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김사범, 2022시즌(수신(修身))(1)
케이시 마이즈가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뒤, 언론과 팬들은 물론,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이시 마이즈,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다.]
[스토브리그마다 강렬한 행보를 보인 타이거즈, 그에 가려진 한 선수.]
[타선을 이끄는 ‘붐’의 폭발에 가려진, 시대를 이끌어 갈 투수.]
철저하게 검증된, 고가의 선발투수를 영입하는 구단의 방침은 매년 디트로이트를 우승에 더 가깝게 올려놨지만, 그에 따른 걱정거리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타이거즈의 팬이야, 그리고 오늘 케이시의 퍼펙트게임을 보고 눈물을 흘렸어.]
└ 나도 마찬가지야. 코리와 크리스가 잘해 주고 있긴 하지만, 언제 몸에 이상이 생길지 모를 나이라고! 이제 둘 중 한 명이 DL에 올라가도 케이시가 그 자리를 충분히 메꿔 주겠지.
└ 이미 실력은 입증됐잖아? 두 시즌 연속으로 15승을 올린 녀석인데.
└ 바꿔 말하자면 15승‘밖에’ 올리지 못한 거지. 이번 퍼펙트 피칭으로 더 높이 올라갈 준비를 끝낸 거야.
└ 맙소사, 케이시에게 뭘 더 원하는 거야? 그는 예전에도, 지금도 최고의 피칭을 보여 주고 있다고.
└ 최고의 피칭을 보여 주지만, 팀의 세 번째 선발인 게 아쉬운 거지. 붐의 폭발로 인해 너무 빠르게 리빌딩이 진행됐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케이시는 조금 더 좋은 선수가 될 수도 있었거든.
└ 그야말로 배부른 소리로군. 아직 20대 중반인 선발투수에게 더 좋은 선수가 되라고 강요하다니.
└ 아무튼, 이제 케이시가 있으니 더 이상 ‘늙은’ 선발들을 영입할 필요가 없어. 물론, 코리와 크리스는 잘해 주고 있지만.
“흐음.”
그리고, 여기 디트로이트의 단장인 알 아빌라는 그런 팬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역시,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입은 있을 수 없군. 특급 선발을 영입해도 유망주가 클 자리가 없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니.”
알이 생각하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긴 했다. 결국 그 영입으로 타이거즈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시즌에도 아마 그렇게 될 거니까.
“케이시 마이즈는 팬들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던 유망주니까요. 바꿔 말하면 이제 우린 세 명의 프론트 라이너급 선발을 보유하게 된 겁니다.”
“그렇지. 돈으로 살 수 있는 승리는 모두 사는 게 맞아. 하지만…… 음, 론과 잠시 통화를 해봐야겠군.”
* * *
퍼펙트게임으로부터 한 달. 마침내 케이시는 자신의 모든 포텐셜을 터트렸다.
13경기 9승 3패 2.33, 98k.
이 페이스라면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본인의 커리어 하이에 근접한 성적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그에 맞춰 로테이션도 조정됐는데, 크리스는 그 과정에서 베테랑의 품격이 뭔지 보여 주며 팀원들의 감탄을 이끌어냈다.
“순서는 중요한 게 아냐, 팀이 더 많이 이기는 게 중요한 거지. 미안해할 이유도, 이런 걸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 이건 당연한 거니까.”
론과의 대면 후에 로테이션이 조정됐을 때, 케이시가 크리스에게 찾아가자 그가 한 말이다.
‘당연한 거라면 당연한 건데,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렇다고 크리스의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9경기 5승 2패 3.01.
삼십 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구속 저하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선발투수가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의 성적.
아무튼, 그런 팀의 배려와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케이시다.
수염도 아주 깔끔하게 밀었고.
“케이시, 면도가 좀 덜 된 거 같은데?”
“그래? 흠. 잠시.”
“야! 곧 게임 시작이야!”
“금방 끝난다.”
새로운 징크스가 된 거 같기도 하지만 뭐. 본인이 좋으면 됐지 뭐.
아무튼, 팀도, 나도, 그리고 다른 선수들도 아주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김사범 선수! 58경기 만에 40번째 홈런을 기록합니다!]
[산술적으로…… 122개 페이스인가요? 하하하, 이게 말이 되는…… 제 앞에 그 증거가 있어서 이런 말도 못 하겠군요. 하하…….]
[이미 메이저리그 기록을 자신의 개인 기록으로 바꿔 버린 김사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2사 주자 만루.]
[어제는 홈런을 치지 못했죠? 거의 게임당 한 개 꼴로 홈런을 치다보니 이제는 무홈런 경기가 조금 어색하네요.]
[어제까지 65경기 44홈런. 40홈런을 친 뒤 견제가 부쩍 심해졌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동안은 앞뒤 타순에 있는 타자들이 잘해 주면서…… 아!]
[고의사구, 고의사구입니다.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얻어내는 김사범 선수! 이 기록의 7번째 주인공이 되는군요.]
[처음은 아니에요. 저번 시즌 올스타전에서 만루 상황에 고의사구를 얻어 낸 적이 있죠. 하지만 그때는 이벤트성이 강한 느낌이었는데……. 이걸 제 눈으로 목격하네요, 하하하.]
“배리 붐 본즈라고 불러 줘요.”
“좋아. 사범 배리 붐 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저기 스튜어트 표정 봐요. 손에 든 방망이가 부서질 거 같은데요?”
1루에 도착해 괜히 주루 코치에게 한탄을 했다.
3:1, 2점을 뒤진 2사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받다니.
‘프레디가 잠시 빠지니까 아주 대놓고 거르네. 허, 참.’
그럴 수 있다. 이미 거의 지구 선두가 정해진 우리 지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구는 아직 전쟁 중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계속해서 떠오르는 잡념들을 억지로 머리를 흔들며 날려 보냈다.
그리고.
따아악!!
[크리스틴 스튜어트 선수의 타구가 우중간을 완벽하게 가릅니다!]
[우익수 잡아서…… 아, 한번 망설였어요. 그리고 다시 3루로 송구-, 아주 형편없이 빗나가고 맙니다. 그 틈을 타서 주자는 모두 홈-인! 타자주자인 크리스틴 스튜어트 선수는 3루에 도착했습니다.]
[토론토 벤치의 실수네요. 크리스틴 스튜어트 선수도 올 시즌 3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거기다가 장타력을 인정받은 선수이기도 하고……. 아무튼, 이건 안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투수 얼굴 보세요. 완전 사색이 됐잖아요?]
3루 측에 있는 원정 덕아웃으로 들어가기 전, 잠깐 마주친 게레로 주니어에게 말했다.
“너희 감독에게 전해 줘, 어차피 이럴 거면 리그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라고.”
“하.”
“근데 이 경기가 끝나고도 너희 감독이 그 자리에 있을진 모르겠다.”
본즈나 해밀턴 같은 경우는 고의사구를 내주고 아웃을 잡아내기라도 했으니 전략이라고 평가받기라도 했지. 쯧.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와 장비를 채 벗기도 전에,
따아아악!
클리어의 투런포가 터졌다.
“이 경기도 끝-났군. 우리의 승-리야.”
클리어의 말투를 따라 하며 헬멧을 벗어 던지는 이삭의 말처럼.
우리는 오늘 또 이겼다.
* * *
“붐, 너보고 인스턴트 히어로라는데?”
경기를 끝낸 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토론토 맛집-게레로 주니어가 소개해 준-에서 폴리가 뜬금없는 소리를 뱉었다.
“인스턴트 히어로?”
이상한 단어 조합에 음식을 먹다 말고 폴리에게 쏠리는 이목.
“그게 뭔데?”
물론 나도.
“여기 누가 칼럼을 썼는데……. 아, 한국 칼럼을 번역했대. 아무튼, 하이스쿨 졸업반 이전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뭐 이렇게 길어? 아무튼, 갑자기 홈런을 뻥뻥 때렸다며?”
그렇긴 하지.
내가 상태창을 가지고 돌아온 게 그때니까.
“그 이후에 마이너에서 70홈런을 넘기고……. 메이저 첫 시즌에 50-50, 작년에도 기록을 깼고. 이번 시즌엔 그보다 더 칠 기세니까. 디트로이트의 히어로인데 갑자기 잘해졌다고 인스턴트를 붙인 거래.”
“음……. 디트로이트의 히어로?”
케이시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되물었지만, 모두 무시했다.
저기에 대꾸했다간 미국판 답.정.너에게 찍혀 괴로움에 빠질게 분명하니까.
‘인스턴트 히어로라……. 나름 열심히 훈련한 대가인데 말이지.’
물론 이 능력-이러니까 정말 히어로 같다-이 큰 도움을 주긴 했지만, 능력만 믿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이 정도로 활약을 보여 주진 못했을 거다.
“하하- 그건 붐-이 얼마나 노오-력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헛-소리군.”
“나도 동의한다. 붐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한 야구선수는 보기 드무니까.”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난 시즌 중에는 미지근한 물이나 직접 짠 과일주스를 제외하고는 다른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물론 악마 같은 짐의 꼬드김에 넘어가 가끔 마시긴 하지만, 뭐. 그건 좋은 일이 있을 때만 마시는 거고.
그 외에도 뭐, 아침에 잠깐 즐기는 인터넷이나 수리와 연락할 때 보는 거 말고는 전자기기의 화면도 잘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건 그런데…… 여기 원문 링크 있네. 와우, 여기는 왜 이렇게 네모하고 동그라미가 많아?”
“줘 봐.”
폴리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한글로 작성된 원문을 보기 시작했다.
‘으, 얜 뭘 이렇게 화면을 밝게 해 놓는 거야? 블루라이트 필터는 왜 꺼 놓은 거고?’
그 전에 폴리의 눈 건강을 위한 세팅을 좀 하고…….
[‘3분 영웅’ 김사범을 파헤치다!
- 본지 기자는 최근 인터넷상에 화제인 ‘3분 영웅’ 김사범의 학창시절을 살펴봤다.
여러 매체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중학교 시절 중학생답지 않은 체구로 중학 리그를 대표하는 장타자였던……
……중략……
당연하게도 이런 급격한 실력 향상은 약물에 대한 의심으로 확대됐으며, 도핑검사 결과가 공개된 후에야 이런 의심이 사그라들었다.
한공고 시절 김사범을 키워 냈던 이종협 서울 감독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한 번에 개화한 케이스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본인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며…….]
‘흠, 내가 그랬었나……?’
그거는 그거고. 3분 영웅은 뭐야?
오뚜기 3분 카레도 아니고. 기분이 이상하다.
그런 별명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정말? 근데 왜 나는 못 본 거지?
우웅-
“야, 이제 내놔.”
진동이 울리자마자 날카로운 손동작으로 핸드폰을 다시 가져가는 폴리.
“뭐야? 화면이 왜 이렇게 노래? 밝기는 왜 이렇게 어둡고? 인스턴트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이네, 빌런이야.”
“야, 너 연애하냐?”
“……뭐?”
맞네. 맞아.
“연상에 금발, 몸매 좋은 여자친구면 헤어지는 걸 추천한다.”
그런 여자친구를 사귄 선수치고 잘 된 선수가…… 있네. 벌렌더.
“로라는 그런 여자 아냐. 상관하지 마.”
얼씨구.
뭐, 알아서 하겠지.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그건 그렇고. 붐, 내일부터 시작인 거 알지? 경기 전 트레이닝.”
아, 까먹고 있었다.
케이시가 말을 안 해 줬으면 그냥 넘어갈 뻔했네.
얼마 전에 나온 이야기인데…… 내가 이번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비결이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칼럼이 나왔었다.
‘그리고 ‘퍼펙트가 낳은 괴물’모드인 케이시가 그 칼럼을 우연히 정독했고, 내게 요청했지.’
물론 이게 여기서는 그렇게 드문 이야기는 아닌데…… 내가 하는 트레이닝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힘들긴 하다.
처음부터 운동의 목적이 몸에 최대한 부하를 주는 목적으로 시작한 거니까.
“같이 하는 건 좋은데. 지금 시작하면 페이스 조절이 힘들 텐데? 생각보다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루틴이라.”
“괜찮아. 선발 등판 직전에 하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요즘 한 경기 던지고 나면 12파운드 가까이 빠져서 회복이 잘 안 되거든.”
몸무게 유지도 굉장히 힘든 일이긴 하지.
나 같은 경우도 일부러 시즌 전에 증량을 해서 115kg 정도로 시작했는데, 절반도 지나지 않은 지점에서 벌써 110kg까지 빠졌다.
‘이렇게 말을 할 때가 아니네, 먹자.’
“일단, 한번 해봐. 해보면 알겠지. 내일 아침 10시까지 호텔 피트니스센터로 나와.”
“10시? 콜.”
콜은 개뿔.
내일 울면서 돌아갈 거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나와 같이 운동하면서 눈물 안 뺀 사람은 시미즈밖에 없다, 인마.
* * *
그렇게 밤늦은 시간에 열린 회복(?) 식사자리가 끝나고. 호텔 방 안.
수리와 영상통화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있다 보니 아까 본 ‘3분 영웅……’이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상태창’
괜히 날 3분 만에 영웅으로 만들어 준 상태창이 보고 싶어 오랜만에 불러 보았다.
그리고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이름 : 4번 타자
칭호 : 힘이 999인
직업 : 전사
스탯
힘 : 999+(현재 적용 : 999)
민Ф : 10
지능 : 10
내구 : 13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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