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13화 (113/175)

113화 김사범, 2021 포스트 시즌(Dirty Bomb)(5)

[저스틴 벌렌더를 격추시킨 7회 김사범의 홈런.]

[저스틴 벌렌더, 경기 후 ‘실투였다. 아쉽다.’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져.]

[메이저리그 전문가들, 입을 모아 김사범 극찬. ‘실투를 놓치지 않는 완벽한 타자’]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열린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시미즈 루이 8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 김사범 4타수 2안타 1홈런.]

[스윕패로 끝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포스트시즌.]

[Hot clip! 휴스턴의 감독 A,J 힌치, 김사범에 대해 말하다!

- 그는 마치 전염병 같았다. 상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주변 타자들이 생각보다 강해 결국 상대해야만 했다.(3:23, ‘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붐에게 홈런을 맞은 투수들은 마치 오염이라도 된 것처럼 뒤의 타자에게 큰 타구를 맞았고, 이걸 빠르게 인식해서 끊어 주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난 그저 ‘붐’의 폭발을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8:21, ‘디트로이트의 폭발하는 타선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단언컨대, 없다. 내셔널 리그의 챔피언이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의 붐은 그야말로 Dirty Bomb이다.(12:29, ‘월드시리즈에서 붐을 상대하게 될 내셔널리그 팀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 Dirty Bomb : 방사능, 생화학 무기 등 폭발물의 화력보다 폭발로 일어나는 부수적인 효과로 큰 피해를 주는 방식의 폭탄. 주로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미친 ㅋㅋㅋ 더러운 갓갓갓 ㅋㅋㅋㅋ

└ 말을 해도 저런 걸로 예를 드냐 ㅋㅋㅋ

└ 상대방 입장에서는 겁나 더럽긴 하지 거르면 뛰고 안 거르면 홈런인데 ㅋㅋㅋ

└ 근데 사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선 김갓갓이 별로 한 거 없지 않음? 갓미갓이랑 얼굴 둘이 다 해쳐먹었잖아

└ 그렇긴 하지.

└ ㅉㅉㅉ 이래서 야알못들은 안됨.

└ 어린 친구들은 제프 켄트를 검색하고 옵니다.

└ ? 그건 또 무슨 듣보잡임?

└ 약본즈 우산효과 제대로 받아서…… 됐다. 말을 말자.

└ 김사범은 이제 진짜 조심해야 한다. 약 빤 거 들키는 순간 인생 끝임.

└ ?

└ ??

└ 갓사범 에이전시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구나.

└ 박제 완료 ㅋㅋ

└ 평소에 해외 야구 기사만 조금 봤어도…….

└ 니가 말하는 그 사람하고 경찰서에서 보겠네. 잘 가~

* * *

[아, 최근 사범 기사에 악플러들이 많이 늘었어요. 어떻게 처리할까요?]

“아, 악플러…….”

이야, 김사범 출세했네. 돌아오기 전에는 아예 무플이었는데.

“법대로 처리해 주세요. 반성문 이런 거 필요 없으니까 최대한 세게.”

[하하, 좋죠. 괜히 이미지 관리하겠다고 선처해 줬다가 나중에 못 볼 꼴 다 보는 것보다는 나아요.]

“혹시 아직 어린 학생이면…….”

[선처할까요?]

“반성문 100장, 자필로. 내용 중복 없이.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나오는 인증 동영상 보내기, 그리고…….”

[크크크큭, 다신 키보드에 손을 못 올리게?]

“네 뭐, 그 정도로 처리하면 될 거 같네요.”

[알겠어요. 아직 어린 학생들은 금전적인 보상보단 최대한 귀찮고 악랄하게.]

“오빠! 경기 시작했어!”

“붐! 빨리 와!”

거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날 부른다기보다는 내 손에 들린 맥주를 부르는 것 같긴 하지만.

“갈게! 짐, 아무튼 그건 알아서, 알겠죠?”

[알겠어요.]

짐과의 통화를 끊고, 양 손에 캔맥주를 잔뜩 든 채로 거실로 향했다.

나름 괜찮은 크기라고 생각했던 거실이 상당히 좁아 보인다.

아버지, 어머니, 수리, 하별이, 폴리, 이삭, 케이시, 시미즈, 페이스까지.

“Would you like some beer?”

“아버님, 맥주 좀 드릴까요?”

“어, 좋지. 이 동네 맥주가 괜찮더라고.”

“Sure, thank you. Casey.”

내가 가져온 맥주를 들고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는 케이시.

아침 댓바람부터 폴리가 가져와 설치한 프로젝터에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이 나오고 있었다.

[LA 다저스 vs 뉴욕 메츠]

두 팀은 시리즈 스코어 2:2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Go Mets! GO Dogers!”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맥주를 까서 먹고 있는 폴리의 뜬금없는 외침.

‘이기는 편 우리 편 이런 건가?’

역시, 생각 없기로 유명한 폴리답게 조금 어색한 분위기에서도…….

“Go Mets! Go Dogers!”

아니, 수리는 왜 갑자기…….

“Go! Mets!”

“Go! Dogers!”

뭐야? 내 거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 *

좋은 자리, 좋은 기분으로 마시다 보니 취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붐이 야구를 잘하는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란 거죠?”

“그렇지. 한국 음식은 몸을 보양하는 데에 아주 큰 효과가 있다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코리안 파워, 오케이.”

“코리안 파워? 오케이 오케이. 우리 사범이가 힘이 좀 세지?”

도대체 어떻게 대화가 통하는 거지?

아니 이걸 대화가 통한다고 봐야 하나?

“멕시코 음식을 배우고 싶으면 우리 이모를 소개해 드릴게요. 붐도 아주 좋아하죠.”

“오, 좋죠! 내일 당장 가도 돼요?”

“그럼요.”

“어머니! 여기 이삭이 멕시코 요리를 알려 준대요! 사범 씨가 아주 좋아한다는데요?”

“그래? 그렇게 생긴 건 아닌데 요리를 잘하나 보구나? 하긴, 15살 때부터 혼자 자취했으니까 요리를 잘할 만도 하지.”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이삭의 이모가…….”

그래도 사이에 수리가 끼니 제법 정상적인 대화가 오고 가긴 한다.

나는 멕시코 음식보다 한식이 더 좋긴 하지만.

“내일 경기는 커쇼가 나오겠군.”

“그럴 수도…….”

“로테이션상으론 3차전이겠지만…… 아마 2차전에 나오겠지.”

“음…… 케이시 아니면 내가 상대하겠지……?”

“난 상관없어. 잘 던지는 투수 한두 번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제법 진지하게 월드시리즈 상대를 살펴보고 있는 부류도 있다.

역시. 공부벌레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뭔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조금 전과 다른 게 있다면…….

‘김하별!’

촉이 왔다. 지금 녀석을 잡기만 하면 무조건 이득이다.

“아빠, 저 잠깐 창고에 맥주 좀 가지러 갈게요. 거기 넣어놓으신 거 맞죠?”

“응? 응, 맞다. 문 바로 앞에…… 음…… 아닌가? 아무튼 거기 놨을 거다.”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2층으로 향했다.

“오빠는…… 아냐, 괜찮…… 모를걸?”

역시.

수리와 내 연애를 먼저 눈치챘는데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자기도 숨기는 게 있는 거다.

‘8시 14분.’

다시 계단을 내려와 맥주를 들고 거실로 향했다.

함정은 깔아 놨으니, 이제 걸리기만 하면 된다.

다저스의 3:0 승리로 경기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저녁.

출출하다며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 김하별의 핸드폰이 날 부르고 있다.

“야! 나도! 하나만 더 끓여 줘!”

“아 뭐야! 아깐 안 먹는다며! 네가 끓여 먹어!”

“엄마!”

“하별아!”

“아오! 짜증 나!”

오늘 저녁에 먹은 라면의 염분이 내일 아침 내 컨디션을 살짝 망칠 수도 있지만……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니까.

“내가 끓여 줄까? 나 라면 끓이는 거 배웠는데.”

“아냐, 그것보다…….”

수리에게 악마의 제안을 속삭였다.

“김하별의 약점을 잡을 때야. 같이 할래?”

“응?”

“쉿, 시간이 얼마 없어.”

“음…….”

조심히 핸드폰을 들고 홀드 버튼을 누르자 뜨는 잠금화면.

‘이것 봐라? 평소엔 귀찮다고 비밀번호도 안 걸고 다니는 놈이?’

오른쪽 위, 왼쪽 아래, 오른쪽 위, 오른쪽 아래였나?

톡톡톡톡.

김하별이 핸드폰을 들 때마다 움직인 동선을 따라 화면을 두드리자, 환하게 날 반겨 주는 메인화면.

“자기!”

“하나만 보면 돼.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냐.”

“그래도 이건 안 돼! 하별아!”

칫. 내부의 배신자인가.

슬쩍 주방을 바라보자 주방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대답하는 김하별이 보였다.

“왜요 언니? 언니도…… 야!”

3초. 3초다. 그 안에 모든 걸…….

재빠르게 통화 내역을 열어 8시 14분에 온 전화를 살펴봤다.

‘8시 5분! 이거다!’

김철명? 이런 이름이 있을 리가. 분명 가명이다.

‘0109x23…….’

마지막 네 자리를 외우려는 순간, 별이 보였다.

“……사범아!”

“자기! 괜찮아?”

“넌 중요한 경기를 앞둔 오빠한테!”

“저 자식이 먼저 내 핸드폰 뒤졌단 말이야!”

“너 또! 오빠한테!”

“그만! 일단 하별이 넌 방에 올라가 있어라.”

잠깐 의외의 공격이 들어와 놀랐지만, 별 타격은 없었다. 후후후.

사태가 진정되고, 내 방으로 향하는 내게 수리가 물었다.

“자기, 왜 그런 거야?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건…… 정의를 바로 세우는 거야.”

“뭐?”

“지켜봐 줘. 이 희생으로 우린 많은 걸 얻어 낼 수 있을 테니까.”

수리의 시선이 뭔가 찝찝하긴 했지만, 나는 재빠르게 내 방으로 들어왔다.

“보자…… 아까 번호가 0109x23…… 뭐였지?”

분명 봤는데…….

쉬운 번호였는데…….

아…….

‘기억이 안 난다!’

한참을 고민하다 일단 기억한 번호라도 저장을 해 놓으려 핸드폰을 들어 전화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0109x234x56

김태연

음…….

이거…….

그거 맞지?

맞네.

맞아.

[한 달 뒤에 보자.]

[뜬금없이 뭔 소리야? 거기 밤 아니냐? - 김태연]

[널 꼭 보고 싶어서.]

[너 이 새끼, 아직도 그 방송 때문이냐? - 김태연]

[글쎄…….]

* * *

대한민국, 서울.

‘들켰나?’

느낌이 싸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그러길래 미국 간다고 좋아하지 말고 여기 남아서 경기나 보러 오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행운의 여신이 안 오는 바람에 경기도 지고!

[여보, 혹시 사범이가 눈치챈 거 아냐?]

“야! 안 나오냐! 안 그래도 지금 분위기 흉흉한데 너까지 이럴래?”

“선배님, 잠시만요. 제가 내년에 야구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더 큰 문제잖아요!”

“뭐?”

[힝힝 ㅠㅅㅠ 아까 웬수놈이 핸드폰 몰래 봤어…… 비밀번호 걸려 있긴 했는데……. - 하늘처럼별처럼♥]

‘이 자식…… 분명 눈치챘다.’

안 그러면 이런 살벌한 문자를 날릴 리가 없다. 그것도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헛소리 그만하고, 일단 나가자. 지금 감독이고 뭐고 분위기 장난 아니다.”

“후, 알겠어요.”

일단 지금 이대로면 난 죽는다.

그 큰 덩치들을 한손으로 날리는 녀석인데…….

머리야! 돌아라! 생각해! 죽음의 위기라고!

“후우…….”

“아까부터 왜 그래? 네 친구도 잘나가고 있는데.”

“그게 문제죠…….”

“응?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만 자꾸……. 아무튼 이번엔 LA로 가겠네. 아까 경기 보니까 다저스가 올라갈 거 같더라.”

다저스?

“선배, 선배 사촌 형이 전력분석실에 있다고 했죠?”

“그래.”

“다저스 팬이고?”

“엄청난 팬이지. 박 선배님 계실 때부터 팬이었으니까. 아까도 같이 경기 보는데 커쇼가 삼진 잡을 때마다 얼마나 난리를 치던지……. 우리 둘이 어릴 때부터 같이 컸는데, 선배님 경기 나올 때마다 막 난리를 쳤다니까? 언제는 한번 이런 일도 있었는데…….”

“선배님, 아니 형님. 그만, 그만!”

“아,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라니까? 좀만 참고 들어봐 봐, 그래서 그때…….”

“소고기! 소고기! 그 형님 소고기 좋아하세요?”

“응? 소고기? 좋아하지. 얼마나 좋아하냐면…….”

아, 이 인간 또 시작이다. 박사장님병.

“잠깐, 잠깐만요 제발!”

“넌 왜 짜증을 내냐?”

평소라면 재빨리 도망치는 게 답이지만…… 지금 내겐 이 사람이 절실하다.

“선배님, 아니 박.순.철 형님.”

“아까부터 왜 부르냐니까?”

“저랑 일 하나 같이 하시죠. 저기 위에 사촌 형님도 같이.”

“뭐?”

“이틀 동안 삼시 세끼 투뿔 한우. 질리면? 형님 좋아하시는 제주 옥돔.”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여기에 쐐기를 박자.

“……플러스 나중에 거하게 한턱.”

“콜. 근데 뭔데? 뭘 해야 하길래 이런 조건까지 내밀어?”

“분석이요.”

“뭐?”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저스를 통째로 들어다 바쳐야 한다.

[힝…… 여봉꿍 괜찮아? 웬수가 알면 큰일난다면서……. -하늘처럼별처럼♥]

괜찮아야지…….

* * *

내셔널리그 6차전이 끝나고, 핸드폰이 울렸다.

[LA 다저스의 시작과 끝.hwp - 김태연]

이게 뭐야?

[내가 사랑하는 친구 사범이에게 도움이 됐으면……. - 김태연]

[뭐냐?]

[읽어 봐. 내 마음이야……. - 김태연]

웬 개수작이야?

전력분석자료인 거 같은데, 같은 자료라도 메이저리그 구단과 개인의 분석은 그 질이…….

‘어? 이건?’

……써먹을 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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