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79화 (79/175)
  • 79화 김사범, 2021시즌(강팀의 조건)(1)

    탬파베이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가 얼마 안남은 시점, 불펜.

    “한 개 더…….”

    “그만. 몸은 충분히 풀렸어.”

    “그래도…….”

    오늘 경기의 선발인 시미즈가 경기 전 불펜 투구를 하고 있었다.

    “더 던지면 경기 후반까지 몸이 버티지 못할 거다.”

    “응…….”

    마스크를 벗고 시미즈에게 다가가는 페이스.

    그런 페이스에게 시미즈가 질문을 던졌다.

    “페이스, 이번에도 잘 못 던지면 어떡하지?”

    “잘 던질 거다. 정 떨리면 고시엔 첫 경기를 생각해 봐.”

    “그래도…….”

    “걱정 마, 내가 널 메이저리그에 데리고 온 이유가 있으니까. 넌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

    “어…….”

    “넌 분명히 여기서 통해.”

    “그럴까?”

    “다른 팀원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알았어…….”

    “정 불안하면 분석자료나 한 번 더 보자.”

    “으응…….”

    * * *

    탬파베이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 4월, 이르면 3월부터 시작되는 시즌의 한 경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조금 특별한 경기다.

    ‘시리즈 스윕, 그리고 관중석엔…….’

    관중이 있으니까.

    진짜 관중. 팬.

    하핫.

    ‘그리고 시미즈도 있고.’

    경기가 시작하기 직전, 1루수인 스튜어트가 뿌려주는 볼로 가볍게 몸을 풀며 연습투구를 하고 있는 시미즈를 지켜봤다.

    4경기 2패, 방어율 4.64

    시즌 초반, 경기 일정 관계로 불안정한 등판 간격을 생각해 봤을 때 괜찮은 성적이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마음이 급해졌는지 저번 등판에서는 장점이던 제구력도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고.

    ‘이래저래 중요한 경기네. 팀 입장에서도, 나나 시미즈 입장에서도.’

    “플레이 볼!”

    제구가 좋은 투수에게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난 투수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도 자기 자신을 믿는 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제구가 좋은 투수, 아니 흔히 말하는 기교파라 불리는 제구만 좋은 투수들의 경우 구위가 떨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혹은 구속이 상대 타자를 상대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이런 투수들이 자신감이 떨어지게 되면 그 좋던 제구도 흐트러진다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탬파베이의 선두타자, 바이달 브루한 선수의 타구가 우중간을 가릅니다!]

    [발이 빠른 타자예요. 빠른 중계 플레이가 필요합니다.]

    [어어! 우익수 닉 카스테야노스 선수가 공을 글러브에서 한 번에 빼지 못했습니다! 타자주자는 이미 2루에 거의 다 도달한 상황!]

    [이러면 당연히 3루로 향하겠죠. 아쉬운 플레이입니다.]

    [바이달 브루한 선수는 3루에서 세이프! 이렇게 되면 1회 선두 타자부터 3루에 두고 시작하게 됩니다.]

    [안타를 맞기 전까지 시미즈 선수에게 유리한 볼카운트였는데요, 2-1에서 던진 마지막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가운데로 몰리면서 3루타를 줬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느꼈지만 정말 발 하나는 엄청나게 빠른 놈이다.

    타자주자가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돌아가고 있는 시미즈를 보니 어깨가 축 처진 게 또 자신감을 잃어 버린 것 같다.

    ‘차라리 버로우즈라면 날 믿고 가운데로 넣으라고 말할 수라도 있지, 시미즈는 몰리면 장타라…….’

    그렇게 타임이 끝나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오기 전에 갑자기 페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스크를 벗었다.

    “주자 3루! 집중!”

    어?

    뭐지?

    방금, 뭔가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페이스 선수가 일어나서 팀원들을 독려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교야구 중계를 할 땐 꽤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인데, 프로야구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네요.]

    [프로니까요. 시프트나 수비 위치 변경을 위해 일어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래도 포수가 저렇게 팀원들에게 말하는 경우가 많이 없죠. 그럴 필요도 없고요.]

    [타석에는 완더 프랑코 선수가 들어섭니다.]

    시미즈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선두타자부터 3루타를 준 것도 그렇지만, 그다음 타자로 나온 녀석이 시미즈 같은 기교파 투수가 상대하기 어려운 타입이라니.

    좋은 눈과 손의 협응력을 가진 타입이라 유인구에 쉽게 속지 않고, 속더라도 짧은 순간에 스윙 궤적을 바꿔서 커트를 해낼 수 있는 타자다. 저 완더 프랑코는.

    후웅!

    “스트라이크!”

    [시미즈 루이 선수, 결국 배트를 끌어내는데 성공합니다. 2-3, 풀카운트 승부.]

    아까 페이스의 행동이 기폭제라도 된 양, 시미즈가 달라졌다.

    [지금까지 5개의 공을 던지면서 하나도 같은 구종, 같은 코스가 없었어요. 더 대단한 건 그렇게 많은 구종을 던지면서 던지는 폼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점이 없다는 거거든요]

    [디트로이트의 수비 위치는 정상 수비 위치입니다.]

    [아직 1회기도 하고, 한 점쯤이야 내줘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시미즈가 여섯 번째 공을 던졌다.

    몸쪽 슈트, 말려들어 가는 공.

    그 공을 완더 프랑코가 억지로 쳐내 보지만, 공은 배트 손잡이 쪽을 맞고 살짝 떴다.

    마치 번트 타구 같은 공이 투수, 유격수, 3루수 사이로 떨어지려 하고 있다.

    슬쩍 본 3루 주자의 스킵이 길다.

    “내가!”

    콜을 하면서 동시에 외야수가 슬라이딩 캐치를 하듯 몸을 앞으로 던졌다.

    잠시 후, 글러브에 느껴지는 둔탁한 감촉.

    지금 이 타구를 잡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싶다.

    지금 내 자세는 마치 슈퍼맨이 하늘을 나는 자세다.

    ‘전방 낙법?’

    그건 오바다.

    퉁.

    몸이 땅에 닿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몸을 튕겨 올리며 3루를 향했다.

    홈과 3루 사이에서 벙쪄 있는 주자가 보였다.

    ‘이번 시리즈 2번째네. 힘내.’

    정말 3루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헤이스에게 강하게 공을 뿌렸다.

    “아웃!”

    심판의 콜이 들린 후, 자리로 돌아가는 내게 시미즈가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언제나처럼 말끝을 흐리는 화법으로 내게 말하는 시미즈.

    “당연한 거죠. 지금처럼 본인만 믿고 던지세요. 나머지는 여기 그라운드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할 테니까.”

    내 말을 들은 시미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네, 그럴게요.”

    ‘눈, 눈에서 불꽃이 보여!’

    조금 당황스러워서 재빨리 몸을 돌렸다.

    “오늘따라 적극적인데?”

    내 쪽으로 슬슬 다가온 이삭이 내게 말했다.

    “내가 오늘 여러 가지 이유로 좀 허슬을 할 예정이야.”

    “아무렴. 알지.”

    “잘 따라와라. 이 꽉 깨물고.”

    “그러던지. 아, 사랑의 힘이여.”

    저게 끝까지…….

    후, 말은 저렇게 해도 잘해 줄 걸 안다.

    내가 이렇게 말한 이유도 알고 있을 거고.

    [경기는 이제 4회 말로 접어들었습니다.]

    [탬파베이 선수들의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네요.]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땅볼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 안타가 된 적이 없네요.]

    [시미즈 선수의 땅볼 유도 자체도 굉장합니다만, 시프트와 그에 따른 내야 수비진의 집중력도 엄청납니다.]

    [시미즈 선수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음, 일단 다룰 수 있는 구종이 많죠?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터, 커브, 스플리터, 그리고 일본에서 흔히 슈트라고 불리는 역회전 공을 던지는 투수입니다.]

    [네, 그렇군요.]

    [지금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이 공들이 모두 비슷한 탄착군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존 한가운데로 오는 궤적이 있다고 가정해 볼 때 위쪽 방향을 제외하고 나머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거거든요. 이게 비슷한 투구 폼에서 나오니 타자들이 머리가 아픈 거죠.]

    [아, 시작은 똑같은데 공이 어느 방향으로도 휘어질 수 있다는 의미군요.]

    [맞습니다. 거기다 지금 결정구 삼아 던지고 있는 스플리터와 커터가 아주 기가 막히게 떨어지고 있어요. 시미즈 선수는 오늘 타선의 지원만 있다면 첫 승을 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4회 초가 끝나고, 이젠 타자들이 힘을 낼 차례다.

    이삭이 타석에 나서고, 대기타석에서 연습투구를 바라봤다.

    브랜든 멕케이, 마이너 시절에는 투수/타자 양쪽 부분에서 뛰었다고 하는데, 생각 외로 타자 부분에서 성장하지 못했는지 메이저에선 투수로만 뛰고 있다.

    주 무기는 커터, 그리고 96마일까지 나오는 패스트볼.

    커터의 수준이 엄청나진 않지만 두 종류로 나눠 던진다.

    ‘덕분에 나도 첫 타석은 내야 플라이를 먹었지.’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공략하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

    “스트라이크!”

    [맥케이 선수, 초구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 존의 가장 먼 곳에 꽂아 넣었습니다.]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 공략을 아주 잘 하는 선수입니다. 디트로이트처럼 우타자 비율이 높은 팀에게는 골치 아픈 투수에요, 특히 이삭 페레데스 선수처럼 단신에다가 스팬이 작은 선수들의 경우는 좀 더 힘들게 다가올 겁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폭풍삼진. 공격 팀에겐 허탈함을, 수비하는 팀에겐 즐거움을 주는 마성의 단어.

    배트를 들고 덕아웃을 향해 걸어가는 이삭에게 한마디 해 줬다.

    “시원했어.”

    “꺼져.”

    이삭의 응원을 받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슬쩍 포수를 보니 이번 시리즈에 당한 게 많은 탓인지 내 쪽으론 시선도 주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나 알고 보면 착한 사람인데.’

    3과 1/3이닝 동안 퍼펙트를 하고 있는 투수라면, 날 상대로 어떤 공을 던질까?

    자신 있어 하는 커터? 오늘 경기 잘 던지지 않았던 체인지업이나 커브? 아니면 이삭에게 잘 먹히던 패스트볼?

    “타임.”

    몇 번 사인이 어긋나자 포수가 사인을 부르며 마운드로 향한다.

    ‘뻔하지, 포수는 조심하자. 투수는 붙어 보자. 첫 타석 때 내야 플라이로 잡아냈으니 자신감도 가득 찼을 거고.’

    두 선수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심판이 나섰다.

    “그만하게, 언제까지 이야기만 하고 있을 거야?”

    오우, 좀 까칠한 구심인데?

    결국 마지막까지 합의가 안 됐는지, 투수가 신경질적으로 마운드를 고른다.

    ‘정해졌네.’

    몸쪽이 됐건, 바깥쪽이 됐건, 패스트볼일 확률이 높다.

    결국 볼 배합의 끝은 투수가 던지고 싶은 구종이니까.

    ‘패스트볼 타이밍에 휘둘러 보고, 아니면 말지 뭐.’

    투수가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곧이어 들어 올린 오른 다리를 강하게 땅으로 내딛었다.

    몸통 뒤에 숨겨진 팔이 빠르게 앞으로 넘어오면서 하얀 점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빠아악!

    그리고, 나를 향해 다가온 속도보다 더 빠르게 담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김사범 선수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갑니다! 시즌 18호!]

    [김사범 선수의 타격 폼 변화에 대해서는 칼럼에서도, 중계를 하면서도 많이 말씀드린 부분이지만. 정말 잘 바꿨습니다. 예전 김사범 선수의 경우는 꾸준히 홈런을 생산해 냈지만 몰아치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폼을 바꾼 이후로 이젠 몰아치는 능력까지 가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반기 홈런 기록도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1위 기록이 배리 본즈의 39개, 2위 기록이 37개입니다.]

    [간단히 계산해 보면 38개를 칠 수 있는 페이스네요.]

    홈런을 치고, 1루를 향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수리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홈런을 친 양 즐거워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본 나도 꽤 즐거웠다.

    * * *

    김사범이 홈런을 친 순간, 코메리카 파크의 1루 측 홈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우와아아아!

    “LET'S GET IT BOOM!”

    “BOOM!”

    “BOOM!”

    관중들의 거센 환호와 디트로이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붐 콜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수리의 옆자리에 앉은 개인 경호원, 피터는 피가 마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가씨! 갑자기 그렇게 움직이시면 위험합니다!”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갑자기 그렇게! 후…… 좀 진정하세요!”

    “사범 씨가 홈런을 쳤어요! 봤죠! 제가 칠 거라고 했잖아요!”

    그의 고용주인 필이 보면 뒷목을 두 번 잡을 만한 상황에 피터는 그저 이 소란이 빠르게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토록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다.

    텍사스 주, 필의 집.

    [하하하, 김사범 선수의 저지를 입고 있는 미모의 팬이 아주 활발하게 응원을 펼치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분은 보호자인가요? 흥분한 팬을 말리려 해 보지만 전혀 듣질 않는군요.]

    TV에서 흘러나오는 해설에 애꿎은 리모컨이 고통 받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