보여 줬습니다. 메츠의 타자들은 단 한 번도 3루를 밟거나, 지나가지 못했고, 케이시는 1회부터 9회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했죠.”

    “별거 없었습니다. 제 뒤엔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를 자랑하는 키스톤 콤비가 있었고, 제가 해야 할 일은 단순했습니다. ‘더 많은 공을 내야로’”

    “22연승이요? 지나갈 기록입니다. 내년 포스트시즌 첫 경기에서 깨질 기록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군요.”

    “마치 내 생각을 읽는 것 같은 포수와 호흡을 맞춘다는 건 정말 황홀한 경험이죠. 우리 팀의 투수들은 그 황홀한 경험을 만끽하고 있죠.”

    “한 명만 꼽으라고요? 불가능합니다. 아, 꼽아드리죠. ‘타이거즈’”

    “경기 전, 한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4점, 4점 이상만 내주지 말자. 그럼 붐이 어떻게든 하겠지.’”

    “우린 챔피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 * *

    며칠 후.

    “케이시, 너 때문에 MVP 쿼드러플을 못했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잘 못한 탓이지?”

    “시즌 MVP, 디비전 MVP, 챔피언십 MVP, 이제 딱 월드시리즈 MVP만 모으면 됐었는데.”

    “그래서, 내가 잘 던지면 안 됐었다?”

    “아니, 좀 덜 잘 던졌어야지. 한 7회쯤 마운드를 폴리에게 넘겨줬으면…….”

    “4-3으로 역스윕을 당하고 준우승을 했겠지.”

    “아아. 인정.”

    마치 내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그때처럼, 폴리와 케이시, 그리고 그땐 없었던 이삭이 날 배웅해 줬다.

    “진짜 퍼레이드만 하고 바로 가네? 좀 미루지?”

    “그러다가 2년 동안 여기 못 와. 지금도 많이 늦은 거야.”

    폴리가 아주 살벌한 소리를 내뱉었다.

    “사무국에서 허락해 준 것도 대단하네.”

    “우리나라 선수들에겐 특별한 것도 아니지. 우린 군 문제가 걸려 있잖아.”

    “아, 그렇지. 거긴 전쟁 중이었지?”

    “아니…… 후, 됐다. 간다. 몸 관리들 잘하고. 내년에 보자.”

    전쟁 중은 맞는데, 또 이게 진짜 전쟁 중인 건 아니니까.

    흠, 뭐라 설명하기도 힘들고.

    ‘오늘이 10월 30일…… 정식 소집일부터 벌써 2주가 지난 건가?’

    심지어 한국시리즈는 아직 진행 중이다. 7차전이 오늘 열리니까…… 빨라도 2~3일 뒤에야 합류하는 선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하하, 개판이네.”

    어느새 싸늘해진 공기에 코를 훌쩍이며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항저우시에 불규칙하고, 사소한 테러가 일어난 지 어느새 1년. 처음엔 아시안게임 참가를 보이콧하겠다던 나라들은 중국의 간곡한 설득으로 하나둘씩 참가를 결정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88올림픽처럼 빈민들을 한 구역에 몰아넣고, 차량 통행을 제한하면서까지 개최한 아시안게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중요한 건 우리가 11월에 야구를 하게 됐다는 거지. 빌어먹게 추운 날씨에 말이야.”

    대만에서 만난 김태연은 여전히 말이 많았다.

    “대충 17도? 18도쯤 된다는데? 최저기온이 8도 정도긴 한데…… 어차피 야구 경기는 무조건 낮경기로 배치됐다며.”

    “17도? 으으으, 그게 최고기온 아냐? 완전 한겨울이네!”

    아무래도 여름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은 추위에 조금 약한 모습을…… 보이긴 개뿔.

    그냥 이 녀석이 추위를 많이 타는 거다.

    “닥치고 공이나 던져. 캐치볼 하면서 뭐 그렇게 말이 많아?”

    “예, 형님. 알아 모시겠습니다.”

    “헛소리 말고 좀!”

    텅 빈 그라운드에 내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다들 시즌 끝나고 골골거릴 타이밍에 불려 와서 그런가, 적극적이지가 않네.’

    뭐,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프로 선수를 많이 차출한 우리나라니까.

    내 기억에도 그냥 무난하게 콜드-콜드-콜드를 하면서 결승까지 갔었고.

    ‘그리고 결승전에 나온 김병헌이…….’

    “김--사--범--!!”

    그래. 저 또라이가 82구 만에 완봉승을 따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

    “내--말--씹--냐--아!!”

    “쫌! 닥쳐!”

    쯧.

    내 주위엔 도대체가 정상이 없어.

    결국, 오늘의 운동은 이 시점에서 끝났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팀 훈련이 계획되어 있으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맞춰 보면 되겠지.

    “여기 맛집이…… 여기네.”

    “이게 뭔데?”

    “카스테라.”

    “카스테라?”

    “응, 인터넷에서 찾으니까 이거만 나오던데?”

    저녁으로 카스테라를?

    제정신인가? 이 인간이?

    “……라고 하면 실망할 너희들에게 딱! 준비한…….”

    “넌 어떻게 볼 때마다 멍청멍청하냐?”

    어? 말 꼬였다.

    분명 김태연이 뭔가를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거 같은데…… 그새를 못 참고 김병헌이 끼어들어 폭언을 날린 상황.

    ‘싸우나? 드디어? 난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그래, 멍청멍청한 드립은 미안. 저기 있는 음식점이 근처에서 제일 맛있는 곳이란다. 가 보자.”

    뭐야? 왜 이렇게 싱거워?

    저 정도로 자존심이 없는 녀석이 아니었는데?

    불안하다.

    아닌 놈이 저러니까 더 불안해.

    그리고 김태연은 정말 으리으리한 음식들을 시켜 놓고 우리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너희 투자 하나 해보지 않을래? 이게 요즘 뜨는 분야인데. 그냥 여윳돈 넣고 한 5년만 기다리면…….”

    나왔다.

    어쩐지 X바. 느낌이 이상하더라.

    이 망할, 멍청한, 또라이 녀석을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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