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38화 (38/175)

38화 김사범, 2020 시즌(vs 크리스 세일)(2)

“스트라이크!”

[크리스 세일, 카스테야노스를 상대로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노히트 노런 페이스를 4회에도 이어갑니다.]

[2회 미겔 카브레라 선수가 얻은 볼넷이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유일한 출루였어요.]

[반면 보스턴 레드삭스는 3회에 마르티네즈 선수의 투런 홈런으로 2점을 먼저 얻었습니다.]

[이제 경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양 팀 선발투수의 체력 또한 변수가 될 수 있어요. 세일 선수가 노히트 페이스긴 하지만 벌써 투구 수가 59개, 맷 보이드 선수는 70개 가까이 던졌거든요?]

[경기 후반에는 불펜 싸움이 펼쳐지겠군요. 말씀드리는 순간 세일 선수 2구를 던집니다.]

대기타석에서 스윙조차 하지 않은 채로 세일의 투구에 집중한다. 그의 호흡 하나까지 다 빼앗아야 한다.

[2구째, 아, 쳤습니다! 타구는……. 우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체인지업을 잘 받아쳤죠? 이렇게 되면 김사범 선수 앞에 주자가 나갔네요. 집중해야 합니다. 김사범 선수]

체인지업 하나만 보고 들어간 듯, 당황하지 않고 잘 밀어친 카스테야노스. 역시 미기가 부상으로 이탈했던 시절 디트로이트를 지탱하던 타자답다.

‘저번 타석에서 슬라이더를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하네.’

극단적인 투피치 투수는 아니지만, 역시 크리스 세일을 대표하는 구종은 슬라이더니까.

배터박스에 오른발을 단단히 박아넣는다. 복잡한 사인이 오가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훼이크 사인이다.

경기 중반, 투구 수에 부담을 느끼는 투수가 할 선택은 하나다. 땅볼 유도를 통한 병살. 마침 타자도 라이너성 타구 비율이 높은 나니까.

[크리스 세일, 3구! 볼입니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으로 볼, 2구는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 스트라이크, 3구는 다시 몸쪽 포심으로 볼이거든요? 포심 자체가 아슬아슬하게 존 근처에서 머무는데 김사범 선수는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구종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아마 슬라이더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타석에서 유일하게 반응한 공이었으니까요.]

밑밥은 깔아 놨다. 세일은 자기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지 포수의 사인에 몇 번 고개를 젓다 신경질적으로 1루 주자에게 견제구를 뿌린다.

“타임.”

포수가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로 올라간다. 심판도 공을 보충하러 간 사이 혼자 남은 타석. 내 생각대로라면 다음 공은 무조건 슬라이더다.

‘이제 막 올라온 루키가 자신의 주 무기를 이렇게 대놓고 노리는데 두 번 피하진 않겠지.’

어디로 날아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슬라이더라고 생각하고 풀스윙. 이게 내 계획이다.

[포수가 마운드에 방문합니다. 사인이 어긋난 거 같죠?]

[경기를 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좋은 타이밍에 타임을 요청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보통은 어떤 공을 던지자고 이야기하죠. 아무래도 사인 교환으로 나눌 수 없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사인이 어긋나는 경우 보통 투수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지기 마련입니다. 포수가 어마어마한 고참선수가 아니라면요, 하하.]

[말씀에 뭔가 애환이 담겨있는데요? 포수 다시 자리로 돌아갑니다. 크리스 세일 대 김사범, 투수가 투구동작을 시작합니다. 제4구!]

왔다. 슬라이더.

포심의 움직임이 심한 게 오히려 구종 판단에 도움이 됐다. 몸쪽을 향해 오는 슬라이더. 판단과 동시에 배트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이번 타석에서 슬라이더를 본 적이 있어 궤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남은 건 나 자신을 믿고 휘두르는 것뿐.

빠악!

제대로 걸렸다.

[던졌습니다! 아! 김사범 선수의 타구가 좌측 담장을 향해 뻗어 나갑니다! 엄청나게 빠른 타구! 좌측 담장을 넘!]

텅!

[……지 못합니다! 그린 몬스터의 상부를 맞고 튀어나온 공이 좌익수 방향으로 튕깁니다!]

[중견수의 백업이 빨라요,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습관적으로 타구를 보던 내 시야에 초록색 벽이 들어왔다. 여유롭게 타구를 바라볼 때가 아니다.

[김사범 선수는 2루로, 2루에서…… 세잎! 그사이 1루 주자는 홈에 들어옵니다!]

[홈런성 타구가 2루타가 됐어요. 오히려 타구가 너무 잘 맞은 게 독이 된 거 같네요.]

‘아아, 이삭. 나의 메이저리그 선배. 이젠 선배 말을 절대 허투루 듣지 않겠습니다.’

의식적으로라도 공을 띄웠으면 넘겼을 거다. 중앙으로 보냈어도 마찬가지.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그린 몬스터라는 보스몹에게 가로막혔다.

억지로라도 밀어칠걸. 선발 데뷔전이 뭐라고 흥분해서는.

다음엔 반드시 잡겠다 보스몹. 그린 몬스터.

* * *

“아쉽네, 조금 높았어.”

레드삭스의 포수인 실론이 자신의 뒤로 백업을 온 세일에게 말했다.

“……제대로 맞았어. 운이 좋았던 거지.”

“도발할 만큼 실력은 있네. 그래도 다행이야. 루키를 교육하려다가 게임을 망칠 뻔했어.”

마운드를 향해 걸어가며 사범과 그린 몬스터를 번갈아 보는 세일.

“다음 타석은 미기야, 자신 있지?”

심판에게 받은 새 공을 들고 걸어가는 세일이 대답한다.

“당연하지.”

다시 시작된 게임. 타석에 미기가 들어선다.

‘투구 수가……. 64개? 65개? 이제 슬슬 몸이 풀리는 거 같군.’

뻐억!

“스트라이크!”

날카로운 바깥쪽 직구에 반응하지 못하는 미기.

‘비록 루키와의 승부에서는 졌지만…….’

“훕!”

따악!

[미겔 카브레라, 쳤습니다! 공은 우익수 방향으로! 하지만 워닝트랙에서 잡힙니다. 김사범 선수는 3루로! 세이프!]

[깊은 플라이 타구에 안전하게 3루로 들어가네요.]

[스코어는 2-1, 원아웃 3루의 상황입니다.]

[짧은 단타 하나만 나와도 오늘 보여 준 김사범 선수의 스피드라면 충분히 동점을 만들 수 있거든요? 집중해야 합니다.]

‘더 이상 점수를 줄 순 없지.’

“스트라잌! 아웃!”

……

“아웃!”

[디트로이트, 원아웃 3루의 기회를 살리지 못합니다. 삼진과 2루수 땅볼로 공수 교대됩니다.]

[아쉬운 기회였습니다. 세일 선수 대단하네요.]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세일. 자리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면서도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다.

‘킴이라고? 앞으로 피곤해질 거 같은데?’

* * *

4회까지 잘 던지던 멧 보이드는 5회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이닝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교체되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조금 씁쓸했다. 4 1/3이닝 5실점 4K.

7회 내 타석을 앞두고 교체된 세일과 다시 맞붙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팀의 패배 앞에서 크게 티를 낼 순 없었다.

김사범 vs 보스턴 레드삭스

4타석 3타수 2안타 1타점 1볼넷 1도루.

경기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하는 버스 안의 분위기는 오늘 아침과 달리 조용했다.

* * *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 크리스 세일, ‘김사범, 뛰어난 타자가 될 가능성이 보여.’

4월 11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경기에 선발 등판한 크리스 세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례적으로 김사범을 칭찬했다.

4회 김사범이 친 공이 그린 몬스터에 맞고 튀어나왔을 때의 상황을 묻는 본지 기자에게 그는 ‘슬라이더를 제대로 노리고 친 타격이었다, 루키에게서 볼 수 없는 노련한 스윙이었다.’라며 칭찬했다.

한편 김사범은 좋은 타격과 함께 2회에 보여 준 호수비로 다시 MLB.com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며 마이너에서 보여 준 본인의 실력이 메이저에서도…….

베이스볼코리아 김대환 기자]

대한민국, 이천.

라커룸 한구석, 핸드폰으로 스포츠 기사를 보던 한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잘하고 있네, 짜식.”

이내 핸드폰 메신저 화면을 켜 눈부신 속도로 타이핑하는 그를 본 누군가가 말을 건다.

“김태연! 아직도 여기 있냐? 너 오늘 1군 안 가? 다시 내리라고 말해 줄까?”

“아닙니다! 지금 막 짐 다 챙겼습니다, 코치님! 갑니다!”

“톡하고 있는 거 보니까 여유로운가 봐? 이제 2군은 아무것도 아니라 이거지?”

“아, 아닙니다.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그 비슷한 사람으로는 보이네, 빨리 가! 가서 내려오지 말고. 내려오면 그날은 너나 나나 둘 중 하나는 죽는 거야.”

“술로요?”

“그럼 주먹으로 할까?”

“옙! 절대 내려오지 않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랑하던 빠른 발로 잽싸게 사라지는 김태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미국, 뉴저지.

한 남자가 침대에서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응 자기야, 난 이제 경기 끝나고 밥 먹었지. 거기는 이제 아침인가?”

[여기는 이제 오후 2시, 슬슬 나도 방송 준비해야 해.]

“어때, 요즘도 막 댓글에 이쁘다고, 여신이라고, 한 번만 만나 달라고 그래? 사람들이?”

[뭐? 하핳, 큼, 당연하지. 좋겠네 자기는.]

“당연히 좋지. 요즘 인생 살면서 최고로 좋아.”

[다행이네, 아, 그리고 오늘 기사 봤어?]

“무슨 기사? 내 기사 또 나왔어? 오늘 경기는 별거 없었는데?”

[아니, 사범 씨 기사.]

“김사범? 잠깐만.”

핸드폰을 몇 번 눌러 포털 사이트 화면으로 들어가는 남자. 곧 김사범의 기사를 찾아서 읽기 시작한다.

[별 내용은 아니던데? 그냥 뭐 잘했다 이런 거 같더라. 그나저나 요즘 여기는 올림픽으로 한참 시끌시끌해, 자기도 작년에 프리미어에 합류할 수 있었으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자기, 듣고 있어? 아직도 읽고 있는 거야?]

기사를 다 읽고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남자. 옆에 놓여 있는 밴드를 들고 방을 나선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가 끊겼나? 아닌데, 설마 자기 또 운동하러 간 거야? 정말? 야! 김병헌! 진짜 운동하러 간 거냐고!]

그렇게 김병헌의 방에는 한참 동안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짐의 사무실.

의자에 앉은 짐이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올림픽……. 올림픽이라……. 가능할 거 같은데?”

인터폰을 누르며 말을 쏟아내는 짐.

“벨루카 씨, 사범에게 들어온 한국 쪽 인터뷰 다 보내 줘요. 매체 상관없이. 그리고 방송 쪽 제안도. 한국 야구협회 관련해서 핫라인도 알아봐 주고.”

자료가 오길 기다리는 사이,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짐.

“사범, 바빠요?”

[아뇨, 이제 일어나서 준비하려고요. 왜요?]

“인터뷰나 TV프로, 관심 없죠?”

[없죠. 아직 크게 보여 준 것도 없고. 그때 다 이야기했던 거 아니에요?]

“계획이 바뀌었어요. 올림픽이 이번 해에 열리는 거 알고 있죠?”

[알죠. 일본이 우…… 아니 우승하려고 칼을 갈고 있잖아요?]

“생각 없어요?”

[대회 규정상 작년 프리미어 때 등록되지 않은 선수는 못 나가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뭐 규칙이야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면 되니까. 어때요?”

[음, 짐도 알겠지만, 대표팀 구성은 이미 정해져 있을 거예요. 한국 구단들 그런 쪽으론 철저할 텐데.]

“꼭 이번만이 아니라 2년 후에는 아시안 게임도 있으니까요. 침 좀 발라 놓으면 그때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그렇긴 한데, 음…….]

“일단 내 말대로 해 봅시다. 경기에 영향 받지 않을 정도로 계획을 짜 볼게요. 사범도 콜 한 거죠?”

[후, 그래요. 어차피 군 문제는 해결해야 하니까. 그래도 무리하지는 마요. 무리해서 올림픽을 나가더라도 메달을 못 따면 소용없으니까. 제 생각엔 이번 올림픽보다 아시안 게임을 노리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니까. 아무튼 알겠어요. 정확한 스케줄은 협의가 끝나고 말해 줄게요.”

-짐, 아까 말한 자료들 준비됐어요. 보냈으니 확인해보세요.

“고마워요. 벨루카, 확인해 볼게요.”

딸깍, 딸깍.

“흠흠흠, 압박하지 않으면 절대 부르지 않을 사람들이니까.”

모니터 화면을 보는 짐의 눈빛이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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