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40화 (140/175)
  • 140화 김사범, 2022시즌(치국(治國))(2)

    그러니까, 폴리는 일종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예지능력과 비슷한데, 아마 내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상태창에는 이런 식으로 나왔을 것 같다.

    [벤치클리어링의 사냥꾼

    - 경기장에 흐르는 기류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벤치클리어링 시 활력+50, 구위+50, 제구+50 (단, 퇴장당하지 않을 시에만)]

    그게 초능력이든, 한쪽으로 발달된 육감이든, 항상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불안해’, ‘느낌이 이상해’를 달고 살다 보니 이젠 팀원들도 폴리의 그 느낌이 오는 날에는 알아서 몸을 사리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폴리는 덕아웃 한구석에서 계속해서 ‘조심해’를 되뇌고 있다.

    “붐, 조심해. 오늘 정말 느낌이 안 좋아. 알지?”

    “조심할게.”

    만약 초능력자가 실존하고, 그 능력에 잠식된다면 지금의 폴리와 비슷한 모습일거다.

    벤치클리어링 자체를 무서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걸 예언하는 자신의 모습을 무서워하는…… 뭐 그런 거?

    “놀고 있네. 붐, 저 멍청이 말은 신경 쓰지 마. 한두 번 칭찬해 줬더니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된 것마냥…….”

    오우, 좀 놀 줄, 아니 깔 줄 아는 놈인가?

    “그냥 좀 맞춰 줘, 그게 동료잖아?”

    이삭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장비를 챙겨 대기타석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오늘 경기, 역시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3회 초가 시작된 지금, 스코어는 2:3,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한 점 앞서고 있습니다.]

    [선발투수 매치업에서 예상된 결과죠, 올 시즌 4선발 자리에서 13승 6패,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시미즈 루이 선수지만 타격만 놓고 보면 지구 상위권이라 할 수 있는 미네소타 트윈스를 막기엔 조금 역부족이라고 봤거든요.]

    [저번 시즌에 콜업 되어 주전 자리를 꿰찬 로이스 루이스 선수와 알렉스 키릴로프 선수, 그리고 작년에 재계약을 맺은 C.J 크론, 마지막으로 바이론 벅스턴 선수가 지키고 있는 타선은 아주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 주고 있죠.]

    [그런 걸 보면 참 야구라는 스포츠가 어려워요, 이 라인업을 3년 전에 봤다면 ‘쉬운 지구에서 쉽게 1등을 차지하겠구나’라고 생각했을 텐데요. 그때 너무나 쉬워 보였던 중부지구가 이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제외하면 모두에게 지옥 같은 지구가 되어 버렸죠.]

    [디트로이트라는 팀 자체가 메이저리그를 통틀어서 승률 1위를 달리고 있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자, 타석에 라테 헤미체 선수가 들어섭니다.]

    덕아웃에서 바라본 라테의 등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다.

    ‘슬럼프 이후 화려한 반등에 성공해서 2번 타순에 자기 자리까지 만들었으니, 당연한 거겠지.’

    시즌 타율 2할 8푼 1리. 비교적 낮은 타율이지만 3할 9푼대의 출루율과 18개의 홈런, 27개의 도루는 ‘강한 2번’을 숭배하는 감독들에게도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성적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좌투수를 상대로도 곧잘 안타를 때려내고 있지.’

    “스트라이크!”

    잠시 타석에서 물러서 고개를 한두 번 젓고 다시 타격을 준비하는 라테.

    겨우 한 타석 지켜보고 때려내기에는 마운드의 부루스……리? 그라테롤이 던지는 공이 너무 매섭다.

    ‘내 솔로 홈런이 있기 전까진 아무도 공을 맞히지 못했으니까. 홈런 한 방 맞고 정신 못 차리는 사이 두 점을 더 달아나긴 했지만…….’

    우리 팬들이 좋아하는 경기, 그러니까 초반부터 마구 몰아쳐서 상대방 투수가 넉다운 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만……. 오늘은 좀 힘들 것 같다.

    [거의 존 가운데를 통과하는 투심 패스트볼이었는데요, 아깝네요.]

    [이런 실투를 놓치지 않을 때, 3할타자가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투수, 제2구!]

    순간적으로 세상이 느려졌다.

    타석도, 대기타석도 아닌 덕아웃에서 봐도 확연하게 머리 쪽을 향하고 있는 공.

    느려진 세상 속에서 눈을 굴려 라테를 보니, 다행히 급하게 몸을 빼고 있다.

    하지만.

    빠악!

    급하게 상체를 뒤로 기울인 나머지 손이 따라 올라가는 걸 막지 못했고, 슬라이더로 보이는 공은 격하게 휘어져 라테의 왼 손등을 가격했다.

    “으아악!”

    폴리의 말을 신봉하는 제1사도인 팀 닥터가 론이 말하기도 전에 거의 몸을 반쯤 내밀며 뛰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덕아웃이 살짝 혼란스러움에 빠진 그 시간.

    마운드 위의 개자식은 자기 앞으로 굴러온 공을 태연하게 1루를 향해 송구했다.

    “……아웃.”

    [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주심이 직접 아웃을 선언합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론 감독이 팀 닥터와 달려 나오며 주심에게 소리치고 있군요, 주심은 정상적으로 타격이 이뤄졌다고 판단한 것 같군요. 론 감독이 바로 챌린지를 요청합니다.]

    [네, 바로 느린 그림이 나오네요. 아…… 이건…… 애매한데요?]

    [주심은 배트 밑, 그러니까 노브 부분은 맞았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 새끼손가락과 노브 부분이 겹친 부위에 맞은 것 같죠?]

    “폴리 잡아.”

    이삭에게 덕아웃 난간을 부여잡고 몸을 날리기 직전인 폴리를 잡으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배트를 그라운드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리고.

    [아, 김사범 선수가 덕아웃에서 나와 마운드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미네소타의 1루수인 C.J 크론 선수가 앞을 가로막아 보지만…… 막지 못하고 있네요! 양 팀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헤이, 헤이, 이봐. 이건 고의가 아냐, 알잖아? 그저 손에서 공이…….”

    제법 덩치가 있는 녀석이 내 앞을 가로막고 뭐라고 지껄이는 거 같았지만, 무시했다.

    곧 나를 둘러싸며 내 앞길을 막는 사람들.

    잡아 던지고 싶었지만, 지금 잡고 던지면 정말 외야까지 날려 버릴 거 같았기에 참고 그냥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운드로 향하는 김사범 선수를 막으려 미네소타의 선수들이 모두 달라붙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막지 못하네요! 저 덩치 큰 선수들이 10명 가까이 붙어서 막는데도 전혀 거리낌 없이 전진하는 김사범 선수!]

    [하하하…… 그런 미네소타 선수들을 막는 디트로이트 선수들까지 합치면…… 거의 20명 가까이 김사범 선수에게 매달려 있는 거 같은데요. 저게 가능하긴 한가요?]

    누군가가 내 유니폼을 쥐고 있고, 누군가는 내 암가드를 잡고 버텼다.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어가자 곧 투둑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유니폼 단추와 암가드.

    목표가 거의 코앞이다.

    “그만! 그만! 고의가 아니었어! 벤치에서 나온 사인이 아니라니까!!”

    “이 비열한 자식들! 다 죽여 버려!”

    “뭐? 비열?”

    물론, 이런 상황은 몸쪽 승부를 즐기는 투수들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어떤 타자든 몸쪽은 숙명적으로 약점이 될 수밖에 없는 코스고, 투수는 그 코스를 공략함으로서 더욱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그걸 알고도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은 라테의 잘못일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의 공을 맞고 쓰러진 타자를 앞에 두고 태연하게 1루로 공을 던지면 안 되는 거다.

    그건 게임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정신 이전에, 이 위험한 스포츠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동업자 정신이 없는 행위니까.

    마침내, 마운드 위에서 석상처럼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표까지 몇 발자국 남겨 놓지 않은 이 순간.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녀석들을 힘껏 털어 냈다.

    “으아아!”

    “크흡!”

    쿵쿵거리는 소리가 몇 번 울리고, 한결 가벼워진 몸.

    그 상태로 마운드로 올라가니, 내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 치던 녀석이 마운드와 그라운드의 경계선에 발이 걸려 넘어져 있었다.

    [아, 김사범 선수! 결국 마운드 위의 브루스다 그라테롤 선수에게 도달합니다! 폭력 행위는 안 됩니다! 바로 징계가 내려올 수 있어요!]

    [이 상황에서 너무 큰 바람일 수도 있겠는데요.]

    나는, 아주 천천히 몸을 굽혀 녀석에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 x발새끼야. 내 눈에 또 한 번 이딴 개 같은 공을 던지는 모습이 보이면, 네 병신 같은 오른팔이 반대로 접힐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겁먹은 눈으로 그저 날 바라보기만 하는 녀석.

    “팔꿈치를 반대로 접어 버릴 거라고. 내가 진짜 할 수 있는지 궁금하면, 한번 더 던져 봐. 보여 줄 테니까.”

    맘 같아선 지금 접어 버리고 싶지만…….

    내가 그렇게 맘대로 행동한다면 슬퍼할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나서 차마 그러진 못하겠다.

    그렇게 사색이 된 녀석의 얼굴을 뒤로하고 덕아웃으로 돌아가려 몸을 돌린 순간, 덕아웃 근처에 있던 이삭이 내게 소리쳤다.

    “붐! 뒤에!”

    뒤? 왜?

    터엉!

    순간적으로 내 뒤통수에 느껴진 둔탁한 충격.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었기에 고통이 느껴지진 않았다. 잠깐 크게 놀랐을 뿐.

    다시 돌아본 그곳엔…… 미네소타의 젊은 감독이 한손에 누군가의 헬멧을 든 채로 씨익 거리며 서 있었다.

    “지금 그걸로 날 친 겁니까?”

    “너, 넌…….”

    퍼억!

    그는 미처 말을 끝내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폴리의 주먹이 그의 한쪽 얼굴을 아작 냈으니까.

    * *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vs 미네소타 트윈스, ‘놀라운’ 벤치클리어링.

    - ‘메이저리그 MVP’ 김사범(24)이 소속되어 있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벤치클리어링이 현지 언론에서 화제를 끌고 있다.

    경기 후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3회 노아웃 상황에서 벌어진 라테 헤미체(23)의 사구에서 비롯됐으며, 김사범은 별다른 폭력 행위 없이 마운드로 다가가 공을 던진 투수인 브루스다 그라테롤(24)에게 경고의 말을 건네고 내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은 그 후,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인 로코 발델리가 헬멧을 이용해서 김사범의 머리를 가격하면서 발생했다.

    곧 이어진 제이슨 폴리(25)의 안면 가격으로 바로 병원에 실려간 로코 발델리 감독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대가로 사무국의 징계를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한편, 이번 벤치클리어링으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마무리 투수 제이슨 폴리가 4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으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측은 별다른 항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벤치클리어링 후에 급격하게 무너진 브루스다 그라테롤은 2와 1/3이닝 동안 8실점을 하며 강판당했고, 15-2의 스코어로 승리를 거둔 디트로이트의 론 가든하이어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미국 언론들은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을 강하게 비방하면서 ‘그라운드에서 다툼이 벌어질 수 있지만, 주먹이 아닌 어떤 물건으로도 상대를 해치면 안 된다.’는 논조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 나 이거 라이브로 봄 ㅋㅋㅋㅋ 갓사범 패기 완전…… 나도 모르게 화장실로 달려감.

    └ 나도 봤음. 김사범 주위로 미네소타 덩치들 막 둘러싸는데 씹고 그냥 막 ㄷㄷㄷ 막을 수가 없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걸어가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질질 끌려가고 ㅎㄷㄷ

    └ 나중엔 자기 팀원들도 다 끌고 가드라. 그러다가 마운드 앞에서 몸 한번 터니까 다들 쓰러지고 ㅋㅋㅋㅋ

    └ 그 투수 앞에서 유니폼 다 뜯어진 채로 노려보면서 식빵 굽는거 봤음? 그냥 덩치 큰 착한 형인 줄 알았는데 표정 굳히고 욕하니까 개무서움. 그래서 지금 댓글도 각 잡고 공손하게 달고 있자너.

    └ 그 뒤에 미친놈 플라잉 레프트 훅도 ㅋㅋㅋㅋ 그 또라이 감독 한 방 맞고 그라운드에 뻗은 거 보고 완전 개 터짐 ㅋㅋㅋ

    └ 디트 벤클 2대장 패기 바로 앞에서 목격한 그 투수는 뭔 죄……. 덕분에 멘탈 터져서 볼밖에 못던지던데

    └ 뭔 죄긴, 그 미친놈이 사람 누워 있는데 1루에 송구하는 게 죄지. ㅅㅂ 아무리 그래도 손가락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사람 앞에서 그러는 건 아니지.

    └ ㅋㅋㅋㅋ 미네소타 존나 칼손절 쩌네 ㅋㅋㅋ 방금 기사 떴음, 감독 바로 경질 ㅋㅋㅋㅋㅋ

    [미네소타 트윈스. ‘이번 일은 유감, 사건을 일으킨 감독은 바로 경질하겠다. 나머지 시즌은 수석 코치인 필슨 보네라가 맡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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