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56화 (56/175)
  • 56화 김사범, 2020시즌(홈런 더비)

    홈런 더비, 전 세계에서 모인 야구선수들 중에서도 일 년에 단 8명만 참가할 수 있는 게임이다.

    요즘에는 더비 후 후유증 때문에 양대 리그의 스타급 거포 선수들이 참가하진 않지만, 메이저에 승격된 지 얼마 안 되는 선수들과 홈런 생산성에 자신 있는 선수들은 자신이 가진 파워툴을 많은 팬들 앞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빅리그’를 대표할 거포 타자들의 시험무대. 예전 스탠튼이 그랬으며, 하퍼가 그랬고, 저지 또한 거쳐 갔다. 그리고 이젠 내 차례다.

    “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네? 아, 트라웃. 그냥 오늘 어떻게 칠까 뭐 그런 생각 하고 있었죠.”

    “아, 너는 더비에 나가지? 하하, 나도 언젠가 한번은 나가야 하는데. 나하고는 영 안 맞는 이벤트라.”

    홈런 더비가 잘 안 맞는다는 사람이 30개씩 홈런을 뻥뻥 치나? 다 핑계다. 홈런 더비 이후에 성적 급락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핑계.

    시즌을 준비하며, 그리고 시즌을 진행하며 지금의 스윙을 몇 번이나 했을까? 그렇게 몸에 박힐 때까지 한 스윙이 고작 몇 십 번의 스윙으로 흐트러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붐, 가지.”

    스탠튼의 말에 환호 소리가 가득한 그라운드로 향한다.

    올스타전의 전야제, 홈런 더비.

    나는 오늘 다저 스타디움의 하늘을 내 홈런 타구로 채울 생각이다.

    [안녕하십니까!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중계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홈런 더비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그동안 불참을 선언했던 몇몇 선수들이 출전하면서 경쟁이 아주 치열할거라고 예상됩니다.]

    [하하, 시청자분들도 많이 궁금하실 테니 먼저 출전 선수 명단부터 불러 드리겠습니다. 먼저 내셔널리그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브라이스 하퍼, LA 다저스의 맥스 먼시, 콜로라도 로키스의 놀란 아레나도, 밀워키 브루어스의 크리스티안 옐리치 이상 네 선수가 출전합니다.

    다음으로 아메리칸리그입니다. 뉴욕 양키즈의 지안카를로 스탠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크리스 데이비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호세 라미레즈, 마지막으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김사범 선수입니다.]

    [아, 양 팀 선수들이 아주 쟁쟁한 타자들이에요. 정말 홈런 좀 친다 하는 타자들이 다 모여 있거든요?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김사범 선수도 대단합니다.]

    [전반기에 이미 30-30을 올린 선수니까요. 현지 반응도 아주 핫한 선수 아닙니까?]

    [30-30을 넘어 40-40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선수죠. 메이저리그에서도 4명밖에 없는 기록이에요. 메이저에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제 홈런 한 개, 도루 한 개에도 미국 언론이 움직이는 선수가 됐습니다.]

    따악!

    “짐, 준비됐어요?”

    “안 떨어요 관중에는 이 정도.”

    “어순 틀렸어요. 그냥 영어로 해요.”

    긴장해서 입술이 달달 떨리는데 뻥치긴.

    “후, 솔직히 떨리네요. 정말 존 안에만 넣어 주면 돼요?”

    “그럼요.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거죠.”

    “어깨가 덜 풀린 거 같은데. 잠깐 불펜에 좀…….”

    따아악!

    이미 유니폼이 흠뻑 젖을 정도로 몸을 풀었는데 어딜.

    “동작 그만, 곧 제 차례인데 어딜 가요?”

    [아, 스탠튼 선수! 1라운드부터 불을 뿜고 있습니다. 21개의 홈런으로 이미 홈런 더비 역대 최고기록을 갱신하고 있죠?]

    [종전 기록은 프린스 필더 선수의 81개인데요, 아. 타임아웃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4개 차이로 놀란 아레나도 선수에게 승리합니다. 8강에서 이미 82개로 기록을 갱신했고, 이제 역사를 쓰는 일만 남았군요.]

    [우리 김사범 선수가 깰 때까지 말씀하시는 거죠?]

    [물론이죠. 하하. 이제 다음 경기는 내셔널리그의 브라이스 하퍼 선수와 아메리칸리그의 김사범 선수입니다.]

    [김사범 선수가 먼저 타석에 들어서는군요. 배팅볼 투수로 자신의 에이전트를 지목했죠?]

    [경기 전 인터뷰에서 복수를 위해 지명했다고 밝혔죠. 예전의, 큽, 섹시스타 김사범 사건이 결정타였다고 해요.]

    [김사범 선수의 복수를 위한 타석, 기대가 됩니다.]

    “흡!”

    짐의 기합 소리와 동시에 내게 주어진 5분의 시간이 시작됐다.

    잔뜩 긴장한 짐의 공이 나름 정확하게 가운데를 향해 날아온다.

    따아악!

    이 정도만 던져 주면 될 거 같은데. 100개 이상 던져 본 경험이 있으려나?

    [김사범 선수, 추가시간 30초 남았습니다!]

    [내셔널리그 덕아웃의 하퍼 선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본인도 느끼는 거 같죠?]

    따악!

    [벌써 31개째 홈런입니다. 방향도 좌중우 가리지 않고 때리고 있어요. 비거리 보너스도 홈런 5개 만에 얻었습니다. 아, 이거 2라운드 때도 이 정도 모습을 보여 준다면 스탠튼 선수의 단일 더비 최다홈런인 61개도 넉넉하게 넘기겠어요.]

    띠이이!

    우와아아아아!

    마지막 타구도 어김없이 담장을 넘겼다. 33개. 짐이 중간부터 지치지만 않았어도 더 넘길 수 있었을 텐데.

    지친 표정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온 짐에게 말을 걸었다.

    “할 만해요?”

    “후욱, 훅, 후우”

    “크큭, 다음 라운드엔 타임아웃 부를게요.”

    “제발.”

    아, 개운해.

    [홈런 더비의 2라운드, 맞춘 것처럼 각 리그당 2명씩 남았네요.]

    [내셔널리그의 맥스 먼시, 크리스티안 옐리치 선수와 아메리칸리그의 지안카를로 스탠튼, 김사범 선수가 남았습니다.]

    1라운드가 종료되고 잠시 쉬는 시간, 2라운드 상대인 크리스티안 옐리치가 날 찾아왔다.

    “루키, 아니 붐이라 불러야 하나? 만나서 반갑다.”

    “반가워요. 편한 대로 부르면 됩니다.”

    “1라운드에서 너무 달린 거 아냐?”

    “하하, 전 아직도 제 힘의 반도 안 썼어요.”

    진짜로.

    “하하, 그렇다고 치기엔 너무 달린 거 같은데? 결승엔 내가 올라갈 테니 걱정 마, 푹 쉴 수 있을 거야.”

    “음, 뭐, 전 바쁜 걸 좋아해서요.”

    그래도 많은 홈런을 쳐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결승에서 바쁘지 않을 테니까.

    [아, 크리스티안 옐리치 선수 보너스 타임에 홈런을 추가합니다.]

    [이 홈런으로 2라운드에서 19개의 홈런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충분히 훌륭한 기록이지만…….]

    [김사범 선수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죠. 김사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잘가요. 옐리치. 즐거웠어.

    [이렇게 되면 결승전은 집안싸움이 되겠군요! 아메리칸리그의 스탠튼 선수와 김사범 선수가 3라운드에 진출합니다!]

    2라운드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짐을 놀리는 것도 지겨워진 나는 덕아웃 근처 좌석의 팬들에게 향했다. 아까부터 귀가 따갑게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그들에게로.

    “붐! 오늘 홈런 몇 개나 칠 거예요?”

    공에 사인을 해 주는 내게 꼬마아이가 물었다.

    “지금까지 내가 몇 개 쳤지?”

    “53개요!”

    “기록이 몇 갠데?”

    “아까 백스크린에 나왔어요! 스탠튼의 61개!”

    그럼 스탠튼의 통산 기록이 93개가 되는 건가?

    “음. 저기 저 아저씨 보이지?”

    “붐의 배팅볼 투수요?”

    “그래, 저 아저씨가 얼마나 빨리 던져 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야. 나는 계속 홈런을 칠 거거든.”

    잠시 뒤.

    [김사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따아악!

    [첫 번째 공부터 큽니다! 이 공이 다저 스타디움의 정중앙을 가릅니다! 경기장을 넘어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아, 초구부터 어마어마한 홈런이네요. 홈런 더비 최장거리 홈런 기록은 마크 맥과이어 선수의 538피트거든요? 미터법으로는 약 165미터입니다. 이번 타구, 기대해 볼 만하겠어요.]

    [방금 데이터가 들어왔습니다. 비거리 590피트! 약 180미터의 홈런입니다!]

    [김사범 선수의 타구 특성이 아주 잘 드러나는 타구였어요. 타구 자체가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다 보니 힘이 실리면 끝도 없이 뻗어 나가거든요? 대단하네요. 정말 대단해요.]

    짐도 감을 잡았는지, 2라운드 때부터 제법 괜찮은 공이 들어온다.

    [보너스 타임까지 5분 30초의 시간 중 4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2분이 지났을 때 타임을 부른 김사범 선수, 다시 타임을 부릅니다.]

    [김사범 선수는 크게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거든요? 상황을 봐선 배팅볼을 던져 주는 김사범 선수의 에이전트에게 휴식을 주려고 타임을 부른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 28개의 홈런을 기록한 김사범 선수, 남은 1분 30초 동안 몇 개를 더 넘길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날씨도 좋고, 컨디션도 좋다. 타구는 외야를 넘어 관중석에 흩뿌려지고 있다.

    Let's get it, Boom! Boom! Boom!

    디트로이트 팬뿐만 아니라 다른 팀의 팬들도 나의 등장음악을 같이 부르고 있다. 등줄기에 오싹한 소름이 내달린다.

    따아악!

    내 홈런 더비 마지막 타구가 우중간을 향해 날아간다. 음?

    텅!

    백스크린을 직격한 홈런 타구를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내 첫 홈런 더비가 끝났다.

    “2020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의 우승자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총 92개의 홈런을 친! 사붐! 킴!”

    3라운드에서 짐과 나는 단 한 개의 공도 낭비하지 않았다. 던지고, 치고, 넘기고.

    홈런 더비의 우승자를 상징하는 벨트가 내 손에 들어왔다.

    너무 화려한데, 이쁘긴 하네. 한 두어 개만 더 수집해야지.

    * *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김사범, 홈런더비 신기록 쾅! 쾅!

    -7월 13일 월요일, 우리에게 친숙한 다저 스타디움에서 2020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가 열렸다.

    내로라하는 출전 선수 중에서 우승 벨트를 차지한 건 올해 메이저리그에 처음 콜업 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김사범이다.

    1라운드부터 33개의 홈런을 쏟아내며 예열을 마친 김사범은 2라운드에서 2분 43초 만에 2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선공에 나선 크리스티안 옐리치의 홈런기록이 19개였다는 점이 아쉬웠다.

    마지막 3라운드, 메이저리그 최고의 장타자로 손에 꼽히는 지안카를로 스탠튼을 상대로 선공에 나선 김사범은 제한시간 5분 30초 동안 39개의 홈런을 담장 밖으로 넘겼으며, 마크 맥과이어의 홈런 더비 비거리 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에서도 ‘괴물 같은 장타력’, ‘헐크의 파워를 가진 선수’, ‘믿을 수 없는 힘’ 등의 수식어로 김사범 선수를 극찬했다.

    한편, 이번 올스타전 이후 김사범 선수의 시즌 기록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급격하게 늘었는데, 40-40은 확실하고, 50-50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BB 스포츠, 신용준 기자.]

    └이 정도면 헐크 맞네, 92개가 사람이 낼 수 있는 기록 맞음?

    └저번에 스탠튼 61개 날렸을 때도 사람 아니라고 했었는데…… ㄷㄷㄷ

    └면전 앞에서 스탠튼을 중장거리 타자로 만드는 클라스 보소

    └아니 근데 동양인이 저런 파워를 내는 게 가능하긴 함? 얘도 약 한 거 아냐? 아니 그게 아니면 흑형 백형들 판치는 메이저에서 이렇게 잘 칠 리가 없음.

    └뇌피셜 ㅇㅈ구요. 거기 도핑검사 수준 알긴 암?

    └모르지, 신종 약물일 수도. 아무튼 난 무섭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단한 타자가 나오는 건 좋은데, 나중에 약물로 밝혀지면 후폭풍 어쩔 거야 ㅎㄷㄷ

    └지 뇌피셜을 바로 오피셜로 만들어 버리네. 아무튼 이딴 놈들 때문에 유명인들은 인터넷 끊어야 함. 아니면 실명제 실시하던지.

    └파워 사대주의 보소, 아주 누가 보면 황인종은 다 힘없이 발만 빠른 선수만 있는 줄 알겠네.

    └그건 팩트지. 왜 다들 현실을 부정함?

    └병먹금ㅇㅇ 그냥 인터넷 찐따임.

    └아무튼 중요한 건 우리나라 선수가 메이저 가서 다 뚜까패고 있다는 거 아님? 크으, 주모!

    └주모 한참 전에 과로로 쓰러졌다. 직접 갔다 먹어라.

    └40-40도 좋은데, 50-50이나 해 버려라. 열몇개씩만 더 치고 달리면 되겠네.

    └ 야알못 인증 오지구요, 전반기 때 이렇게 달리다가 폭망한 선수들이 한둘임? 지켜봐야함. 전반기에 좀 친다고 홈런더비 나온 다음에 폭망한 선수가 한트럭인데. 50-50은커녕 40-40도 나는 부정적으로 본다.

    └ 지금 김사범 평균 타구 발사각도가…….

    핸드폰으로 본인이 올린 기사에 댓글을 살펴보던 신용준 기자는 곧 화면에서 시선을 거뒀다.

    “어휴, 또 난장판이네. 무서워서 기사를 올릴 수가 없어. 그렇다고 저렇게 잘하는 우리 김사범 선수 기사를 안 쓸 수도 없고.”

    신용준 기자의 시선이 멈춘 그라운드에는 한 남자가 유유히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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