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49화 (49/175)
  • 49화 김사범, 2020시즌(vs LA 에인절스)(3)

    디트로이트, 스테이크 파라다이스.

    “이야, 소문이 자자한 루키를 실물로 보다니,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TV에서만 봤던 사람을 봐서 당황스러운데요.

    “저야말로 느낌이 이상하네요. 할리우드 스타를 보는 느낌이에요.”

    “하하하, 스타……는 맞는데, 어차피 똑같은 메이저리거잖아? 편하게 생각해.”

    생각보다 소탈한 모습에 긴장이 좀 풀리는 게 느껴졌다. 이게 뭐라고 긴장을 하냐.

    간단한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어느새 음식이 나왔다. 커다란 스테이크를 썰며 내게 말하는 트라웃.

    “그윈처럼 치고 시몬스처럼 잡는 루키가 있다고 해서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그라운드에서 직접 상대해 보니 장난이 아니네. 오히려 매체나 소문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전부가 아닌 느낌이야.”

    “하하, 보통이죠. 뭐, 야구를 좀 잘하긴 하죠?”

    “푸하하핫, 맞아, 잘하지.”

    웃으며 오타니를 툭툭 치는 트라웃. 오타니가 스테이크를 먹다 트라웃을 바라봤다.

    “붐처럼 자신감 있게 해 봐, 넌 너무 재미가 없다니까?”

    “김사범 선수는 김사범 선수고, 나는 나지. 같은 동양인이라도 문화가 많이 달라.”

    “그런가? 흠, 하긴 우리도 많이 다르긴 하지.”

    가깝고도 먼 나라니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타니에게 질문을 했다.

    “오타니 선수, 올림픽은 나가나요? 예비 엔트리엔 포함돼 있다고 하던데?”

    “음…… 아마 못 나갈 것 같아요. 구단도 별로 탐탁지 않아하는 모양새고, 사무국도 반대하는 입장이라서.”

    “아, 예전부터 나가고 싶다고 인터뷰했던 게 기억나서요.”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재활 막바지다 보니 좀 그렇죠. 기간도 너무 길고. 하다못해 시즌 전이나 후면 나가겠는데…….”

    역시, 바뀌지 않았다. 그럼 아마 이번 올림픽에서 그놈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일본이 우승하는 것도 바뀌지 않을 거고.

    “김사범 선수는 안 나가시나요? 마이너로 잠깐 내려가서 나가는 편법도 있을 텐데…….”

    “아, 저는 이번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어요. 사실 프리미어를 놓쳤을 때부터 이미 포기했거든요. 하하”

    “아, 그래도 김사범 선수 정도면 대표팀에 큰 도움이 될 텐데…….”

    말끝을 흐리면서 기쁘다는 듯 눈매가 휘어진다. 애국자시구만, 애국자야.

    트라웃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 갑자기 끼어들었다.

    “인종차별적인 의미로 하는 건 아닌데, 동양인들은 왜 그렇게 국가대표에 집착하는 거야? 우리에게도 물론 영광스런 자리긴 하지만, 시즌 중에 대회가 열리면 보통 꺼려하거든.”

    트라웃의 말도 일리가 있다. 야구는 게임마다의 성적이 쌓여 연봉이 되는 스포츠니까, 축구처럼 국가대표로 뛰는 경기가 나름의 가치로 인정받는것도 아니고.

    “그냥 뭐, 자부심이나 명예 같은 거죠. 여기보다 사회적인 묶음? 관계? 그런 게 더 촘촘한 느낌이에요.”

    “음, 뭐 이해는 잘 안 가네.”

    문화 차이니까. 그러고 보니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트라웃이다. 명예의 전당 예약자,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타자. 이건 어떻게 보면 기회일 수도 있다.

    “트라웃, 질문 하나 해도 되나요?”

    “물론이지. 예민한 정보만 아니면 언제든지.”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트라웃은 초구를 거의 지켜보잖아요? 그래서 스트라이크를 먹고 시작하는 경우도 많고요.”

    “음, 그렇긴 하지.”

    “카운트를 버리면서까지 초구를 지켜보는 이유가 있나요?”

    예전부터 궁금했던 점이다. 나는 초구던 2구던 좋은 공이면 가리지 않고 배트를 내는 편이니까.

    “요즘에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생겼거든. 보통 처음 만난 투수에게 그러는 경우는 있는데…….”

    그래서 오늘도 초구를 지켜본 건가?

    “마운드의 투수가 어떤 리듬을 가지고 있는지, 타이밍은 어떤지, 뭐 그런 것들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는 거야. 알다시피 배팅에서 타이밍이 차지하는 비율은 꽤 높으니까. 뭐 가끔은 내 히팅 존하고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아, 카운트가 몰리는 것보다 그게 이득이라고 판단한 거네요?”

    “그렇지. 뭐, 아예 깨끗한 카운트가 좀 더 유리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알지?”

    “하하, 알 거 같아요.”

    트라웃은 어떤 카운트에서도 충분히 공을 때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럼 이제 내가 물어보지. 붐은 어떤 방식으로 타격에 접근하는 거야?”

    어떤 방식?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타격 폼이면 몰라도. 대충 둘러대야 하나?

    “방식이라……. 별다른 건 없어요. 그저 좋은 공을 강하게 때리려고 노력하죠. 대신 힘을 조절하는 정도?”

    “힘을 조절한다고?”

    “컨트롤할 수 없는 백 퍼센트의 힘을 내는것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만큼의 힘만 쓰는 거죠. 배트만 강하게 휘두른다고 무조건 좋은 타구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

    “음…….”

    애매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트라웃. 아, 말이 길어지면 티 나는데.

    “배트를 휘두르는 데에만 집중하는게 아니라 휘두르면서 내 몸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도 신경 쓰는 건데……. 어떻게 말하기 좀 어렵네요. 감의 영역이라.”

    “감이라,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흠,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트라웃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긴다.

    아니, 왜? 내가 대충 둘러댄 개똥 같은 말에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가? 무협지처럼?

    열심히 음식을 먹는 오타니와, 생각에 잠긴 트라웃, 그리고 당황한 나의 식사가 끝났다.

    “후, 좋군. 오랜만에 느끼는 포만감이야.”

    “그랬다면 다행이네요.”

    “김사범 선수 덕분에 디트로이트 원정에서 먹을 곳이 하나 생겼네요.”

    “다음에 올 땐 다른 맛집을 찾아 놓을게요.”

    “언제든지 환영이죠, 이제 시간도 늦었고, 돌아갈까요?”

    “네. 딱 적당하네요.”

    그렇게 헤어지기 전, 트라웃이 갑자기 나를 보며 말했다.

    “내일 경기는 우리가 이길 거야. 반드시.”

    누구 맘대로?

    “어? 제가 하려던 말인데. 디트로이트는 하키의 도시예요. 스윕에 아주 익숙하죠.”

    * * *

    다음 날.

    LA 에인절스와의 3차전, 덕아웃은 활기에 차 있었다.

    “붐! 오늘 컨디션 어때? 갑자기 나빠지거나 한 거 아니지?”

    애초에 오늘 선발인 버로우즈마저 이러고 있으니 말 다했지.

    “컨디션 좋아. 어제 맛있는 것도 먹었고.”

    “뭐야? 어제 약속 있다더니 누구랑 먹은 거야? 설마 여자?”

    폴리 얘는 방금 전까지 그라운드에서 웜업 하고 있던 거 같은데, 언제 들어온 거야?

    “여자 아냐. 그냥 뭐, 타지에서 만난 인연?”

    “여자네, 여자야.”

    “여자 아니라니까?”

    “타지에서 만난 인연이면 여자지. 나중에 한번 소개시켜 줘. 어디 사람이야?”

    말을 말자. 눈치없고 멍청한 거엔 약도 없으니까.

    “경기 시작하기까지 얼마 안 남았네. 난 몸 풀러 간다.”

    귀찮게 엉겨 붙는 폴리를 떼어 놓고 그라운드로 나왔다.

    “플레이 볼!”

    요즘 상승세인 버로우즈의 선발 등판, 저번 클리블랜드 전에 뭔가 깨달은 게 있었는지, 엄청나게 공격적인 투구로 나름 괜찮은 투구를 하고 있다.

    “스트라이크!”

    거의 우겨넣다시피 존에 넣는 공, 하지만 기본적인 구위가 좋고 볼 끝의 무브먼트가 심해 혹시 배트에 맞더라도.

    딱!

    “아웃!”

    이렇게 내야 땅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뭐, 자신감을 갖는 건 좋은 거니까.

    타석에 들어서는 에인절스의 2번 타자 트라웃, 어제 저녁의 분위기는 어디 갔냐는 듯 눈빛이 살벌하다.

    버로우즈가 상대를 가려가며 던졌으면 좋겠는데…….

    [트라웃! 버로우즈의 초구를 받아칩니다! 타구는 가운데 담장 너머…… 떨어집니다! 1회에 나온 트라웃 선수의 솔로 홈런!]

    [최근 버로우즈 선수가 상승세를 탔던 게 공격적인 투구 덕분이었거든요? 하지만 공격적인 투구가 언제나 좋은 건 아니죠. 공이 몰리자 벼락같은 스윙으로 담장을 넘겨 버리는 트라웃 선수입니다.]

    지금처럼 안 좋은 경우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홈런을 맞고 나서도 자기 공을 던진다는 거다.

    3번 오타니, 4번 업튼을 내야 땅볼로 돌려세우는 버로우즈.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이삭에게 말을 걸었다.

    “이삭.”

    “왜?”

    “요즘 버로우즈만 나오면 내 유니폼이 더러워져.”

    “나도.”

    “클러비들이 뭔 죄인지, 버로우즈는 팁을 2배로 내야 공평한 거 같은데. 내 생각 어때?”

    “찬성, 오늘 경기 끝나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자.”

    “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글러브를 벗는다. 초반에 한 방 맞았으니까 이제 돌려줘야지.

    상대팀 투수도 컨디션이 괜찮은 날인지, 이삭과 카스테야노스를 연신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투아웃이라. 타점을 올릴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건가?

    [김사범 선수의 첫 타석입니다. 오늘 김사범 선수의 성적, 예상 가능하신가요?]

    [하하, 제가 그걸 알면 여기에 있지 않죠. 그래도 최근 페이스로 봐서는 홈런을 하나 칠 거 같긴 한데요.]

    [홈런 예언, 잘 들었습니다. 경기 후 게시판을 주목해야겠군요.]

    [또 당했네요. 자꾸 이러시면…….]

    [초구 던집니다!]

    “볼.”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오는 공을 하도 쳤더니 좋은 공을 잘 안 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트라이크 존에서 아예 빠지는 공이 아니라는 거?

    아마 첫 타석부터 공을 빼진 않을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카운트에 빈곳이 없습니다. 투수 제7구! 던집니다!]

    따아악!

    [김사범 선수의 타구, 담장 넘어가나요? 아! 담장 맞고 떨어집니다. 중견수 트라웃 선수 펜스 플레이가 좋습니다! 김사범 선수는 2루에서! 세잎!]

    [아, 김사범 선수의 타격이야 당연히 칭찬받을 타격이지만, 이 장면에서 더 대단한 건 트라웃 선수의 수비입니다. 홈구장도 아닌 타 팀의 구장에서 거의 완벽한 펜스 플레이를 보여 줬거든요? 타구 판단도 완벽했구요.]

    [자료를 보면 데뷔 이후 계속 떨어지던 수비 지표가 2018년부터 반등하기 시작했군요?]

    [맞습니다. OAA나 DOAA, UZR, DRS 등 세이버매트릭스 지표를 보면 이런 멋진 수비를 위해 트라웃 선수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죠, 리그에서 평범한 수비를 가진 중견수에서 상위권 중견수로 단숨에 뛰어올랐어요.]

    어차피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라 3루는 노릴 수 없었겠지만, 2루에서 슬라이딩을 할 정도로 정확한 송구가 올 줄은 몰랐다. 깜짝이야.

    아깝긴 하다. 발사각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홈런이었을 텐데.

    “스트라이크! 아웃!”

    이후 미기의 삼진으로 1회 말 공격은 허무하게 끝났다.

    홈런을 맞고 정신을 차린 버로우즈의 호투로 4회 2사까지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물론 덕분에 이닝당 투구 수는 늘어났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괜찮은 수준이다.

    타악!

    ‘칭찬하자마자!’

    애매한 위치에 떨어질 것 같은 공을 추격한다. 외야수는? 늦는다. 내가 잡아야 한다.

    “마이!”

    [아, 애매한 타구인데요? 텍사스 안타가 될 거…… 우와!]

    [와우,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네요. 머리 뒤로 한참을 넘어가는 플라이 타구를 쫒아가 잡아냅니다. 김사범 선수, 대단해요.]

    콜과 함께 뒤로 몸을 날려 공을 잡아낸다. 이렇게 다이빙 캐치를 잘하는 선수보고 눕신이라고 하던가?

    좋은 수비의 기운을 타석까지. 오늘의 캐치프라이즈다.

    [2사 주자 2루! 타석에는 김사범 선수입니다. 아마 좋은 공을 안 주겠죠?]

    [그럴겁니다. 1루가 비어 있으니 채우고 카브레라 선수를 상대할 수도 있죠. 카브레라 선수가 어제의 뜨거운 타격감이 남아 있어야 할텐데요.]

    [초구! 아! 우측 담장! 우측 담장! 담장을 넘어 관중석 상단에 떨어집니다! 김사범 선수의 역전 투런 홈런! 바깥쪽 공을 제대로 밀어서 넘겼어요!]

    [Let's get it Boom! Boom! Boom!]

    어제 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생각해 봤지만, 나는 꽤 키가 큰 편이다. 당연히 팔도 그만큼 긴데, 굳이 빠지는 공이라고 참을 필요가 없지.

    [오늘 경기 재미있게 돌아가네요. 트라웃 선수가 솔로 홈런, 김사범 선수가 투런 홈런을 쳤거든요? 팀을 대표하는 타자들의 싸움이네요.]

    * * *

    관중들이 제법 들어 찬 코메리카 파크의 외야석.

    “Boom! boom! boom!”

    마치 힙합 콘서트처럼 관중들이 목소리를 모아 한 단어를 내뱉고있다.

    “저기 저거 아냐?”

    “휴지뭉치잖아!”

    “어디 간 거야? 튕기진 않았는데?”

    그 시끄러운 와중에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무리들, 관중석의 상단에 보물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다.

    차츰 관중들의 응원이 서서히 식어갈 때 쯤, 누군가의 목소리가 외야석에 울려 퍼졌다.

    “이게 여기에 어떻게 박혀 있는 거야? 야, 이거 봐봐!”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달려왔다.

    “와, 여기엔 누가 억지로 넣으라고 해도 못 넣겠는데? 야, 빨리 사진 찍어. 일단 찍고 인터넷에 올려 보자!”

    두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곳엔 관객석 사이 틈에 완전히 끼어 버린 야구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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