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18화 (18/175)

18화 김사범, 계약하다(2)

메이슨이 떠난 사무실, 여유로운 기분을 만끽하며 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하, 메이슨이 그 정도로 당황하는 건 처음 봤어요.”

“그런가요? 우리도 계획이 있으니, 짐의 계획대로 갈 수 있게 도와준 거죠.”

“오, 고마워요. 말이 잘 통하는 고객은 이래서 편하죠. 아무튼, 그래서. 진짜 원하는 구단 있어요?”

몸을 숙여 눈을 빛내는…… 습관이군, 음모 꾸미는 티 내는 게 습관이야.

“있죠, 그런데 짐은 반대할 것 같네요.”

“흠, 벌써부터 걱정되는데요? 어디예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의 사무실, 메이저리그 팀의 엠블럼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오, 연출 좋은데요? 이제 여기서 무거운 음악이 깔리면 되는 거죠?”

익살스러운 짐의 목소리,

하지만 곧이어 내가 선택한 엠블럼을 보자 거짓말처럼 표정이 굳어진다.

“사범, 정말 거기로 갈 거예요? 음, 제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에이전트가 반대하는 곳인데.”

예상했던 반응이다. ‘지금’만 보면 절대 가서는 안 되는 팀이다.

잠시 짐을 쳐다본 뒤, 입을 연다.

“저는 게임을 즐기지 않아요.”

“네?”

“그런데 처음으로 해 본 게임에서 그걸 알았거든요.”

“갑자기 게임이……?”

“남을 따라가지 않고, 내가 만든 길로 나아가 성공하면, 정말 짜릿해요. 그래서, 내가 만드려고요.”

짐에게 지금 말할 수는 없지만, 이 팀은 곧 오랜 기간의 탱킹을 끝내고 날아오른다.

“하, 이해할 수 없군요. 계약 자체는 쉬워요, 목마른 팀이니. 그렇지만 엄청난 계약금을 받을 순 없을 거예요. 알죠?”

“알아요. 마이너에서 무시받지 않을 정도면 됩니다.”

“제가 LA에서 얼마를 제시했는지 말해 줬죠? 거기서 얼마나 더 받아 낼 수 있는지도.”

“하루 이틀 전에 한 이야기를 까먹진 않아요, 짐”

넥타이를 느슨하게 고치고 등받이에 몸을 묻는 짐.

“이걸 알면, 아마 메이슨은 병원에 실려 갈 수도 있겠어요.”

“보너스죠.”

“하하. 예수 그리스도여, 여기 제 앞에 사탄이 있나이다.”

장난스럽게 성호를 그으며 나를 퇴치(?)하려는 짐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사무실을 나선다.

“마지막까지, 모든 희망을 안겨 주길 바랄게요.”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 후반기 리그도 끝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야, 태연이 나온다. 푸하핫, 가기 전엔 뭐 어려운 거냐고 난리더니 표정이 저게 뭐냐, 로봇이냐?”

“아주 말은 전문가처럼 이야기하더니, 쟤 저럴 줄 알았다.”

2019 한국 프로야구 1차 지명식. 김태연은 당당히 한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돌아오기 전에도 꽤 높은 순위로 지명받아 나름 훌륭한 선수생활을 했던 만큼, 아마 잘할 거다.

‘묻지마 지명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짐이 잘 조율해서 다행이야.’

물론 나에게도 몇몇 구단이 의사를 물어봤지만, 짐의 교통정리로 복잡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이래서 능력 있는 에이전트를 구하는 건가.

지명식이 끝나고, 타이밍 맞춰 감독님이 들어왔다.

“다 봤지? 1차 지명이 대단하긴 하지만 무조건 성공을 장담하는 건 아냐. 남은 경기에서 너희들의 모습을 모두 보여 줘라. 그럼 너희도 저기 태연이처럼 로봇이 될 수 있을 거다.”

빵 터지는 녀석들과 긴장했는지 표정을 굳히는 녀석들.

“이제 목표는 후반기 리그 우승과 왕중왕전 우승이다. 모두 힘내서 승리를 위해 싸우자. 그리고 사범이는 끝나고 잠깐 남아라.”

김태연을 놀릴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들린 소리에 조금 당황했다.

잠시 후.

“그래, 사범아. 몸은 어때?”

“괜찮습니다. 오히려 다치기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군. 곧 네 에이전시에서도 연락이 갈 테지만, 미리 말해 주려고 불렀다.”

“어떤……?”

“아마 남은 리그경기와 왕중왕전에서 출전 기회가 거의 없을 거다.”

“네?”

“이젠 더 미래를 봐야지. 물론 중간중간 짧게 나가긴 할 거다. 경기 감각 또한 중요하니까.”

정말 새로운 도전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게 느껴진다.

* * *

얼마 뒤, 짐의 사무실.

“안녕하십니까, 케인 정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사범입니다.”

“하하, 압니다. 모를 리가 없죠. 동아시아권에서 제일 핫한 유망주신데요.”

“감사합니다. 곧 제일 핫한 선수가 될 겁니다.”

“네? 하하하, 물론이죠. 그 길을 같이 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어려움 없이. 착착 진행되어 간다.

[제주공고 김병헌, 뉴욕 양키스에 입단. “빠른 시일 안에 핀 스트라이프를 입겠습니다.”

지난 전반기 왕중왕전에서 시속 159km의 광속구를 던져 화제가 됐던 제주공고의 김병헌 선수(19)가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 계약금은 200만 달러로 기존의 고교 야구 최대 금액이었던 160만 달러를 크게 상회한다. 양키스의 동아시아 담당 스카우터인 에릭 포시니 씨는……]

“후욱, 훅. 짐. 우리는, 훅. 언제 발표하죠? 후욱.”

고된 체력훈련에 말을 잇기가 쉽지 않다. 이게 모두 짐이 캐스팅한 악마 같은 피지컬 코치 때문이다.

“곧 발표할 거예요.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 중이거든요. 극비리에 진행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네요.”

“안 좋은 건 아니죠?”

“그럼요. 걱정되겠지만 좀 참아요. 정말 세부적인 몇몇 조건 때문이니까. 마이너에서 처음부터 통역 없이 다니고 싶어요?”

“음. 저 영어 잘하는데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어로 뭔가를 말하는 짐.

“I think #~#@%& ~##%~^. right?”

“어…… 음…… thank you.”

“다음 주부터는 영어도 준비해야겠군요. 통역이 있다고 해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해야 하니까.”

“네, 동의합니다.”

읽고 쓰는 건 잘하는데.

* * *

올림픽대로를 따라 달리는 차 안, 퇴근 무렵인지 꽉 막혀 있다.

띠리리리.

울리는 핸드폰을 집는 손이 익숙하다.

“메이슨입니다.”

[메이슨! 큰일 났어요!]

“뭔데? 킴이 다른 곳하고 계약이라도 했어?”

당황했는지, 잠시 말이 없어진 상대방.

“뭐야, 정말이야?”

[네. 방금 오피셜 떴어요. 150만 달러에…….]

“fxck! shit! 짐!”

당장에라도 짐의 사무실로 쳐들어갈 듯한 기세의 메이슨.

하지만 슬프게도 그의 차는 퇴근시간, 올림픽대로에 있다.

* * *

“좋은 계약이었습니다. 김사범 선수, 짐.”

“저도 마찬가집니다, 케인. 사실 고객의 의사가 이렇게 뚜렷하지만 않았어도…….”

“하하,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조항도 추가되었잖습니까.”

아직 자리에 앉아 자신의 계약서를 바라보고 있는 사범. 곧 정신을 차리고 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후, 이제 시작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몇 년 후에 TV에서 뵙죠, 응원하겠습니다.”

악수가 끝나고. 인터넷 스포츠 뉴스란엔 기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공고 김사범. 메이저리그 진출 확정!]

[뉴욕 양키스 김병헌과 같은 리그! 꿈의 맞대결 이뤄지나?]

[한국 야구 유망주의 메이저리그 러시, 우려된다.]

.

.

.

[디트로이트, 김사범의 영입에 굉장한 기대감 밝혀.]

* * *

집에 돌아가는 길, 짐의 차 안.

띠리리리.

“짐, 계속 전화 오는데요?”

“아, 알아요. 그 녀석이거든요.”

“메이슨?”

“하하, 이미 끝났는데 질척이네요. 이 모습을 보고 싶었죠?”

나는 아무 말 없이 창문을 연다.

“시원하네요. 여름인데도.”

그렇게. 길었던 나의 두 번째 고3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김사범 선수! 또다시 홈런입니다! 8회 초, 한공고가 다시 크게 앞서갑니다!]

[바로 전 이닝에 추격하는 점수를 줬었죠? 상대 팀 입장에서는 거르지 못한 것이 아쉽겠어요.]

[그리고, 이 홈런으로 자신의 연타석 홈런 기록을 3개로 늘립니다! 대단하군요!]

[주기적으로 출장하는 것이 아닌데도 나올 때마다 홈런을 치고 있어요. 그야말로 히든카드입니다. 예전 선동연 선수가 몸을 풀면 상대 팀 타자들이 겁을 먹었듯, 이젠 경기 후반에 김사범 선수가 배트를 들면 상대 팀 투수들이 겁을 먹고 있어요.]

……

[몸쪽 공! 쳤습니다! 쭉쭉 뻗어 나가는 타구! 우측 담장! 넘어갑니다!]

[우와, 대단하네요. 한공고 벤치는 경기 후반에 만루만 만들자, 하는 작전 같습니다. 만루가 되면 어김없이 나와서 홈런을 쳐 주네요, 김사범 선수.]

[자신의 연속홈런 기록을 4타석으로 늘리는 김사범 선수! 타이기록 입니다. 이제 1개의 홈런을 추가하게 되면 5연타석 홈런으로 신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아, 대단한 선수예요.]

……

[9회말, 한공고가 볼넷과 안타 2개를 엮어 기어코 만루를 만들어 냅니다.]

[아, 덕소고 입장에선 악몽 같을 겁니다. 한공고는 죽자 사자 베이스만 채우고 있어요. 이 선수가 있거든요.]

[투수 입장에서도 볼넷을 안 주려고 공격적으로 던지다 보니 안타를 줄 수밖에 없거든요?]

[후반기 왕중왕전, 결승전입니다. 2아웃 만루! 타석엔 당연하게도 이 선수가 들어섭니다.]

[하하, 저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고의사구예요. 동점 되더라도 승부치기 가면 되죠. 승부하면 안 돼요.]

[잠시 올라왔던 덕소고 감독이 내려가고 경기 재개됩니다.]

[아, 승부하네요. 투수를 믿는단 거죠,]

……

[파울입니다. 2-2에서 잘 떨어지는 포크볼을 역시 잘 커트했습니다.]

[무조건 낮게 가야 해요. 볼넷을 주더라도 절대 존 근처로 가면 안 됩니다.]

[6구! 던집니다! 아! 좌측 담장! 좌측 담장! 넘어갑니다!]

[몰렸어요. 투수가 부담감이 너무 심했어요.]

[한공고의 우승을 확정 짓는 홈런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연속타석 홈런 기록을 5개로 늘리는 김사범 선수입니다!]

* * *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멀어져 간다.

중학교 시절,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 그 이후로 처음 받는 헹가래.

‘근 20년 만이군.’

내 손으로 우승을 결정짓고, 팀원들의 알아듣지 못할 축하를 받을 때, 같이 가슴을 울리던 짜릿함. 그래, 이 짜릿함에 반해서 난 야구를 시작했다.

드디어 날 옥죄던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난, 한공고의 4번타자 김사범이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치고 포효하는, 리그 최고의 타자가 될 거다.

* * *

2019년, 인천공항.

“짐은 다 챙겼어? 여권은?”

“다 챙겼어요, 엄마. 여권은 여기 옆에 주머니에…… 어?”

“뭐야! 어디 떨어트린 거야?”

“하하, 장난이에요. 여기 가지고 있어요.”

우리 가족은 한 명도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다.

짝!

등짝에 꽂히는 강 스매시.

“엄마 놀라게 그런 장난 치지 마! 안 그래도 어린 아들 멀리 보내서 가슴 아파 죽겠는데!”

“여보, 짐도 같이 가는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 가는 애 마음 무겁게.”

“그래, 엄마. 이 인간 성격상 우리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TV에서 보던 야구선수 본다고 헤벌레 하면서 다닐걸?”

역시 김하별. 네가 최고다. 정확해.

“아무튼, 가서 밥 잘 먹고. 돈은 떨어지면 언제든지 말해. 네가 우리한테 주긴 했어도 우린 그 돈 못 써. 잘 가지고 있을 테니까 알겠지?”

“네 엄마. 쓰셔도 돼요. 제가 쓸 돈은 충분해요.”

“그래 우리 아들, 한번 안아 보자.”

그렇게 시작된 포옹.

마지막으로 김하별이 와서 안긴다.

“이번에 까먹으면 진짜 죽여 버린다. 가자마자 사서 보내라.”

감동적인 장면을 깨는 덴 선수다.

저 멀리, 내 짐을 맡기러 간 짐이 돌아온다.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고 뭔가 참는 것 같다. 감동적인 모습이니 감수성을 자극했을 수도 있지.

우는……게 아닌 웃으며 우리 가족 앞에 선 짐이 말한다.

“벌써 작별인사 나누신 겁니까? 한 30분 정도 여유가 있는데요?”

작별의 포옹까지 했는데?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30분이 지나고, 마침내 짐과 나는 짐을 들고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플로리다는 처음이죠?”

“해외로 나가는 게 처음이죠.”

하하핫, 큰 웃음을 터트리는 짐.

“알아요. 그래서 물어본 겁니다.”

“미국식 개그죠? 난 아마 죽을 때까지 웃지 못할 거예요. 도대체 어디가 웃긴 건지.”

“하하, 아무튼, 캠프에서 눈도장을 찍어야 해요. 루키가 초청선수로 메이저리그 캠프에 가는 일은 드무니까.”

“그래요? 난 다들 가는 줄 알았는데.”

방송에 따라 안내벨트를 매며 설명해 주는 짐,

“물론 1라운더, 그러니까 보너스 베이비나 구단에서 예의 주시하는 루키는 가끔 참가하긴 하죠.”

“저처럼요?”

“네, 사범처럼. 그래도 보통 참여하는 마이너리거는 더블에이 혹은 트리플에이의 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들이에요.”

아, 벌써부터 그들의 질투심이 느껴진다.

“아, 못난 꼴 많이 보겠네요.”

“못하면 아무도 신경 안 쓰겠지만, 못할 거예요?”

잠시 정면을 응시하다, 짐에게 대답한다.

“아뇨, 자신 없어요.”

[이름 : 4번타자

칭호 : 힘이 999인

직업 : 전사

스탯

힘 : 999+(현재 적용 : 413)

민첩 : 10

지능 : 10

내구 : 13

스킬

- 999999번의 스윙

- 정견

- 기분나쁜 선생님

-힘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내구 스탯으로 인해 힘 스탯의 대부분이 봉인되었습니다. 내구 스탯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못할 자신이.”

거기 있는 누구도 나 같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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