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72화 (72/175)

72화 김사범, 그리고 페이스의 페이스(1)

[크리스 아처, 5년(4+1, 구단 옵션) 100M에 디트로이트행.

- 볼티모어의 크리스 아처(33)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계약을 맺었다. 크리스 아처는 2012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9시즌 동안 80승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 탬파베이에서 볼티모어로 트레이드 된 뒤, 저조한 성적을 거둔 크리스 아처는 2019년에 다시 부활하며 2년 동안 400+ 이닝을 소화하며 자신의 건재를 알렸다.

한편,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불운한 투수로 손에 꼽히는 크리스 아처의…….]

크리스 아처라. 구단이 괜찮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임팩트는 크지 않지만 이닝을 꾸준히 먹어 주는 타입의 투수다. 투피치의 한계 때문에 이닝이 지날수록 피안타율과 피홈런율이 증가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분명히 괜찮은 선택이다.

오히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팬덤이 작은 탬파베이와 볼티모어에서 뛰어서 저평가된 느낌의 투수니까.

저번 시즌에 나도 상대를 해 봤지만, 패스트볼-슬라이더로 대표되는 구종은 쉽게 볼 만한 공이 아니었다. 물론 두 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뽑아냈었지만.

‘스트라스버그도 FA였는데…… 이왕이면…….’

물론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정말 조금 아쉬웠다.

* * *

“헤이, 붐! 오늘도 쫙쫙 뻗어 나가네?”

“아, 크리스. 불펜으로 가는 길이에요?”

“뭐, 그렇지. 빨리 몸을 끌어 올려야 개막전에도 잘 던지지 않겠어?”

“하하하, 맞아요.”

아처가 팀에 합류하고 일주일. 그는 마치 동네 형 같은 모습으로 순식간에 팀에 파고들었다. 특히 폴리는…….

“아~~처~~~!”

불펜에서 아처를 발견하고 저러는 거다.

이건 뭐. 거의 아이돌 팬심 수준이네.

아무튼, 그는 투수진의 여러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모습으로 팀 내 융화에 문제없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고, 불펜에서의 모습, 즉 실력적인 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괜히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아니었네. 팀이 좋은 결정을 한 거 같아.’

그나저나, 론이 걱정인데. 선발투수 가뭄으로 거의 반은 억지로 신인들을 기용한 게 전 시즌인데, 이젠 누굴 내칠지 고민이겠어.

* * *

스프링 캠프가 한창인 플로리다. 디트로이트의 코칭스태프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1 - 크리스 아처

2 - 마이클 풀머

3 - 케이시 마이즈

4 - 맷 보이드

5 - 시미즈 루이(뷰 버로우즈)

.

.

.

1. 이삭 페레데스(2B)

2. 사범 김(SS)

3. 미구엘 카브레라(DH)

4. 크리스틴 스튜어트(1B)

5. 닉 카스테야노스(RF)

6. 페이스 달턴(C)

.

.

.]

팀의 뎁스 차트와 예상 라인업이 쓰여 있는 종이를 한참 바라보던 론이 투수 코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얼추 구색은 갖춰진 것 같군.”

“맞습니다. 5선발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니 캠프에서 지켜본 뒤 결정해도 될 거 같습니다. 둘 중 하나는 롱릴리프로 쓰든가 마이너 옵션을 사용해서 내려보내도 되니까요.”

“1년 전까지만 해도 물음표가 가득했던 라인업인데. 이제는 제법 위협적이야.”

“그러네요. 작년에는 제일 안정적인 선택이었던 미기가 라인업에서 제일 큰 물음표가 됐어요.”

코치의 말을 듣던 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미기는 미기니까 잘해 줄 걸세. 건강만 하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해 줄 수 있는 타자지.”

천천히 다른 자료를 읽던 론이 타격 코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붐은 어떤가? 타격 폼을 살짝 바꿨다면서?”

“처음엔 조금 헤매더니 이제는 완전히 적응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전보단 공이 잘 뜨더군요.”

“하하, 50홈런을 달성한 타격 폼을 바꾸다니.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인데 말이야.”

“타구 속도나 실려 있는 힘이 충분했는데도 담장에 맞고 떨어진 공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큰 틀은 변하지 않아서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타격 코치의 말에 결국 웃음을 터트린 론.

“으하하하, 데뷔 시즌에 50홈런을 친 2년 차에게 드라마틱한 변화라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군 그래. 으하하하.”

서로를 보며 웃던 코칭스태프들이 좀 진정할 즈음, 배터리 코치가 론에게 말을 걸었다.

“포수는 페이스로 가실 겁니까?”

“음?”

“타격은 분명 맥켄에 비해 압도적이긴 합니다.”

“그렇지. 프론트가 아주 일을 잘해 줬어.”

“그런데 문제는…….”

배터리 코치가 말을 하다 말고 목이 타는지 앞에 있는 음료수를 마셨다.

“문제는?”

“수비입니다.”

“수비가 안 좋나?”

“기본기도 훌륭하고, 프레이밍은 거의 리그에서도 손꼽힐 만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투수를 다루는 데 조금…….”

“너무 일방적이다?”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론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일단 별다른 갈등이 없으니 끌고 가 보지. 선택권은 아직 우리에게 있잖나. 자네가 잘 살펴보고 있게.”

그렇게, 어느 선수들의 미래가 달린 회의가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 * *

따아악!

언제나처럼, 하지만 오랜만에 공이 담장 밖으로 넘어갔다.

시범경기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이제야 내가 원하던 타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좀 붐 같은데?”

“아깝네. 좀 더 넘어갔으면 장외로 나가는 건데.”

“내가 볼 땐 상대 투수들에게 붐은 너무 가혹해. 붐을 위한 특별 규칙을 만들자고 건의해야겠어.”

덕아웃에 들어가니 동료들이 한마디씩 하며 날 반겨 줬다.

“보통이죠. 너무 늦은 거 같기도 하고.”

“장외홈런이요? 쳐 볼까요?”

“좋네. 담장 넘기면 1점, 관중석 상단은 2점, 장외는 3점. 네가 생각한 게 이거 맞지?”

하나하나 모두 대꾸해 준 뒤, 자리에 앉아 음료수 용기의 뚜껑을 땄다.

“붐! 휴식이야. 괜찮지?”

“네.”

오늘은 여기까지. 이번 경기, 3타석에서 2홈런을 쳐내면서 새 타격 폼에 대한 감을 잡은 것 같다.

내 경기를 보러 먼 길을 온 기자들에게도 충분히 면을 세웠고.

경기 전.

“사범 선수! 타격 폼 바꿨다고 그러던데, 괜찮아요?”

“아직은 잘 몰라요. 그래도 몸에 좀 익으면 잘 넘어갈걸요?”

“무슨 비결 같은 걸 추가한 거예요?”

비결? 비결은 힘이지 뭐. 괜히 장난을 치고 싶은 날이라 농담조로 대답해 줬다.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안 알려 줄래요. 영업 비밀입니다.”

“아, 왜요? 알려 주세요. 나 그래도 계속 사범 선수 기사 긍정적으로 내고 있는데!”

“하하하, 알죠. 김 기자님 기사는 매일 봐요. 경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내 대꾸에 기자의 얼굴이 살짝 불만스럽게 변했다.

“대신 다른 거 알려 드릴게요, 궁금한 거 없어요?”

“궁금한 거? 아, 이번 시즌에 팀에서 도루 시도 제한 걸었다는데, 맞아요?”

“음, 하필 또 그 질문을 하시네. 약속했으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그린라이트를 뺏기긴 했어요. 아무래도 도루라는 게 부상 위험이 크다 보니…….”

“아하, 그렇긴 하죠.”

“뭐, 그래도 시도 자체는 많이 안 줄어들 거 같아요. 적극적으로 사인을 내주기로 감독님과 약속했거든요.”

기동력이 있는데 쓰지 않는 건 팀에게도 손해다 보니 론도 내 의견에 찬성했다.

힘이 있는데 쓰지 못하는 건 아쉬우니까.

* * *

그렇게 순조롭게 스프링 캠프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을 때, 내가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난 지금 같은 피칭으로 지난 시즌에도 잘 던졌어!”

“책임감 없이 운에 맡긴 피칭이었지.”

예상과는 조금 다른 전개로.

케이시와 페이스가 붙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판이 벌어진 건 버로우즈와 페이스였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전부 다 봤다. 작년 경기.”

“뭐?”

“작년 디트로이트의 경기, 다 봤다고.”

버로우즈가 당황한 거 것 같다. 설마 다 봤을지는 몰랐나 보군.

“다 봤는데, 거기서 본 너의 피칭은 수비를 믿고 던진 게 아닌 ‘수비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던진 안일한 피칭이었다.”

어…… 버로우즈도, 지켜보던 나도 딱히 할 말이 없는 말이었다.

“물론 결과는 좋았지. 디트로이트의 수비는 꽤 좋은 편이니까. 근데 올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거 같나? 그렇게 또다시 운에 맡기는 투구를 하려고?”

버로우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음. 슬슬 끼어들어야 하나?’

옳은 말을 하는 건 좋지만, 저렇게 투수에게 직접적으로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 결국 공을 던지는 건 투수니까.

버로우즈도 ‘그렇구나’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는 말인데, 지금 자신을 두고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보니 발끈한 것 같다.

‘저러다 코칭스태프 눈 밖에 나면 곧장 마이너로 처박힐 텐데…….’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 날 잡았다.

“크리스?”

“너보다 내가 나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둘 사이에 자연스럽게 파고드는 크리스.

“그만하지. 불만이 있다면 나중에 둘이 따로 푸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안 그래?”

이번 시즌에 합류한 크리스 아처지만, 이름에 담긴 무게가 무게이니 만큼 둘 다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일단, 일단 상황은 종료됐다.

‘도대체 누가 저런 성격을 컨트롤한 거지? 내가 돌아오기 전엔 아처도 없었는데. 흠.’

메이저리거로서 실적이 쌓인 후에는 뭐, 그럴 수 있다고 해도. 팀에 합류한 첫해부터 이런 자세였다면…… 메이저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다. 여러 의미로.

하지만 분명 페이스는 2021시즌부터 팀의 주전 포수 마스크를 썼었다.

그날 저녁.

언제나와 같이 모인 우리는 근처의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버로우즈는 괜찮으려나?”

내 물음에 폴리가 대답했다.

“괜찮겠지. 보니까 아처가 데려가더라고.”

“안 그래도 요즘 표정이 안 좋던데.”

“뭐, 자기가 헤쳐 나가야지. 여긴 그런 곳이니까.”

일견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는 폴리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음식에 집중했다.

“괜찮을 거야.”

뜬금없는 타이밍에 말을 하는 케이시.

“뭐가?”

“버로우즈. 아마 괜찮을 거라고.”

얜 갑자기 뭔 소리야.

“좀 오래가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직접 공을 받는 포수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삭이 했다.

“페이스가 생각 없이 말을 하는 것 같아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더라고. 알아서 할 거야.”

뭐지? 갑자기 훈훈해진 분위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카롭게 반응하던 녀석인데.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설명하기에 복잡해.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이게 뭔 폴리식 대화야?

“그래, 복잡한 사정 들어 봤자 뭐하겠어. 나만 잘하면 되는 건데. 아, 여기는 몇 번 먹었더니 질리네, 다음엔 다른 데 가 보자.”

폴리식 대화에 폴리가 대답했다. 폴리답게.

* * *

그렇게 저녁식사가 끝난 뒤, 숙소에서 지내는 나머지 3명을 배웅하고 나서야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 시계!’

짐이 항상 차고 다니라고 했던 시계를 라커룸에 두고 왔다. 소형차 한대 값인데.

‘찾으러 가야 하나?’

사실, 여기가 디트로이트였다면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어차피 라커룸을 정리하는 클러비들과 꽤 친분이 있기도 하고, 그중 누가 훔쳐갔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단이 있으니까.

하지만 여긴 플로리다다.

결국 고민 끝에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만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훈련장 야간 관리인은 내 말에 흔쾌히 대답했다.

“어차피 안에 다른 선수분도 있는데요 뭐, 나중에 나가실 때 저에게 말만 해 주십쇼.”

다른 선수? 이 시간에?

꽤나 늦은 시간일 텐데. 무심코 왼손을 들어 시계를 보려고 하다 이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22시 43분.’

누구지?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게?

흐릿한 방범등에 의지해서 라커룸으로 향했다.

다행히 내 라커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시계. 다행이다.

그렇게 시계를 다시 왼손에 차며 훈련장을 나가려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가 남아 있는 거지? 스튜어트인가?’

그라운드로 향하는 복도를 걸어가다 보니 임시로 전력분석실로 쓰는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타다다닥, 타닥.

분석실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는 타자 소리.

조용히 다가가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페이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

그 곳엔 전력분석 자료가 담긴 컴퓨터를 보며 자신의 노트북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페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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