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 스탯 999 4번타자-6화 (6/175)
  • 6화 김사범, 고민에 빠지다(1)

    오랜만에 오는 집.

    돌아온 날 만나기는 했지만, 그땐 꿈인 줄 알았으니 이번이 사실상 다시 처음 만나는 날이다.

    부모님이야 돌아오기 전에도 자주 찾아뵙지만, 동생은 나도 정말 오랜만에 본다.

    야구가 안 되고, 힘들었을 때 우리 가족의 분위기도 덩달아서 침울했었다.

    2살 터울의 동생은 그 모습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고, 곧 유학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 있다간 나도 우울해져서 돌아 버릴 거 같아. 오빠가 성공해서 나아지면, 그때 올게.”

    내 첫 번째 팬, 야구를 사랑했으며, 나의 몰락을 제일 가슴 아파했던 동생.

    오랜만에 만날 생각을 하니 맘이 조금 들뜬다.

    “저 왔어요!”

    “우리 아들, 왔어? 어머! 피부 탄 거 봐! 선크림 잘 안 발랐지?”

    “와서 밥 먹어라.”

    언제나 날 따듯하게 만들어 주는 가족.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경쟁하느라 내가 날 잊어갈 때, 나는 가족의 품으로 달려와 날 다잡았었다.

    “야! 내 선물은!”

    어?

    “내가 가기 전날에 면세점에서 살 거 적어 줬잖아! 너 또 까먹었지!”

    “김하별! 너 오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아 엄마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내가 돈도 줬단 말이야!”

    아, 어쩐지 지갑에 돈이 많더라.

    “음……. 까먹었다. 미안.”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더니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 진짜!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데! 그럼 내가 준 돈 다시 내놔.”

    “음……. 다 사 먹었다. 미안.”

    “아아악!”

    지갑에 있던 돈은 모두 내 근육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하드 트레이닝을 하느라 소모된 칼로리가……. 흠흠.

    “사범아?”

    “네 어머니.”

    “갑자기 웬 어머니? 넌 불리하면 꼭 그러더라?”

    “음. 써 준 종이가 없어져서 돈을 잘 가지고 있었는데, 훈련 결과가 너무 좋아서 기분을 좀 내다 보니 다 써 버렸습니다.”

    “뻥치지 마!”

    “진짜다.”

    뻥이다.

    “여기 가방 앞주머니에 있잖아!”

    2주 동안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다.

    “야, 김하별!”

    “왜!”

    “미안하다. 꼭 갚을게.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빠른 사과와 재빠른 행동. 먹음직스러운 밥상을 눈물을 머금고 내버려 둔 채, 내 방으로 도망갔다.

    ‘다시 주전됐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흠흠…….’

    * * *

    김사범이 따듯한 가족의 품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세계 최대의 동영상 사이트 ‘미투브’에선 한 동영상의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BJ 구라왕, 까나리카노 1L 원샷!’

    한 BJ의 팬이 올린 영상은 꽤 인기 있는 BJ가 벌칙으로 까나리를 커피에 넣어 먹는 영상이었다.

    펠레에 버금가는 과거 예언 발언과 까나리를 먹게 된 내기, 그리고 내기 주제였던 경기 영상을 편집한 이 영상은 코를 막고 꾸역꾸역 먹던 BJ가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난다.

    사람들은 그 후 장기 휴방을 한 BJ를 궁금해했으나, 한동안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영상은 BJ들의 건강을 해치는 무리한 욕심이란 타이틀로 공중파 뉴스에까지 보도된다.

    한편,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씨티즌즈의 어느 사무실.

    “팀장님, 이거 보셨어요?”

    “뭔데?”

    “요즘 이슈잖아요. 이 동영상.”

    “아, 까나리 어쩌고? 난 비위 약해서 그런 거 못 봐.”

    “아니 그거 말고, 여기 중간에 투수랑 타자 보셨냐고요.”

    “뭐? 거기에 투수랑 타자가 나와? 그게 왜?”

    “영상으로 잠깐 봐도 공이 좋아 보여서 제가 대충 구속이랑 측정해 봤거든요?”

    “어떻게?”

    “마운드 거리야 같을 거고, 동영상 보고 시간 측정해 봤죠.”

    “근데?”

    “투수가 공 던지는 게 영상에서 3번 나오는데, 구속이 전부 다 150이 넘어요.”

    “뭐?”

    “잘 보이진 않지만, 포수도 크게 움직이지 않는 거로 봐선, 제구도 어느 정도 되는 거 아닐까요?”

    “보여 줘 봐.”

    잠시 후.

    “그래서, 얘가 누군지 궁금하다?”

    “네, 유니폼 봐서는 제주공고인데, 우리 거기 투수들은 볼 거 없다고 재꼈잖아요.”

    “야.”

    “네?”

    “너 어제 내가 시킨 리포트는 다 썼냐? 기록지랑?”

    “아뇨…….”

    “이딴 영상이나 보고 있을 시간에 시킨 거나 똑바로 해라. 쫌!”

    “…….”

    “누가 이런 거 보고 스카우트 하라디? 누구야!”

    “아니 그냥, 저는 궁금하기도 하고…….”

    “동영상 출처도 확실하지 않아, 이게 빨리감기 된 건지 확인도 안 돼, 심지어 그 동영상은 아마추어가 대충 찍은 경기 영상이야. 아주 대단한 스카우터 나셨다?”

    아무 말도 못하는 스카우터에게 팀장이 동영상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아니 제구가…….”

    “그러니까 직접 봤냐고.”

    “…….”

    “니 말대로라면 타자가 누군지 부터 알아봐야 해. 제구되는 150이 넘는 직구를 끝까지 보고 넘긴다고? 저런 타격 폼으로?”

    빈손으로 스윙까지 하며 타자를 치켜세운 팀장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런 녀석이 쌔고 쌘 강속구 투수 유망주보다 훨씬 가치 있다. 알았냐?”

    “네…….”

    “가서 일해라.”

    “넵!”

    부산 시티즌즈. 만년 하위권 팀.

    오늘도 그들은 압도적인 약팀은 선수가 만드는 것이 아닌 프런트가 만든다는 말을 증명했다.

    * * *

    쿠웅!

    손목에 감겨 있던 스트랩을 풀자 바가 떨어지며 엄청난 소리를 낸다.

    ‘드랍매트를 구해 와야 하나? 그렇다고 루마니안으로 깔짝거릴 수도 없고…….’

    야구선수의 기본은 하체. 이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매번 1RM을 갱신한다. 이게 정말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인지, 그 이상을 끌어다 쓰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되는군.’

    내구가 성장하지 않는 이상, 더욱 탄력적인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근육에 넘쳐나는 힘을 받아 주는 인대, 연골, 관절과 그 부분을 서로 지탱하는 근육들.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가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가장 큰 근육까지.

    “후우.”

    질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들. 그런 시선이 즐겁다.

    ‘이 정도면 역도선수로 나가도 될 거 같은데? 자세야 크로스핏 하면서 배웠고……. 나중에 군 면제 안 되면 올림픽이나 나가 봐야겠네.’

    지금도 땀 흘리고 있는 태릉의 역도선수들이 들으면 바벨로 맞을 수도 있다.

    실없는 생각도 잠시, 잠깐의 휴식 후 다시 배트를 집어 든다.

    신나는 스윙연습 시간이다.

    신난 나에게 다가오는 김태연.

    “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그건 평범한 사람들이고.”

    “아, 언제나 항상 올곧게 재수 없구나 너는.”

    “왜? 뭐 할 말 있냐?”

    진실을 말해도 미움 받는다.

    “너 다른 애들하고는 한마디도 안 하지?”

    “꼭 해야 하나?”

    “뭐가 됐던 야구를 하면 나중에라도 만날 애들인데, 좀 살갑게 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여기서 10년 후 야구로 밥 먹으면서 살아남는 사람은 4명밖에 안 되는데.

    “난 나 싫어하는 놈들한테 살갑게 다가가는 거 못 한다.”

    “알아, 됐고. 너 주말에 뭐하냐?”

    삥 뜯길 예정이다.

    “동생이랑 여기저기 돌아다닐걸?”

    “그래? 잘됐네. 나랑 애들 몇 명하고 만나서 놀 생각인데 동생하고 같이 와라. 동생도 야구 하지?”

    야구 좋아하긴 하지.

    “좋아하긴 하는데 안 해.”

    “그래? 뭐, 우리가 야구 이야기만 할 거도 아니고. 아무튼, 만나서 노는 거다?”

    “그래.”

    빨리 스윙연습 하고 싶다.

    “몸 좀 사리면서 하고. 간다.”

    시끄러운 방해꾼이 사라지고, 난 가장 재미있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중간에 뭔가 놓치는 게 있는 것 같아서 잠시 타격 폼을 살펴봐도 달라진 것 없이 유지된 타격 폼이 조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주말.

    “뭐? 갑자기 오빠 친구?”

    “어, 오늘 만나서 놀재.”

    “너 돌았냐?”

    “너, 계속 말 그따구로 할래?”

    “그런 이야기를 출발하고 버스 탄 다음에 한다고?”

    “깜빡했어. 방금 문자 와서 기억났다.”

    “됐고, 못 만난다고 말해. 누구 어색해서 죽는 꼴 보고 싶어? 내 꼬라지는 어떻고! 나 그냥 집에 갈래. 내린다.”

    “그럴래? 잠깐만. 어? 쟤네들이야.”

    때마침 버스에 우르르 타는 녀석들.

    “야! 여기!”

    한 무리의 남자들과 한 여자가 갑자기 정지한다.

    버스 곧 출발하는데. 너네 그러다 넘어진다.

    * * *

    “아니 그래서 이 인간이 그 상황에서 이러는 거예요!”

    “난 계란 푼 라면 안 먹어.”

    “죽여 버려야지, 아직 살려 뒀어?”

    “오빠랑은 맘이 좀 맞네, 그래서 죽인다고 난리 치다가 엄마한테 된통 혼났죠.”

    처음에 분명 어색하고 그래서 싫다고 했던 거 같은데.

    어느새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내 이야기로 친해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저 녀석 멘트가 뭐였는지 알아?”

    “뭐 방해하지 마, 죽여 버릴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알고 있었어? 저런 인간인 거?”

    “우리 집에서 나만 알아요.”

    “고생이네. 힘내.”

    좋은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참아 보려 했지만 기다리다간 다시 게임의 랭커가 되어야 끝날 거 같다.

    “그만하고,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됐어. 난 이제 집에 갈래. 오빠하고 같이 먹으면 쪽팔려.”

    아프다.

    “아무튼, 우리 오빠 잘 부탁드려요. 말주변도 없고 좀 모자라서 그렇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제가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한 게…….”

    “그만, 갈 거면 빨리 가라.”

    “응. 엄마가 갈비 해놓는다고 했으니까 너무 많이 먹고 오지 마라 돼지야.”

    “그래, 알겠다 돼지야.”

    폭풍 같은 수다 타임이 끝나고, 지친 나와 쌩쌩한 애들은 주변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너 왜 동생이 여자라고 말 안 했냐?”

    “안 물어봤으니까.”

    “그건 당연히……. 됐다. 아무튼, 좋은 동생이네.”

    “그렇지. 말 안 해도 안다.”

    “야, 너희는 언제까지 입 닫고 그러고 있을 거야? 너희도 할 말 있다며?”

    아까부터 멀뚱히 앉아 있던 이유가 있었구만.

    최지원, 신민수. 김태연과 함께 외야에서 뛰고 있는 녀석들.

    “후. 야, 김사범”

    “왜?”

    “너, 네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냐?”

    있다. 지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상태창이나 스킬창이 있는 야구선수가 정상은 아닐 테니까.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실력 좋다고 남들 깔보고 무시하다가, 자기가 삽질 좀 하니까 사람 죽일 거 같은 표정 지으면서 다니고.”

    “그 모습이 솔직히 존나 통쾌해서 말 좀 걸면 쌩까고 지나가고.”

    “그러다가 다시 좀 치니까 이젠 또 입이 열리더라? 네가 봐도 재수 없고, 짜증 나지 않냐?”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힘든 것 같다. 지금처럼.

    ‘깔보고 무시한 게 아니라 좀 더 좋은 방법을 알려 준 거고, 쌩깐 게 아니라 내 몸 추스르기 바빠서 지나친 거다.’

    김태연이 이어서 말한다.

    “굳이 이렇게 우리가 따로 이야기하는 건, 누구라도 나서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야 몇몇 애들한테 말해 봤지만 다들 고개만 젓고 나서지 않으려고 해서.”

    “뭐가 됐든 우리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1년이다. 감독님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지만 너무 급하게 진행됐어.”

    “실력으로 잠재운다고? 실력, 인정하지. 근데 그것만 가지고 애들이 널 따를지 모르겠다.”

    “어쨌든 넌 내야 수비의 핵이고, 애들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야.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만, 좀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조용히 고기를 먹고, 헤어졌다.

    ‘내가 그렇게 많이 잘못한 건가.’

    ‘난 단지 야구를 좋아하고, 진지했던 거밖에 없는데.’

    ‘야구선수라면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실력으로 말하는 게 맞는 건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도착한 집. 하별이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

    “좀 뚜드려 맞았지?”

    “어?”

    “그 말 잘하는 오빠 옆에 있던 오빠들, 심상치 않던데?”

    “넌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내가 오빠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랬나? 내가?

    “야구 잘할 땐 신나 하다가도 안 되면 죽을 거같이 우울해하고.”

    말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오빠도 잘 생각해 봐. 뭐가 맞는 건지. 난 뭐, 적응되다 보니 별로 신경 안 쓰이는데.”

    아니다. 너 또한 내 성격에 신경 쓰다가 지쳐 떠나갔다.

    아무래도. 나는 야구가 아닌 좀 더 고차원적인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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