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70화 (70/175)
  • 70화 김사범, 시즌을 준비하려면?(1)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즈의 구단 사무실.

    커다란 덩치의 백인과 어딘지 어리숙해 보이는 동양인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

    “시미즈 선수, 달턴 선수. 진짜 포스팅을 신청하실 겁니까?”

    “예…….”

    시미즈라 불린 동양인 선수는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옆에 있던 달턴이라 불린 외국인이 유창한 일본어로 말했다.

    “저희 둘 다 마음을 정했습니다. 에이전트를 통해 말할 수도 있었지만 루이가 지금까지 뛴 구단에 직접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

    “구단 측에도 큰 손해는 아닐 겁니다. 저희야 팀이 신경 쓰는 선수들도 아니고, 지금 포스팅을 신청하면 포스팅 피 외에도 추가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예상하지 못한 일인 듯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담당자를 보고 시미즈가 입을 열었다.

    “부탁드릴게요…….”

    “후, 일단 사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어차피 가부는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잠시 후.

    구단에서 나온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다.

    “난…… 아직도 이게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어.”

    “너는 일본에서 놀 그릇이 아냐. 언제나 그랬듯 널 믿지 못하면 날 믿어.”

    “그건 그런데…… 지금 가면 돈도 얼마 못 받는다고 하고…….”

    “돈은 중요하지 않다며.”

    시미즈의 어깨가 움추려졌다.

    “우리, 계약은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어. 둘 다. 올림픽에서 괜히 그렇게 열심히 한 게 아니니까.”

    “응. 너만 믿을게, 페이스.”

    * * *

    복잡하고 힘들었던 방송 스케줄이 끝나고, 나는 비로소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지친 몸을 위해 게으름뱅이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괴로운 시간을 보낸 뒤, 겨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아, 행복해.

    “안녕하세요, 김사범 선수.”

    “안녕하세요.”

    비록 이젠 얼굴이 꽤 알려져 예전처럼 밖에서 운동을 한다든지, 넓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진 못하지만, 시설이 괜찮은 개인 짐을 소개받아서 천천히 몸을 만들어 갔다.

    “좋아요! 한 개 더! 더! 마지막…… 어엌!”

    쿠웅!

    뭐, 트레이너는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렇게 한바탕 운동을 한 뒤, 마무리를 위해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쏟으며 멍하니 TV를 보고 있다 보니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오타니 쇼헤이 이후 잠잠하던 일본의 포스팅 시장이 올해 다시 열릴 예정입니다.

    지바 롯데 소속의 두 선수가 동시에 포스팅을 신청했는데요, 올 시즌 5선발로 무난한 활약을 펼쳤던 시미즈 루이 선수와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출전했던 페이스 달턴 선수입니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이번 올림픽에서 의외의 활약으로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다는 건데요, 시미즈 루이 선수의 경우, 오타니 선수의 참가 불발로 인한 대체선수로 발탁되어 예상외의 활약을…….]

    드디어 왔다. 그 녀석들.

    돌아오기 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아마 페이스 달턴이 시미즈 루이를 설득해 나온 거겠지.

    저 시미즈 루이란 투수는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제 4년 차에 접어드는 선수일거다. 포스팅 시장에서 외면받던 둘을 디트로이트의 스카우트 팀이 주시했고, 두 선수는 이듬해부터 타이거즈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디트로이트는 최고의 가성비로 둘을 쏠쏠하게 써먹었지.’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92마일 정도인 시미즈 루이는 대신 6개에 달하는 구종을 존 어디든 꽂아 넣을 수 있는 엄청난 제구력을 보여 주면서 단숨에 데뷔 첫해 10승을 거뒀다.

    그리고 페이스 달턴, 미국인 할아버지와 일본인 할머니를 둔 이 녀석은 좀 특이한 녀석인데,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페이스는 미국에서와 같이 야구부에 들어갔고, 단숨에 팀을 고시엔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둘은 같은 고등학교였고.’

    졸업 후, 마이너에 도전하지 않고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에 참가해서 지명받는 데 성공, 바로 1군에 데뷔해서 3년 동안 쏠쏠한 활약을 보여 줬던 포수다.

    ‘메이저리그에서 갑자기 폭발해서 손에 꼽히는 공격형 포수가 됐지, 아마?’

    이런 두 선수를 포스팅 피를 제외하고 둘이 합쳐 1년에 백만 달러 남짓한 돈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기회다. 그것도 6년 동안.

    머리가 좋은 공격형 포수, 뭐 스튜어트가 말했듯 성격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그거야 차차 맞춰 나가면 되고.

    20-80 스케일 기준으로, 각 구종의 커맨드만 따지면 모두 60점 이상을 받을 선발 투수. 물론 구위는 좀 떨어지지만.

    ‘지금 구단에서 모자란 부분만 딱 긁어 주는 패키진데. 군침이 돈다, 돌아.’

    디트로이트의 단장인 알이 부디 이들의 가치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 * *

    디트로이트. 알의 사무실.

    “도대체가 트레이드를 진행할 수가 없어! 다들 뒷구멍에 황새라도 박혔나? 트레이드 불가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질 않으니!”

    알의 입에서 커다란 사무실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괴성이 뿜어져 나왔다.

    “진정하시죠. 아직 날이 추워지기도 전이에요. 다들 아직 그냥 찔러 보는 거겠죠.”

    “29개의 구단이 모두 날 찌르고 있어. 이러다간 그놈들 때문에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하하, 그럼 그 자리는 제가 앉도록 하죠.”

    “지금이라도 내줄 수 있어. 생각 있나?”

    “농담이에요. 돈보다 목숨이 더 소중하거든요.”

    “후, 진정해야지. 지금 당장 급한 게 어디지?”

    “포수, 선발투수, 좌완 셋업, 1루.”

    스카우트 총괄의 말에 알이 머리를 부여잡는다.

    “팀의 절반이군. 후.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건 뭐지?”

    “붐의 합류로 팀의 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졌어요. 내년엔 정말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일단 제일 급한 건 포수입니다.”

    디트로이트의 포수인 제임스 맥켄은 그저 평범한 포수에 불과했다.

    수비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공격 면에선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포수.

    사실 그럭저럭이라 평한 수비조차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한 팀의 주전 포수라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선수다.

    “좋은 포수는 씨가 말랐어. 팜도 그렇고, 애초에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지도 않지. 뭐, 붐을 내놓는다면 100명도 영입할 자신이 있지만.”

    “일단 주전급이 아니라면 백업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포수를 구해야죠. 이번에 일본에서 포스팅을 신청한 포수가 한 명 있습니다.”

    스카우트 총괄의 말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응수하는 알.

    “발음도 알아듣기 힘든 포수를 플레이트에 앉히라고? 하하, 좋은 시도였어. 재미있었거든.”

    “좀 특이하긴 한데, 일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지만 미국인입니다. 고등학교 때 넘어갔다더군요. 이번 올림픽에서 주전 포수로 활약을 했구요.”

    거의 눕듯이 의자에 앉아 있던 알의 상체가 약간 세워졌다.

    “그 홈런 때린 녀석? 흠.”

    “어차피 시장에서 그렇게 관심 받을 선수는 아니에요. FA를 달지도 않고 나온 선수라 마이너 계약만 안겨 주면 되고요. 이 정도면 투자해 볼 만하지 않아요?”

    “흠……. 좋아. 일단 눈치를 좀 봐보자고.”

    “맥시멈?”

    “9, 아니 700만으로 하지. 그 정도면 감수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차라리 붐이 장기계약을 할 생각이 있다면 나을 텐데 말이야. 페이롤은 아슬아슬하겠지만 적어도 이런 고민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하하하, 직무 태도가 굉장히 태만하시군요. 이해합니다.”

    “농담이네. 나중에 구단주에게 말하지는 마.”

    “당연하죠. 단장 자리에 욕심이 생길 때 말하겠습니다.”

    “역시 자넨 입이 무거운 친구야.”

    스카우터 총괄이 나간 사무실, 알은 멍하니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 * *

    시즌이 그랬듯, 비시즌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12월이 시작한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지나 해가 바뀌고, 달력을 새로 달았다.

    [스윙 연습은 시작했죠?]

    “그렇죠. 그동안 참느라 혼났어요.”

    [하하, 사범이라면 그랬겠죠. 시즌이 끝나고 내게 한 말, 아직도 변함없어요?]

    “네. 지금 폼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약간의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타격은 수학이 아니라 정확하게 재단할 순 없다는 건 알고 있죠? 이게 안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난 MVP를 망친 인스트럭터가 되는 거고.]

    “내가 알던 제시가 아닌데? 겁나요?”

    [그럴 리가요. 해봅시다. 사범의 말을 듣고 한 달 가까이 고민했어요. 일단 간략한 설명을 포함한 동영상을 보내 주긴 할건데, 절대 혼자 하지 마요. 절대.]

    “음…… 장담은 못 해요.”

    [그럼 참으시던가.]

    “1주일 뒤에 뉴욕으로 날아가요. 그때 보죠.”

    [하하, 디트로이트의 체력담당 트레이너들이 날 죽일지도 모르겠네요.]

    “비밀로 할게요. 하하.”

    일신우일신. 지금 내 성적에 만족하면 안 된다.

    아무도 깰 수 없는 기록을 세우더라도, 다음 시즌엔 더 발전해서 스스로 그 기록을 깨부술 거다.

    * * *

    1월 중순, 뉴욕.

    [지바 롯데의 시미즈 루이(23), 페이스 달턴(23). 디트로이트에 합류.

    - 포스팅 시장에서 외면 받던 두 일본 프로야구 출신 선수가 디트로이트와의 계약에 합의했다.

    지바 롯데 마린즈 구단은 포스팅 피 1300만 달러에 두 선수를 보내는데 합의하였으며, 두 선수의 계약 규모가 2500만 달러가 넘지 않음에 따라 20%의 수수료를 받게 됐다.

    시미즈 루이는 올림픽에서 뛰어난…….]

    “결국 왔네. 노예 1호, 2호가.”

    내 노예 말고, 구단의 노예를 말하는 거다. 음…… 어감이 좀 그러니까 가성비 선수라고 해야 하나?

    “누가 와요?”

    바쁘다고 그러더니 짐이 직접 공항으로 픽업을 위해 왔다.

    “아, 있어요. 그냥 나만 아는 이야기.”

    “뭔가 음침하게 들렸는데……. 그건 됐고, 컨디션은 어때요?”

    “아주 좋아요. 스윙 연습을 최소한으로 했더니 좀 찝찝한 걸 빼고는.”

    “그것도 병이에요. 내가 볼 땐 사범은 휴식과 운동의 조화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워크 앤 라이프. 알죠?”

    “전…… 야구가 곧 삶이에요…….”

    “으엑.”

    농담 삼아 던진 말에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반응하는 짐.

    내가 진지하게 말한 거였으면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

    “사범.”

    “네?”

    “미안해요.”

    “뭐가요?”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근데 표정을 보니까 아니네요.”

    어, 아닌데…….

    그렇게 차를 타고 도착한, 이제는 익숙해진 제시의 스쿨.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제시.”

    “하하하, 사범은 그새 더 커진 거 같은데요? 들어가시죠.”

    나와 짐, 제시는 작년과 같은 분석실에 들어섰다.

    “설마 진짜 안 보낼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이젠 사범의 성격을 대충 아니까요. 긴 말 없이, 일단 보시죠.”

    .

    .

    .

    “대략적인 느낌은 알 거 같죠?”

    “결국 스윙 메커니즘은 동일하게 가져가는 거네요?”

    “맞아요. 변화라고는 준비 자세, 즉 로드 자세에서 배트 위치의 변화밖엔 없죠.”

    “흠…….”

    “작아 보이지만 뒤에 나오는 팔로스루의 변화와 합쳐지면, 아마 놀랄 만큼 변할 거예요. 약속하죠.”

    그렇게 난 제시와 함께 다음 시즌의 시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닉, 오랜만이에요. 살이 좀 쪘는데요?”

    “오프시즌이잖아. 이번에 좀 증량을 할 예정이기도 하고.”

    .

    .

    .

    “스튜어트, 이제야 온 거예요?”

    “너와 닉이 빠른 거야. 쉴 땐 확 쉬어야지.”

    중간중간 합류한 팀 동료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운동하다 보니, 어느새 스프링캠프 시즌이 다가왔다.

    “먼저 갈게요.”

    “도대체 왜 벌써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것도 개인 루틴이니까. 가서 론에게 안부 전해 줘.”

    “다음 주면 볼 텐데요, 뭐.”

    “그렇긴 하지. 다음 주에 보자고.”

    “네.”

    그리고 나는 야수의 소집 날짜가 아닌 투/포수의 소집날짜에 팀에 합류했다.

    원래도 일찍 합류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엔 조금 더 빨리 합류한 이유는…….

    “네 투구를 분석해 봤는데, 스플리터의 비중을 줄이고 슬라이더와 커브의 비중을 늘리는 게 나을 거 같다. 구종 자체의 위력은 뛰어나지만 경기 후반에 악력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

    선빵 날아갑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여긴 외래종의 난입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었다.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겠지만…….

    싸움 구경은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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