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06화 (106/175)
  • 106화 김사범, 2021 포스트 시즌(우리의 전략은…)(2)

    타율 : 0. 359

    출루율 : 0.589(역대 2위)

    장타율 : 0.901(역대 1위)

    OPS : 1.490(역대 1위)

    홈런 : 76

    타점 : 169타점(역대 8위)

    도루 : 43개

    DWAR : 5.6

    OWAR : 13.2

    WAR : 18.8

    “흠…… 그래, 마지막 선수인데…… 의견 있나?”

    양키스의 감독인 애런 분이 리포트를 덮으며 입을 열자마자 회의실에 모여 있던 코칭스태프가 너 나 할 것 없이 말했다.

    “걸러야 합니다.”

    “걸어 내보내시죠.”

    “고의사구밖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해서일까, 갑자기 회의실이 고요해졌다.

    “으음…….”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애런 분의 신음성만 간간이 들려오던 회의실.

    “거르지. 거를 명분이 충분한데 거르지 못할 이유가 없어. 하지만…….”

    뭔가가 마음에 걸리는 듯 입술을 매만지는 애런 분.

    “제임스, 킴이 붐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예? 아, 네. 스카우터들의 보고서에도 나와 있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니 꽤 의식하는 것 같습니다.”

    “흠…….”

    다시 눈을 감고 고민하는 애런.

    “일단 그건 내가 이야기를 해보지. 제임스 자네는 킴에게 내 방으로 와 달라고 전해 주게. 나머지는 분석팀에서 준 자료와 지금 정리한 자료들을 선수들에게 전해 주고.”

    “네.”

    “네.”

    “예. 지금 오라고 할까요?”

    “그래 주면 고맙겠군.”

    잠시 뒤.

    똑똑.

    “감독님, 킴입니다.”

    “들어오게.”

    감독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양인 투수를 애런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일단 말이 좀 길어질 거 같으니 같이 앉지.”

    손님 응대를 위해 배치된 소파에 앉는 둘. 앉자마자 애런이 말을 시작했다.

    “좋아. 생활은 문제없나?”

    “물론이죠.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제임스에게 들었네만, 커브를 장착하길 원한다고?”

    “네. 물론 이번 시즌이 아니라 다음 시즌부터 준비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동안 너무 공이 패스트볼 위주긴 했지. 커브를 장착하게 되면 타자들이 상대하기에 더 까다롭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무리하진 마.”

    “물론이죠. 그것 때문에……?”

    “음…… 그건 아닐세.”

    애런 분은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 말한다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 거대한 스타군단을 이끌면서 온갖 쓴소리를 다해 왔지만…….’

    투수라는 종족, 거기다 자존심과 연관되어 있는 주제에 혹여라도 이 어린 투수가 자신의 날개를 스스로 꺾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할지 모르겠군. 흠…… 일단…….”

    “김사범, 아니 붐에 관한 이야기죠?”

    “음? 그렇지.”

    “내일 그 녀석은 1루는 밟을 수 있어도 안타는 때리지 못할 겁니다. 홈런도 마찬가지고요.”

    “그 말은?”

    “지시만 내려주시면, 모두 거르겠습니다.”

    본격적인 선발 데뷔 시즌부터 15승을 따낸 이 어린 투수가 보여 주는 헌신에 애런은 조금 감탄했다.

    “어린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다고 하던데?”

    “라이벌이라기보단…… 제가 항상 따라가던 녀석이었죠. 그래서 여기 있는 어느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혹시 약점이라도 알고 있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니지만…… 거르고 거르다 보면 자기 스스로 폭발할 녀석이에요. 스트레스…… 음…… 영어로 표현하려니 힘드네요.”

    “무슨 의미인지 알겠네.”

    양키스의 두 남자가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끝까지. 이 시리즈가 끝나는 순간까지…….”

    “걸러야 한다?”

    “중간에 나오는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조건.”

    “고의사구?”

    “그것도 좋고. 아예 완전히 빠지는 공을 던지는 것도 좋죠.”

    “알겠네.”

    악당처럼 웃는 두 남자.

    하지만 그들은 김사범이 시즌 마지막 10경기에서 단 두 번의 스윙으로 두 번 담장을 넘긴 것을 잊고 있었다.

    * * *

    - Detroit! vs! Newyork!

    - 76개의 폭탄이 필요할 때야!

    - 도시 샌님들이 볼 수 없었던 광경!

    - 너희가 스스로에 취해 있을 때 우린 싸구려 위스키를 마시며 프레스 버튼을 눌러!

    라커룸 안까지 은은하게 들리는 팬들의 함성소리.

    이제야 포스트시즌이 시작됐다는 느낌이 든다.

    ‘후우, 후…….’

    디비전 시리즈, 양대 리그의 우승팀을 결정하는 챔피언십 시리즈 전에 펼쳐지는 경기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4강전.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양키스와 우리가 펼치는 디비전 시리즈는 정말 역대급 관심을 받고 있었다.

    [전방위적 광고에 늘어나는 관심,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는 환호성!]

    [스토리,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스포츠!]

    [같은 나라, 같은 리그에서 뛰던 두 동양인의 맞대결. 한국, 일본, 대만에서도 주목.]

    정규시즌 막바지에 한번 대차게 싸웠던 이력도 있는데다, 양 팀 팬들의 감정에 불을 붙인 제이지와 에미넴의 노래까지.

    아시아 시장은…… 따로 기사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김병헌과 내 과거까지 뒤지면서 난리도 아니겠지.

    “긴장되나?”

    론의 목소리에 머리를 흔들며 잡생각을 지워냈다.

    “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다들 멀쩡한가 보군. 좋은 현상이야.”

    그럴 리가. 지금 내 시야에 보이는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은 포스트시즌을 겪어 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으로 따지면 거의 대부분이.

    ‘나도 마찬가지지만…….’

    “걱정이 많을 수도 있고, 아니면 머리가 멍해졌을 수도 있지. 그런데 내가 겪어 본 바로는…….”

    정곡을 찔렸는지, 몇몇 선수들이 눈에 띄게 반응하며 론을 바라봤다.

    “별거 없네. 그냥 좀 더 힘든 경기일 뿐이야. 왜 힘든지 아나? 그것도 별거 없어. 단지 추가근무를 하기 때문이지. 길면 20경기 정도?”

    아하하…….

    론의 노력이 통했는지, 몇몇 선수들이 웃기 시작했다.

    “포스트시즌에 뛰지 못하는 다른 팀들은 162경기만 해도 연봉을 다 받아먹는데, 우리는 추가로 더 뛰고도 별다른 수당을 받지 못해. 아, 몇몇은 아닌가?”

    “전 아니에요 론.”

    “그래. 닉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일 테지. 미기?”

    “전 옵션을 붙이는 걸 싫어해서.”

    “하하하, 미기답군. 좋아. 모두 이것만 기억하자고. 우리보다 훨씬 쾌적한 10월을 즐기고 있을 녀석들이 정작 부러워하는 건 우리야. 내 말에 틀린 게 있나?”

    - No!

    “그래, 그럼 나가서 즐기자고. 다들 나가면서 저기 애송이처럼 굳어 있는 파커의 등을 한 대씩 쳐 주면 고맙겠군.”

    - yes! boss!

    한참 연승을 달릴 때보단 아니지만, 꽤 분위기가 풀어진 게 느껴진다.

    퍽!

    “으윽!”

    파팍!

    “아악!”

    9월에 콜업 되어서 포스트시즌 엔트리까지 살아남아 주전 좌익수로 뛰고 있는 파커를 제외하곤.

    모두가 나간 라커룸. 오직 파커와 나만 남았다.

    “붐…… 제발…….”

    “미안, 파커. 난 론의 말을 꽤 잘 듣는 학생이라.”

    퍼어어억!

    이 정도면 뭐, 정신 차렸겠지.

    * * *

    “플레이 볼!”

    [뉴욕 양키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디트로이트가 색다른 라인업을 들고 나왔습니다.]

    [1번 김사범 선수는 시즌 말미에 자주 봤던 타순이라 특이할 게 없는데…… 2번으로 나선 파커 메도우즈 선수가 의외네요.]

    [9월 확장 로스터에서 합류한 외야수입니다. 신인답지 않게 빠른 발과 괜찮은 작전 수행능력을 보여 주던 선수인데, 데뷔 첫해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어가게 됐네요.]

    [라인업만 보면 김사범 선수가 출루를 하면 작전 수행능력이 좋은 파커 메도우즈 선수로 진루시키고, 3번으로 나온 미구엘 카브레라 선수나 4번으로 나온 페이스 달턴 선수가 해결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병헌 선수가 나머지 타자들을 얼마나 제압하느냐에 경기가 달려 있겠군요. 김병헌 선수, 사인 교환을 끝낸 후 초구를 던집니다.]

    “볼!”

    크게 빠지는 볼.

    심지어 구속도 90마일이 안 됐다.

    그런 공을 던지고 날 보며 씨익 웃는 김병헌.

    마주 웃어 주려는 순간, 갑자기 구심이 1루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1루로.”

    “네?”

    “고의사구야.”

    뭐? 고의사구?

    이럴 거면 왜 공을 던진…… 아.

    잠시 멍해 있던 나를 바라보는 김병헌의 눈빛을 보며 깨달았다.

    저 자식이 날 가지고 놀았다는걸.

    “헤이, 이닝 끝나면 저 자식에게 똑바로 전해.”

    장비를 벗으며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앤서니 시글러에게 말했다.

    “왓?”

    “지금 실수하는 거라고.”

    공짜로 1점을 준다는데 열 받을 필요는 없지만, 기분이 더러운 건 사실이니까.

    1루에 나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고 리드를 벌렸다.

    그리고 초구.

    난 뛰었다. 전력으로. 2루를 향해.

    “스트라이크!”

    촤아아악!

    “세잎!”

    [아, 김사범 선수가 초구에 2루 베이스를 훔쳤습니다!]

    [김병헌 선수도 허를 찔렸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네요.]

    [리드 폭이 크지 않았고, 정규시즌에도 크게 도루에 욕심을 보이지 않던 김사범 선수여서 방심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 잊으면 안 되죠. 김사범 선수의 시즌 도루 성공률은 85퍼센트가 넘어요!]

    “세잎!”

    “세잎!”

    김병헌이 2구 연속 견제구를 던졌다.

    완벽하게 베이스를 달리는 주자 모드로 돌아간 나를 잡기엔 역부족이었지만.

    ‘1루에 있을 때 진작 그랬어야지…….’

    어차피 리드도 길게 잡지 않아서 잡힐 이유도 없지만.

    그리고 2구째.

    난 또 뛰었다. 이번엔 3루로.

    “스트라이크!”

    “세잎!”

    슬쩍 휘두른 파커의 배트를 신경 쓰느라 반의 반 템포 늦게 송구된 공.

    경기 전, 파커에게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이번 스윙은 꽤 큰 도움이 됐다.

    씨익.

    살짝 짜증 난 표정으로 투구자세를 취한 김병헌에게 미소를 지어 줬다.

    그리고.

    딱!

    [아! 쓰리번트입니다! 공은 3루 쪽으로! 김사범 선수가 들어오기엔 충분합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슬라이딩 후 일어나서 파커의 배트를 챙기며 앤서니 시글러에게 말했다.

    “날 피하려고? 77번째 홈런은 피할 수 있어도 절대 날 피하진 못할 거다. 여기 디트로이트는 내 땅이니까!”

    [과감한 작전이었습니다. 이러려고 파커 메도우즈 선수를 2번으로 세웠던 거군요! 1회 무사 3루의 찬스에서 쓰리번트를 지시한 감독도 대단하고, 그걸 해낸 파커 선수도 대단해요!]

    [사실 굉장히 도박수였어요. 무사 3루 상황, 그것도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번트 사인은 거의, 아니 감독이라면 내서는 안 되는 사인이었죠. 하지만 성공했고, 양키스 내야진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기운이 쏙 빠진 것 같습니다.]

    덕아웃으로 들어서며 굶주린 피라냐 떼에게 파커를 던져 줬다.

    “먹혔네요.”

    “먹혔군. 수고했네.”

    론과 내 첫 번째 노림수.

    이걸로 김병헌의 멘탈은 갈기갈기 찢겼을 거다.

    덤으로 저 포수도.

    “미기에게 말했죠?”

    “당연하지. 여기서 같이 보겠나?”

    따아아악!

    - 우와아아아아아!

    - 우리에겐 큰 폭탄이 필요하지!

    [아아…… 김병헌 선수의 초구 높은 패스트볼을 당겨서 그대로 담장 밖으로 넘기는 미구엘 카브레라 선수입니다.]

    [양키스, 그리고 김병헌 선수에게는 최악의 시작이네요.]

    “좋네요.”

    “좋군.”

    론과 나는 베이스를 도는 미기를 보며 주먹을 가볍게 부딪쳤다.

    * * *

    - 빨리 꺼져 버려!

    - 제이슨의 공이 널 납작하게 만들어 버릴걸!

    9회 초.

    양키스 덕아웃의 애런 분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의 머릿속에서 오늘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던 포인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회, 쓰리번트 스퀴즈를 놓친 것? 아니면 그 뒤에 마운드를 방문하지 않은 건가?’

    애런이 생각하기에 그건 정말 최악의 시작이었다. 그때 준 2점이 아직도 전광판에 찍혀 있는 유일한 숫자니까.

    ‘아니면…… 잘 던지던 아처를 내린 6회, 바뀐 투수를 상대로 몰아치지 못한 것?’

    5이닝만 생각하며 던지는 크리스 아처라니. 애런이라면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선수기용이다.

    애초에 양키스의 투수 중 그런 기용을 쉽게 받아들일 선수도 없지만.

    ‘아니면…… 아직도 왜 지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지금……?’

    - 어흥!!

    [제이슨 폴리 선수가 본인의 주 무기인 체인지업으로 앤서니 시글러 선수를 잡아냈습니다! 쾌조의 스타트를 보이는 디트로이트! 디비전 시리즈 첫 경기의 승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입니다!]

    [여러모로 론 가든하이어 감독의 지략이 빛났던 경기네요. 김사범 선수도 5타석 5출루를 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김병헌 선수도 7이닝 2실점으로 디트로이트의 타선을 잘 막았습니다만…… 타선이 터져 주지 못하면서 패전투수의 멍에를 쓰게 됐네요.]

    [그 전까지 82개의 공으로 5이닝을 잘 틀어막았던 크리스 아처 선수를 과감하게 내리고 뷰 버로우즈 선수를 올린 론 가든하이어 감독의 결정이 옳았습니다.]

    [내일 경기가 기대되는군요. 오늘과 달리 뉴욕 양키스도 내일은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나올 거란 말이죠.]

    [맞습니다.]

    * * *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까지 마친 나는 라커룸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띠띠띠.

    [ㅋㅋㅋ]

    전송.

    패배자를 놀리는 건 승리자의 특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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