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24화 (124/175)
  • 124화 김사범, 도달하다

    12월, 플로리다의 한적한 카페

    “누가 또 온다는 거야?”

    “너희도 아는 사람. 좀 있어 봐.”

    김태연과 신민수, 그리고 나는 훈련을 위해 추운 한국을 벗어나 플로리다로 왔다.

    “야, 근데 왜 플로리다냐? 선배들 보니까 괌에도 가고 하와이도 가고 그러던데.”

    민수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해 줬다.

    “가까우니까.”

    “가까워? 어차피 거기나 여기나 비행기 시간…… 야!”

    우와, 단순 무식한 놈들하고 대화하다가 눈치 빠른 녀석하고 대화를 해보니 뭔가 막힌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다.

    “진짜 알아챈 거야? 한마디만 듣고?”

    “모르겠냐? 아오, 이거 몸값 비싸서 어디 한 군데 부러트릴 수도 없고…….”

    “대신 여기 있으면서 숙박비는 내가 낸다.”

    “콜. 아무렴요, 가까운 데에 잡으셔야죠.”

    자본주의 만세.

    “저기, 나도 끼워 주면 안 되냐? 난 뭐 아싸 그런 거야? 색다르네?”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 김태연의 물음에

    “멍청아, 쟤네 팀 전지훈련이 애리조나에서 열리잖아. 그래서 여기 온 거라고.”

    신민수가 친절한 손놀림으로 김태연의 목젖을 강타하며 대답했다.

    “케켁켁!”

    효과음 좋고.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을 기다리던 중,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하냐? 왜 싸우고 있어?”

    익숙한 목소리.

    “여, 왔냐?”

    “왔지……. 근데 운동을 너무 일찍 시작하는 거 아냐? 그래서 성적이 좋은 건가? 흠.”

    “헛소리 말고, 앉아. 뭐 마실래?”

    “미지근한 물.”

    “지랄은. 그냥 오렌지 주스 마셔. 사 올 테니까 인사들 나눠라. 다들 알지? 여긴 양키즈의 김호구 투수. 저긴 무적 크보 3군 외야수 김태연, 신민수.”

    내 광역도발에 걸린 세 잡몹이 빽빽거리는 소리를 무시하며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려 카운터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습관적으로 나온 인사에 카운터를 보고 있는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해줬다.

    “하하, 그러네요. 오렌지 주스 하나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금방 나온 오렌지 주스를 손에 듦과 동시에 카운터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붐, 혹시 타이거즈를 떠날 생각은 아니죠?”

    오호?

    디트로이트 팬인가?

    “더 좋은 구…….”

    슬쩍 농담을 하려 입을 연 순간, 주방 안에서 날카로움을 뽐내고 있는 과즙기가 보였다.

    “구……장으로 옮길 때까지 여기 남아야죠. 네, 걱정 마세요. 협의 중이니까.”

    “잘됐네요. 다행이에요. 맛있게 먹고 가세요.”

    이건 비참하거나 창피한 게 아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했다면…… 난 디트로이트의 붐이 아니라 플로리다의 김사범 주스가 됐을 수도 있으니까.

    분명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다시 보니 막 몸에 문신이 막…… 덩치가…….

    항상 조심하자. 이젠 홀몸도 아닌데.

    * * *

    베이스로 삼은 숙소를 향해 가는 길. 메이저리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에게 김태연이 물었다.

    “그래서, 너희한텐 좋은 거야 안 좋은 거야?”

    “조금? 크진 않고.”

    그치. 크진 않겠지.

    “나도 뭐,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거야.”

    “흠, 한국에선 로스터 확장하고 지명타자 도입이라고 난리던데, 완전 돈놀이 잔치판일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2~3년 전부터 급속도로 식어 가는 FA 시장이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되살아났다고 했으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쟤나 나는 상관없지. 나이도 어리고, 보여 준 성과도 리그 상위급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내 대답이 뭔가 이해가 안 됐는지, 다시 한 번 입을 여는 김태연.

    “왜? 내셔널리그에 지명타자가 도입되면 어쨌든 좋은 타자를 구하려고 난리일 거고, 로스터까지 확장됐으니까 더 부담 없이 구단들이 지르는 거 아냐?”

    메이저리그 선수협이 그걸 노린 거긴 한데…….

    “그렇긴 한데, 사실 그런 팀은 소수거든. 지구에서 1팀? 많아야 2팀? 나머지는 그냥 알아서 올려서 채우거나 다저스처럼 넘치는 자원을 지명타자로 쓸 테니까.”

    “흠, 그러려나?”

    “그래도 야구 인생 마지막 대박을 노리고 있는 빠따 좋은 노장들은 좋겠지. 물론 뭐, 내셔널리그팀들이 찾아 줄진 모르겠지만.”

    “결국 노장 선수들만 이득인 거네?”

    “아니지. 이번 조치로 제일 이득을 보는 선수는…… AAAA 리거들이지.”

    “뭐?”

    AAAA리거. 트리플A에선 꽤 준수한 활약을 보여 주지만,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면 그저 그런 성적을 보여 주는 선수들.

    보통 그런 선수들은 메이저에서 뒤늦게 터지지 않는 이상 트리플A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타국(한국, 일본, 대만) 리그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아, 한국에 오는 용병들? 걔네가 왜?”

    “어찌 됐건 로스터에 27명을 채워야 하잖아. 돈 많은 구단은 상관없이 좋은 선수들을 채우거나 마이너에서 유망주를 올리겠지만, 탱킹을 하는 중이거나 돈이 없는 구단들은 코어로 삼을 유망주들의 서비스 타임 관리를 위해서라도 그런 선수들을 영입해서 로스터를 채울 거거든. 어찌됐든 서비스 타임 3년을 채울 때까진 최저연봉만 줘도 되니까.”

    그리고 또 이득을 보는 선수들이 있지만... 뭐, 거기까지 설명하기엔 내가 너무 귀찮다.

    “흠. 어렵네 여긴.”

    “아, 다 왔다. 여기야.”

    그런 어른들의 사정이야 내가 알바 아니고,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 훈련을 할 거다. 목구멍에서 피맛이 느껴질 때까지.

    * * *

    같은 시간, 디트로이트.

    [좋은 거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럼.”

    론이 전화를 끊자마자 곳곳에서 숨을 크게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던 딜?”

    “던 딜. 좋아, 느낌이 아주 좋군.”

    회의실에 서서히 웃음이 번져 나가며 사람들이 서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을 가진 알 아빌라는 곧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았다.

    “닉과 대즈를 보냈으니 총알은 충분하군. 나머지는 워싱턴에서. 총알을 모았으니 쏘는 일만 남았어. 모두 입단속 철저히 하고 내일모레 보지.”

    윈터미팅.

    메이저리그 팀, 마이너리그 팀, 동아시아 야구 관계자, 에이전트 등.

    감히 세계의 모든 야구인들이 모인다고 말할 수 있는 그곳에서 디트로이트 프런트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 * *

    일주일 뒤.

    “미기, 왠일이에요? 잘 지냈죠?”

    [아주 잘 지내고 있지.]

    “내가 일 년만 더 참으라 그랬죠? 남은 계약기간도 다 뿌리치고 나가더니.”

    [뭔 소리야? 아, 내셔널리그? 하하하, 괜찮아. 이제 야구는 끝났으니까.]

    “이럴 때 보면 참. 아무튼, 놀고먹는 생활은 즐거운 거죠? 못 참는 사람은 절대 못 참던데, 그 생활.”

    [전혀, 아주 행복해. 지금껏 내가 느꼈던 행복은 행복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음…… 정말 행복한가 보네?

    [아무튼, 이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한 게 아닌데. 운동 시작했다며? 이삭이 방금 질질 짜면서 전화했으니 거짓말할 생각은 말고.]

    “슬슬 시작해야죠. 한 달을 쉰 건데.”

    [쉬었다고? 바벨을 내려놓고?]

    “……놉.”

    [아하하하, 역시. 아무튼 너무 무리하지 마. 구단에서 좋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좋은 선물이요?”

    [아직 모르고 있나? 흠, 뭐. 알아서 하겠지. 아무튼 내 말 잊지 마. 무리하지 말라고.]

    “예, 예. 쉬세요.”

    그동안 열심히 하던 미기만 봐서인지, 뭔가 이렇게 늘어져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미기는 익숙하지 않다.

    “헉……. 헉……. 야, 오늘 오전은 이걸로 끝이지?”

    “훅, 훅. 진짜?”

    이제야 센터로 돌아온 김태연과 신민수가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야, 이게 끝이냐는데?”

    나는 김병헌에게 물었고.

    “설마. 이제 시작인데.”

    김병헌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주 평온하게 대답해 줬다.

    잠시 후.

    “한 개 더! 한 개 더!”

    “으크아아아악!”

    “야, 할 수 있다니까? 이 분야에서는 내가 왕이야! 여기서 나 같은 최상위권 트레이너 고용하려면 너네들 연봉 다 빨려! 집중해!”

    “이…… 개! 으아아악!”

    띠링!

    [‘기분나쁜 선생님’이…….]

    상쾌하다.

    아직 시즌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마음껏 갈구고, 지적할 수 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행복감. 효율도 좋아지니 이 녀석들에게도 정말 엄청난 이득이다.

    ‘몇 퍼센트라도, 그게 매일매일 반복되면…… 와우. 나 같은 트레이너가 있으면 나도…….’

    “하악, 하악, 하아.”

    “주, 죽, 죽여 버릴 거야……. 하아…….”

    이 둘은 아닌 것 같지만.

    “쌩 쇼를 한다. 그러길래 내가 돈 주고 트레이너 고용하랬지? 공짜라고 신나서 달려들더니…….”

    김병헌이 트레이너와 같이 나가며 쿨하게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졌다.

    “너…… 후아악…….”

    어라?

    말이 나오네?

    제대로 안 했네?

    열 받네?

    “푹 쉬었지? 또 가자. 걱정 마. 진짜 최고로 만들어 줄게.”

    * * *

    워싱턴.

    “오랜만이에요, 마이크.”

    “오, 알. 오랜만이군요.”

    “잠깐 시간 있어요? 아주 재미있는 제안을 하나 들고 왔는데.”

    “음…….”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이 열리는 워싱턴 인근 내셔널하퍼. 알이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단장 마이크 션오프에게 낚싯대를 던졌다.

    “오래 걸리나요? 선약이 있는데.”

    “오, 잠깐이면 되요. 순식간에 끝날 수도 있고.”

    “좋아요. 가죠.”

    마이크를 데리고 미리 잡아 둔 룸으로 가는 알.

    이내 둘은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았다.

    “그래, 무슨 제안이죠?”

    “단도직입적으로, 호세 라미레즈. 트레이드 어때요?”

    “……호세를? 하하하, 팀의 코어를 파는 멍청한 단장도 있나요? 재미있는 농담인데요? 이게 본론이라면…… 시간 낭비…….”

    낚시감이 줄을 끊고 도망가려 하는 순간. 알은 재빨리 릴을 풀었다.

    “Oh, come on! 애초에 팀 옵션을 발동한 게 지금 같을 때 써먹으려는 거 아니었어요? 아직 유망주들이 레디가 되려면 조금 남았잖아요?”

    리툴링을 노리며 마이너리그의 유망주들의 레디를 기다리던 클리블랜드는 계획대로 준비되지 않은 유망주들 때문에 골치 아파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2년 2천만 달러를 넘는 라미레즈는 분명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선수기도 했고.

    “로스터가 늘면서 부담도 될 거고…… 제안이라도 한번 들어봐요.”

    물고기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알이 급격하게 릴을 감으며 낚싯대를 당기기 시작했다.

    “……좋아요. 들어나 봅시다.”

    “메인은 키브라이언 헤이스. 그 외에 페링턴 매스, 알 히루다, 패닝 맥스, 크리스 필리언을 주죠.”

    마이크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헤이스야 우리 주전 3루수니, 설명할 필요 없을 거고, 나머지 넷도 터지면 메이저리거, 터지지 못해도 갭을 메꾸는 데엔 충분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죠.”

    닉 카스테야노스와 대즈 카메론을 트레이드한 대가로 얻은 선수들을 거의 쏟아붓듯 올인하는 알.

    “음…….”

    “윈-윈, 아름다운 말이지 않나요? 우린 미기의 대체자를 찾아서 좋고. 인디언스는 시간을 벌 수 있어서 좋고. 어차피 라미레즈는 자리를 비워 줄 예정이잖아요?”

    심각하게 뭔가를 생각하는 마이크.

    그런 마이크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며 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답변하지 않아도 됩니다. 뭐, 그런 자리니까요.”

    “……그러죠. 답변 드리겠습니다.”

    * *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트레이드 합의. 2 : 6 트레이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호세 라미레즈, 클리어 피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 키브라이언 헤이스, 페링턴 매스, 알 히루다, 패닝 맥스, 크리스 필리언, 알렉스 파에도.]

    [비어 버린 디트로이트의 외야 두 자리, 알 아빌라의 의중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코리 클루버와 연결, 3년 9천만 달러?]

    “뭐야? 얘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뭐 그런 거야?”

    “후우우우우, 뭐가?”

    “아냐. 같은 지구 팀에게 팀의 핵심 선수 2명을 통째로…… 흠, 뭐 한 명은 FA니까 상관없는 건가?”

    “무슨 소린지……. 후우, 난 간다.”

    3일 동안 빡세게 굴리니 제법 사람 태가 나는 김태연이 먼저 센터를 떠났다.

    ‘이제 나도 내 운동을 해볼까?’

    팀 구성은 뭐…… 단장인 알이 할 문제고. 나는 내 몸을 끌어올리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얼마 전부터 뭔가 느낌이 왔다.

    곧 내 목표에 도달할 거 같은…….

    띠링!

    드디어.

    내 예상이 맞았다.

    ‘상태창.’

    [힘  : 999]

    나는, 끝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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